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기말 평가 (76/120)



〈 76화 〉기말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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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바빴으니까.”

루시아와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한 주에 번씩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그녀가 바쁜 일이 생겼다고거부했다.

실제로 일이 다가오는 만큼 나는  일이 점점 없어졌고, 거의 모든 일을 그녀한테 전가하고 있었다.

“이틀 후죠?”
“그렇겠지.네가 말했잖아.”

이틀 뒤라고 확신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주위가 바위로 둘러쌓여 있고, 큰 평지를 가진 곳에서 마인이 나타난다.
큰 괴수가 죽어있었고, 사람들은 그 괴수를 둘러싸고 신나하고 있는 상황.

원래라면 시기마저 특정해내지 못했겠지만, 나는 그 지형이 언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기말 평가.

레이드형식의 던전에 들어가 다 같이 협동해서 잡는 것.

“일은 어떻게 됐어요?”
“… 환혼석은 아직 못 찾았어.”
“괜찮아요. 찾을  있을 거예요.”

이틀 전에도 내 목숨을 붙잡아줄 유물을 찾지 못했다는 소리였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초에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단지, 언젠가는 찾겠지, 이런 생각이었다.

“정말?  상처는 치유도 안 된다면서. 그냥 죽는 척만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으음… 괜찮아요.”
“우리가 실감 나게 죽을 수 있게 도와줄게.”

약간 솔깃했지만,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계획이 변경되면 큰 차질이 있을 수도 있었다.

“됐어요.  없을  열심히 해주세요.”
“…그럴게.”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만나요.”
“…응.”

하랑으로 돌아가자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없을  알았는데.

내가 나가는 것을 그녀에게 들켰을 줄은 몰랐다.

“어디 갔다 와?”
“잠은  자?”

윤예진의  아래에 짙게 다크서클이 깔려있었다.

최근에 일이 많은지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피곤한 와중에 나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봐서. 안 나올 수가 없잖아.”
“으음….”
“무슨  있는 거야?”

윤예진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럼 됐어. 가자. 데려다줄게.”
“네가 더 피곤해 보이는데, 먼저 들어가. 같이 가줄게.”

말싸움 끝에 내가 그녀를 데려다주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이번 시험  같이 할까?”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는 밤길을 걸어가는  윤예진이 물어왔다.

시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웃음이 피식 튀어나왔다.

“왜, 왜 웃어.”
“그냥 웃겨서.”
“평소에는 힘을 안 쓰는 거야? 가면 쓸 때는   같은데. 숨기는 거지?”
“…응.”

그녀는 몇  보이지 않았는데도 알아차릴 정도로 통찰력이 좋았다.

“그러면 내가 지켜줄게. 붙어 있어.”
“푸흣… 응.”

그녀가 나를 지켜주겠다는 소리에 또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재밌네.

윤예진은 내가 장난스럽게 듣자 진지하게 말했다.

“진담이야. 새겨들어.”
“알겠어.”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어두운 밤길을 걸어 갔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그녀한테 말했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고심 끝에 그녀에게 한 마디를 말할 수 있었다.

“이성적으로 행동해.”

윤예진은 그 말에 장난치듯 말했다.

“내가 그러지 않은 적이 있었나?”
“그렇지.  가.”

그녀를 보내고 나서야 나도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설화야! 오늘은 놀까?”
“응?”
“내일 평가잖아. 원래 평가 전날에는 노는 게 정상이잖아.”

김세연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중간 평가가 빌런의 침입으로 아예 날아갔기에 기말 평가로 1학기의 점수가 결정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들 기말 평가에 날을 세우고 있었기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평가 끝나고 놀자. 끝나면 방학이잖아.”
“그…렇지? 사실 나 조금 긴장돼.”
“걱정하지 마. 잘할  있을 거야.”
“으으… 그렇게 말해도 긴장되는 똑같다니까.”

김세연도 충분히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낼  있겠지.

환혼석을 찾았다면 이런 걱정도없었을 텐데.

알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쓸데없이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겠지?’

평범하게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평가 전날이라 수업은 빨리 끝 마친 것이 좋았다.

유은설은 마지막 날 나한테 보여줄 것이 있다고 숲으로 오라고 했다.

숲으로 가자 유은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끝났음에도 먼저 도착한 것은 유은설이었다.

