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마법
그녀는 몇 번의 절정 끝에 만족했는지 개운하다는 듯 일어서서 옷을 입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내 꼴은 엉망일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내 가슴에 던져놓은 콘돔이 네 개가 되자 더 이상 내 물건은 서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자며 내 온몸을 애무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 번 더 세워 다섯 개를 만들고 나서야 만족한다는 듯일어났다.
“좋았지?”
정말 일어설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온몸의 정기를 쪽 빨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찰칵
“읏?”
“나도 이거 해보고 싶었거든. 남자 몸에 콘돔 올려놓고 사진 찍는 거.”
“…지워주세요.”
“으음… 어떡할까.”
갑자기 사진을 찍더니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언제 내 앞으로 온 지도, 핸드폰을 꺼낸 지도 몰랐다.
저 사진이 퍼지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내가 요구할 처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구를 잘 들어준 그녀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뭐든 들어줄 거야?”
“아… 다는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그러면좀 찝찝한데 ‘청소’해줄래?”
“청소?”
사라하는 그렇게 말하고, 입었던 바지를 벗은 뒤 다리를 벌렸다.
내가 누워있던 사이에 씻은 것이 아닌지 아직 그 주위에는 그녀의 생식기에서 나온 액이 늘어져 있었다.
“핥아서 깨끗하게 해줘.”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있어, 내가 다가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천천히 걸어가자 그녀가 말했다.
“기어와. 내가 봐주는 건데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별로 그렇게 큰 요구도 아니었기에 걸어가는 것을 멈추고, 네발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녀의 앞에 서자, 자연스럽게 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는 자세가 되었다.
꿇은 상태로 얼굴을 그녀의 것으로 들이밀었다.
“주위부터 천천히 핥아.”
묻어있는 액에서 이상한 맛이 났지만, 애써 무시하고 천천히 그녀의 액을 핥아서 없애기 시작했다.
“으응.. 응... 거기… 안이랑 주위까지 확실하게 핥아.”
구멍 안으로 혀를 들이밀지는 않았고, 얕은 곳만 핥아 액을 정리했다.
“하아아… 잘한다. 진짜 개좋아.”
깔끔하게 됐다고 생각하자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워주세요.”
“하아… 그래 지워줄게.”
“저는 좀 씻을게요.”
샤워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니 온몸에 정액부터 시작해 키스마크까지 정상이 아니었다.
‘오늘도 폴라티입고 와서 다행이네.’
사라하와 만난 뒤에는 옷을 대량으로 사놓고 돌려가며 입는 중이었다.
관계 중에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시키듯 틈만나면물어대니 자국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금방 씻고 나가 옷을 입어 연습장으로 향했다.
**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와 걸어가는 길에 물을 시간은 있었다.
“근데 어째서 저한테 잘 대해주시는 거예요?”
“구해줬잖아.”
사라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기절시킨 적은 많아도 구해준 적은 없을 텐데.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무조건 죽었을 거잖아. 소피아한테 들었어.”
“아…”
“사실은 운명 아닐까?”
그냥 묻는 김에 다 물어보기로 했다.
묻지 말라고 이성이 소리쳤지만, 지금은 감성이 우선이었다.
“그러면 중간중간 왜 저한테 그러시는 거에요?”
“아… 음…”
“죄송해요. 말하시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되요.”
사라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나도 몰라. 그냥 그러고 싶은걸.”
“아…”
나쁘다고 해야 할지, 좋다고 해야 할지.
그녀의 진심을 들어서 좋았지만, 애매모호한 답변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닥친 상황에 순응해야 하는 걸까.
“그렇군요.”
우리가 연습장으로 들어가자 유은설이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둘이 같이 오네?”
“응. 밖에서 만나서 같이 들어왔어.”
나는 준비해놓았던 대답을 내놓았다.
유은설이 먼저 올 것만 같은 느낌에 입에 담고 있던 문장이었다.
“그래? 설화야 빨리 와.”
의심하는 기색이 사라지고 그녀의 말에 옆으로 달려갔고, 사라하는 천천히 걸어왔다.
유은설은 내가 가까이 가자 귀에 대고 얘기했다.
“끝나고 내가 멋있는 거 보여줄게.”
배시시 웃으며 나에게 말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번에 말한 새로운 마법 같았다.
사라하는 새로운 것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연습이라고 했다.
유은설은 연습 시간이 부족했는지 기뻐했고, 나도 유은설에 맞춰 같이 하이파이브를 한 번 쳐주었다.
평범하게 마법 연습을 할 줄 알았지만, 사라하는 오늘 하고도 체력이 남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방금 무슨 이야기 했어?”
“…”
유은설이 새로운 마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기에 그냥 침묵으로 대답했다.
“크게 소리 내면 걸린다.”
내가 무슨 소리냐고 할 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로 박치기했다.
“쮸웁-”
내 입술을 빨며, 혀를 집어넣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읍!”
급하게 소리쳤지만,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당장 앞에 유은설이 있었기에 크게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푸하- 좋았어?”
