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2부
김세연은돌아오자마자 한설화를 찾았다.
원래 일찍 돌아오려고 했지만, 부모님이 조금만 더 있다가라고 말을 했다.
물론, 자신도 오랜만에 본 가족이었기에 거부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하랑의 수업 시작 전날에 하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설화는 자신이 봤던 모습이랑 달라졌을까.
아니면 평소처럼 똑같은 생활패턴을 반복 중일까.
무슨 모습이든 한설화를 보는 것 자체가 신났다.
“설화야!”
저 멀리 한설화의 모습이 보이자 김세연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점점 다가가자 그의 옆모습에 가려져 있던 윤예진이 튀어나왔다.
김세연은 윤예진을 보고 잠깐 멈춰 섰다. 그녀는 아직 윤예진을 완벽하게 믿지 못했다.
그녀가 마지막에 김종현을같이 죽이는 모습을 봤지만, 그 정도로 믿을 수는 없었다.
범죄자가 같은 동료라도 가망이 없다면 가차 없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표정이 찌그러졌지만, 금세 표정을 피고 한설화를 붙잡으러 달려갔다.
평소라면 한설화는 아무 반응도 없이 김세연에게 안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설화가 윤예진의 곁으로 숨어버렸다.
“설화야?”
김세연은 한설화의 이상행동에 다시이름을 불러봤다.
갑자기왜 그러는지 설명이 필요했다.
“그…”
“어?”
“나랑 사귀기로 했어.”
한설화는 말을 머뭇거리다가, 윤예진이 김세연한테 말했다.
“사귄…다고?”
김세연은 믿지 못해 다시 물었지만, 이번에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겠어. 내가 좋으니까 그랬지.”
김세연은 윤예진의 말을 무시하고, 한설화를 쳐다봤다.
그녀의말은 신뢰성이 없었다. 한설화의 입으로 진실을 듣고 싶었다.
오히려 자신이 없는 사이에 협박을 당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망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설화의 약한틈을 파고들어서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윤예진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예진이 말이 맞아…”
김세연은 한설화의 곁을 맴돌면서 몇 달간 봐온 것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그의 표정이었다.
작위적인 웃음, 싫어도 웃으며 대하는 그의 표정.
그런 표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옆에 윤예진이 있어도 그런 표정 세세하게 하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설화의 표정을 보고 자신이 알아차리면 되니까.
김세연은 한설화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세밀한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그렇지만 한설화는 윤예진의 손이 허리로 감싸 들어오자 환한 웃음을 보였다.
웃긴 일이 있으면 피식대며 진짜 웃음을 보였던 때가 김세연이 본 진짜 웃음이었다.
김세연이 본 웃음은 그런 얕은 웃음뿐이었지 지금 한설화의 표정은 김세연도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됐지? 설화야 가자.”
행복한 웃음을 보이며 가고 있는 한설화를 김세연은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
유은설은 하랑에 돌아오자마자 이하늘을 찾은 뒤,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 뒤 한설화를 찾았다.
한설화를 찾으려하지않고, 따로 약속을 잡아 얘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렇지만, 한설화의 답장은 유은설의 예상외였다.
‘미안.’
한설화가 거절하는 것은 매우드문 일이었다.
부탁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약속을 잡자고 하면 대부분 승낙했다.
그래서 유은설은 위화감이 느껴져서 한설화를 찾아갔다.
한설화의 모습은 그녀의 예상을 더 깨는 모습이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안거나 안겨진다는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설화는 의자에 앉아있는 윤예진을 뒤에서 껴안았고, 윤예진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유은설은 그 광경을 보고 이하늘에게 달려갔다.
이하늘은 휴교를 하는 동안 어디 가지 않고, 하랑에 남아있었기에 일이 그렇게 흘러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하늘을 만나자마자 물었다.
‘왜?’
자신이 외국으로 나가기 전 한설화와 윤예진이 그렇게까지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갈대라고 해도둘의 관계는 이상했다.
특히, 그 사람이 한설화라면 더.
그런사실을 유은설도 알고 있었고, 이하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붙어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한설화는 그런 말이 싫었나 봐.”
유은설은 가기 전 한설화가 많이 힘들어할 수 있으니까 챙겨주라고 얘기했다.
그중에는 윤예진이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으니 지켜봐달라는 당부도 까먹지 않았다.
