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하랑 방어전
“내가 말한 건 찾았어?”
루시아는 앞에서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너무 범위가 넓어.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아…”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한설화가 말한 대로 흘러갔다.
아직 환혼석을 찾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자신이 유물을 하나 찾아온다고 해도 환혼석이 없으면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한설화의 말대로 가슴의 상처는 치료가 되지 않았고, 가슴에 끊임없이 치유를 불어넣으며 살릴 수밖에 없었다.
한설화 한 명을 살리는 데만 해도 많은 수의 사람이 붙어있었다.
“찾았어.”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누구….”
“여기.”
그녀는 지도를 꺼내 위치를 가리켰다.
“너 설마…”
루시아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여자를바라봤다.
예언 능력을 가진 소녀.
“쟤 말이 맞으면 내 능력은 더 이상 안 써도 되잖아.”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정확하게 위치까지 알아내는 것은 부담이 컸다.
이번 일로 수명이 얼마나 소비되었을지 얼추 예상되었다.
루시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당장 앞에 있는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능력을 사용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밖으로 나가 그녀가 가리킨 위치로 사람을 보냈다.
이사건에 사용한 것이 너무 많았다. 인력부터 자원까지. 그렇지만 시작한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그녀도 생명수를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의 말이 틀렸으면 던전이 열리지도 않을 것이고, 거짓말임이 들통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
루시아는 눈앞에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진입했다.
“진짜였네.”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한 궁전이었다.
한 여자가 누워 골골대고 있었고, 주위에는 온갖 약재들이 널려있었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은 주위에 간섭할 수도 없고, 하늘 위에서 이야기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서천서역의 생명수, 그것만이 대왕의 목숨을 살리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대왕을 치료할 수 있다 얘기하고 궁에 들어와 말했다.
평소의 대왕이라면 그녀의 말이 허황되었다고 얘기했겠지만, 대왕에게 남은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신하들을 시켜 생명수를 가지고 오라 명했지만, 평소에 그녀의 옆에 붙어 얘기하던 신하들은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전하, 소신들이 자리를 비우면 나라가 기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 보내는것이 옳습니다.”
온갖 변명을 다 대며 거부하자, 대왕은 다음으로 자신의 아들들을 찾았다.
그녀는 맞아들을 찾으며 생명수를 찾아와달라고 요청했다.
“어머니, 궁궐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데 어찌 제가 생명수를 찾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알겠다고 대답하며, 평소 자신이 예뻐하던 둘째 아들을 찾았다.
“어머니, 길눈이 어두워 생명수를 찾으러 가기 전에도 길을 잃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평소에 찾지 않는 셋째 아들을 찾았고.
“어머니, 애가 있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머니, 부인의 시중을 들어야 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넷째, 다섯째, 마지막 여섯째까지 온갖 변명을 대가며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
“쟤는 인생을 헛살았네.”
루시아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미 이야기를 알고 있는 그녀는 투덜대며 진행되는 사건을 지켜봤다.
결국, 대왕은 자신이 버린 왕자를 찾아 시종을 보냈고, 왕자는 그 사실을 알고 생명수를 찾으러 떠났다.
“호구네. 호구야.”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러 험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말이 되나?
그때가 돼서야 루시아는 바리의 옆에 나타날 수 있었다.
“누구세요?”
“같이 다녀도 될까?”
“저는 꽤 멀리 가야 되는데…”
“나도 똑같아.”
바리는 따라오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루시아는 꿋꿋이 그의 뒤를 밟았다.
“그… 그냥 같이 다녀요.”
루시아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하루가 넘도록걸어 밤이 찾아오자 바리는 길가에 불을 피워 잘 준비를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너를 버린 부모잖아.”
“그런 것까지 아시는 거예요? 하긴… 꽤 가까운 거리였으니 소문이 났을 수도 있겠네요.”
허상 같은 존재에게 묻는 것이라 마음이 편했다.
실제로 주위에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루시아의 주위에는 ‘바리’ 같은 사람이있었다.
원래는 한 명이었지만, 이제는 두 명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부모잖아요. 저를 버렸어도 한 번 부모는 영원히 부모니까요.”
“호구네, 호구야.”
“네? 호구가 뭐에요?”
불에 나뭇가지를 하나씩 던지며 루시아가 얘기했다.
“너 같은 애들을 말하는 거야.”
“음… 그런가요?”
“내 주위에도 두 명 있거든.”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바리는 말을 하고 눈을 감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세 번을 반복하자눈이 곱게 감겨 떠지지 않았다.
“잘 자네.”
자신의 살날을 버려가며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
한 명만 있을 때도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두명이 되자 악동이 두 명으로 늘어난 느낌이었다.
“뭐… 한 명은 곧 살아날 것이긴하지만.”
자신은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이 아닐까.
앞에 있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려 여행을 떠나는 애같이.
“나랑은 다르네…. 잠이나 잘까.”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루시아가 그를 업었다.
그녀가 그를 업고 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했다.
그의 발걸음을 맞춰 걷다 보면, 도착할 때까지 한 세월이걸릴 것 같았다.
그를 안고 길을 가는 도중 넓은 밭을 갈고 있는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요!”
바리는 그녀의 품에서 내려 앞으로 총총 달려 나갔다.
