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윤예진
핸드폰으로 온 윤예진의 처음 위치는 항구였다.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나갔지만, 항구에는 이제 일하는 사람밖에 없었고, 납치범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놓친 곳이 있는지 생각하며, 주위를 뒤졌고.
주위를 샅샅이 뒤져도 이미 배를 타고 떠났는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아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출발한 배는 없다고 말해 미칠 것만 같았다.
주위 어떤 배를 훔쳐 타려고 하는 찰나 내 어깨를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영어로 빠른 속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네?”
내 대답과 동시에 눈앞이 검어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주위를 살펴보니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총과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있는 곳이 배 위임을 깨달았고.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주위 빌런들을 하나둘 처리하기 시작했다.
십 초도 안되는 순간에 주위에 세 명이 비명도 없이 쓰러졌다.
나의 어깨를 붙잡았던 여자는 이제야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길드장인 루시아 옆에 붙어있던 외국인 여자.
그녀의 능력은듣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순간이동.
그것이 그녀의 능력이었다.
물론 만능은 아니라 제약이 있다. 자기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능력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거나,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도와주실 거에요?”
한국어로 말하고,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외국어를 쓰는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네?”
컨테이너를 가리킨 뒤 다시 이 자리를 가리켰다.
컨테이너에 내가 찾는 사람이 있고, 여기에서 기다리겠다는 소리인가?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고, 활에 마력을불어넣으며, 컨테이너의 반대쪽을 겨눴다.
옷의 능력이 무한정이라면 그냥 갔다 오면 되겠지만, 벽을 넘느라 남은 횟수는 두 번이었다.
그것도 남은 한 번은 하랑으로 돌아갈 때 사용해야 했다.
폭발로 시선을 끌고, 컨테이너 안에서 윤예진을 구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활에는 마력이 많이 실린 듯 부피를 키우고 있었고, 화살을 쏘아냈다.
정확히 배의 앞부분에 화살이 박히고, 큰 폭발음과 함께 앞으로 약간 기울었다.
다른 모든 사람이 그곳으로 모여들었고, 나는 그들과 반대쪽으로 향했다.
컨테이너의 지붕에 안착하며, 컨테이너 앞에 서 있는 두 명을 볼 수 있었다.
방금 들린 폭발 소리에 긴장했는지 무기를 들고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위를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잠시 멈춰 생각했다.
옷의 능력이 남은 것은 한 번.
그러면 이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컨테이너 안으로 이동하는 것.
밖으로 나올 때 사용하는 것.
누가 나갔는지 문은 열려있었기에 지금 두 명의 뒤통수를 노리기로 했다.
활을 당겨 두 명의 머리를 동시에 맞추고, 문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뒤를 돌아보며 안에 있는 윤예진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미안. 늦었지?”
윤예진의 모습은 한 번 저항했는지 이미 몇 군데가 다쳐있었고, 앞에 있는 남자는 옷이찢겨있었다.
“늦었어… 너무 늦었다고…”
빠르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윤예진이 우는 것을 보니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울먹이면서 말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묶여있는 손과 발을 풀었고, 앞에 쓰러져있는 남자를 들쳐메고 나갔다.
“걸을 수는 있지?”
“응.”
“빨리 나가자.”
굉음이 꺼진 지 꽤 시간이 지났기에 누군가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리가 풀렸는지 윤예진의 걸음 속도가 답답하기만 했다.
“안 되겠다.”
한쪽 손으로는 남자를 잡고 있어서 활을 집어넣어 남은 손으로 윤예진도 들어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두 명을 잡아 달리고 있었지만, 속도는 그렇게 크게 느려지지 않았다.
무겁다기보다는 거슬려서 느려졌을 뿐이다.
윤예진도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별말 안 하고 나에게 편히 안겼다.
팔로 내 목을 끌어안고, 바람 때문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서인지 꾹 눈을 감고 있었다.
투명화를 사용하고 밖으로 나가 처음 도착했던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몸에 접촉한다면 같이 투명화가 된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기에 마음 놓고 달릴 수 있었다.
달려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발소리에 놀라 주위를 쳐다봤지만, 확실한 위치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옆에 남자는 기절했는지 풍선 인형처럼 앞뒤로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투명화가 아직 풀리기 전 내 앞에 검이 들이 밀어졌다.
정확히 위치를 파악하고 베는듯한 움직임에 옷의 능력을 사용해서 뒤로 이동했다.
대충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자세하게는 모르겠다. 그냥 계속 달리며 검을 피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본인의 검로는 흔들렸다.일본인이 섣불리 검을 휘두르지 못했기에 충분히 두 명을 업은 상태로 피할 수 있었다.
배의 윗부분에는 나를 데려왔던 여자가 서 있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두 명을 던졌다.
그녀는 두 명을 받아들고 바로 사라졌고, 나와 일본인 여자 단 두 명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내 예상보다 빠르게 나의 눈앞에 검이 들이 밀어졌고.
