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하랑 방어전 (81/120)



〈 81화 〉하랑 방어전

윤예진은 넋 빠진 채 걸어가고 있는 유은설에게 지나치면서 말했다.

“쓸모없는 년.”
“야!”

유은설과 같이 걷고 있는 이하늘이 소리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윤예진의 눈에 유은설은 한설화를 죽인 사람이었으니까.

전에 했던 말로 정신을 차렸더라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유은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맞잖아. 친구가 죽었다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꼴이.”
“곧… 정신 차릴 거야.”
“너도 이제는 잘 모르겠잖아. 저런 년이 어떻게…”

윤예진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한설화를 잃은 상심을 다른 식으로 해석했다.

‘사람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어.’

김종현도, 한설화도.

자신이 믿던 사람 둘이 사라졌다.

그것도 한 명은 자신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윤예진은  이상 사람을 믿지 않았다.

기계처럼 사람을 대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만을 들려주었고, 착한 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유은설처럼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더 열심히 살았다.

합동 장례식에 대표로 서기도 했고, 길드에 영입해야 할 사람들에게 영입제안을 보내기도 했다.

그 사진을 보고 나서 한설화에게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유은설을 속이기 위한 장치라고 믿고 싶어도, 한설화는 하랑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윤예진이 단련장으로 향하는 도중 유은설과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

“너 때문이야. 김종현보고 죽이라고 시켰지?”

김세연.

다음 날부터 윤예진에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유은설과 별반 상태가 다르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저런 말만을 말했다.

윤예진은 김세연을 무시하며 지나갔다.

“너 때문에 우리 불쌍한 설화가…”

알지도 못하면서.

당장 그를 잃었다고 외치는 두 여자보다 윤예진 자신이 더 상심이 컸다.

그 둘보다 한설화를 알고 있다고 자부할  있었다.

‘그런데 둘이 뭐라고 나한테 그래?’

‘오히려 너희 둘한테 뭐라고 할 건 나 아니야?’

한설화 옆에 붙어 다니면서 정체 하나 알아내지 못한 김세연.

자신이 실수해서 한설화를 죽인유은설.

둘의 잘못 아니야?

둘 중 하나라도 같이 한설화를 말렸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유은설이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김세연이 정신을 차려서 같이 싸웠더라면?

윤예진은 이런 가정들이 의미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정들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윤예진한테도 상심이 컸으니까.

그녀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김종현과 전화하면서 길드에 보고를 올리는 시간도 사라졌다.
밤에 불을 끈 상태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만이 남았을 뿐.

밤에창문을 열고 한설화가 하랑을 나가는지 보는 시간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한설화가 하랑 밖으로 나갈 일은 없으니까.


**




오늘도 똑같았다.

윤예진이 보는 하루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유은설은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고, 김세연은 교실에 나오지도 않았다.

오늘도 그런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다른 반의 생도들은 곧 방학이라며 기뻐하고 있었다.

기말 평가에서 변을 당한 것은 A반뿐이었지 다른 반은 무사히 평가를 마쳤다.

며칠 동안은 그들도 조용히 있었지만, 같은 반이 아니다 보니 금세 떠들며 하랑을 활기차게 바꿔놓았다.

다른 반과 달리 A반은 텅텅 비어있었다.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아직 20명이 넘는 인원이 앉아있음에도 중간중간 빈 자리는 더 크게만 느껴졌다.

교관도 굳이 빈 자리를 메꿔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삐이이이익!

갑작스럽게 확성기에서 경고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A반 생도 모두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있었다.

“침입 경보?”

 명이 침입할 때는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주위 경계를 서는 교관들 선에서 끝이 난다.

그러면 경보가 울릴 상환은 언제인가.

[밖에 다수의 게이트 발견. 검은 연기와 함께 나타남. 폭주 위험이 있으니 다들 주의 바람.]

그 말에 A반에 앉아있는 생도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왔다고.

교관은 반으로 들어와 얘기했다.

“다들 전투 준비.”

생도까지 전투 준비 하는 경우는 교관들의 힘으로만 막아낼수 없을 때였다.

지금 상황이 심히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생도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무섭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한 명도 티를 내지 않았다.

장비를 정비하고 밖으로 나가보니 다른 반 생도들도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방금까지 방학이 기다려진다며 방방 뛰던 생도들은 사라졌다.

전투를 앞둔  명의 헌터가 있었을 뿐.

**



윤예진은 하나의 길목을 막아선 채로 서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그녀 외에 생도들이 같이 있었으니까.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두렵다.’

윤예진은 당장이라도도망치고 싶었다.

다른 교관을 매수해 한쪽으로 뚫고 나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그녀의 생각에 버틴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밖에 모인 괴수와 빌런들의 수는 화면으로만 봐도많아 보였으니까.

지원은 오지 않았다.

A급 이상의 헌터  국내에 있는 팀은 두 팀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해외로 파견을 나간 상태였고, 국내에 있는 팀마저 던전에 들어가 도울 수 없는 상태였다.

길드에 지원을 보냈지만, 시간이 걸린다고 연락을 보내왔다.

교관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A급 혹은 B급이 섞인 교관들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자체 결계가 쳐져 있었지만, 그것마저 곧 뚫릴 예정이었다.

‘이성적으로 행동해.’

윤예진은 한설화의 말이 맴돌았다.

한설화라면 지금 어떻게 행동할까.

한설화도 지금은 도망가고 싶지 않을까?

자신처럼?

이렇게 승산 없는 싸움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는가.

─쿠구구궁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괴수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괴수의 종류는 다양했다.

고블린부터 오크까지.

생도들이 상대할  없는 괴수도 섞여 있었다.

