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하랑 방어전
머리가 어지럽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하랑에 습격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는데.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이 누구예요.”
어지러움을 잡고, 옆에 따라 나온 루시아에게 물었다.
“윤예진이라는 생도.”
“걔한테 먼저 갈 수 있을까요?”
“응.”
급이 높은 헌터가 아닌 이상 검은 안개를 뚫고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루시아에게 받은 화면으로 상황을 살폈고,소설과 똑같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왕은 이번 습격에 힘을 모두 사용한 것인지 확실히 큰 규모의 습격이었다.
성해포의 정보를 열어 확인했다.
전에 봤던 흰색의 천이 아닌 붉은 색으로 변해있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
[성해포]
[유물][신화]
─치유 증폭
치유 능력의 효과가 25% 증가합니다.
─치유 전환
성해포에 치유 능력을 사용하면. 치유가 공격 능력으로 전환됩니다.
==
차사복이 사라져서 기동성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공격능력이 생겼다.
전설 등급이었던 성해포는 신화 등급으로 바뀌었고, 치유 증폭의 효과도 새로 생겼다.
가면을 벗은 상태에서 공격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좋은 결과였다.
루시아의 도움을 받아 하랑 내부로 들어왔고, 가장 먼저 윤예진을 찾아갔다.
가면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면을 쓴 상태로 성해포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지금은 얼굴을 숨기기로 했다.
“다들 도망가.”
이미 그들은 겁에 질려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고, 윤예진도 마찬가지였다.
검은색 연기, 즉, 마기를 두른 오크가 다가오고 있었고, 생도들은 상대하지 못할 것을 알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뒤로 도망갔고, 윤예진은 주저앉아 나를 쳐다봤다.
성해포.
소설 속 김세연이 죽을 때까지 사용하던 유물이었다.
2년은 족히 넘어야 신화 등급으로 격상한다.
‘치유 전환… 처음 써보는 건데. 얼마나 강할지 모르겠네.’
손을 올려 가면을 벗었고. 가면을 벗자 치유 능력이 개방되었다.
성해포에 푸른색의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푸른색의 마력은 성해포에서 흰색의 마력으로 변환되었고.
성해포에서 나온 마력은 길목을 가득 채웠다.
흰색의 빛이 사라지고 나서 앞을 가득 차 있던 괴수는 깔끔하게 사라졌다.
물론, 한 번 해치웠음에도 멀리서 괴수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는 처리 가능하죠?”
“개입 안 할 거라니까.”
“그러면 버티기만 해주세요.”
루시아는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주저앉아있는 윤예진을 안은 뒤 중앙으로 향했다.
유은설의 위치도, 김세연의 위치도 알고 있었다.
가장 급한 것은 유은설이었다.
유은설이 이 던전 폭주를 끝내야 하니까.
“어떻게…”
윤예진은 많이 놀란 듯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 죽을 거라고 했잖아.”
그녀의 반응을 보니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런 착각은 유은설 한 명만으로 충분했는데.
그녀는 내 가슴을 더듬으며 상처를 찾기 시작했다.
“없어. 진짜야…?”
“진짜라니까.”
“아… 미안.”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확 돌렸다.
손에 있던 가면을 다시 쓰고, 중앙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도망쳤던 생도들 모두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온 곳에서 괴수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안심한 것 같았다.
“또… 가?”
“응.”
“가지 마.”
내 옷 끝을 부여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떼고 말했다.
“상황은 해결해야지.”
“돌아올 거야?”
“이따가 도와줘.”
“어떻게?”
“알게 될 거야.”
“다시 올 거지?”
걱정하는 윤예진에게 가면을 살짝 벗어 미소를 보여줬다.
**
시작할 때 유은설의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많았다.
그만큼 넓은 길목이었고, 많은 사람이 배치되었다.
물론, 지금 남은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왜 나한테만.’
평소의 유은설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침착하게 남을 지켰겠지만, 마음이 조급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오크가왔을 때도, 그녀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실수를 해 한 명이 죽기 전까지는.
정신을 차리고 싶어도차릴 수 없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을 안겨주는 거야.