영체화를 사용해 그 여자는 그대로 난간에 부딪혔다.
내 자리에 다시 사람이 나타났고, 나를 붙잡자마자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다시 밝아졌다.
“으윽… 이건 적응이 안 되네.”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 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리를 데려다준 여자는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도 못 드렸네.”
나중에 만나면 해야지.
윤예진도 똑같은 것을 겪고 있는지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응… 그… 고마워.”
“됐어. 당연한 건데. 그러면 먼저 들어갈게. 수업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야 해서.”
항구까지 오는 데 시간도 많이 소비했고, 무단으로 나왔기에 빨리 하랑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쪽으로 저물었던 환한 빛의 해가 어느새 동쪽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윤예진은 타당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해가 다 뜨기 전, 하랑의 수업이시작하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
“저기…!”
윤예진은 달려가는 한설화를 불러봤지만, 그가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고민 끝에 내뱉은 한 마디였지만, 그 말을 들을 사람은 이 항구에 한 명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가버리는 건 뭔데…”
마치 무언가에 뒤쫓기 듯 떠나버렸다. 한설화가 떠나버린 장소에는 발자국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한설화에게 업혀 이동하던 도중 갑자기 던져졌고, 누군가에게 잡혀 여기로 오게되었다.
다음에 한설화도 도착하더니 바로 가버렸다.
자신에게 무언가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상태로.
마지막까지일어날 수 있겠냐고 묻고 사라졌다.
‘내가 뭘한거지.’
윤예진은 한설화에게 업혀 왔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있었다.
얼굴이 확 붉어지며, 자신이 했던 행동을 하나하나 더듬어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한설화에게 의존하는 행동만을 보여줬다.
“믿어도 되는 걸까.”
한설화가 하는 행동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가 발버둥 쳐봤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생도 수준의 무력일 뿐.
그런 알량한 자존심으로는 강한 상대를 만난다면 죽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천천히 도움을 준다고 유혹하고 나중에는 그만두라고 하려 했다.
그것이 한설화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설화의 행동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한설화를 다시 만나기 전에 윤예진은 무릎을 털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제 행동해야지. 사람을 건들면 대가를 치러야지.”
윤예진은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하나 빌려, 전화를 걸었다.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건 병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병신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뒤끝 없이 처리하는 것이 그녀의 신조였다.
**
조금 더 지켜보고 왔어야 했나?
방금까지 심한 일을 당했던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방치하고 온 윤예진이 마음에 걸렸다.
거기서 일으켜주는 것을 넘어서 데려다주기까지 해야 했나?
지금 혼자 남아서 나를 욕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뒤의 행동이 너무 싸가지가없기는 했다. 지금 와서는 너무 후회 중이었다.
그냥 수업에 조금 늦더라도 더 도와주고 올걸.
질문은 끝마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피곤한 내 정신이 질문을 강제로 끊어버렸다.
앞에서는 교관이 수업 중이었고, 내 머리는 사정없이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너무 피곤한데…
그냥 자지 않은 것아 아니라 뛰어다니면서 왔다 갔다 하니 피곤함이 두배 로 늘어난 느낌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수업 내용이 내가 알던 것보다 한참 앞으로 나가 있었다.
수업이 끝날 때가지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결국 교관의 입에서 수업의 끝을 알리는 말이 나왔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수업까지 눈을 붙일 생각에 허리를 굽혀 머리를 책상에 박으려고 했다.
“설화야, 오늘 좀 졸려 보인다. 어제 숲에는 없던데 어디 갔었어?”
“응..?”
김세연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 수업 시간에 잠을 자던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냥…기숙사에 있었어.”
“기숙사? 그런데 잠은 못 잔 것 같은데?”
끊임없이 물어오는 김세연의 대답을 대충 넘기려고 했었다.
김세연과 하루의 끝을 거의 같이 했기에 그녀가 나에 대해서 물어올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그런 것 치고는 방에 불이 계속 꺼져있었는데?”
나를 추궁하는 목소리에 약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방에 불을 끄고 나간 것은 맞았지만, 그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 그래서 그냥 누워있다가 온 거야.”
“그냥 누워있었다고? 왜 자꾸 그냥이라는 말을 반복해? 찔리는 게 있는 것처럼…”
“찔리는 게… 있을 리가 없지. 윤예진이 사라졌잖아. 그래서 마음이 그래서…”
“윤예진?”
그리고 내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예진이라는 이름을 되뇌는 김세연은 나를 잡아먹을 듯한 표정이었다.
아침에 생도들끼리 떠들던 내용을 약간 말한 것뿐인데…
반 친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걱정할만한 내용이었다.
단지, 김세연의 눈에 윤예진은 그저 나를 괴롭힌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고, 앞에 김세연의무서운 눈빛을 그대로 받고 있어야 했다.
─히끅
나도 모르게 나온 딸꾹질이 온 교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