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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마법 (64/120)



〈 64화 〉마법

유은설의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와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가장 먼저 원을 그리고, 그 원 안에 여러 가지 문양들이 새겨졌다.
어떤 것에는 화염이. 다른 것에는 전기가 석상에게로 쏘아졌다.

“멋지네.”

허리를 펴 바닥에 손을 짚고 그녀의 싸움을 구경했다.

석상들은 유은설이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는지 그녀에게만 달려들고 있었다.

유은설은 그런 석상들을 피하며, 마법을 쏘아내고 있었다.

석상과 똑같은 돌을 날리기도 했고, 바람이 시각화되어 칼날처럼 쏘아지기도 했다.

물리적 공격으로는 흠집도 안 나던 석상들이 하나둘 부서지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한 석상이 공중에서 멈추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력은 진작에 다 쓰고 남아있지도 않았다.

약간의 마력으로 도움을주려고 해도, 유은설은 한 대도 맞지 않고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한 대도 맞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공중을 날아다니던 마지막 석상마저 떨어지고 나서야 유은설도 풀썩 주저앉았다.

“괜찮아?”
“응. 나야 뭐… 너는?”
“그냥 힘들어서 그래.”
“나갈까?”

유은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손을 잡고 일어났다.

눈앞에 생긴 게이트를 통과하고, 우리가 처음 있던 곳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별로 지난 것 같지 않았고, 이미 우리가 사라진 곳 주위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어? 나왔다!”

가장 먼저 말을 한 사람은 생태 탐사를 지도했던 교관이었다.

교관의 말에 반응한 것은 두 명의 생도였다.

“설화야!”
“유은설!”

김세연의 돌진에 나도 모르게 부축하고 있는 유은설을 놓았다.

주저앉는 유은설을 잡은 것은 이하늘이었고, 김세연은 나를 꽉 안아왔다.

“으음… 저기 좀 떨어져 줄래?”
“다행이야. 정말로.”

내가 떨어져달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고, 더욱 나를 꽉 안았다.
그런 김세연의 행동은 부끄럽기만 했다.

우리 둘을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바로 옆에서 느껴졌고, 교관과 생태 탐사를 주도했던 길드원들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저기… 주위 좀…”
“나 때문인 줄 알았어…”
“아니야. 아니니까. 조금만…”

김세연에게 아무리 말해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해도 안 갔다. 나를 심하게 아껴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김세연에게 한설화는 어떤 사람인지를.

도대체 내가 무슨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아… 미안.”

시간이 지나고 그녀도 정신을 차렸는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



유은설과 나는 길드원에게 불려갔다.

대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했다.

유은설과는 오기  이야기를 나눠 마법서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기로 했다.

그냥 괴수를 만나 해치웠더니 나올 수 있었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하랑으로 돌아왔다.

“고마워.”

유은설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야말로 고맙지.”

손을 잡고 바로 놓았다.

별것도 아닌데, 손을 잡고 온갖 이상한 짓을  기분이 들었다.

“먼저 들어갈게.”

그러고 나서 기숙사 안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기숙사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도 별로 잠은 오지 않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 때문인지 머리는 어지럽기만 했고, 계획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밖이나 나갈까…”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길목에 가로등은 밝게 켜져 있었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밤 산책을 하기에는 좋은 시간이었기에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낮과는 다르게 서늘한 공기가 내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한설화.”
“어?”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더니 알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윤예진?”
“오늘도 알고 있었지?”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
“그러면 왜 그렇게 태연한데?”

윤예진은 알고 있는 사실을 다 토해내라는 듯 취조를 하고 있었다.
들킨 것도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는데.

“같이 들어갔다 온 유은설도 똑같은데… 왜 나한테만?”
“당연히 네가 알아서 해결해줬겠지.”
“혼자 넘겨짚지 마. 정말로 죽을 뻔했으니까.”

“그렇게 목숨을 걸면서까지 남을 구할 가치가 있는 거야?”

사람에게 구할 가치라…

“목숨에 가치를 매겨야 하는 거야?”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자기가 잘못했는데, 왜 네가 목숨을 거냐고.”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눈앞에 아이가 우물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면 모든 사람은 구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다.

나한테도 똑같았다.

유은설이나 이하늘, 다른 등장인물 모두 위험에 빠진다면 당연히 도우러 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사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어.

이렇게 평온하게 말한다면 누가 믿고, 믿는다고 해도 상대방이 무슨 반응을 할지 뻔했다.

미래의 지식을 알려줘서 이익을 챙기게 해달라고.

그렇기에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은설한테 대체 뭐가 있는 거야? 맨날 엮였다 싶으면 유은설. 유은설.”
“유은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야.”
“나는 너한테 도움받을 생각 없으니까. 위험할 상황도 만들지 않을 거야.”
“그러면 상관없지.”

