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예언자
퇴원 절차를 밟고, 가장 먼저 들린 곳은 하랑이었다. 하랑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중간 평가 때의 사건 이후 하랑은 7일의 휴교를 발표했다. 그 동안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있었고, 하랑에 남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통 이 시간에 사람들이 밖에 여러 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딱 좋네.”
눈을 깔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다녀도 되니까 훨씬 편했다.
하랑 교문 앞에 보이는 것은 세 명의 영정사진이었다. 그 앞으로 가서 절을 두 번 했다.
“미안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아예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음에는 더 잘하자. 아무도 죽지 않게.
다음에는 내 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검 들고 설친다고 바닥에 버려뒀던 것이생각났다.
활이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 활의 소유주가 있을 때는 다른 사람 손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과 비슷한 다른 검들도 여럿 있으니 이상한 현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하루가 저물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관들이 활 주위를 지키고 있었고, 그 주위에 유은설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녀만 특별히 허락한 것인지, 교관들은 딱히 제지를 안 하고 있었다.
활을 가져오는 것은 손쉬웠다. 애초에 옷과 가면이 있다면, 실력이 비슷한 사람에게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투명화를 쓰고,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옷으로 활이 있는 장소로 순간이동한 다음에, 다시 빠져나오면 됐다.
교관들은 갑자기 사라진 활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유은설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외쳤다.
“다행이에요! 저 때문에 죽으신 줄 알고…”
확실히 유은설도 참 둔하긴 하다. 내 정체가 들키지 않은 건 유은설의 둔함 덕분이었다. 윤예진의 절반만 닮았어도 들켰을텐데.
유은설은 그렇게 말하고 긴장이 풀린 건지 그자리에서 잠에 들었다.
병원에서 봤을 때도 몇 시간을 안 잔 건지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짙게 끼어 있는 것을 봤다.
아마 저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잠도 안 잤던 거겠지.
그런 점이 유은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내버려두고, 하랑으로 돌아갔다.
**
하랑으로 돌아가서 기숙사로 들어가서 잠이나 자려고 했다.
일어나서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피곤하다고 느끼는 건지 조금 졸렸다.
그런 나를 앞에서 부른 건 김세연이었다.
“설화야!”
“으…응.”
김세연에게는 미안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유은설은 지금 나보다 가면남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을 것이고, 윤예진은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논외였다.
그녀는 내가 끌려가 나쁜 일을 겪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제로 성관계를 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이세상에서 성관계는나에게 불이익이 하나도 없었다.
임신도 내가 하는게 아닌데 대체 무슨 불이익이 있을까.
“혼자 다니지 마. 위험하잖아.”
김세연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를 약간 과보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건지. 그녀의 호의가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결국 남을 걱정하는 마음은 호감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그 호감을 내가 쳐낼 수는 없으니까.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앞으로 이런 관계를 이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혹시 밥 먹었어?”
“밥…?”
“너 밥 먹는 걸 잘 못 봐서.”
실제로 밥은 그냥 배고프면 챙겨 먹는 편이었다. 하루에 한 끼 혹은 두 끼면 충분했기에 그렇게까지 때를 챙겨 먹지는 않았다.
“아직 먹지는 않았는데…”
“그러면 같이 밥 먹으러 갈래?”
김세연은 하랑의 밖을 가리키며, 나에게 가자고 말했다.
“…그래.”
김세연에게사과할 일도 있었기에 따라가기로 했다.
**
“그… 미안.”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길거리를 걷는 중 그녀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뭘?”
“시험장에서… 일 있잖아.”
“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지금까지 밝게 말하던 것과는 달리 마지막 말은 약간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곁에 있었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로 괜찮은 건 맞지?”
“응… 괜찮아.”
“그년들 내가 잡으면…”
마지막 말이 중얼거리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욕이 섞여 있는 것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죽인다는 말부터, 온갖 욕이 다 튀어나오는 것이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설화야 저긴 어때?”
그녀는 음식점을 하나 가리키고, 나에게 자꾸 괜찮냐고 묻고 있었다.
