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1부 끝, 2부 예고.
김종현이 죽자, 검은 연기가 사라졌고, 던전 폭주가 멈췄다.
검은 연기가 사라지자 던전에서 나오고 있는 괴수들은 민가로 내려갔지만, 지원 오고 있는 헌터들이 발견하고 처리했다.
습격이 모두 정리되자, 생도들과 교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죽은 생도들의 시체를 중앙으로 모았고, 대대적인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다. 특히 수업을 받는 곳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기숙사도 반파 수준이었기에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하랑은 한 달간 휴교령을 내렸고, 다들 그 발표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했고, 몇몇 친한 사람의 경우에는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다들 이 사건을 그저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김종현이 습격의 범인으로 발표되었지만, 윤예진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은 그녀를 원망하고 있겠지만,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다. 그녀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실제로 같이 싸운 생도들도 알고 있었고, 마지막 윤예진이 김종현을 막았다는 것도 사실로퍼졌으니까.
“설화야, 나 곧 돌아올 거니까, 얌전히 있어.”
김세연은 집에 돌아가기로 했고, 그녀에게 줬던 성해포는 돌려받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유물이 될 것이었기에 안 돌려줘도 된다고 했지만, 기어코 돌려준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주면 되겠지.’
내가 쓰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결국내 주력은 궁술이었다.
궁술을 사용하는 동안 치유 능력은 사용하지도 못했기에, 전투 중 치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그녀가 사용하는 게 좋았다.
하랑에서 짐을 챙겨 나가기 전에 만나자고 해서 교문 앞에서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가고 싶지 않았는데…”
가고 싶지 않다는 그녀를 억지로 교문 밖으로 밀고, 기숙사로 향했다.
어차피 다시 안 보는 것도 아니고. 빨리 보내는 것이 나았다.
“한설화! 어디 가?”
가장 일이 많을 것처럼 보이는 윤예진이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은 의외였다.
실제로 그녀의 길드에도 타격이 클 것이다.
부길드장의 아들인 김종현이 사건의 주범이니까.
김종현도 길드와 관련이 많기 때문에 길드가 피해를 입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윤예진의 길드는 이미지 회복을 위해 기부를 하거나, 하랑의 건물 개선을 도우며 힘을 쏟고 있었다.
“길드는 괜찮아?”
“응. 별일 없어.”
태평하게 얘기하지만, 길드의 사정이 나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설화야!”
멀리서 유은설이 크게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저기서 부른다. 이만 가볼게.”
“으…응.”
사실 윤예진과는 약간 어색한 사이였다.
김세연과 유은설과 달리 깊은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녀가 나에게 잘 대해주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가면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조심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그녀가 내 정체를 말하고 다니면 타격은 온전히 내가 받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유은설의 부름은 반갑기만 했다. 바로 윤예진과의 대화를 멈추고 유은설에게 달려갔다.
“왜 여기까지 나왔어.”
유은설이 오늘 할 말이 있다고 불렀다.
약속장소는 여기가 아니었지만, 나를 부르기에 일단 달려왔다.
“그냥.”
“그것보다 할 말이 뭔데?”
“음… 나 하랑에서 외국으로 보내주기로 했거든.”
외국?
유은설이 갑자기 외국으로 간다는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방학 동안 외국의 학교를 다니며 수업이라도 받아보라고 제안이 들어와서.”
“괜찮겠다.”
유은설은 사건을 해결한 영웅이 되었다. 당장 마법을 사용해 하랑 내부의 괴수를 처리한 것은 공공연히 알고있는 사실이었고. 마지막 전투에서 그녀와 나, 김세연 그리고 윤예진까지 네 명이서 처리한 것도 인정받았다.
물론 우리 셋은 대부분의 공을 유은설에게 돌렸다. 마지막 유은설이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테니까.
하랑은 유은설을 높게 평가해 외국의 학교를 돌아다니는 기회를 준 것 같고.
나는 그런 제안에 긍정적이었다.
각각 다른 학교에도 실력이 뛰어난 생도들이 많으니까.
대련하면서 그녀의 성장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나중에 가서 친해질 사람들이기에 미리 안면을 익혀놓는다면 좋기도 하고.
“그래? 음… 고민을 좀 많이 해서.”
“근데… 그걸 왜 나한테?”
“그냥 너 생각은 어떤가 해서.”
