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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기말 평가 (79/120)



〈 79화 〉기말 평가

윤예진은 검은 안개 속에서 한설화를 찾았다.

방금까지 한설화가 주위에 있었지만, 팔을 돌리며 한설화를 찾아봐도 그의 몸은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봐도 그녀의 외침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보인 것은 할머니였다.

사진 속 모습으로만 남아있는 할머니.

윤예진은 그런 할머니에게 달려갈 뻔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이성적으로 행동해.’

한설화와 나눈 한 마디가 그녀의 정신을 붙잡았다.

“정신 차려.”

자신의 뺨을 세게 치자 환각이 사라졌다.

윤예진은 더 이상 한설화를 찾지 않았다.

한설화는 자신의  일을 할 것이고, 윤예진도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약하지 않다. 다른 생도보다 강한 편에 속했다.

윤예진은 한설화를 믿고 있었다.

그의 신념을. 그의 강함을.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사람,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등에 업거나,옷을 잡아 질질 끌고 다녔다.

그녀의 몸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명, 손에 들려있는 사람이 다섯 명쯤 되자 탈출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빠르게 다른 사람을 내보내야 한설화가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

환각과 환청에서 깨기 위해 이미 두 뺨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바닥에 머리를 박아 정신을 유지했다.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게이트를 찾아 사람들을집어넣었다.

집어넣자 주위에 싸움 소리가 들렸고, 윤예진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한설화가 있을 거라고. 보이는사람은 살려냈으니까 이제 한설화를 도울 때라고.

가는 도중에 검은 연기가 멎고, 어두웠던 시야가 점점 밝아지며 앞이 보였다.

그리고 가는 곳에는 유은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검은색의 옷을 입은 상태로 쓰러져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한설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유은설이 걸쳐 입은옷의 구멍이 신경 쓰였다.

확정되지도 않은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유은설에게 넘겨주고 도망쳤을 수도 있다.

“교관들은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윤예진이 투덜대면서 게이트를 바라봤지만, 사람이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타났던 교관도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주위를 둘러봐도 정신을 차린 사람은 그녀 혼자밖에 없었다.

윤예진도 정상이라고  수는 없었다. 검은 연기가 사라졌음에도 어지러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지 않으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얼굴과 몸에 상처를 냈고,이미 몸은 상처 투성이였다.

그럼에도 주위 쓰러져있는 생도들을 하나씩 업어서 게이트 밖으로 내보냈다.

‘왜 이것밖에 없지?’

시체는 한 구밖에 없었고, 자신까지 포함해서  39명이 있어야 하는데.

“28명밖에 없어.”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봐도 자신을 제외하고 28명이었다. 한설화를 제외한다고 해도 9명이 없었다.

‘모르겠다.’

이제 한계였다.

온몸은 자신이 새긴 상처 투성이었고,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았다.

자신도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갔고, 밖에는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왔다!”

그 말과 동시에 윤예진은 앞으로 쓰러졌다.



**



윤예진은 눈을 뜨고, 교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에서 있었던 일은 미래 깨어난 다른 사람이 말했고, 검은 연기 속에서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환각과 환청에서 깨려고 한 일부터다른 사람들을모두 구한 일까지.

더 이상 던전 속에남은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관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면…. 고맙다. 덕분에 살릴 수 있었어.”

윤예진은  말에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건가.’

원래의 자신이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게이트 밖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기껏해야 가는 길에 보이는 몇 명 정도 데리고 나갔겠지.’

교관은 게이트 밖에서 안으로 진입이 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윤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관의 넋두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 사망자  명에 실종자가  명인가…”

“열 명이요?”

윤예진은 자신이 마지막에 나올 때까지 찾지 못했던 사람이 9명이었다.

교관은 천천히 이름을 말했다.

“김종현……한설화까지  10명.”
“한설화가 없어요?”
“게이트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어디갔지?

순간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저번에도 들키지 않고 나온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나왔겠지.

“혹시 김종현 생도가 어떻게  건지 알고 있나?”

김종현.

그가 죽인다고 외치고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윤예진도 그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김종현이  그런지는 잘 몰랐다.

“잘 모르겠습니다.”

김종현이 사용한 능력이 무엇이고, 그렇게 된 경위조차 알지 못했다.

그가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예진은 교관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병실이 아닌 유은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마지막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은설 뿐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믿고 있었다.

전처럼 자신의 앞에 나타나 줄 거라고.

그렇지만 가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 느껴졌다.

유은설이 있는 병실을 찾아갔다.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고 들었지만, 깨어나자마자 김종현과 있었던 일에 관해 물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발밑으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사진인가?’