“난 어디든 괜찮아. 네가 가고 싶은데 가면 돼.”
“그렇지만…”
그녀는 어디서 들어본 것은 있는지 자꾸 파스타 집, 스테이크 집, 외관이 예뻐 보이는 음식점만 집어서 괜찮냐고 묻고 있었다.
당장 평범한 분식점에 데려가도 무엇이든 먹을 텐데,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괜찮다고 하면, 마음에 안 드는 줄 아는 것 같다.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녀를 음식점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건 약간 그랬다. 당장 밖에 음식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늘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곳만 들렸고, 혼자서는 밖에서 사 먹지도 못했으니까.
당장 나에게 들어가고 싶은 곳을 들어가라고 하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아무 데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나 정말 어디든 괜찮은데.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다 좋아.”
“어…어? 그래…? 그러면 저기로 갈까?”
어느새 번화가에 끝에 도착한 우리는 주위에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고기 좋아하나 보네.”
“어… 혹시 별로야?”
“아니야. 나도 좋아해.”
하나만 빼고 전부 마음에 들었다.
김세연과 나는 고깃집으로 들어가, 고기를 시키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세연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조심히 갔다와.”
화장실인데 조심하게 갔다 오라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어쨌든 조심하게 화장실로 다녀오기로 했다.
건물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기에 밖에 나가서 화장실을 찾았다.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말했다.
“할 말 있으신가 봐요.”
“하하… 들켰어?”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우리 뒤를 밟은 이 사람이었다.
IV 길드장.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는 나에게 계속해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말을 걸어달라는 듯한 움직임으로.
김세연이 알아차리지 못한 건 그녀가 작정하고 숨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우리 둘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미행할 수 있었을 테니까.
저번에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갔을 텐데. 나를 찾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얘기하기엔 그러니까. 나중에 만나죠. 하랑 내부에 숲 있는 거 알죠?”
“몇 시에?”
“같이 다니는 애랑 헤어지고 나서요. 알아서 잘 오실 거라 믿을게요.”
하랑 내부에 들어오기 힘들겠지만, 현재 생도 대부분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보안을 똑바로 할 일은 없을것이다. 애초에 정상적으로 보안이 들어가도 이쪽은 들어올 수 있을 것이고.
태연하게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이유는 짐작하고있는 바가 있어서 그랬다.
‘예언자는 저쪽에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은 이상, 정체를 들키지 않은 나를 찾아올 리가 없었다.
얘기를 끝내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굽고 있었어? 이제 나한테 줘.”
“아니야. 내가 할게.”
그녀는 이미 고기를 받고 굽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집게와 가위를 빼앗고, 굽기 시작했다.
내가 늘 고깃집에 가면 하는 일이 있었다. 고기를 굽는 일은 내가 도맡아서 했다. 다른 사람이 구우면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하냐’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아서 내가 굽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약간 질기게 구웠지만, 이제는 잘 구울 수 있었다.
고깃집에 가본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은 잘되겠지.
고기를 굽기 시작하고, 김세연을 쳐다봤다. 김세연은 많이 배고픈지 고기를 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에게 완벽한 고기를 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굽는 것에 집중했다.
“혹시 바싹 익혀야 해?”
“응? 아니 나 고기는 뭐든 잘 먹어서.”
“그래? 그러면조금 부드럽게 익힐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내가 다 먹고, 좋아하게 익혀주면 되니까.
딱 좋게 익혀진 고기를 그녀의 접시에 내버려 뒀다.
김세연이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그녀의 젓가락질 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하나를 딱 먹고, 입이 오물오물 씹히고 나를 보고 말했다.
“맛있다.”
그제야 나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다음 고기를 구우며 가끔 하나하나 먹기 시작했다.
“설화야, 너 고기 되게 잘 굽는다. 삼겹살인데 이렇게 부드러운 건 처음 먹어봐.”
그녀는 내가 접시에 올려주면 금방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내가 먹을 것까지 넘겨줬지만, 그녀가 먹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녀가 정신을 차릴 때쯤은 이미 고기를 여러 번 더 시켰을 때였다.