최근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환청과 환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었고, 말도 꽤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마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해 정신병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도 그렇게 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가끔 삐 소리가 들리는 정도로 호전되었다.
전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없어졌다. 저번 검은 연기 속에서 겹쳐 들린 것을 제외하고 많이 좋아졌다.
“난 괜찮다고 생각해. 좋은 기회잖아.”
“그렇지? 하늘이도 가는 게 좋다고 해서.”
유은설은 그렇게 말하고. 교관한테 말하러 간다며 손을 흔들며 떠났다.
‘옷도 돌려받아야 하는데.’
유은설한테 옷을 주고 아직까지 옷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녀가 사용하기를 바랐는데, 정작 습격이 올 때 사용하지도 않았고.
내가 직접다가가서 돌려받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다시 와서 달라고 하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가면을 쓰고 함부로 나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외국으로 나가면 그사이에 옷 못 받는 거 아닌가?’
자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숲에 다시 들어갔다.
“루시아?”
허공에 대고 이름을 부르자, 앞에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그녀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깔려있었다.
“왔어?”
“힘들어 보이시네요.”
“다들 그 일 때문에 일을 미루고 있었으니까. 한 번에 처리하고 있는 것뿐이야.”
“으음…”
“그것보다 매일같이 나오더니 오늘은 왜 들어오라고 한 거야. 물론 나는 편하지만.”
그녀의 옆에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여자가 언제 나타났는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하랑에 들어오기 위해서 끌려온 거겠지?
“하하… 나올 수 있는 수단이 사라져서.”
“뭐?”
신경질적인 어투에 유은설에게 넘겨줬던 옷을 아직까지 못 받은것을 실토해버렸다.
“너 내가 아는 애가 맞냐?”
“네?”
“하아… 아니다. 여기서 기다려.”
루시아는 옆에 여자에게 뭐라 얘기하더니 가면을 쓰고 잠시 사라졌다.
몇 분 기다리고 루시아가 다시 등장하고나한테 옷을 건네줬다.
“어?”
“됐어?”
“어떻게 받아오셨어요?”
“그냥 가면 쓰고 가니 알아보던데. 그래서 달라고 했지.”
“줬어요?”
“응. 그러니까 여기있지.”
옷을 받아들고, 멍하니 쳐다봤다.
“이런 거 말 못해서 끙끙 거리고 있냐.”
그녀는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으… 그건 그렇고 왜 부르셨어요?”
“너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루시아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간의 경과였다.
일이 끝나고, 빌런들을 쫓아 그들의 거주지를 알아낸 것부터, 예언까지.
예언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마수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만 사용하기로 했다.
“환혼석 위치를 알아내는 데 사용했다고요?”
“응. 수명이 얼마나 소모됐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건 꽤 많이 줄어드는데…”
마지막까지 환혼석을 찾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지만, 내가 쓰러진 뒤 금방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뒷사정이 숨어있을 줄이야.
“근데, 그렇게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수명 늘리는 유물도 찾으면 되지 않나요?”
“그건 안돼. 자기도 해봤는데 보이지 않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 소설 속에서 마땅한 유물을 찾았다.
“2년 뒤. 그쯤이면 모르겠네요…”
“방법이 있어?”
“잘은 모르겠어요. 될지 안 될지.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봐야겠죠?”
“그래…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지. 그러면 나중에 보자.”
“네.”
예언 능력은 무궁무진했다. 단지 단점이 클 뿐이지.
나중에 결정적으로 판을 뒤집을 능력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도 변수가 넘쳐나는데 후반에 소설과 똑같이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예언 능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나중에 있는 유물을 뺏어서라도 그녀를 살리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별일 없으려나.”
원래 반년 뒤에 일어날 일을 처리했으니 당분간은 별일이 없을 것이다.
유은설도 지금 웬만한 생도를 초월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으니 신경 안 써도 될 거고.
**
“하하…”
윤예진은 멀리 가버린 한설화를 쳐다봤다.
“이것들이.”
자신과 말을 할 때면 맨날 귀신같이 나타나 한설화를 데리고 가버렸다.
유은설과 김세연.
두 명은 자신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며, 한설화를 데려갔다.
방금도 똑같았다.
자신과 분명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봤을 텐데, 불러서 한설화를 데리고 가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한설화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하찮았다.
아직까지한설화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렇지만, 한설화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딱 봐도 그년들 때문이겠지.’
한설화가 자신을 멀리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가장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너희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똑같이 나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