“자기 목숨을 똑바로 챙기라고! 원래 자기 목숨이 최우선순위가 아니야? 너는 조금 뭔가 뒤틀려있다니까?”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게 끝이야?”

그녀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나의 우선순위는 내가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의 안위였지.

모두를 살리고, 마왕까지 물리친다면 내가 살아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전에 죽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마왕을 물리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단지, 내가 지금 죽으면 마왕을 못 잡기 때문에 죽을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왕이 등장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죽으면 어떡할 건데. 한설화는 아예 실종이고, 가면을 쓴 너는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일을 하고 죽는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안 죽어. 갑자기 죽지는 않겠지.”
“저번에 죽을 뻔해 놓고?”

그렇게 말하니까  말이 없네.

저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으니까. 적당한 때에 윤예진이 오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수도 있었다.

“…죽지는 않았잖아.”
“그래. 너는 그렇겠지. 다음에는 정말 말해. 저번처럼 혼자 그러지 말고.”
“도움은 필요 없다니까.”
“하아… 말이 통해야지. 됐어. 끝이야 끝. 네 방식대로 해. 나는 내 방식대로 할 테니까.”
“으응… 뭐. 그래.”

그녀의 말은 어딘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애초에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  했다.

계획에서도 그녀가 있다고 해서 틀어지는 부분도 없을 것이다.



**



며칠  내가 했던 말을 크게는 아니지만, 작게는 후회하고 있었다.

“비켜줄래?”
“비킬 것 같아? 이번에는 어디 가는 건데.”

저번에 숲에서 했던약속을 지키러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였다.

가면과 옷을 입고, 벽을 통과하기 전 골목길에서 윤예진을 마주했다.

우연은 아니었고, 마치 계획된 것처럼.

정신을 집중해 활을 꺼내 그녀에게로 겨눴다.

“나도 데려가. 내가 내 방식대로 한다고 했지?”
“하아…”

의기양양하게 골목길을 가로막아  있었다.
당연히그녀의 손에 쥐어진 권총은 나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활을 들고 위협을 해봐도 전혀 비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안 비킬 거야?”
“이번에는 무슨 일인데. 위험한 일이야? 갔다가 잘못되면 어떡할 건데.”

다시 활의 능력을 사용해 집어넣고, 그녀의 뒤로 능력을 사용했다.

“어? 어디 갔어.”

그녀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내 모습에 인지를 못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뒤에 있는 내가 달리자,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능력이네.  때마다 새로워.”
“잘 있어.”

어느새 하랑의 벽에 도달했고,  그렇듯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저럴 줄은 몰랐네.”

그렇게 말하고 다음 날부터 윤예진은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는 관심도 주지 않다가도, 실습이면 우리 팀과 협동한다면서 붙어 다녔고.

수업이 끝나면 나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지금 시간이 자정이 넘어갔음에도 그녀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윤예진 때문에 약속 시간에 약간 늦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저번에 본 세 명이 있었다.

“혼자 오실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길드장인 루시아 말고도, 두 명이 있었다.

“어떻게 할 건지는 정했어?”
“일단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어요?”
“무슨 부탁?”
“소피아를 만나게 해주세요.”

저번에 인연의 끈을 이어놓았던 소피아를 만나야 했다.

엘프를 데려다 놓으면서 그녀와의 안면이 있으니 만나줄 것이라 믿었다.

“잠시만, 내가 알고 있는 그 소피아? S급 걔?”
“네.”
“무리야.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는 상관없어요. 엘프를 데리고 왔던 사람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시기만 하면 돼요.”
“엘프?그건 또 뭐야.”

결국 이번 사건의 핵심은 유은설의 마법이었다. 마법이 얼마나 성장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관건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2학기 때 들어가야 할 마법 학교를 일찍 당겨야 했다.

원래소설에서도 마법 학교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소피아에게 강습을 받는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소피아가 누군가를 가르칠 실력은 될 것이다.

소피아를 만나서유은설을 부탁한다.
마법 실력을 키워 이 사건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것이  계획이었다.

“그것보다  말이 있어요. 더이상 미래를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뭐?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예언자가 나에게 화내며 말했다. 언성이 높아져서 루시아가 급하게 입을 막았다.

“우리도 그러고는 싶은데, 자기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냐면서 자꾸 하는걸.”

길드장도 말리고 싶지만, 그녀의 고집은 상당히 센 것 같았다.
타당한 이유를 던져주지 않는 이상 멈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미래는 저희만 보는  아니에요. 마지막 적. 그러니까 마왕도 같이 봐요.”

내 말에 다들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키가 큰 여자는 아예 알아듣지도 못한 건지 나와 길드장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고, 길드장과 예언자는 멍하니 쳐다봤다.

“야! 내가  이유가 뭔 줄 알아?  죽어.”

그리고 예언자의 입에서도 충분히 충격적인 내용이 나왔다.
길드장도 듣지 못했는지 그녀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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