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마법
마인.
악마는 마음이 취약한 사람에게 다가가 달콤한 유혹을 한다.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그저 저렇게만 쓰여있을 뿐이었다.
본래 첫 마인의 등장은 1학년이 끝날 때쯤 등장한다. 화려한 등장과 함께 등장인물들의 뒷통수를 쳐준다.
그런데 그런 마인이 벌써 등장한다고 한다. 한 학기는 이르게.
“정말이에요?”
“우리는 원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근데 드러냈다면 이유가 있겠지?”
앞에 서 있는 길드장이 대답했다.
“너를 찾아온 이유도 최근에야 가면이 벗겨진 맨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잠시만요. 그러면 지금까지 변한 미래가…”
“어떨 때는 마지막 적이랑 상대하는 사람이 유은설 한 명일 때도 있었고, 아무도 없었을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너도 있던 때도 있지.”
“그러면 지금은…”
“아무도 없어. 다 죽었다는 뜻이지.”
마지막은 옆에 키가 작은 여자가 말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째려보고 있었다.
호감이 안 가는 성격이긴 해도, 처음부터 미움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녀와 관계를 개선하기는 약간 힘들 것 같았다. 시작할 때부터 안 좋게 보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개선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 사람에게는 안 좋게 보일 뿐이고. 결국 서로가 지칠 뿐이었다.
그렇지만,말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예언이 그 정도까지.”
“그건 조금…”
“됐어. 이건 내가 말할게.”
길드장은 예언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다가, 나를 싫어하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너만 알고 있어. 이건 우리도 몇몇밖에 모르는 거니까.”
비밀이라는 소리에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알아야 하는 사실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이 세상의 끝. 그리고 한 사람의 미래에 대해 볼 수도 있고.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아는 건 조금 시간이 걸리고.”
“그런 사기적인 능력이…”
믿을 수가 없었다. 저런 능력이 있다면, 왜 후반에는 쓰지 않았지? 그들이 의도적으로 숨기고 사용한 걸까?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예언을 봤다면, 그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리가 없었다. 마왕이 예언을 훔쳐본다고 해도 전부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가 안 되지?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아니…”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웠고, 그 능력이 저렇게까지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줄은 몰랐다. 끽해봐야 며칠 후를 추상적으로 예측할 줄 알았다.
저렇게까지 자세하게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대가로 사용하는 건가?
“물론,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지.”
“여기까지 그만 말해.”
“됐어. 쟤도 알고 있어야지. 유일한 희망인데. 대가는 수명이고, 지금 나 5년도 못 살아.”
“그만!”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놀랄만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길드장은 옆에 키 큰 여자에게 뭐라 말하더니, 키 큰 여자가 예언자를 붙잡고 사라졌다.
“방금 거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진지한 어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남의 비밀을 말하고 다닐 생각도 없었고.
“하아… 쟤는 그걸 왜 말해서.”
그녀의 말이 끝나고, 분위기가 약간 우울해졌다. 사람이 죽는다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상황은 우리도 도와줄 거니까. 알고 있어.”
“잠시만요.”
이 일은 이런 식으로 풀면 안 됐다. 당연히 그들이 전력을 다해 도와준다면,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 사건은 유은설의 성장이 포함되어야 하는 거니까.
“왜? 그러면 거기서 다 죽게?”
“생각 좀 하고, 다음 주에 다시 한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달리할 방법이 있나?”
“그거는 생각해봐야죠. 도와줄 거죠?”
“말이 된다면.”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유발해야 했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가던, 나쁜 방향으로 가던 작위적으로 소설과 똑같이 사건을 전개해야 했다.
“루시아. 그게 내 이름이야. 다음에 보자.”
누가 봐도 한국인의 외견을 띄고 있었지만, 이름은 외국인이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함에도, 외국 이름을 쓰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물어볼 만큼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는 다음 약속을 잡았다.
“다음 주에는 제가 나갈게요. 시간은 똑같이, 장소는 처음 만났던 곳에서 보죠.”
루시아는 끄덕이고, 어느새 옆에 나타난 키 큰 여자의 손을 잡고 사라졌다.
“쉽지 않네.”
그들의 도움까지 얻어낸 이상 완벽한 계획을 짜야 했다.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모토겠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개입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것이 그들의 계획이라면, 그것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들의 개입은 결국, 미래를 바꾸지 못하니까.
“정신 차리자.”
너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생각하자.
