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2부
“설화야 여기야.”
윤예진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근사한음식점이었다.
길을 지나가면서 눈으로 훑기만 했지, 정말로 이런 곳을 와볼 줄은 몰랐다.
“저…”
지금 고개를 살짝 옆으로 숙여 안을 훔쳐봐도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청바지와 맨투맨을 입고 왔을 뿐. 격식에 맞지 않아 보였다.
특히나 앞에 서서 예약을 확인 받고 있는 사람이 되게 부담스러웠다.
양복을 입고 사람을 상대하는데 내가 들어가면 어떤 눈초리를 받을지 뻔했다.
당연히 전처럼 고깃집이나 주위에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런 곳을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혹시 예약한 거야?”
“응!”
예약이라는 소리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고.
무척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특히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윤예진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들어갈까?”
윤예진은 내 손을 붙잡고, 안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직원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 명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밖이 환하게 보이는 창문부터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이 나를 반겼고, 다른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진 음식들도 맛있어 보였다.
직원은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한 뒤 윤예진과 얘기를 나누고 물러갔다.
“무슨 얘기 했어?”
“뭐 먹을지 말했어.”
옆에 메뉴판이 있어 살짝 들여다봤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뭐라 쓰여있었고, 그 아래에 여러 가지 메뉴들이 적혀있었지만, 온갖 처음 보는 것들뿐이라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히려 윤예진이 시켜준 것이 다행일까. 내가 메뉴판을 들여보고 있었다면, 종업원이 한참 동안 옆에 붙어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나서 보인 것은 옆에 써있는 가격이었다.
약간 생략이 되어있었지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액수가 쓰여있었다.
‘밥 한끼에 이정도나 쓴다고?’
치유실에서 받은 월급으로 어찌어찌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일주일을 먹는다면 아마 파산하고 말 것이다.
“저기… 이거 가격이.”
“응? 괜찮아. 내가 제안했으니까 내가 내야지.”
“괜찮아. 같이 내자.”
그녀도 분명히 부담이 클 것이다.
특히, 윤예진이라면 요즘 돈 쓸 곳이 많을 텐데, 차라리 내가 다 사야 하는 거 아닐까.
“원래 이런 건 여자가 사는 거야. 누가 남자보고 돈을 내라고 해.”
“아니 같이 사야지.”
“그럴 줄 알고, 이미 돈 냈어. 그러니까 편하게 먹어.”
입이 쩍 벌어지고, 동공이 커졌다.
이미 돈을 냈다는 소리에 내 머리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 그…”
돈을 줘야 하나?
그러면 너무 없어 보이는 것 아닌가?
내가 소리를 조금 크게 내자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프로 고기를 써는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자, 시선을 느끼고 다시 목소리를 줄였다.
시선이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푹 숙여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이 다시 대화를 시작하자 고개를 살짝 들어 윤예진을 쳐다봤다.
“뭐해?”
웃고있는 그녀에게 차마여기서 돈을 줄 수는 없었다.
전처럼 무언가 사주는 것이 낫겠지?
하지만 뭘 사줘야 하지?
윤예진은 필요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당연히 그녀에게는 나보다 더 큰 재력이 있었고, 인맥도 넓었다.
유은설에게 선물한 것처럼 시계를 생각해봤지만, 그녀의 손목에는 이미 가늠할 수 없는 가격의 화려한 시계가 자리잡고 있었다.
‘옷도…’
내 옷을 한 번 보고 그녀를 한 번 봤다.
나와는 달리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정말 예뻤다.
“뭘 그렇게 자꾸 봐.”
“어? … 미안.”
계속해서 그녀에게 부족한 점을 찾다 보니 뚫어지게 쳐다본 것 같다.
“아니야. 계속 봐도 괜찮아.”
윤예진의 말에 되게 불편해졌다.
진심이 아닌 것 같은데.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비웃는 것 같다.
저런 애가 어떻게 여기에 왔냐고.
종업원이랑 얘기하는 사람은 나를 내쫓아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고.
“괜찮아?”
그녀는 휴지를 하나 빼서 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녀의 얼굴이 내 앞까지 가까이 다가왔고, 내 눈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당장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상태였기에 고개를 돌리기도 늦었고, 뚫어져라 쳐다보기에는 내가 버틸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금방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고,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상태가 어떨까.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물들어있을까.
아니면, 얼굴색 변화 하나 없이 일정할까.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나와 그녀 사이의 침묵을 깨고 나온 것은 연기가 풀풀 나는 스테이크였다.
딱 보기에도 뜨거워 보였고, 그 위로 흐르는 소스와 데코 되어 있는 채소는 풍미를 돋구어주었다.
‘이 상황에서 먹을 것이 입에 들어갈까.’
