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기말 평가
유은설은 앞에 서 있던 김종현이 사라지자마자 뒤를 쳐다봤다.
가면을 쓴 남자가 견제하고 있던 늑대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와있었고, 김종현은 뒤에 서 있었다.
그것도 꽤 가까운 위치에.
옆에 서 있던 김종현이 갑자기 돌변해 사람을 공격한 이유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예상하기에 늑대와 검은 안개 그리고 몸을 감싸고있는 검은 색의 불꽃이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양쪽으로 공격을 받게 되어 순간 당황했지만, 어느새 가면남은 자신의 뒤에 등을 맞대고 서 있었다.
김종현이 창을 뻗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유은설은 금방 가면남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번에 불타는 개를 상대했을 때와 똑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피하기만 하면 김종현의 공격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반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윽-”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불쾌한 기억이 들어왔다. 중간 평가 때의 악몽.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생생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숙여야 하는데.’
그래야 그가 피할 수 있을 텐데.
“죽어!”
가면남은 자신을 믿고 저번과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모종의 방식을 사용해 피할 것이고, 김종현의 창이 자신의 가슴을 찔러올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실수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 했다.
─푸욱.
유은설의 생각이틀렸다는 것은 금세 깨달았다.
가슴이 뚫리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고, 누가 살포시 자신의 어깨를 미는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어깨가 밀려 땅에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늑대가 달려와 그의 어깨를 물어 뜯었다.
“어?”
더 이상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악몽이 아니었다.
악몽이 아닌 현실. 악몽이 재현되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는 가슴의 정 가운데가 창으로 뚫려있고, 어깨에 피가 흘러나오는 상태의 남자가 있었다.
유은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의 어깨를 물어뜯고 있는 늑대를 베고, 김종현에게 칼을 던졌다.
무기를 잃었다는 상실감보다 다시 그를 잃었다는 무력감이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창이 빠져나온 심장 부근의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유은설은 더 싸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였어… 죽였다고!”
“나가야 해…”
하지만 어떻게?
당장 앞에는 적이 창을 들고 서 있고, 안개가 짙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게이트를 찾아 나갈 수 있다고?
“쿨럭.”
쓰러지는 그를 받치자 무게 때문에 바닥에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피가 유은설의 머리카락을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늑대와 김종현이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유은설은 그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김종현에게 던졌다.
검을 던진 상황에서 그녀가 가진 무기라곤 화살밖에 없었다.
급하게 마법을 사용해보지만, 귀와 눈을 괴롭히는 환청과 환각 때문에 중간에 마법진이 흐트러졌다.
픽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마력은 유은설의 희망을 짓밟기 충분했다.
“아아…”
기적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동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
그런 기적이 자신한테 올 리가 없었다.
자신과 그런 이야기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김종현은 자신에게 창을 찔렀고, 유은설은 눈을 감았다.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상황.
다른 애들은 잘 도망쳤을까.
차라리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꽤 명예로운 죽음 아닐까.
─챙!
“악!”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들린 것은 자신의 신음이 아닌 저음의 비명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면 쓴 사람들이 김종현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늑대의 가슴에검을 꽂아 넣고 있었다.
“…누구?”
유은설은 가면남을 부둥켜안은 상태로 그들에게 물었다.
누구냐고 물었지만 당장 그들이 누군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안고 있는 이 사람만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외쳤다.
“치료해줘.”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신에게 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의 마력이 가면남에게로 스며들고, 얕은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 부근의 상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새 살이 돋지 않았고, 피도 멈추지도 않았다.
“데리고 가자.”
“잠시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김종현과 싸우던 여자가 다가와 가면남을 가리키며 말했고, 가면남은 중저음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 유은설을 쳐다보며 말했다.
“신기하네. 심장이 뚫려도 말할 수 있다는 게.”
“말하지 마요. 빨리 가요.”
“여기 피 묻었다. 미안.”
그는 유은설의 머리카락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천천히 닦아내고,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미안. 무거운 짐을 넘겨줘서.”
그러고 나서 가운데 구멍이 뚫린 검은색의 옷을 그녀에게 걸쳐줬다.
“하지 마요. 그러지 마요. 죽을 것처럼.”
평범한 옷이 아니라 유물임은 한눈에알아볼 수 있었다.
던전에서 유물을 가진 사람이 죽기 전에 넘겨주는 것은 상식이었다.