“……”
어제는 가만히 있던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몰랐다.
‘딱. 딱 이주만 참자.’
**
“설화야 빨리 와.”
유은설은 앞에서 나를 재촉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신나 보이는 그녀의 뒤를 따라 달렸다.
한참 동안 사라하에게 희롱당했지만, 유은설에게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갔다.
그녀는 끝나자마자 나를 빨리 하랑으로 데리고 오더니, 지금은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숲으로 들어오자 오랜만에 보는 공터가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네.”
“설화야, 이것 봐봐.”
그녀는 중앙에 서서 천천히마법을 시전했다.
사라하에게 배운 기초적인 마법이 아닌 그녀가 처음 선보이는 마법이었다.
오각형. 그 안에 원. 원 안에 별이 그려졌다.
별의 중앙에 다시 원이. 원 안에 다시 오각형이 그려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중앙 별똥별 모양이 그려지고, 나무를 향해 하얀색의 물체가 나갔다.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궤적을 남기며 날아갔고, 나무를 부수며 멈추었다.
“어? 저거 넘어지면 안 되는데!”
유은설은 달려가 넘어지는 나무를 잡았다.
“어떡하지?”
눈알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나에게 묻고 있었다.
어렵지 않게 나무를 붙잡고 있었지만, 나무를 쓰러트린 것은 나도 당황스러웠다.
유은설도 예상치 못한 사태에 많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고.
“도망칠까?”
내가 대답을 내놓았고, 유은설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도망치는 것과 자수하는 것.
“천천히 놓고 도망치자.”
“그…그래도 될까?”
“뭐 어때. 여기 오는 사람도 적은데.”
“그렇지?”
유은설은 나무를 천천히 아래로 내려놓았고, 폴짝 뛰어넘어 나한테 달려왔다.
“나가자.”
내 손을 붙잡고, 마음이 급했는지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에 반해 준비도 안 하고 있던 나는 행사장 풍선 인형처럼 휘날리며 그녀에게 붙잡혀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이 정도면 괜찮겠지?”
어차피 지금 사람도 없는데…
지금 지나오면서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고, 시간도 늦은 밤이었기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응… 응…”
중간부터는 거의 다리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끌리며 발이 이리저리 꺾였기에 다리에힘을 주기만 해도 아파왔다.
치유 능력을 사용해 상처를 낫게 하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설화야 근데 어땠어? 괜찮았어?”
“응. 멋졌어.”
숨을 고르고 나서 마법에 대한 감상을 물어왔다.
“땅에만 써보다가 너무 신나서 나무에 쐈는데 한 방에 저렇게 될 줄은 몰랐어.”
“괜찮아.”
땅에 썼을 때도 펑펑 소리가 들렸을 것 같은데….
결과야 어쨌든 유은설이 새로운 마법을 익힌 것에 대해 박수를 쳐주기로 했다.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데려다줄까?”
“괜찮아. 혼자 갈게.”
애초에 이미 기숙사에 가까운 위치였고, 그녀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유은설은 내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돌아갔다.
**
“곧있으면 기말 평가가 시작된다. 마지막 평가인만큼 신중을 기울이도록.”
교관이 아침에 들어와 한 말에 주위가 수군거렸다.
‘곧인가.’
정말 멀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음에도 한켠에서는 두렵다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실제로 죽는다는 각오를 하는 것과 죽음은 다른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해야 했다.
“설화야, 이번에는 무슨 일 없겠지?”
“어?”
김세연이 내 옆에서 불안한 듯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불안해서… 저번에도 그랬잖아. 이번에는꼭 같이 다니자.”
“응…”
순진한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딱 그것 아닐까.
마음이 어딘가 아려왔다.
‘마음 독하게 먹자.’
이런 상황이 처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도 있을 법한 일이었다.
김세연 다음으로 나한테 온 사람은 윤예진이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 없지?”
“응. 아무 일도 없어.”
처음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이번에는 나도 관련 있으니까 도울 수 있는 건 말해. 혼자 고생하지 말고.”
“응. 걱정 하지 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윤예진이라면 아마 내가 없어도 이성적으로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
아마 며칠 슬퍼하다말겠지.
며칠도 아니려나 그냥 하루, 아니 몇 시간, 몇 분 정도 후회하려나.
그녀와 나는 깊은 관계도 맺은 적도 없었고, 뒷담화 일 때문에 한 번 깨진 관계였다.
오히려 다행인 걸까.
그녀가 내 정체를 알아서.
“그것보다 자꾸 어디 나갔다 오는데 뭐하는 거야?”
“유은설이랑 같이 나갔다 오는 거야. 오해하지 마.”
“으음… 수상한데. 걔랑 엮이면 무언가 자꾸안 좋단 말이지.”
“너무 그러지 마.”
유은설도 결국은 피해자일 뿐인데.
“확인했으니 됐어. 훈련하러 간다.”
“응.”
사라하는 지치지도 않은지 매일같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응답에 응했고, 어차피 그녀와 며칠 남지도 않았기에 매일같이 가주고 있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