자신은 이런 과분한 시련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생도였다.
유물을 받은 것도. 이하늘과 같이 오크를 만났을 때도. 동아리 도중 던전에 끌려가 이상한 괴수를 만났을 때도.
자신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기라도 하듯이.
그런 점이 유은설은 싫었고, 부담스러웠다.
남을 위해 살아왔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올곧았고, 정의롭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깨져간 것은 중간 평가 때부터였다.
자신이 생각 없이 행동해 남을 위험에 빠트린 것.
자신은 그 행동이 정의롭다고 생각했고,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틀렸다.
그때부터 유은설의 마음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마법을 배운 것도 우연이었다.
한설화와 같이 사라하한테 마법을 배운 것도 우연이었다.
아니. 어쩌면기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역경이 있었지만 잘 헤쳐나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역경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기말 평가 때의 일만 아니었어도.
자신이 실수했다.
자신이 물러나 있었더라면 가면남이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한설화가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다른 생도들이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끊임없는 물음은 유은설을 괴롭혔다.
“싫어. 이제는… 지쳤어.”
지쳤다.
어깨 위에 놓여있는 짐들이 너무 무거웠다.
마법을 사용하며 막아가고 있지만, 마력은 거의 사용하였고. 자신이 밀리자 다른 사람들도 죽어가기 시작했다.
피튀기는 전장이 그녀에게는 너무 두려웠다.
다른 사람이 죽는 전장이 너무 두려웠다.
“무서워.”
남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잘못한 걸까.
자신이 다른 생도보다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으아아악!”
한 명이 괴수의 입에 먹혔고.
“도… 도망가!”
한 명은 그 모습을 보고 도망갔다.
도망갈 곳은없었다.
지원은 오지 않았고.
“지쳤어. 두려워.”
다른 사람을 잃는것이 두려웠다.
─깡. 깡.
유은설은 검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다 죽을 거라면 굳이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하늘도. 한설화도. 자신을 지켜주던 가면을 쓴 남자도.
같은 반 생도들도. 하랑의 생도들 모두.
죽을 것이다.
운이 좋아 살아간다 해도 자신 혼자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크아앙!
자신의 목을 물려 달려드는 들개를보고 눈을 감았다.
─피융!
─켁! 케겍!
자신의 뒤에서 화살이 쏘는 소리가 들리고, 들개의 목이 뚫려 켁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서 확인해보니 뒤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뒤에서 푸른색 빛이 밝게 빛나자 싸우던사람들은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유은설은 그 빛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화살이 지나간 자리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마력의 흔적도 본 적이 있었다.
“헤헤… 환각인가.”
내가 알던 사람은 죽었다.
분명히 사진으로도 봤고, 눈으로도 봤다.
그냥 환각일 뿐이다.
그때와 똑같은.
그렇지만 자신의 눈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분명히 보였다.
그가 들고 다니는 활이.
그 활에서 가지가 뻗어 나와 바닥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싫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마.”
그리고 마력이시각화되어 활의 끝을 늘리고 있는 모습이.
화살이 발사되었고.
그 화살은 괴수들을 관통해 지나갔다.
화살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괴수들은 모두 죽었고, 그 옆에 있는 괴수들도 영향을 받았는지 쓰러졌다.
“죽었을 텐데. 그럴 리 없는데.”
“포기하는 거야?”
활을 들고 다가온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가 기계음이 껴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목소리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유은설은 검을 들 힘도 남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할 마력도 남지 않았다.
“지쳤어요.”
“정말?”
“어차피 못 이길 거에요. 다 죽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다들 죽었을 거예요.”
“확실해?”
유은설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이 정확히 유은설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해. 하늘에 시야 공유 마법을.”
그 말에 유은설은 높은 하늘에 조금 남은 마력을 올려보내 마법을 사용했다.
작은 마법진이었지만, 그 순간 유은설의 시야가 하늘로 옮겨갔다.
그리고 정확히 보였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마지막까지 검을 들고 휘두르는 생도가.
마력이 없어,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주위에 검을 주워 휘두르는 생도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맨 앞에서 싸우고 있는 교관이.
보였다.
자신은 포기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였다.