내가 오기 전에 미리 연습하고 있던 건지 주위에 파인 자국이 가득했다.

저번에 나무가 쓰러졌던 일이 있고 나서 그녀는 철판을  개 겹쳐 나무 사이에 걸어놓았다.

물론, 위력이 강한 마법을 쏘면 금방 뚫렸지만, 전에 나무를 넘어뜨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왔어?”
“응. 보여줄 게 뭐야?”
“봐봐.”

 주 사이에 놀고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유은설도 많은 성장을 걸쳤다.

이제는 마법을 시전하는 속도에 문제가 있었지, 웬만한 마법은 거의 다 익혔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나도 같이 수업을 들었기에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야 공유 마법과 괴수 탐지 마법, 위치 추적마법까지.

세 개를 조합해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파란색의 불빛이 반짝이며, 마법이 시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시전되었지만, 아무 효과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제대로 발동했다는 것 정도는  수 있었다.

주위에 괴수가 없기에 발동을 안 한 것뿐이지.

실제로 괴수가 있다면, 마법진에서 나온 실이 괴수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것을 유은설이 지켜볼 수 있고.

실제 던전에서 사용해도 충분히 좋은 마법이라고  수 있었다.

“봤어? 내가 만든 거야.”
“대단해.”

박수를 치며 그녀를 칭찬했다.

마법을 그냥 조합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맞지 않는 곳에 집어넣게 되면 금방 픽 식게 되기에 그녀의 발견은 놀라웠다.

“그리고 이것도 있어.”

저번에 봤던 별이 나가는 마법에 내가 모르는 마법을 몇 개 조합하더니 파랗게 빛났다.

가운데에서 전에 봤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철판을 향해 날아갔다.

딱 보기에도 저번과 비교해서위력이 차원이 달라 보였다.

그녀도 예상했는지 철판을 이미 여러 개 겹쳐놓았다.

─콰아앙

굉음을 내며 철판을 차례차례 뚫기 시작했고, 저 멀리 겹쳐놓은 철판까지 뚫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기까지 간 건 처음이야!”

그녀도 제일 많이 철판을 뚫었는지 방방 뛰며 신나하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엄지를 세워줬다.

“내일 평가에서도 쓰고 싶다. 그러면 안 되겠지?”
“응. 그래도 아직은 비밀이니까.”

사라하가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마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고, 유은설도 마법을 선보이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않는다면 몰라도,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마법을 쓰는 것은 아직 일렀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면 알아서 사용할 것이다.

“내일은 어떤 평가일까. 위험한 걸까.”
“그거야 모르지.”

유은설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 지 내일 잘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갈게.”
“응. 잘 가.”

유은설과 헤어진 뒤 향한 곳은 전에 갔던 모텔이었다.

오늘로 계약도 끝이었기에 사라하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왔어?”
“마지막이네요.”
“아쉽다. 나중에 볼  있을까?”
“……”

내가 생긋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라하가 말했다.

“장난이야. 장난.”
“옷부터 벗을까요?”
“됐어. 오늘은 그럴 기분도 아니고.”
“으음… 그런가요.”

모텔까지 불려왔지만, 오늘은 하지 않겠다는 소리에 약간 기뻤다.

근 며칠간 매일같이불려댔으니 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해댔다.

그녀는 침대에 대자로 눕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 소피아 따라서 교관 되기로 했어.”
“잘됐네요.”
“이제까지 마음대로 했으니까. 혹시 싫었어?”
“뭐가요?”

“내가 지금까지 했던 짓들. 소피아에게 들으니까 남자는 강제로 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더라고.”
“괜찮았어요.”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거짓말 아니에요.”

내가 기분 나쁠 일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사라하가 장난치는 것은 약간 힘들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나에게 나쁜 일은 없었다.

“사실 남자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냥  기분만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
“……”
“미안해.”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 눈을 바라봤다.

“다행이에요.”

그래도 마지막은 사라하의 진심을 듣고 갈 수 있었다.

그녀도 어렵게 꺼낸 말일 것이다. 하루 종일 생각하다가 어렵사리 말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무엇이든 이해해줄 만큼 아량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정도도 이해해주지 못할 만큼 속이 좁은 사람도 아니었다.

“다음에는 좋게 만날  있겠죠?”
“응. 다음에 보자. 나는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갈게.”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그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을 닫고 나오니 내일 있을 일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긴장하자. 실수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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