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2부
머리가 아팠다.
최근에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연신 머리에 치유를 써봐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지.
이유가 뭘까. 이유 모를 두통은 몇 주 전부터 계속되었다.
“설화야, 오늘은 어디 갈까?”
어느새 윤예진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기적처럼 그녀와 마주치자 머리가 싹 맑아졌다.
사람을 만나면 두통이 사라지는 건가 싶어 한 번 꾹 참고 다른 사람과 얘기해 본 적도 있었다.
물론, 두통은 없어지지 않았다.오히려 더 크게 나의 머리를 옥죄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매일같이 그녀와 밥을 먹었고, 최근에는 치료실에 있는 시간에도 그녀와 잡담을 떨곤 했다.
‘거리를 둬야 하나.’
이 정도까지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서 계속 갔을 뿐인데.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최근 식사만 봐도 그랬다. 대부분의 돈을 그녀가 내고 있었다.
내가 내려고 해도, 어느새 그녀가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멀뚱히 서 있자, 내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이끌었다.
“오늘은 평범한 곳으로 가자.”
처음 말한 건 예의상 물은 건지, 자신이 예약한 음식점이 있다며 시내로 내려갔다.
저녁 시간이라 시내에는 사람이 많았다.
평소라면 신경이 주위 사람들에게 분산되어있을 텐데, 지금 내 신경은 온전히 그녀와 붙잡고 있는 손에 집중되었다.
‘부끄럽지 않은 건가.’
윤예진은 나와의 스킨쉽에 있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툭하면 손을 잡아대거나 머리를 만지는 등 여러 행동을 했다.
그녀의 성격이 원래 그런 거라고 의식하고 있어도, 내 생각은 다르게 인식했다.
손을 붙잡는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멍청한 짓이란 것을 알면서도 내 머리는 그런 쪽으로만 돌아갔다.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고풍스러운 음식점이었다.
철제문이 아닌 나무문들이 달려있었고, 외벽은 낡아 보였지만, 그것도 그 자체로 매력 있어 보였다.
“여기 음식이 예쁘데.”
주위 창문을 봐도 여전히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의 무언가가 내 얼굴 부분에 일렁거렸다.
지금 내 얼굴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윤예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과 행동 하나하나가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을까.
그저 영업용 미소라고 생각해봤지만, 그녀의 웃음은 매력적이었다.
예뻤고, 귀여웠고, 아름다웠다.
그런 생각을 하자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얼굴에 열이 오르는것이 느껴졌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평소 외모에 대해 평가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얼굴을 보자 자연스럽게 감상이 떠올랐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음식을 다 먹고, 계산하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요즘 내가 먼저 나가 계산을 하려고 해도, 이미 예약할 때 계산을 해놓았기에 번번이 실패했다.
“괜찮아.”
내가 돈에 관해 걱정하는 얼굴을 띄운 걸까.
그녀가 늘 하던 말을 먼저 나한테 했다.
‘매일같이 미안하다고만 했나.’
“고마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말고 다른 말을 건넸다.
윤예진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숲에 있을 거야?”
“응…”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은데. 혼자 올 수 있지?”
예전에는 김세연이 매일 숲으로 왔다면, 김세연이 집으로 간 지금 윤예진이 나를 데리러 오고 있었다.
전혀 위험이 없는데도 나랑 같이 가는 것이 좋다며 매일같이 숲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습 시간에 대한 것은 철저히 지켰기에 그녀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자. 이거 오늘도.”
그녀는 동그란 모양의 과자를 나한테 줬다.
매일같이 저녁을 먹고 나면 나에게 하나씩 주곤 했다.
나도 거부하지 않고, 그 과자를 받아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맛있단 말이지.’
마약이라도 들어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중독성이 심했다.
하나를 먹으면 다른 하나를 더 먹고 싶을 정도였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절제할 수 있었다.
과자를 먹자 맛있는 풍미가 입안에 퍼지고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윤예진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처럼 두통은 없었다. 그때는 우연이었는지 과자를 먹고 나면 상쾌해졌다.
“그러면 잘 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고, 숲으로 향했다.
윤예진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잊고 있던 두통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끊어질 듯한 고통에도 정신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훈련은 계속되었다. 두통이 있다고 해서 훈련을 그만두는 것은 멍청한 짓이니까.
오히려 두통이 있기에 악조건을 하나 설정하고 훈련하는 것과 똑같았다.
처음에는 두통 때문에 빗맞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떨어지는 나뭇잎도 맞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통과 함께 환청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일까.
하랑에 생도들이 보이지 않아, 환각과 환청이 많이 줄어들었다.
휴교가 한 주 정도 남아 천천히 복귀하고 있지만, 하랑에 있는 생도의 수는 아직 적었다.
훈련을 끝내고 기숙사로 복귀하는 도중 밤 산책을 하는 생도들이 보였다.
하랑에 돌아와 오랜만에 다시 만난 건지 재잘재잘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그들의 눈에 들키지 않게 구석을 통해 지나가려고 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그들의 대화 내용이 귀까지 들려왔다.