“설화야, 안 먹어?”
“응? 먹고 있어.”
“그렇지만, 처음이랑 밥양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천천히 먹고 있으니까, 걱정 마.”
“이제는 내가 구울게. 줘.”
집게와 가위의 소유권에 대해 몇 번을 다툰 뒤 그녀에게 넘겨줬다.
내가 구운 고기는 이미 그녀의 배로 다 들어갔고, 나는 김세연이 구운 고기를 먹었다.
내가 지켜봤던 것과 똑같이, 그녀는 굽는 것을 멈추고 내 젓가락에 시선을 집중했다.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고기를 하나 집어 먹고 말했다.
“맛있다.”
주는 대로 먹는 성격이어서 입맛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 아예 태운 것이 아니라면 뭐든 맛있게 먹는 편이었다.
김세연은 자신의 고기를 하나 먹고 나를 쳐다봤다.
“조금 질기지 않아?”
“응? 맛있는데?”
내가 구운 것보다는 질겼지만,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기 그 자체로 맛은 있었기에 굽는 것에 별로 상관 쓰지 않는 편이다.
“미안…”
“왜… 왜 그래.”
“내가 굽는다고 했는데, 별로 맛있지는 않네. 좋게 말하지 않아 줘도 돼.”
“아니 정말로 맛있어.”
고기 하나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냥 먹는것 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내가 여러 개 집어서 한 번에 먹으며 맛있다고 하자 그녀의 표정도 약간 풀어졌다.
처음은 정말로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조금은 밝아졌다.
그렇게 서로가 고기를 구워주며 번갈아 먹었다.
그녀도 안심하고 고기를 먹기 시작하니까 다행이었다.
**
교문에 들어가자 보이는 사진에 묵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간간히 보이는 생도들의 표정도 그렇게까지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게 죽음이 익숙한 세상의 풍경인 걸까.’
아니면 그들만의 이별을 보내는 방식인 걸까.
헌터라는 직업은 사실 어떤 직업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안전하게 사냥을 한다고 해도,실수를 한 번 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화야잘 먹었어. 다음에는 내가 살게.”
나에게 잘 먹었어라고 말하는 김세연을 먼저 들여보냈다.
그녀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갑을 안 가져와 내가 돈을 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산다면서 계산대 앞으로 가서 지갑을 찾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주머니를 더듬으며 지갑을 찾지 못하고, 결국 내가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다.
애초에 얻어먹을 생각도아니었고, 반은 낼 생각이었다.
“들어가.”
여자 기숙사가 남자 기숙사보다 앞에 있었기에 그녀를 먼저 들여보냈다.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는 그녀를 떼어놓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기숙사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숲으로 향했다.
늘 봐왔던 숲의 공터의 공기를 들어마시고 있자, 내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안녕.”
이번에는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
누군지 예상은 갔다. 한 명은 소설 속에서 표현하는 외향 그대로였고,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놀라지 않네?”
“대충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예언자가 누구에요?”
숨길 것도 없이 바로 말했다. 질질 끌면서 다른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나도 지치는 일이었다.
“알고 있었나 보네. 얘야.”
소설에서 나오지 않았던 나보다 키가 작은 소녀가 앞으로 나와 얘기했다.
“너야?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거야, 비밀이죠.”
“똑바로 대답 안 해? 너 지금 우리가 손가락 한 번만 튕기면 죽을 수도 있어.”
“못 죽이시잖아요. 미래가 변해서.”
정말로 그들이 몇 초 만에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당당한 이유는 그들이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힘들게 증명할 필요도 없었고, 단지 미래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설명이 되었다.
“그래서 왜 찾아오셨어요?”
“나 쟤 짜증 나.”
키가 작은 사람은 투덜대면서 말을 그만뒀다.
“우리가 온 이유는 하나야. 네가 개입해서 바뀐 것에 대해 알려주려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 충격이었다.
곧, 마인이 나온다.
그것도 1학년이 끝날 때쯤 나와야 하는 사건과 함께.
그것 하나만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잊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