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2부. 마법학교 (96/120)



〈 96화 〉2부. 마법학교

“에바, 우리 그때 봤던 남자 누군지 알겠어?”
“모르지.”

카야는 자신의 방이 아닌 친구의 방에서 검을 갈고 있었다.

“그것보다  내 방에 와서 칼을 갈고 있는 건데.”
“그렇지만, 주위에 누가 없으면 심심하단 말이야.”
“원래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  아니야?”
“심심해. 놀아줘.”

카야는 친구의 방에 놀러 와서 놀아달라고 칭얼댔다.

한 마디도 안 할 것 같던 그녀의 친구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래에 깔린 이상한 거 봤어?”
“이상한 거?”
“여기 시험  사용했던 거랑 비슷한  같은데, 조금 달라.”
“그래?”

지금처럼 그녀의 친구는 호기심이 많았다.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것도 속속 발견해 말하곤 했다.

카야가 매일같이 그녀의 방에 오는 것도 그녀와 이야기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조사해봐야겠어.”
“지금은 말고?”

카야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 조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나가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응. 더 배우고 나서, 조금 더 배우고 나면 깨닫는 것이 많겠지.”
“그래? 그러면 지금 만들고 있는 건 뭐야?”

그녀는 기숙사에 들어온  몇 시간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방을 간이 실험실로 만들어놨다.

그렇지만, 카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능력이 포션을 만드는 연금술같은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무엇을 만들지 궁금했다.

“그때 필요한 거.”
“으음… 그래?”
“그것보다, 그 가면 쓴 남자?”
“응.”

카야가 그때 남자를 구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이 멋대로 움직여 그의 뒤에 날아오는 칼을 막았을 뿐.

‘신기하네.’

자신의 칼, 엑스칼리버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자기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신들린 움직임을 보여준다. 자신은 움직임을 배우고 체득할 뿐.

칼이 왜 남자를 구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카야는 알 길이 없었다.

“나야 모르지.”
“알고 있어.”

애초에 정확한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도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이 남자에 꽂혀있을 줄 알았지만, 다른 것에 꽂혀있을  몰랐다.

“확실한 건  남자 아니었으면 몇 명은죽거나 다쳤을걸.”
“그건… 맞지.”

폭발이 정확히 비행기의 옆구리에 맞았다면, 비행기 옆이 뚫려 몇 명은 이상한 사람들의 기습에 죽었을 것이다.

“신기하긴 해. 마치 습격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잖아.”
“그런가?”
“못 봤어? 우리 폭탄 날아오기 전부터 자리에 있었어. 그것도 활을 들고.”
“그래?”

카야는 자신이 몰랐던 정보를 얻었다.

“신기하긴 해. 다음에 만나면 묻고 싶네.”
“뭘?”
“그가 착용하고 있는 유물들에 대해서. 처음 보는 거잖아.”
“푸흣…”

정말로 연구에 미친 그녀다웠다.

“나는…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지.”
“근데  잡을 것 같은데. 교관도 못 잡았잖아.”
“그런가?…… 잠시만 그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뻔하지. 잡았으면 오면서 경계를 안 했겠지.”
“그래?”

그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고, 나중에 만나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년들이 또…’

별안간 이상한 이유를 대가며 자신이 성검을 뽑았을 때부터 괴롭혀오던 집단이었다.

“검 다 갈았으면 나가.”
“응. 나갈게. 잘 있어. 에바.”
“다음부터 오지 마.”

문을 닫기  에바가 자신에게 욕을 날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기분 좋게 방을 나왔다.

다음에 가도 똑같이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


─딱. 딱.

손톱이 갈리는 소리가 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김세연은 여기까지 온 것은 좋았지만, 한설화의 몸에 새겨지는 흔적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마음이 찢겨지는  같았다.

‘그년이 진짜로…’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설화가 자주 가리고 있는 부분을 잘 살펴보면 빨간색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순백색의 도화지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은 없었다.

김세연도 체감하고 있는 바였고.

그렇지만, 한설화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이 마음대로  수 있는 도화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윤예진이 무슨 술수를 벌였는지 몰라도, 평범한 방법으로 한설화를 꾀어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저찌 학교까지 따라왔지만, 자신이 한설화에게 접근하려고 하면 윤예진이 다가왔다.

그러면 한설화는 자신과 이야기를 중단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윤예진에게 뛰어갔다.

그런 미소를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그런 미소를 짓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들었다.

‘그렇지만.’

윤예진은 아니었다.

분명히… 기회가 있을 것이다.

허구로 쌓아 올린 탑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자신은 그 틈을 파고들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




“설화야, 알겠지?”
“응, 응.”

예진이는 나한테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여러  얘기하고 있었다.

“약속할 거지?”
“응.”

뭐 이제, 위험한 짓 할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말에 꼬박꼬박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별로 준비도  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녀의 외모는 눈부셨다.