‘실제로 보니 더 이상하긴 하네.’
저승의 길을 저렇게 허름한 집에 사는 노인이 알고 있다는 것이.
바리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노인에게 물어봤고, 노인은 밭을 갈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저 혼자서 해도 돼요!”
“됐어. 조금만 기다려.”
바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며 호미를 들고 밭을 갈려 했지만, 루시아가 제지했다.
곧, 북쪽 오색구름 속에서 짐승 수백 마리가 나와 밭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 저기 이상한 것들이 와요!”
루시아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짐승들은 밭으로 질주해 아무 피해 없이 밭을 갈고는 쭉 달려 나갔다.
“와… 밭이 다 갈렸어요. 신이 도운 걸까요.”
비현실적인 광경임에도 루시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 일을 기다렸다.
노인은 나와 밭이 다 갈렸다며 좋아하며저승의 길을 알려줬고, 바리와 루시아는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저기… 어디까지 가시는거예요?”
“네가 가는 곳까지.”
“저랑 같은 곳을 가시는 거예요?”
“응.”
“그러면 같이 힘내요!”
바리는 손을 들어 손뼉을 치려고 했지만, 루시아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손은 정처없이 허공을 떠돌았고, 바리는 점점 팔을 내리며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덩치가 엄청 큰 노인이었다.
아까는 여자였다면 이번에는 남자였다.
루시아는 이 노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 노인에게 물건을 뺐고 나아가도 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고할배, 한국의 창조신.
어떤 강함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기에 그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는 바리에게 무언가를 부탁했고, 바리는 금방 끄덕였다.
“당신은 나 좀 보지.”
정확히 루시아를 가르켰기에 루시아는 그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는 들어가자마자 루시아에게 말했고, 루시아는 말을 흘려들었다.
“차라도 마시지.”
그의 말에 허공에서 찻잔이 나타나 루시아와 그의 앞에 놓였다.
“놀라지 않는군.”
루시아는앞에 있는 사람이 허상과도 같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이 던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마음도 주지 않았고, 말도 많이 섞지 않았다.
쓸데없는 곳에 감정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 다했어요!”
그는 문을 열어 바리를 맞이했고, 그에게 삼색 꽃이 핀 꽃가지와 금색 방울을 내주었다.
“저 열두 고개를 넘어 나루터에서 배를 구해 건너가거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루시아는 명목상 고개를 약간 숙였다.
“나중에 보세.”
분명히 바리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닌 루시아를 응시하고 말했다.
루시아는 그 말에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바리는 앞으로가 있었고, 노인은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있었다.
‘그냥 한 말이겠지.’
그다음부터는 별 탈 없이 순탄하게 지나갔다.
원래 머리를 써서 건너가야 하는 곳도, 루시아가 정답을 알려주며 천천히 넘어갔다.
배를 지키는 군사들에게 삼색 꽃을 보여주고 배를 받아 황천수를 건너 시왕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지옥 죄인들이 갇힌 곳에 꽃을 흔들어 벽을 무너뜨리고 튀어나오는 영혼을 기도로 극락왕생 시켜주었다.
루시아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빨리 흘러가기를 바랬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동은 바리를 업고, 빨리 뛰었지만, 그럼에도 여행길은 남아있었다.
마지막 세 갈래 길을 남겨두고, 강에 금색 방울을 던지자 물 위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다 왔네.”
무지개를 타고 건너가자 끝에는 둘의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데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리는 집에 들어가기 전 루시아를 바라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동대산 동수자의 집 동대청에 도착했고, 바리와 루시아는 각각 생명수를 받을 수 있었다.
바리에게는 말하지 않고 루시아는 받자마자 던전을 빠져나왔고, 나오자마자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너무 많이 지났는데.”
핸드폰에는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대장, 언제 오는 거야. 지금 큰일 나기 일보 직전이야.]
가장 최근에 와있는 메세지에 한설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환혼석은?”
“여기.”
유물을 넘겨받고, 루시아는 두 유물의 상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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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
[유물][신화]
─생명을 살리는 힘
•마시면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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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혼석]
[유물][민담]
─생명 귀환
•돌에 충분한 힘이 충전될 때 주위에 죽은 생명의 영혼을 불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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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아는 건데.”
생명수는 정말 알아먹을수가 없게 쓰여있었고, 환혼석은 무언가 있는 것처럼 쓰여있었다.
“그 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죽어도 안 준다 해서 고생 좀 했어.”
자신이었어도 능력이 이렇게 쓰여있으면 누구한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아마 충분한 힘이란 것이 마력 같은 것이 아닌, 생명수같이 특별한 힘을 말하는 거겠지.’
루시아는 먼저 가지고 있는 성해포를 그의 위에 덮었고, 새하얗던 성해포는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환혼석에 생명수를 떨구자 환혼석이 반짝이며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슴의 상처가 천천히 치유되기 시작하고, 새 살이 돋아나고, 상처가 전부 나았을 때 한설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안녕하세요. 음… 늦지는 않았죠?”
“응.”
“그럼 가죠.”
한설화는 자신에게 덮여있는 성해포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누워있었지만, 그의 걸음에는 어딘가 불편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렇지만, 그가 서두르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걸까. 아니면 예상한 걸까.’
방금 보고받은 결과, 하랑에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