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윤예진
별로 충격적인 내용도 아니었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중간에 낀 길드장만번갈아 가며 우리를 쳐다봤다.
“쟤 죽어. 이번에.”
“그래요? 확실하게 죽어요?”
“심장에 검이 찔리는데 살 수 있어?”
심장은 상상도 못 했는데…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아직 느끼지도 않은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으… 아프겠다.”
“그게 끝이야? 너 죽는다고.”
“그 정도면 살 수도 있죠.”
“뭐? 너 처음부터… 읍! 읍!”
길드장이 예언자의 입을 막고, 나에게 물었다.
“잠시만 정리를 좀 하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한 얘기와 예언자가 한 말을 총합해 정리했고, 나는 박수를 치며 맞다고 헀다.
“정확해요.”
“그럴 리가 없어. 지금까지 우리가 잡아 온 마수만 해도 몇십 마리가 넘어.”
“마수요?”
“가끔 넘어오는 마수를 우리가 예언을 통해 해치우고 있어. 마왕이 본다면, 불가능한 일이겠고.”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단번에 내 말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도 안 했고.
그리고 마왕이 훔쳐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 저렇게 자잘한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제가 죽는지 안 죽는지.”
“안 돼. 너무 위험요소가 커. 우리가 몇 년간 고생해도 미래 하나 바꾸지 못했어.”
“그러면 길드장씨만 제 계획을 듣고 판단하시는 거는 어때요?”
길드장은 끄덕이고, 나와 길드장만이 나와서 얘기했다.
내가 생각했던 계획을 말했고, 그녀의 표정 변화는 정말로 극단적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업신여기며 들었지만, 점점 표정이 심각해져 갔다.
“네 말대로면 맞겠는데… 확실하지가 않잖아.”
“음… 그거야. 그쪽 손에 달린 거죠.”
“하아…”
우리 둘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예언자는 나를 쳐다봤다.
“말했잖아. 쟤 사기꾼이라고. 그냥 우연이라니까?”
“됐어. 더 필요한 건 없고?”
“그쪽이 성해포 가지고 있죠? 그렇게 사용하는 거 아닌데.”
“잠시만… 그건 어떻게 알고… 그래. 이해가 가네. 알겠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음성 변조기도 주세요.”
그녀들이 가면을 쓰고 다닐 때 사용하는 음성 변조기가 필요했다.
하도 가면을 쓰고 다닐 때 필요한 말을 하지 못하니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저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르기에 하나 정도는 받아놓기로 했다.
“다음에 만날 때 줄게. 그러면 오늘은 끝이다.”
예언자는 꾸준히 나를 째려보고 있었고, 길드장은 키 큰 여자에게 외국어로 뭐라 말하더니 둘을 잡고 사라졌다.
“이제 몇 걸음 안 남았네.”
판은 다 깔아놨고, 계획대로 흘러가기만 하면 됐다.
**
“으음…”
하랑에 돌아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졸고 있는 윤예진이었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내가 사라진 자리에 기대어 머리를 아래로 떨어트리고 있었다.
추운지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고, 벽에 기대고 있었다.
“일어나봐.”
윤예진의 어깨를 흔들며 깨워도, 깊게 잠든 건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다가 잠에 든 사람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업을 수도 없고…”
남자였다면 그냥 업고 가겠지만, 여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당장 업었다가 윤예진이 깬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남자라면 그냥 머리 한 대 때리고 깨웠으려나.’
그녀의 뒤통수가 탐스러워 보였지만, 팔을 내뻗는 일은 없었다.
“… 일어나봐.”
그녀의 어깨 말고 다른 부분은 만질 수가 없었다.
당장 외부에 드러난 곳은 다리와 상체, 얼굴밖에 없었다.
“할머니…”
그녀에게 할머니는 색다른 의미였다. 그저 피가 이어진 사람이 아니라 그녀의 유년시기를같이 보낸 사람이었다.
그녀의 할머니가 희생한 것은 윤예진과 윤예진의 가족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희생이라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을 위해 목숨을 바쳐봐야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고맙다는 사람조차 없었다.
나에게 그녀의 할머니를 투영해 보고 있는 것 뿐이었다.
“읍!”
입에서 침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윤예진이 눈을 떴고, 그녀 앞에 앉아있던 나와 눈을 마주쳤다.
“봐…봤어?”
“아니.못 봤어.”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진짜야.”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그녀도 깨어났고,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디 갔다 왔어. 위험한 짓 한거야? 또?”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계획은 하고 왔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미리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윤예진이 안다면, 미래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런 변수는 진작에 차단해놓아야 했다.
