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마법 (63/120)



〈 63화 〉마법

김세연은 자신의 시야에서 한설화가 사라진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한설화는 불우한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설화의 상태는 위태로워 보였다.
하나의 일을 가지고 마음이 나락까지 떨어진 것처럼 보였었고,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

김세연은 자신이 한설화를 신경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설화가 자신에게 좋게 대해주지 않는 것도, 사람에게 경계심을 가지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설화의 그런 점도 이해했다.

자신이 알지 못한 상처를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언젠가 한설화가 자신에게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속 시원하게 말해줄 것이라고.

김세연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상처를 한 번에 치유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이 위성처럼 주위를 맴돌면서 지켜보면 천천히 상처가 호전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김세연은 한설화가 빌런들에게 잡혀갔다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아직도 그녀는 그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자신이한설화에게 배신당한 일. 한설화를 찾는다면서 남을 도와준 일.

차라리 거기서 다른 애들과 떨어져 한설화를 찾아 나섰다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자책했었다.
코어에서 도망쳐 한설화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바닥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설화가 잡혀갔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미칠  같았다.
한설화가 죽어서 돌아온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한설화는 살아서 돌아왔다. 물론, 아무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그는 외부의 큰 상처 말고도 심적으로도 상처받았을 것이다. 한설화는 객관적으로 봐도 누구나 음심을 품을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애를 납치해 고문만 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으득

김세연은 자신의 이가 갈릴 정도로 입에 힘을 줬다. 그런 한설화가 괜찮다고 하는 말을 자신은 믿지 않았다.

괜찮다면서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한설화를 믿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고기를 구울 때도, 웃으며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연기처럼 보였다.

그런 짓을 당했음에도 웃으며 지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에 깊게 새겼다.

다음부터는 자신이 지켜주자고, 저번 평가처럼 후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둘 거라고.

그렇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진 한설화의 모습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어디 갔어…”

한설화가 있던 장소로 달려갔지만, 그 자리에 한설화의 온기만이 남아있을 뿐,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었다.

마음속에 깊게 새긴 다짐도 그저 말뿐이었다.

처음처럼 여전했다. 자신은 한설화를 지키지 못했다.

그저 한설화가 사라진 땅을 더듬으며 감정을 토해낼 뿐이었다.



**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유은설이 던전 속으로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내가 직접 화면으로 본 것도 아니여서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 할 수 없었다.

내가 있었던 자리가 원래 유은설이 있어야 할 자리일 수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여기가 어딜까?”

유은설이 같이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유은설은 저번처럼 넋 놓지 않고, 이미 무기를 들고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모습은 이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멍때리며바닥에 앉아있었다.

주위에 유일하게 밝게 빛나는 것은 벽에 걸려있는 횃불뿐이었고, 횃불은 길잡이 역할을 하듯 앞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일단 앞으로 나가야겠지? 일어나자.”
“응…”

여기서 내가 할 일?

없다. 애초에 유은설 혼자서 들어오는 던전에 내가 할 일이 있으면 안 됐다. 유은설의 뒤에서 가만히 구경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뭔가 불안한데…”

유은설이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녀와 나는 속도를 낮추고 주위를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나는 구색만 갖추고 있을 뿐 정신은 이미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아무 일도 없는 것을 알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저번에 물어본 건 뭐였어?”
“저번? 아… 그 병원에서… 그건 미안해.”
“아니. 나도 궁금해서, 큰 소리가 나다가 건물의 크게 금이 그어졌잖아.”
“아… 봤어?”
“그게 네가 찾는 사람이 한 일이야?”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유은설의 각성이다. 유은설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했다.

“응? 어… 맞아.”

유은설은 자기가 한 일이라고 말하기보다 나에게 돌리는 것을 선택했다.
아마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상회하는 실력을 숨기는 걸 택한 것 같다.

딱 보기 좋게 뒤집어씌울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딱 좋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대단하네. 네가 말한  사람.”
“그렇지? 나를 구해준 것도  사람이야. 근데 고맙다고 인사를 못 해서…”
“그렇구나… 그 사람은 살아있나 보네.”
“응. 다행이야. 만약 나를 지키다 죽었으면, 정말로 힘들었을거야.”

마지막 말은 방금까지 덤덤하게 말하던 것과는 달리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어두운분위기를 풍겼다.
유은설은 곰곰이 생각하다 나한테 말을 걸었다.

“미안해… 다시 생각하니 너도힘들었을 텐데… 직접 본 입장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됐는데…”

유은설과는 정말 오랜만에 길게 대화해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일부러 피했다면, 지금은 강제로 대화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  복도를 아무  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입장에서 참을 수 없었다.
말 없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것보다 저번 일은 괜찮아? 시연회  있었던 일. 내가 조금  신경 써줬어야 했는데.”
“됐어.  일은.”

그 일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 일도 아니었기도 하고.

사실 그녀에게 나는 아직도 어떤 사람으로 평가될지모르겠다.

자신의 호의를 걷어찬 사람?
불쌍한 사람?

무엇이 되었든 이번 사건에서 가면을   한설화가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앞에 가던 유은설이 뒤로 거리를 두라고 수신호를 줬다.