“잘 쉬다 왔어?”
“응. 너는?”
평범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야기였다. 빨리 지나가려는 도중 그들의 이야기에 내 걸음을 멈출만한 이야기가 들렸다.
“한설화라고 알아?”
내 이름이 들리자마자 천천히 뒤로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쫓아갔다.
그들은 아직 내가 있는 줄 모르는 것 같았고,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발걸음을 맞추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내 이름이 왜?’
“응. 알지. 저번에 김종현 막은 애 아니야?”
‘아…’
김종현을 막은 사람은 총 네 명으로.
유은설의 공이 큰 것으로 공표 되었지만, 윤예진과 김세연 그리고 내 이름도 쓰여있었다.
“근데 조금 싸가지 없지 않아?”
갑작스러운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의 입에서 들려온 소리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내 환청이겠지.’
갑자기 내가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걸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환청이 들린 것뿐이야.’
그들의 입에서 갑자기 저런 이야기가 들릴 리가 없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걔는 뭔데 거기에 이름이 쓰여있는 거야?”
숨이 턱 막혔다. 환청이 아니었다.
그들의 입이 움직이는 대로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환각도 아니었다. 내 시야는 그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땅의 왜곡도 일어나지 않았고.
‘갑자기 왜?’
머리가 심하게 아파져 왔다.
두통을 참고 걸어보려고 해도, 발걸음 하나를 옮기기 힘들었다.
“그냥 손만 얹은 거 아니야? 그런 애가 특혜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렇다.”
마지막 말까지 듣고, 뒤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갔다.
“싫어.”
잘못이었어. 차라리 내가 아예 없었다고해야 했는데.
윤예진의 행동도 이상했어.
사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밥도 이름을 빼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고.
머리가 너무 아팠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싫어.”
다른 생도들도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정도면, 아예 방이나 메시지로는 내 뒷담이 한가득 쌓여있을 것이다.
“네가 뭐라도 된 줄알았어?”
“잘해주니까 행복했어?”
죽을 것 같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가면을 벗고 김종현을 상대한 것부터?
모르겠다. 도저히 내가 잘못한 점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학 때 너무 들떠있었다. 윤예진이 잘해준다고 헤벌레 하고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병이 나은 것 같다면서 신나게 뛰어다닐 상황이 아니었다.
윤예진도 나한테 원하는 것이 있을 텐데, 단순히 그녀의 스킨쉽 하나하나에 의미부여 할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으윽…”
머리가 아프다.
너무 심각하게.
칼에 찔릴듯한 고통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차라리 칼에 찔리는 것이 낫다.
마력을 뿜으며 내 몸에 치유를 써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래.
원래 이런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었던 것뿐이었지.
윤예진도 이제는 멀리해야겠다.
한순간의 기쁨은 독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 치명적인 독.
한순간의 기쁨은 감옥처럼그 속에 나를 가뒀다.
기쁨 속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즐거웠는데.’
내심 부정하고 있었지만, 윤예진과 함께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사람과 오래 대화하는 것도 오래만이었고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는 경험도.
그 즐거움 속에 갇혀 혼자 웃고 있었을 뿐.
“우욱…”
저녁에 먹었던 것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위액도 같이 올라왔는지 목구멍이 따가웠다.
길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떤 말을 토해낼까.
‘아니 말보다는 사진을 찍겠지.’
그리고 그 사진을 자기들끼리 돌려보며 험담을 할 것이다.
일어설 힘이 없어 구석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발이 질질 끌렸지만 그런 것을 상관 쓸 상태가 아니었다.
‘구석으로.’
누구도 보지 못하는 곳으로.
“한설화?”
누구의 목소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최근 몇 주 동안 꾸준히 들은 목소리를 한 번에 잊어버릴 만큼 병신은 아니었다.
“싫어. 오지 마.”
환청이었다.
윤예진의 목소리를 흉내 낸 환청.
꿋꿋이 무시하고 구석으로 기어갔지만, 금방 내 몸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윤예진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환각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윤예진은 환각이 아니라고. 목소리도 환청이 아니라고.
여느 때처럼 그녀의 얼굴을 보자 정신이 깨끗해졌다.
누구한테도 이런 적이 없었다. 그냥 조금 나아졌을 뿐.
윤예진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환각, 환청 그리고 두통이 모두 사라졌다.
‘싫어.’
그렇기에 이 모습을 더 보여주기 싫었다.
내 추한 모습을 그녀에게 전부 내보이기 싫었다.
정신이 맑아지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 나는 바닥을 기어 다니는 미친놈일 뿐이었다.
“괜찮아. 진정해.”
윤예진은 그렇게 말하고 손으로 내 머리를 가슴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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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진은 한설화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꼭 끌어안았다.
가슴에 안긴 그의 눈이 감기고 윤예진은 편히 웃을 수 있었다.
한설화와 만날 때보다도. 그어느 때보다도. 입이 찢어질 듯한 환한 웃음이었다.
‘이렇게 잘 먹힐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