주워서 확인해보니 사진 속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진 뭐야…?”

사진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가슴이 뚫려있는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었다.

거기다 그 아래 적혀있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예진이네…. 푸흣… 내가… 내가 죽였어.”

유은설은 바닥에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주저앉아있었다.

“뭐?”

윤예진의 말에 유은설은 미친년처럼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윤예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있었다.

“그래서 내가 못 피해서 죽었어. 바보 같지?”

김종현이 그렇게까지 강해진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종현이 유은설을 상대로 압도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유은설의 이야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에게 혐오감이 느껴졌다.

차라리 그녀가 도망쳤더라면, 한설화가  수 있지 않았을까.

자기 일을 똑바로 알지 못한 유은설에게 당장이라도 욕을 하고 싶었다.

한설화가 유은설을 구하려다 위기에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쯤 살려줬으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번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 앞에 있는 유은설이 뭐라고.

그러면서도 윤예진의 입에서 나온 것은 욕설이 아니었다.

“살려줬으면 목숨값을 해. 그렇게 앉아있지 말고.”

화를 억누르며 얘기했다.

멍청하게 앉아있지 말라고.

그렇게 한설화가 목숨을 걸어 구해줬으면 구해준 값을 하라고.

당장이라도 너처럼 쓸모없는 애 대신 한설화가 살아야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윤예진은 병실 문을 닫고 자신의 병실로 달려갔다.

문을 닫고 그대로 주저앉아 감정을 가라앉혔다.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을 모두 버렸다.

방금 들은 이야기마저 버리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만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안 죽는다며…”

별일 없다며.

무심코 들고 온 사진 속에는 눈도 뜨지 못하고 누워있는 한설화가 보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죽은  아니면 뭔데…”

그 밑에 쓰여 있는 추신이 그녀를 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똑똑

방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윤예진은 문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급하게 일어섰다.

“윤예진 생도, 혹시 얘기 가능할까요?”
“네. 들어오세요.”

들어온 사람은 방금 던전 속의 일을 얘기한 교관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윤예진 생도가 합동 장례식에서 대표로 서주실 수 있을까 해서…”
“……”
“던전 속에서 다른 생도를 구하셨으니…”

그 뒤에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영웅’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른 생도를 위해서라도 자리에  번 서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생각해볼게요. 지금은… 혼자 있고 싶네요.”

교관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닫고나갔다.

“내가 영웅이라고?”

과분했다.

안에서 맞서 싸운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가.

목숨을 희생당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가.

남을 구하느라 목숨을 건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한설화는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을 살려 보내기 위해서.

 정신 나간 유은설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지만 누구도 한설화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한설화는 그저 실종자 중 한 명일 뿐.

누구를 구한 영웅도 아니었고, 누구를 위해 희생한 사람도 아니었다.

중간 평가 때 코어를 재가동 시킨 사람도 아니었고, 자신을 구해준 사람도 아니었다.

아무도 그의 업적을 알지 못했다.

“바보 같아.”


**



김세연은 일어나자마자 한설화를찾았다.

던전 속에서 검은 연기를 들이 마시고 보인 것은 한설화가 죽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본 것이 환각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기에 병원을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병원을 돌아다녀도 한설화의 이름이 쓰여 있는 병실은 보이지 않았다.

교관이 가져다준 명단에 한설화의 이름을 찾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망자 1명. 실종자 10명.

단순히 실종자라고 칭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탈출용 게이트가 닫혔다면, 안에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설화야…”

그의 이름 옆에는 실종자라고 적혀있었다.

“윤예진 생도가 데리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생도들도 위험에 빠졌을 겁니다.”
“윤예진..?”

김세연은 자신이 이름을 잘 못 들었나 생각했다.

“윤예진 생도가 용기 있게 다른 생도들을 구출해내서 다행입니다.”

용기?

그런 단어는 윤예진이랑 맞지 않았다.

“그러면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편히 휴식 취하시면 됩니다.”

윤예진이 우리를 구했다고?

한설화를 나락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던사람이?

그녀는 한설화가 그  때문에 얼마나힘들어했는지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김종현이 갑자기 사람을 죽인 일부터 윤예진만 멀쩡히 정신이 남아있는 일까지.

전부다 꾸민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김종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똑똑히 본 입장에서 윤예진 마저 의심스러웠다.

둘이 그렇게 사귈 것처럼 붙어 다녀놓고, 이제 와서는 생판 모르는 사람인 척하는 것이.

윤예진에게 당장이라도 가서 말하고 싶었다.

위선자라고. 그렇지만 일어나자마자 무리를 해서 그런지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며, 침대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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