나는 조금 물러났다. 앞에 무엇이 있는  알고 있었다.

유은설은 먼저 큰 방으로 들어갔고, 그 가운데 탁자 하나가 있었다.
그 탁자 위에는  하나가 공중에 떠 있었고, 주위에는 파란색의 마력이 시각화되어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게 뭐지?”

유은설은 책을 경계하며 함부로 다가가지 않았다.

─캬아아악!

“뭐가 있는  같은데?”

주위에 들리는 소리에 유은설이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이는 괴수는 없었다.

방은 어두웠고, 주위에 물체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유은설의 목소리만이 방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나는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석상을 찾았다. 석상은 총 8개. 각각 다른 모양을 띠고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날개를 달고 있다는 것 정도?

동물이 여럿 섞인 듯한 모양. 용의 모양. 여러 모양의 석상들이 보였다.

─키이이익!

유은설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석상에서 나는 소리인 것은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디지? 설화야, 만약 위험하면 바로 도망쳐.”

여기서 도망치면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수 있는 곳이라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밖에 없는데.

“같이 싸워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움직인 것은 유은설의 뒤에 서 있는 용의 모양을 한 석상이었다.

내가 알던 크기는 아니었지만, 소형화된 크기도  허리까지 올만큼 컸다.

석상은 돌로 구성되어있기에 움직임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조금만 집중한다면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유은설은 석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검을 휘둘렀다.

─기기기긱

검이 돌과 부딪쳐 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먼저 물러난 것은 유은설이었다.

석상은 아무 상처도 없었고, 그저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닐 뿐이었다.

“아무 데미지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

그 뒤로 마력을 둘러서 베어봐도 석상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석상들도 천천히 깨어나 가세하면서 수적으로도 열세에 처했다.

“저 책이 해답 아닐까?”

유은설 혼자서 고민해야 할 문제를 내가 먼저 말했다.
이대로만 있다면,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책?”
“응. 지금 이 상태면 우리 꼼짝없이 죽지 않을까?”

석상은 별다른 공격 없이 몸통 박치기만 해도 데미지가 상당했다.

“그러면 설화 네가…!”
“아니야 네가 해야지.”

내가 집으면 큰일나.

“그렇지만, 지금 내가 저걸 잡고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 혼자 남게 되잖아.”
“나 혼자만 남으면 못 살아가니까. 네가 잡아야 되지 않을까?”
“그런가…?”
“응. 그래. 빨리 잡아. 어, 저기 하나  움직인다.”
“그러면!”

그녀가 가운데 탁자 위에 책을 잡았고, 곧 탁자의 마력이 그녀에게로 들어갔다.

원래 이 상황에서 유은설은 책의 내용을 습득하면서 공격을 피한다.
안정적으로 책의 능력을 받아들인다면 좋은결과가 있을 수도 있었다.

‘내가 공격을 대신 맞으면 어떻게 되려나.’

“내가 관심을 끌 테니까. 최대한 책에 집중해.”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유은설의 말을 무시하고, 주위를 힘차게 뛰어다니면서, 석상들의 뒤통수를 건드렸다.

 결과, 총 5개의 석상이 나한테 돌진하고 있었다.

동일한 속도였다면 쉽게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어떤 것은 느리고, 어떤 것은 빠르니 더욱 힘들었다.

중간중간 남아있는 석상들도 깨어날 준비를 하면, 그 주위로 달려가 활의 윗부분으로 석상을 세게 내려쳤다.

유은설에게 하나의 관심도 향하지 않아야 했다.
그녀는 어느새 눈을 감고, 책의 마력을 점점 흡수하기 시작했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은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행동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으면 좋을 텐데.

5개에서 6개. 6개에서 7개.

공중을 움직이는 석상이 7개가 되자 전부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속도는 각각 달랐기에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석상도 있었다.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도, 바위를 어깨에 세게 내려찍는 느낌이 들었다.

“으… 아픈데.”

마지막 하나마저 미동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에게 날아오는 석상은 총 8개가 되었다.

유은설 쪽으로는 아예 다가가지 않고 있기에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미처 잡아내지 못한 석상이 명치로 달려드는 것을 못 보고 공격을 허용했다.

“우욱.”

위액인지, 피인지 정체 모를 것이 내 목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치유를 사용해 몸을 치료하고, 나머지 석상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급소에 한 번 공격을 허용하니 팔 같은 경우는 이미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맞기 시작했다.

기동성을 위해 다리만은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상체에 성한 부분이 없을 때쯤, 무릎을 향해 날아오는 석상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으으윽.”

무릎과 석상이 부딪치자 자동적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자 5개의 석상이 나를 향해 오고 있었고, 뒤에는 3개의 석상이 나를 향해 다시 날아오고 있었다.

“죽지는 않겠지?”

소설 속 유은설은 죽을 정도까지 맞았다고 서술되어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맞아도 죽지는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몸을 번데기처럼 말아, 공격에 대비했다.

─콰아앙.

그리고 나에게 공격이 오는 일은 없었다.
유은설은 눈을 뜬 상태로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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