〈 53화 〉중간 평가
“우웩.”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은 변기였다.
기숙사로 들어가 잠시라도 잠을 청하려고 하던 찰나, 머릿속을 뒤흔든 건 살인을 할 때의 기억이었다.
당장이라도 토가 나올 것 같아 변기로 달려왔지만, 나오는 것은 위액뿐이었다.
침같이 입에서 위액이 흘러내렸고, 변좌를 잡고 있음에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잠을 자기엔 글렀네.
손에는 아직도 사람의 심장을 찌를 때의 느낌이 선명했다.
마치 내가 사이코패스라도 된 듯이 그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사람을죽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송소희를 죽일 때도 똑같았다.
굳이 화살을 꺼내 그녀의 심장에 꽃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활을 이용해서 쏘았으면 느낌이 남지 않았을 텐데.
마치 내가 그 느낌을 즐기는 듯이 일부러 심장에 화살을 꽂은 것처럼 느껴졌다.
“우욱…”
미쳤었다.
그것을 나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가면을 쓴 나를 그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변기 물을 내리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면 속의 얼굴은 어땠을까.
웃고 있었을까?
내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었던 그런 나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왜 나를 죽였어?”
“……”
“응? 어째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화살을 꽂으며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심장에 꽂으며, 입에서 피가 나오고 심장에서 피가 튀어나오는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자기 손목은 못 자르면서, 왜 남은 그렇게 죽이는 거야?”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감정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녀를 죽인 것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몇이나 더 죽이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몇 명, 어쩌면 수백, 수만 명을 죽여야 할 수도 있었다.
사실 지금 겪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사람을 죽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신이 흔들리는 것은 이번뿐이었다.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이번 일만이었다.
잠이 오지 않음에도 눈을감고,아침을 밝혀오는 해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
교실에 들어오고 몇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머리가 안 좋은 놈인걸.
학교가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범인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어차피 후반에 배신할 빌런을 죽인 것까지도 좋았다.
이거 두 개까지는 내가 원래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어떡해…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니야?”
“괜찮아. 교관들이 나선다잖아.”
남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여자가 안심시켜주는 교실의 풍경이었다.
원래 잃어버린 유물을 찾으려고 나서는 교관들은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내 생각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체가 발견되기 전 유물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모두 우왕좌왕할 때, 생도나 교관이 시체를 발견한다.
유물이 보관된교실의 감시 카메라를 통해 보았던 윤예진의 모습을 해명해주려고 카메라를 두고 온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원래 하루 동안 수업을 빠지는 윤예진이 지금 교실에 온 것까지는 좋았다.
송소희와 내가 싸우는 모습을 녹화해둔 카메라가 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니까.
그런 다음에 가면을 쓴 내가 위험인물로 지정되었다.
‘기억해내자.’
영상에 뭐가 찍혔는지.
마지막에 이상한 생각을 하느라 뒤처리까지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영상의 내용은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한 번 돌려보면서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천천히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그냥 뒷부분은 없애도 됐을 것 같은데.
생도가 죽은모습은 이미 여러 반에 소문이 났기 때문에, 하랑은 범인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지금 교실이 개판이었다. 수업에서 가면을 쓴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유은설은 범인의 모습이 나오자 충격적인 표정일 지었고, 지금도 유지 중이었다.
윤예진은 생도가 왜 죽은 지 알고 있는 건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는 건가? 모르고 있는 걸까?
아침 일찍 불려가서 얘기를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오전에 수업이 끝나고 담당 교관이 들어와 수업의 끝을 알렸다.
오후 수업이 남아있지만, 지금 분위기를 봐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혼자 다니지 말고, 새벽에 다니지 말고, 찾을 때까지는 조심하면서 다니도록.”
초등학생한테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다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 두 명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교관의 말이 끝나자 다들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교실에 남아있는 사람은 단 세 명이었다.
“설화야 안 나가?”
나의 옆에 있는 김세연.
“우리 얘기좀 하지?”
그리고 나에게 다가온 윤예진.
“무슨 이야기?”
이제 와서 또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내가 그녀가 추측하는 사람이 맞다고 자백하는 꼴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아… 일단 쟤는 내보내고.”
윤예진은 그렇게 말하고 김세연을 쳐다봤다.
김세연도 그런 윤예진이 싫은지 째려보고 있었다.