“비밀. 그러면 먼저 들어갈게.”
나를 어이없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애써 그 눈길을 무시하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
윤예진은 당장 뒤로 가서 잡아놓고 묻고 싶었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모습이 마치 어린애를 대하는 것 같았다.
‘예진이는 아직 알아야 할 나이가 아니야.’
‘그러면 언제?’
부모님에게 늘 듣던 말이었다.
길드의 일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고, 할머니의 일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어리다는 이유로.
그래서 윤예진은 자신의 능력을내보이기로 했다.
누구보다 뛰어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은 결실을 이뤘다.
어느 정도 길드에 간섭할 수 있을 때 충격적인 진실을 들을 수 있었고, 자신은 좌절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 전부 무너지려고 했었다. 헌터 일을 하다가 죽은 줄 알았던 할머니는 남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희생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남을 지키려면 이득이 있을까?
명예?
할머니는그 변변찮은 명예 하나도 못 받고 사냥을 하다 죽은 강한 헌터 중 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윤예진은 자신의 목숨을 중요히 여겼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하지 않고, 늘 냉철하게 행동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그제야 남을 도와줬다.
그런데, 지금 당장 앞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할머니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반이었을 뿐이다.
접점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그냥 치유 능력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실습 훈련 때 자신을 엘프에게서 구해줬던 때가 있었다.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저 화살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도와준 것이 한설화였다.
처참하게 죽어가던 자신을 살려주고, 엘프 일까지 해결한 사람이.
예전의한설화에게 한 질문은 ‘어떻게’였다.
어떻게 엘프의 존재를 안 거야?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았던 거야?
어떻게 소피아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런 질문들이었다. 처음에는 회귀자인 줄 알았지만, 이제 한설화의 존재는 더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한설화에게 하는 질문은 하나였다.
왜?
대답을 듣고 싶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 고생하지 말라고말해도 소용없었다.
윤예진은 한설화가 밖에서 어떤 일을 하고 왔는지 몰랐다.
또 위험한 일을 하고 올 수도 있었다.
그 일 때문에 한설화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고, 어딘가 하나가 잘려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윤예진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봤다.
자는 사이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내일 길드에 한 번 들리거라.]
문자에서 무뚝뚝함이 묻어나왔지만, 이것은 부모님의 표현 중 하나였다.
윤예진은 속에 담긴 뜻을 알고 있기에 딱딱한 어투에 상처받지 않고 대답했다.
[네.]
하랑에서 외출은 힘든 편에 속했지만, 잘만 둘러대면 나갈 수 있었다.
애초에 부모님의 호출이기에 그냥 길드에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나가도 되었다.
**
“도착했구나!”
길드에 들어가자마자 반갑게 받아주시는 것은 윤예진의 아버지였다.
윤예진은 그런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은 뒤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왔니?”
“왜 부르셨어요?”
“곧 해외로 파견을 나가는데 한 번 봐야 되지 않겠니?”
“하아…”
윤예진은 어머니의 말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무언가 주기라도 하는 줄 알았지만, 그저 얼굴 한번 보자고 문자를 보낸 것이다.
그런 부모님이 싫지는 않지만, 이런 이유로 하랑을 나오고 싶지는 않았다.
“가기전에 한 번 안아보자!”
“됐어요. 다 컸는데 무슨…”
“예전에는 잘 안아줬는데…”
“예전이면, 아주 어릴 때잖아요.”
그녀의 어머니가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지만, 윤예진은 많이당한 수법이었기에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갈 때 비서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했으니 타고 가렴.”
아버지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가 차를 찾았다.
많이 탔던 차를 찾아 앞문을 열고,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오랜만이네요. 저번에 있었던 일은 다 해결이 되셨는지?”
“저번이요?”
“한설화 생도에 대한 정보 조사 말입니다.”
“아… 됐어요. 그 일은.”
한설화의 정보 조사를 맡겼던 사람이 정은혁 비서였기에 그가 물어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윤예진은 잠시 눈을 붙일 생각으로 몸을 의자에 맡기며 눈을 감았다.
생각이 많았지만,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기에 벌써부터 잠이 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삑! 삑!
“비서님 이게 무슨 소리예요?”
“네?”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윤예진은 정은혁에게 잠시 차를 멈추라고 했고, 갓길에 잠시 정차하려고 했다.
이상한소리가 멈추고, 윤예진은 잠시 안심했지만 금방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콰아아앙!
밑에서부터 올라온 폭발이 금세 정은혁 비서와 윤예진을 덮쳤고, 차가 터지는 것과 동시에 윤예진의 입에 손수건이 들이밀어졌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자, 윤예진은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