유은설은 자신에게 건네주려는 그의 손길을 막았다.
죽기 전 자신에게 유물을 넘겨주려는 것이 싫었다.
“죽는 거 아니잖아요.”
“쿨럭- 아… 또 묻었다.”
피를 뒤집어썼지만, 상관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피가 신경 쓰였다.
가면남은 고개를 숙였고, 유은설은 자신에게 무언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유물을 얻을 때와 똑같은 기분.
“싫어요. 주지 마요. 살 수 있잖아요.”
“됐어요. 이제 가요.”
그의 말과 함께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를 업고 단숨에 사라졌다.
“안 돼. 안 돼….”
유은설의 정신이 한계에 다다르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유은설이 눈을 뜨자 주위를 먼저 살폈다.
주위가 보이지 않는 검은 연기는 보이지 않았고, 창을 통해 환하게 빛나는 햇빛이 들어왔다.
“여긴…”
금세 병원임을 알고, 편안하게 누웠다.
“병원?”
유은설이 깨어나고 상황 파악이 끝나자 연기 속에서 있었던 일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아…”
김종현이 알 수 없는 능력을 사용한 것.
김종현과 싸운 것.
싸우는 도중 가면남이 나타난 것.
자신이 실수해서 가면남의 심장이 찔린 것까지.
모두 기억났다.
“아아… 아…”
그리고 곧 옆에 곱게 개어져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검은 옷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은설은 급하게 일어나 그 옷에게 다가갔다.
다리가 풀려 일어나자마자 풀썩 주저앉았지만, 기어서 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옷을 펼치자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라는 것을.
가슴팍에 뚫려있는 구멍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되뇌면서 옷의 상태를 살펴봤지만, 자신의 눈앞에 옷의 능력이 열렸다.
“죽었어? 죽은 거야?”
유은설은 옷을 구겨 안으며 숨죽여 울었다.
자신이 죽였다.
그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죽었다.
내가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옷의 능력으로 살 수 있었을 텐데.”
옷의 능력을 본 이상 그녀는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이 능력이라면 혼자서 살아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쓸모없는 이유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가…”
내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어릴 때부터 부모를 잃었던 자신에게 남은 가족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지킴을 받을 만큼 잘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자라고 불릴 만 했다.
하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재능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저 우연.
우연이 겹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야…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
마지막에자신을 살려준 사람들은 강했다.
그들에게는 살릴 방도가 있지 않을까?
힐러도 있었고, 치유받고 있었으니까 좋은 병원으로 가면 살 수도 있었다.
치유 능력이 있으니 심장도 충분히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뉴스로도 본 적도 있었다.
심장에 구멍이 뚫렸지만, 치유를 받아 재생했다는 뉴스를.
“그렇네. 다시 만날 수 있는 거 아닐까.”
약간 열린 창틈으로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있는 그녀의 앞에 안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주워 살폈다.
“종이가아니라 사진이네...?”
그리고 그 사진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찍혀있었다.
가면을 쓴 남자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옷의 구멍과 정확히 일치한 위치에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 적혀있었다.
[심장의 상처는 치유가 안 됨.]
그것을 보자 유은설은 어딘가 하나 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푸흐흐… 푸하. 푸하핫.”
웃겼다.
그냥 웃겼다.
자신이 죽여놓고 저번처럼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랬다.
저번에도 자신이 멋대로 찾아가서 위험에 빠트리기나 하고.
우연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푸하하…”
이 감정은 이기적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쓰레기.
그것이 자신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
걱정해주지도 못할망정 살아서 자신을 보러 올 거라는 희망.
그런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자신에게 딱 맞았다.
“하하. 하하.. 하...”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이 죽었다.
동경했었다.
남을 지켜주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좋아했다.
말 없이 남을 지켜주는 모습을.
즐거웠다.
그와 미로를 걸으며 떠들었던 시간이.
“근데… 내가 그런 사람을 죽여버렸네.”
처량했다.
지금 내 신세가.
토가 쏠렸다.
마지막에 포기하고 주저앉았던 내가 생각나서.
역겨웠다.
마법을 사용해볼 생각도 안 하고 포기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내가…”
사진을 집어 던지자 문 쪽으로 날아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주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딸깍.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사진을 줍고 말했다.
“이 사진 뭐야…?”
“예진이네…. 푸흣… 내가… 내가 죽였어.”
눈물이 나기보다 웃음만이 나왔다. 그냥 웃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