“야. 그냥 얘기하지?”
“아니다. 우리 둘이 자리를 옮기자.”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장소를 전했다.
“기다리고 있을게.”
김세연과 나만 남은 교실은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가지 마. 쟤랑 엮여서 좋은 거 없어.”
그녀는 나에게 가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윤예진과도 풀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언제는 풀어야 할 이야기였기에, 일단 가기로 했다.
“가지 마. 쟤…”
“알고있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인 줄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윤예진과도 대련한 이유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한테 김세연이 나한테 올 일이 없을 거니까.
김세연은 이미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어?”
“혹시 모르잖아.”
“그렇지만… 그 이상한 사람도 있고…”
“괜찮아.”
그 이상한 사람이 나라고는 절대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숨겨야 할 치부와 다름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같이 가겠다고 말했지만, 혼자서 가겠다고 끝까지 주장하자 알겠다고 놓아줬다.
사실 나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에게서 시작된 것인지 궁금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모든증거가 그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
그녀와 만난 곳은 처음 그녀에게 불려갔던 날 들어왔던 방이었다.
그녀는 이미 들어와 앉아있었고, 나도 건너편의 의자를 끌어 앉았다.
“왔네.”
“그러게.”
윤예진은 담담하게 나를 반겼다.
“너지?”
“뭐가?”
단지 두 글자의 단어가 오갔을 뿐임에도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하아… 그래. 뭐 그래도 너 때문에 살았으니까.”
윤예진은 이미 나라고 확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소리 하는지를 모르겠네. 저번부터.”
나는 끝까지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밝힐 이유도 없었고, 정확하게 들키지도 않았다. 그녀의 말에 놀아날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뭐 그렇겠지.”
“얘기 끝났어?”
그녀에게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윤예진에 대한 나의 생각이 오해라고 듣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기다려. 왜 그렇게 사람이 급해? 이번에는 정말 너랑 관련된 거니까.”
“…뭔데?”
“혹시, 내가 너한테 잘못한 거 있어?”
“뭐?”
그녀의 입에서나온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어투의 말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번에 너부터 시작해서, 김세연까지. 아… 생각하니까 머리 아프네.”
“정말 몰라?”
“아니. 내가 뭘 했는지 알아야 사과라도 하지. 뒤에서 음습하게 알아내고 그런 거 못 하니까.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거야. 김세연은 알려주지도 않고…”
그녀의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그녀가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봤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차라리 그녀처럼 이렇게 물어오는 것이마음에 편했다. 나한테 대놓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뒤에서 끙끙대는 것은 나도 그녀도 답답한 방법이었다.
그녀의 반응을 봐서 정말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너는 알고 있는 거지?”
“알고 있지.”
“그럼… 아 미안… 내가 잘못한 거야?”
그녀가 미안하다며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말하면서도 그때가 생각나 머리가 아팠지만, 그녀에게 전부 말하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아씨…”
그녀는 듣고 누군가 짐작 가기라도 한 듯, 욕을 내뱉었다. 곧 내 앞이라는 것을 알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녀와 나는 나빠질 일이 없었다. 그냥 딱 이 거리가 좋았다. 나를 의심하는 단계.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이렇게 애매한 관계가 좋았다.
누구 하나가 잘못하면 연을 끊기도 쉬웠고, 상처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윤예진의 이런 당당한 점이 지금은 너무 좋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신경질을 내며 밖으로 나갔다.
오히려 그녀가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면서 곧 있을 시험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처럼 바보 같은 일을 하면 일이 크게 꼬일 것이다.
천천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계획해야 했다.
깔끔하게 해결하면 좋겠지만, 최악의 수까지 생각해야 했다.
아니 어쩌면 방법이 최악의 수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했다.
“방심 좀 해주지.”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말이 되긴 했다.
아카데미 생도를 상대하는데 교관도 힘들 상대를 붙여놓는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원래 소설 같은 곳에서는 딱 생도 수준의 적을 던져놓고 힘들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그려져야 했다.
소년만화처럼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어 적을 죽이던, 아니면 함정을 써서 죽이던 그래야 했다.
이번 적은 그게 통하지 않는다. 단지 일차원적이라 등장인물들이 살 수 있었을 뿐이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자.”
가능하다면 죽인다. 살려둬서 좋을 사람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