오히려 체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윤예진은 무심하게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잘랐고, 나도 그녀를 따라서 미숙하지만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내 예상과는 무색하게 전혀 체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기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녹았고, 소스는 입안에 확 퍼졌다.
맛있다.
정말로 한 단어뿐일지라도 이 고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 단어밖에 없었다.
“맛있어?”
그녀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세 번 정도 끄덕였다.
“그럼 됐어. 맛있게 먹는 것 같아서.”
윤예진은 이런 것을 평소에도 먹는 걸까.
내가 너무 추잡하게 티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나와 다르게 그녀는 고상하게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고 있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자 하나가 더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티를 내지 않고, 휴지로 입을 닦은 뒤 식기를 내려놓았다.
윤예진도 마침 다 먹었는지 입을 닦고 있었다.
“일어날까?”
그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그녀를 따라 일어서서 휴지를 하나 집었다.
“여기 묻었다.”
미처 닦지 못한 곳에 휴지를 갖다 대 닦아주자 윤예진의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앞으로 먼저 나갔다.
‘부끄러운 건가.’
나 같아도 지금 상황이면 매우 쪽팔릴 것 같았기에 그녀의 뒤를 쫓아가지는 않았다.
천천히 밖으로 나가자 계산하고 있는 그녀와 마주칠 수 있었다.
계산했다면서 그녀가 지금 종업원에게 카드를 받는 모습을 보자 걸음을 멈추었다.
윤예진은 나를 쳐다보며 다가왔다.
“뭐해?”
“계산… 했다면서.”
“뻥이지. 거기서 싸울 수는 없잖아.”
“으…”
당장 종업원에게 달려가서 내 돈을 절반을 받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상황은 이미 끝나버렸다.
“혹시… 뭐 가지고 싶은 것 있어? 너무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그녀는 나를 보고 생긋 웃더니 대답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그녀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이스크림 집은 평범한 가게였다.
‘그렇지. 무슨 비싼 아이스크림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이 맛!”
그녀는 이미 맛을 하나 골랐고, 나도 하나를 골라 종업원에게 돈을 건넸다.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그녀에게 하나를 건넸다.
“달콤해.”
그녀와 길을 걸으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자 후회가 몰려왔다.
‘그냥 앉아서 먹고 올 걸 그랬나.’
걸어가면서 먹으면 불편한 점이 많았다.
특히 아이스크림의 경우에는 더.
다 먹자 내가 그녀의 그릇을 받고, 휴지를 하나 건네줬다.
몇 개 챙겨왔기에 손과 입을 닦을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쓰레기통을 찾아 그릇을 버린 뒤, 다시 그녀에게 붙었다.
“재밌었어?”
윤예진이 하랑으로 들어가기 전 나한테 물었다.
“응.”
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충분히 재밌었다.
며칠간 다크서클이 짙게 내린 그녀의 모습만을 봐왔는데 웃는 모습을보니 나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것 같다.
“근데… 미안한데. 음식값도 그렇고.”
“그러면 나중에 나랑 한 번 더 나오자.”
그녀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출입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서 나쁜 건 없으니까.
“설화야 이리 와봐.”
그녀는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방으로 끌고 갔다.
평소라면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 사람도 휴가를 간 것인지 아무 방해도 없이 그녀의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나를 초대했고,손을 내저으며 거부했지만, 손이 붙잡힌 마당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윤예진의 방에 들어가자상큼한 향기가 코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향제가 하나 있었다.
‘달콤한 냄새.’
과하지도 않고, 옅지도 않아 딱 좋은 냄새였다.
윤예진은 주위에 과자를 하나 건넸다.
동그란 모양의 한입에 삼키기 좋은 모양이었다.
“빨리 먹어봐.”
그녀의 권유에 껍질을 까 입에 넣었다.
“윽…”
과자를 먹자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두통이 싹 가셨다.
“괜찮아?”
“응… 별일 아니야.”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
그리고, 과자는 매우 맛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과자의 순위를 매겨보면 최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방금 먹은 스테이크 같네.’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따로 부를 정도라면 귀한 거겠지?
그녀에게 맛있는 과자를 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뒤 숲으로 향했다.
연습을하루도 빼먹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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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거 맞죠? 아파하는 것 같은데.”
윤예진은 허공에 대고 물었지만 대답이들려왔다.
“그저 정신을 흐리게 해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그것보다 된 거죠?”
“마지막 말을 보면 확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윤예진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즐거웠고, 내일도 한설화와 시내로 나가 밥을 먹을 생각에 기뻤다.
한설화가 오늘 보여준 행동은 너무 귀여웠다.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놀라는 모습도 그렇고.
그리고 다른 남자들과 달리 매너가 좋았다. 휴지를 챙기거나, 자신의 입을 닦아주는 행위가 몸에 배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며 윤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어디로 가볼까. 내일도 겸사겸사 과자도 줘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