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중간 평가
이 바보 같은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윤예진은 병상에 누워있는 한설화를 보며 말했다.
교관들을 따라간 것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윤예진도 따라오지 말라고 말렸지만,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따라온 것이 다행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건물 밖으로 빌런들이 튀어나왔고, 교관들은모두 빌런들을 쫓아갔다. 그 결과 윤예진이 한설화를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다.
한설화의 첫 모습은 참혹했다.
평소의 깔끔한 용모를 뽐내는 한설화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얼굴은 피로 물들어 붉게 빛나고 있었고, 팔과 다리에서 나오는 피로 바닥에는 웅덩이가 고여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시체들이 널려있었고, 그 사이에서 한설화만이 우뚝 솟아있었다. 무릎을 꿇고 기절해 서 있는 모습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를 업어 가장 먼저 복귀했다. 주위에 다른 생도들도 있었지만, 약에 취하거나 몇 군데가 부러졌을 뿐,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은 한설화뿐이었다.
윤예진이 한설화의 옆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처음 한설화를 데려온 병원이 윤예진의 길드와 협력 하는 곳이었다. 어쩌다 보니 다른 부상자들도 병원에서 맡기로 계약이 성사되었고, 윤예진은 길드에 부탁해 병실 출입증을 얻어낼 수 있었다.
얕은 상처를 입은사람은 대부분 퇴원했지만, 한설화는 상처가 심해 눈을 뜨지 않은지 며칠이 지났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치료사들이 말하길 외상은 모두 치료가 되었지만, 몸에 남아있는 약물이남들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바보 같아.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치유 능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큰 외상도 한 번에 치유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몸에도 무리가 간다. 큰 상처를 치유하면 며칠을 움직이지 못한다.
지금 한설화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과도한 치유 때문이었다.
한설화의 눈꺼풀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곧, 한설화가 눈을 뜨고 윤예진은 방금까지 걱정했던 것을 날려버리고 태연하게 말했다.
“일어났어? 화려하게 일을 벌였더라고.”
그 자리에 있던 윤예진이 더 체감했던 일이었다.
유은설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까지 지키려고 하는 걸까.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 지키려고 한 이유가 뭘까.
궁금한 것이많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묻지는 않았다. 당장 한설화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테니까.
“이제는 부정하지도 못하겠지?”
몸이아예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 직접 몸을 움직여서 병실에 곱게 개어져 있는 옷과 가면을 눈앞에 가져다줬다.
옷과 가면을보고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게 뭔 줄 알아? 그렇게 부정하더니, 결국은 이게 뭐야.”
숨길 것이었으면, 잘 숨기던가.
이렇게 허무하게 들킬 거였으면, 왜 끝까지 부정했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조용히 해. 가면은 바닥에 있었어도, 옷은 제대로 입고 있더만.”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때 봤던 상황을 얘기해주자, 입이 움찔거리기만 하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얘기좀 하자.”
윤예진은 몸도 잘 못 움직이는 사람을 상대로 심각한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말고. 치료에 집중해.”
**
윤예진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한설화가 정상적으로 거동이 가능할때였다.
주위 서랍에 보관되어있던 옷과 가면은 사라진 상태였고, 침대에 앉아 그녀를 맞이했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은 얼마 전까지 환자라고 볼 수 없는 해맑음이었다.
“웃겨?”
“어…?”
“웃기냐고.”
얼마 전까지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상태였는데, 무엇이 그렇게 좋은 걸까.
그것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모르겠다. 다치지 않을수 있는 상황임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왜 그랬어? 그냥 도망치면 됐잖아.”
“어떻게 도망쳐. 그 상황에서. 나갈 수도 없었는데.”
“거짓말하지 마. 뭐 여러 가지 능력 있잖아.”
“으음…”
윤예진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하는 한설화에게 다가갔다.
“가면이랑 옷은 어디 갔어?”
“비밀.”
“하아… 아직도 비밀이 있는 거야?”
“헤헤…”
“웃지만 말고.”