─탕!

방아쇠를 당겨 총알을 쏘아 한 마리를 맞춰 눕혔지만, 그 뒤에 있는 괴수가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광경을 보고 윤예진은 생각했다.

‘도망가야 해.’

하지만 어디로?

검은 연기가 하랑을 뒤덮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괴수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당장 앞에 피튀기는 전장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예진은 한설화가 생각났다.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했다.

미로형 던전에서도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배에 납치되었을 때도 그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 구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하하…”

한설화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자신의 앞에 나타날 리도 없었다.

괴수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을 쯤에는 빌런이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빌런은 교관의 공격에머리와 몸이 분리되었고, 교관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강한 적들만 골라 상대하고 있었다.

“하하…”

이제는 팔이 저렸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는 힘이 풀려 덜덜 떨렸고, 조준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대가 워낙 많아 조준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총알은 괴수의 표피를 뚫고 들어갔다.

“하하…”

구해준다며.

죽지 않는다며.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에도 기적을 바란다면 욕심인 걸까.

지금 이 상황에서도 한설화가 생각난다면 중증인 걸까.

혜성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줬을 때가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수가 없는 걸까.

“하하…”

웃음만이 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설화의 사진을 잡았다.

아직까지 윤예진이 부적처럼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칼을 휘두르고있는 생도는 힘들게 버텨보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괴수들에게 덮여 살점이 뜯어 먹혔다.

 광경을 보고 활을 든 생도  명이 뒤를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한 명이 도망치자 다들 무기를 내려놓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전염병같이 퍼져나갔고, 윤예진은 그 광경을 보고 외쳤다.

“도망칠 곳이 어딨어! 다들 무기 집어!”

뒤로 빼도 나중에 먹히는 것뿐.

방어선이 무너지면 죽는 것은 똑같았다.

도망치던 생도들도 정신을 차렸는지 금세 무기를 잡고 다시 전투에 들어갔다.

작은 괴수들을 뚫고 나온 것은 오크였다.

본래 보이던 오크들보다 덩치가 더 컸고, 흉악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근접전을 벌이고 있는 생도들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 생각하고, 방어선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교관이 와야 처리되는 괴수였기에 다들 거리를 두며 견제만 하고 있었다.

윤예진은 주위를 한  둘러봤다.

교관들은 뛰어다니는 것을 멈추고 어느새 자리를 잡아 싸우고 있었고, 이쪽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한쪽이 무너지면 끝이다.’

한쪽의 전선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영향을 당연히 받는다.

앞에서만 들어오던 공격이 옆에서도 들어오기 시작하면 전선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윤예진은 자신에게 있는 총알을 세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멀리서 쏘는 것은 전혀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가까이서 쏴야  단단한 표피를 뚫을 수 있었다.

능력을 사용해 총탄 하나에 모든 힘을 실었고, 가까이 다가가 오크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원래의 총소리보다 배는  컸지만, 오크의 머리는 뚫리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윤예진을 쳐다봤다.

“하하…”

웃음만이 나왔다.

여기서 끝인가.

오크의 머리에는 검은색의 오라가 도사리고 있었고, 정체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크의 힘을 증폭시킨다는 것 정도는 알  있었다.

─크아아악!

─서걱.

오크가 몽둥이로 자신의 머리를 찍을  눈을 찔끔 감았지만,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절삭 음이 들리고, 눈을 뜨자 오크의 머리가 말끔히 잘린 것을 볼  있었다.

“누구?”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뒤로 빼 다시 자리를 잡고 주위를 살폈지만, 교관들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지?’

윤예진은 아무리 생각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총을 들어 괴수를 쏘았다.

전선을 유지했고, 지원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원이 온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아…”

괴수들의 뒤에서 다시 튀어나온 것은 오크였다.

전과 같은 요행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미방어선은 무너졌고, 이미 최대한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구조물이 무너져 다른 쪽과는 단절되었고, 괴수의시체들과 빌런들의 시체가 쌓여 새로운 길목을 형성했다.

한 마디로. 윤예진이 있는 곳은 고립되었다.

뒤로  가면중앙에서 다른 팀으로 가는 길목이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앞과 뒤에서 쏟아지는 괴수를 다른 팀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하하…”

한설화가 죽은  웃지 못한 것을 오늘 평생 토해내는 것 같았다.

‘위기에 처하면 온다며.’

주머니에 있는 한설화의 사진을 꽉 쥐어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같이 싸우던 생도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이 정도면 힘내지않았냐?”
“그거 사망 플래그야, 미친년아.”

농담하며 웃고 있었지만, 앞에 다가오는 괴수에게 느껴지는 중압감은 여전했다.

“다른 애들은 살 수 있으려나.”
“똑같지 않을까.”

이 상황에서도 다른 생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난 죽기 싫었는데.”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윤예진도 총을 내려놓고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오크 때도 그렇고.

윤예진은 남을 구하기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히 방관했고, 자신에게 득이 될 때만 나서는 사람이었다.

한설화의 영향일까.

“바보 같아. 정말로.”

다들 끝을 다짐하고 있을 때, 뒤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다들 도망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다들 뒤를 돌아봤다.

“방해되니까.”

윤예진은 얼굴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의 말에 기다렸다는  다들 도망쳤고.

길목에는 한 남자만이 남았다.

형체가 흐릿해 보이는한 남자였다.

가면을 썼고, 전에 입었던 검은 색의 옷은아니었다.

옷을 대신할 빨간 색의 천을 팔에 휘감고 있었다.

오크들과 다른 괴수들은 그에게 몰아쳤고.

그가 가면을 벗자 눈이 부실만큼 하얀색의 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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