물론, 한설화가 이하늘에게 그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한테 화를 내고, 나도 별말 안 했지. 솔직히 우리가 하는 게 옳은 행동은 아니니까.”
유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한설화를 걱정해서 한 행동이었지, 그가 싫어한다면 바로 멈출 생각이었다.
“매일같이 밥을 먹으러 같이 다니고, 최근에는 거의 같이 다니더니 어느 순간 저렇게 되더라고. 나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몰라.”
이하늘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정리가 되었다.
그가 남의 일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안다면 그것대로 이상한 것이니까.
수업에 들어가기 전 한설화의 자리가 바뀐 것을 확인헀다.
원래 늘 앉던 자리에서 김종현이 앉던 자리로.
즉, 윤예진의 옆자리로 옮겨갔다.
실종되었던 학생들이 돌아왔기에 남은 자리가 많이 채워졌다.
그럼에도 습격에 몇 명이 죽어 빈자리가 몇 개가 있었다.
유은설은 매일같이 한설화의 옆에 앉아 수다를 떠는 김세연을 쳐다봤다.
김세연은 평소랑 다르게 자리에 앉아 한설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유은설은 김세연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임을 알았다.
한설화는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가 윤예진이 옆으로 다가가자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집중!”
교관이 들어오고 크게 외쳤다.
그 큰 소리에 딴짓을 하는 생도 모두 교관을 쳐다봤다.
“공지하기 전 할 말이 있다.…… 고맙다.”
교관의 말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실종되었던 생도들이 모두 돌아왔기에 그녀의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실종된 생도들은 다 똑같이 말했다. 눈이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검은 연기 속에서 환청을 보고 있다가, 시야가 암전되며 눈에무언가가 씌워지더니 벗겨지지 않았다고.
갑자기, 안대가 벗겨지고 일어난 곳은 하랑 내부에 괴수가 쳐들어오고 있는 곳이어서 주위에 무기를 집고 싸웠을 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몇몇 정신력이 약한 생도들은 폐쇄공포증이 걸려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살아줘서.”
교관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생도 모두 숙연한 분위기를 띄우며 고개를푹 숙였다.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모두 죽은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그러면 다음 공지사항이 있다.”
다들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워 집중했다.
“외국 학교에서 하랑에 제의가 들어왔다. 아마… 선발된 사람은 2학기 동안은 하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수업을 받게 될 거다.”
생도들은 교관의 말에 웅성거리다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할 말은 했고, 이제 그 선발 기준이 무엇인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력과 관련된 시험이 있을거라곤 들었는데, 자세히는 아직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이상. 유은설과 한설화는 따라오도록.”
유은설은 교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화는 뒤늦게 자신을 따라 나왔다.
“무슨 일일까.”
“그러게.”
한설화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숙였다.
유은설은 그런 한설화를 쭉 쳐다봤다.
약속을 거절해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지만, 지금 대화가 평범하게 이어지는 것을 보니 그런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런 한설화도 나쁘지 않았다.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만약, 윤예진과 그런 사이가 된 뒤로 한설화의 상태가 나빠졌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윤예진에게 따질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과는 달리 한설화의 상태는 괜찮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
애초에 여자의 몸에 접촉하는 것을 평범하게 여기던 한설화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 더 나아 보였다. 여자와의 접촉을 싫어하는 한설화가.
교관이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얘기를 꺼냈다.
“너네는 외국으로 가는 거 확정이다.”
“네?”
유은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한설화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했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아…”
“그러면 그렇게 알고, 돌아가도록.”
“넵.”
문을 닫고 나가자 유은설은 한설화에게 물었다.
“설화야, 알고 있었어?”
“응. 그냥 흘러가듯 듣기는 했어.”
“흐음… 왜 나는 못 들었지.”
한설화와 걷던 중 그를 반기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윤예진.
유은설이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설화는 아까까지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화색을 가득 띠며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유은설이 개입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은 한설화가 상태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온갖노력을 했지만, 저렇게 환한웃음을 보지 못했으니까.
윤예진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저런 미소가 나올 때까지 그녀도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한결 낫기는하네.’
저렇게 해맑게 웃음을 띄고 있으니 협박을 당했다고 볼 수도 없었고, 그냥 둘 사이를 응원해주는 것이 맞았다.
한설화가 행복해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