하랑이 세워진 지는 100년도 안 됐다. 오히려 하랑의 역사는 짧은 편에 속했다.
당장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갑작스러운 게이트의 등장에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 적도 있었다.
처음의 이계형 게이트는 툭하면 폭주하기 시작했고, 세상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각성자로 인해 툭하면 범죄가 일어났다.
지금 이런 사회가 펼쳐질 때까지 수많은 땀과 노력이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까지?”
“으음…”
게이트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게이트 속의 괴수들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당장 몇십 년 전에만 해도폭주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폭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폭주하는 게이트가 크게 줄어들었다.
“난 이해가 안 가. 도대체 왜? 자기 목숨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야?”
초창기에는 길드라는 개념이 아예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뿐이었다.
그것이 점점 거대해지고 길드라는 개념이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윤예진의 길드를 세운 사람은 그녀의 할머니였다. 그녀의 할머니는 S급 헌터 중 강한 축에 속했다. 그렇기에 길드장으로 추대받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윤예진이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릴 때였다. 이미 기억 속에서 할머니의 얼굴은 잊힌 지 오래였다. 남은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새기며, 얼굴을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한국의 마지막 게이트 폭주가 일어난 날이었다.
윤예진의 할머니는 남들을 구하다가 마지막 괴수와 공멸했다.
윤예진은 그런 할머니를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기까지 기다렸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장 앞에서 웃고 있는 한설화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남들을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었고, 이렇게까지 아파할 필요도 없었다.
대체 누가 알아준다고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일까.
**
처음 싸늘하게 말하는 윤예진을 보고 잠깐 놀랐다. 심장이 서늘해지며, 근육이 수축하며 긴장됐지만, 금방 긴장은 풀어졌다.
나는 윤예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왜 남을 위해 희생하냐.
유은설과 윤예진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었다. 유은설은 부모님을, 윤예진은 할머니를 잃었다.
유은설은 그 경험이 남을 잃고 싶지 않다는 집착으로 발전해왔고, 윤예진은 경험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했다.
둘의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은설은 단순한 사고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게이트 폭주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예진의 할머니도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이 세간에 크게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의 관리 소홀로 게이트가 폭주 된 것이기에 정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 중 하나였다.
내가 윤예진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유은설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폭주에서 죽은 사람을 사고사로 처리하고, 죽은 헌터는 유가족과 합의를 걸쳐 사건을 은폐하기 급급했다.
가장 큰 전력을 잃은 윤예진의 길드였지만,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너무 착해서 탈이야.’
나도 소설을 볼 때는 이게 뭔 개소리냐고 소리쳤던 기억이 남는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질문에 웃기만 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해도 그녀는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듣기는 하고 있어? 유은설 걔는 대체 왜 가서.”
그거는 맞는 말이다.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열 받네. 아니 갑자기 걔가 나를 덮치고 뺏어갔다니까? 아니 듣고는 있어? 웃지만 말고 대답을 해.”
그녀는 어지간히 유은설에게 당한 것이 억울한지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걔 때문에 네가 이렇게다친 거잖아. 화도 안 나?”
요즘 나한테 화를 내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사람이고 화를 낼 줄 안다. 단지, 지금은 화를 낼 상황이 아니었을 뿐이다.
“하아… 입을 바늘로 꿰매기라도 했나. 말을 좀 해봐.”
그녀의 심정은 어떨까. 나를 할머니에 대입해서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럼 그녀의 걱정은 할머니를 향한 걸까. 나를 향한 걸까.
이해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의 아픔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아파져 왔다. 거짓된 공감일지라도 남을 위로해줄 수는 있었다.
“다음에는 이런 일 있으면 따로 말해. 혼자서 뛰어다니지 말고.”
“안돼.”
그렇기에 정확하게 끊어야 했다. 그녀가 간섭할 부분이 아니었다. 오늘 같은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있을 것이다.
목숨이 위험한 일을 그녀와 함께할 수는 없었다. 윤예진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극단적이었다. 내 모습을 보고 감정에 치우친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았다.
“둘이면 더 안전할 수도 있잖아.”