게이트에서 끝도 없이 나오고 있는 괴수들의 모습이.
시야가 다시 돌아왔고, 눈앞에 그가 보였다.
“안 돼요. 무리에요….”
끝까지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감당 못 할 만큼의 수였다.
지원이 온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수의 괴수를 뚫고 들어올 때면 안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명 더 열심히 싸운다고 해서 달라질 리가 없었다.
남자는 화살을 쏘고 있었고, 괴수를 처리하며 물었다.
“실망인데… 포기하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많은 괴수를 어떻게 처리해요.”
유은설은 이미 봐버렸다.
오히려 보지 않았다면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본 이상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희망 고문과 다름없었다.
“마법이 있잖아.”
유은설은 마법을 사용해가며 괴수들을 정리했지만, 지금까지 사용해온 마법으로는 택도 없었다.
뒤에서 마법을쏘아 방심을 유도하는 용도로만 사용했을 뿐.
“공중에 사용해. 원래 사용하는 것보다 크게. 여러 가지 마법을 사용해가며.”
“그렇지만 마력이…”
유은설이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은 이제 없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
그 말에 남자는 그녀의 손에 마력을 시각화시켰다.
“이건…”
“불가능해? 특기잖아. 마력 조종하는 거.”
유은설은 자신의 능력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모두 꿰고 있다는 듯 말했다.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유은설의 능력은 마력 제어에 특화되어있었다. 남의 마력을 흩트려 놓을 수도 있었고, 자신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의 마력을 강탈해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남자의 말에 처음으로 남의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은설은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조종했다.
꽤 쉽게 마력의 주도권이 넘어왔고, 자신의 마력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어라…?”
“이미 넘겨준다고 마음먹었으니까 쉽지. 이제부터 하늘에 그려.”
몸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이것을 가지고 마력진은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 돼요.”
마력이 있다고 해도 저렇게 크게 마법을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분명히 중간에 실패할 거에요. 이제는 자신이 없어요.”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다시…?”
“지금도 실패할 거야?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잖아.”
기말 평가 때 그를 잃었다. 하지만 기적처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지금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앞에서 싸워가는 많은 생도들도.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던 나날들이 지나갔다.
“다시?”
“기회는 한 번이 아니야.”
한 번 실패해도 다시 딛고 일어서면 됐다. 그리고 유은설은 깨달았다.
지금이 그 기회라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상황.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상황.
기적. 기적이 찾아왔다고 안주하면 안 된다.
기적이 찾아왔다면 그것을 용기 있게 잡아야 할때가 있다.
그것이 지금이었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는다.’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유은설은 남자의 마력을 뺏기 시작했고, 하늘에 마법진을 그렸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마법은 숲에서 늘 연습했던 유성 마법으로.
하랑을 가득 메울 만큼 마법진을 그리려고 했지만, 중간에 마력이 끊겼다.
“부족해…”
반도 채 그리지 못하고 마법진이 하늘에 남아있었다.
남자는 그 상황을 알고 유은설에게 얘기했다.
“주위를 살펴. 지금 여기에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유은설은 하늘의 마력을 살폈다.
대기 중의 마력을 제외하고, 이질적인 마력들이 하늘로 올라오고 있었다.
주인이 있는마력.
그런 마력들을 빼앗아 마법진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명. 다음에는 두 명. 대기에 맴도는 마력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빈 공간을 메꾸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시야 공유 마법과 괴수 탐지, 위치 추적가 합쳐진 마법진이었다.
실패도, 실수도 하지 않는다.
마법진끼리 서로 닿지 않게. 유은설의 시선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올곧게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위력을 키워줄 불 마법과 전기 마법이 나머지 빈 공간을 메꿨고.
이제 하랑을 덮은 것은 검은 연기가 아니었다.
모두의 마력이 모인 푸른 빛의 마법진이 하랑을 덮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에서유성이 하나 튀어나와 땅에 박혔다.
**
역전의 발판은 이미 마련되었고.
유은설은 눈을 감은 채 마법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야는 이미 하늘과 공유된 것처럼 보였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유성이 내려와 괴수들에게 박혔다.
‘역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