**
근 며칠간 생각해도 마지막 남은 퍼즐 조각은 맞추어지지 않았다.
1학년 말, 마인의 습격을 받고 하랑은 공격을 받는다.
주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던전에 들어갔거나 해외로 파견을 나간다. 그렇기에 등급이 낮은 헌터나, 하랑의 생도만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이번에는 시기가 앞당겨졌지만, 마왕이 그렇게 허술한 계획은짜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소설과 똑같이 흘러갈 것이라 가정하고사건을 생각해야 한다.
교관들도 도와주지만, 상대의 수는 상상 이상으로 많다. 단숨에 수많은 던전이 폭주해 괴수를 소환하는 것은 얕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 던전의 괴수만 해도 여러명이 처리해야 한다. 그런 괴수들과 빌런, 마인까지 합세한다면 전세는 우리가 급속도로 불리해진다.
본래 소설에서는 유은설이 대규모 마법진을 그려 정리한다.
물론,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목숨을 대가로 마나를 빌려 쓰는 것뿐이었다. 목숨을 사용해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살아있기는 한다.
‘그렇다고 그걸 두고 볼 수만은 없잖아.’
수명을 사용해 구하는 것은 좋다. 벽을 깨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렇게 마왕을 잡으면?
유은설은 그 뒤에도 수명을 소모해 마력을 사용한다. 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결국 그녀가 희생한다.
이 역사부터 고쳐야 했다. 천천히 생각할 예정이었지만, 눈앞으로 사건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급하기만 했다.
“어떡하지…”
“설화야! 뭐라고? 아까부터 중얼거리길래 불러도 대답이 없던데.”
“아… 미안해.”
생각이 많으면 허공을 보고 웅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다들 눈치를 주고 고치라고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었다.
정신병에서 비롯된혼잣말이라고 진단을 받은 적이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고칠 수는 없었다.
고칠 수 있었다면 진작에 고쳤을 것이다.
“오늘은 나랑 같이 다니자.”
“응?”
하랑의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고, 그와 동시에 동아리도 다시 시작되었다.
생태 탐사 동아리도 재개되었고, 동아리에서는 다시 던전으로 오게 되었다.
“같이 다니기 싫어…?”
“음… 어…”
“그렇구나…”
“아니 그게 아니고… 쟤네랑 같이 다닐까? 우리 둘이 다니면 위험하잖아.”
이번에 김세연을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번처럼 술래잡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애초에 위험한 것도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한 사안인 것 같았다.
“그래. 뭐 같이 다니면 좋지.”
“그러면 내가 가서 말할게.”
총총걸음으로 그들에게 달려가 말했다.
“저기 혹시 같이 다닐래?”
“응?”
이하늘이 나의 등장에 놀랐는지 어깨가 들썩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둘은 내 앞에서 속닥속닥 얘기하더니, 결론이 났는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 뭐 같이 다니면 좋지. 뒤에 김세연도 같이?”
“응.”
우리 넷은 어디로 향할지 얘기했고, 유은설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애초에 나는 유은설이 결정하자고 말하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렇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나무가 많았지만, 평평한 숲은 아니었다. 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가팔랐다.
던전 속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은 현대의 식물과는 다른 특징을 띄었다.
어떤 것은 보통 나무보다 더 크게 자라나는 경우도 있었고, 작게 자라지만 강도가 다른 나무보다 단단한 경우도 있었다.
유은설이 앞장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동아리의 주목적은 생태탐사이기 때문에 다들 식물을 따서 냄새를 맡기도 하고, 독이 없다고 판정 나면 먹어보기도 했다.
“으… 쓰다.”
옆에서 김세연이 풀잎을 하나 먹고 쓰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이제 나타날 때가 되긴 했는데.
유은설은 여기서 마법서를 얻는다. 물론, 정상적인 설화형 던전은 아니다.
이계형 던전 속 설화형 던전이 열리는 경우였다. 신화 속 마법서들은 능력으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뿐,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얻는 마법서는 온갖 마법이 거의 기록되어있다. 마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물론, 유은설이 마법서를 얻는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곧 열릴 마법 학교에서도 던전에서 얻은 마법서를 가지고 연구 중이니까.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마지막 맞지 않았던 퍼즐이 맞혀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옆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어?”
왜 여기서 이게 열리는 거지?
내가 당황할 틈새도 없이 게이트는 나를 빨아들였고, 주위에 있는 유은설도 게이트를 보고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