“둘이라서 더 위험할 수도 있지.”
“못 믿는 거야?”
그것 외에도 당장 윤예진과 함께한다면 걸리는 것이 많았다. 그녀와 같이 다닌다면 정체를 들킬 수도 있었고, 가장 중요한 기동성이 떨어진다. 유물을 몇 개 주워서 주면 해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유물은이제 후반부에 나오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어… 생각해보니까 유은설은?”
“빨리도 말한다. 곧 올 거야.”
“잠시만… 곧?”
“응. 참고로 걔는 네 정체 모른다. 얼마나 둔해야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 다행이다.”
“다행이긴 무슨…”
말끝을 흐리며 나를 노려봤다.
“가면은 왜 쓰는 거야? 무슨 능력이라도 있나?”
“그거야… 비밀이지.”
말할까 싶었지만, 말해봤자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았다.
“비밀 좀 진짜… 아니 안 쓰면 정체도 드러내고 좋잖아. 이번에 죽은 사람이몇 명인 줄 알아?”
“몇 명인데?”
“단 세 명. 그것도 처음에 죽은 사람뿐이야. 네가 코어 고치고 나서는 죽은 사람 한 명도 없어.”
“다행이다.”
원래 이 사건에서 1학년 4분의 1이 하랑에서 나간다. 죽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습격에 충격을 받아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에게 정확한 수치로 들어보니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도 내가 한 행동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근데 네가 한 일인 줄 모른다니까? 억울하지도 않아? 이상한 가면을 쓰고 다녀서 오해나 받고.”
내가 딱 생각한 대로였다. 이게 딱 나에게 맞는 자리였다.
“말만 해. 도와줄 테니까.”
“됐다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 말하지만 말아줘.”
그녀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투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제안은거절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동료가 생겼다!’하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결국, 그녀와 가까워지게 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받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도 생길 것이고, 서로에게 실망하는 점이 생길 수도 있었다. 지금 딱 이 거리가 좋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무거운 짐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힘들 테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 줬으면 좋겠다.
“하아… 나중에 다시 말해. 애들 오니까. 그나저나 너 활은 알아서 찾아가. 그거 들리지도 않더만.”
“응?”
“수거도 안 된다고, 나 그거 들으려고 온갖 힘을 다 써봐도 들리지도 않더만.”
“그래?”
“너도 모르는 거였어?”
이상하다?
그게 왜 안 들리지?
나도 모르는 현상이었다.
“유은설이 그거 주인 만나겠다고, 거기 주위에서 밤새고 있으니까 조심하고. 나였으면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눈치는 더럽게 없다. 그치?”
“됐어.”
곧,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나고, 세 명이 들어왔다.
“설화야!”
보자마자 달려오는 사람은 김세연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유은설과 이하늘이었다.
이하늘은 꽤 의외였다. 그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괜찮아? 별일은 없고? 미안해.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꾸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김세연을 떨어트려 놓았다.
대체 뭘 미안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건 나일 텐데.
유은설의 눈 아래는 퀭해 있었다. 정말로 밤을 새우며 주위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너도 나 들어가는 거 봤지? 하하..”
정확히는 바로 앞에서 봤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으로 잡혀있었다면,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을 게 분명하니까.
“혹시… 가면 쓴 사람 나오는 건 못 봤어?”
“유은설!”
그 말에 이하늘이 유은설에게 소리쳤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살아있다면 다음에 만날수 있겠지. 그걸 왜 한설화 앞에서 말하는 건데.”
“…미안. 설화야.”
“얘가 정상이 아니라서 그래. 내가 대신 사과할게.”
정작 아무렇지도 않았다. 뒤에서 윤예진은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대화가 웃긴가보다.
김세연은 내 몸을 더듬으며 괜찮냐고 묻고 있었고, 이하늘도 한 마디씩 툭툭 던지고 있었다.
이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다들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대해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물질적인 것만이 보상이 아니었다. 심리적으로 그들에게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이제는 부상을 털고 일어나 다음 일을 준비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