“예쁘다.”
“응?”
“이렇게 가로등 빛에 빛나는 거 보니까.”
“갑자기, 말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입을 맞췄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을 볼  있었는데, 되게 귀여웠다.

“뭐… 뭐야 갑자기.”
“오늘도 방에 몰래 갈까?”

어차피 몰래 순간이동 하면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오늘도…? 설화야, 너 너무 그런 것만 찾는 거 아니야?”
“싫어?”
“어? 아니… 싫은 건 아니고.”

“아… 맞다.”

나 오늘 능력을 다 썼구나.

인벤토리에 넣어놓은 옷이고 가면이고 사용할  있는 능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왜?”
“오늘은 힘들겠네.”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러면서 예진이의 얼굴에는 약간 화색이 돌았다.

‘내가 요즘 너무 달라붙었나.’

잠시 떨어진다는 말에 이렇게까지좋아할 줄이야.

“혹시… 정말로 싫어? 여기에서는 더 찾아가지 말까?”
“아니야. 정말로.”
“근데… 왜…?”
“뭐가?”
“아니야…”

약간 서운해졌다. 그녀에게 나는 별로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 걸까.

사실 그녀의 고민을 듣는 사람은 따로 있는  아닐까.

그런 생각만 해도 슬픔이 몰려왔다. 그녀의 고민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싶은데.

“아니야! 정말로!”
“아니야. 이제는 안 찾아갈게.”
“섹스 싫어하는 여자가 어딨겠어.”
“그… 목소리가 너무 커…”

당장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지만, 방금 그녀가 말한 단어는 사람들이 듣기에 부적절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이 있나 살펴봤지만,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힘들어서 그래.”
“힘들면  갈게.”
“…네가 너무 잘하잖아.”

내가?

생각해보니 예진이에게 찾아가서  때면 매일같이 녹초가 되는 것은 그녀가 먼저였다.

나보다 먼저 잠든 그녀를 쓰다듬으며 잠에 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물론, 그녀를 쓰다듬고 싶어서 일부로 지치게 하는 점도 있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는 그녀도 예뻤으니까.

오히려, 잠을 잔 동안 그녀가 깨어있을  하지 못했던 짓도 여럿하곤 했다.

“여자로서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응?”
“여자는 약간 남자와의 성관계에서 주도해야 되는데, 하다 보면 매일 지쳐 쓰러지는 건 나잖아.”
“상관이 있나?”

나중에 힘이 남아있는 사람이 챙겨주면 되지.

“있어!”

그녀는 화난듯한 얼굴로 나한테 말했다.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쓰러진 척을 할까.’

그녀는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것이 많았는지 나한테 계속 말했다.

“으으… 왜 그렇게 잘하는 거야. 매일 연습해도 밤만 가면 내가 먼저 간단 말이지.”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그녀는 기운이 꺾인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향했다.

숲속이라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숲이 있었고, 여러 가지 조형물도 많았다.

오늘 하루 동안 돌아다니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다  느낌이었다.

‘그리고 예진이랑 다니는 것도 즐거웠고.’

하랑에서는 훈련하는 시간도 부족했고, 숲에서 훈련하는 시간만 같이 있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생도들도 많이 없다 보니까 보는 눈도 없었고, 첫날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각해보니 이거 데이트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또, 무슨 생각해.”
“응? 아… 아니야.”
“나도 말해줬는데, 말 안할거야?”
“그냥… 이거 데이트 같아서.”
“그러면 데이트 아니야?”

예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을  던졌다.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뭐 어때, 둘이 나오니까 상쾌하고 좋지.”
“응… 좋다.”

해는 이미 지고, 달이 우리 둘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것도 운치 있고 보기 좋았다.

특히, 예진이랑 같이 있다는 점에서  기분은 더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평화로운 삶이 지속된다면 좋을 텐데.

평화로운 시간이 이제 반년 정도 남은 걸까.

자잘한 사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건은  이상 찾아오지 않으니까.

‘아니면 새로운 사건이 생기려나.’

시간이 빨리 당겨진 만큼 그 변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겠다.

아직 큰 변화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있으면 IV 쪽에서 연락이  테니까.

생각을 하고 있자, 예진이가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또, 다른 생각. 나랑 있는데 자꾸 다른 생각 할래.”
“미안…”
“자 이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과자?”

저번에 먹었던 과자랑 똑같이 생겼다.

더 이상 주지 않길래 더 없나보다고 생각했는데.

“자 빨리 먹어.”

그녀는 내 입에 넣어줬고, 맛을 음미하자 전과 똑같은 맛이 났다.

‘역시 맛있네.’

“자, 그럼 들어가자.”
“응.”

그녀에 손에 이끌려 기숙사에 들어갔고, 방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꺼내려 했다.

루시아에게 다른 곳으로 왔다고 연락도 할 겸.

오른쪽 주머니를 만지자 핸드폰이 없어서, 왼쪽 주머니를 만졌다.

‘내가 왼쪽에 넣어놨던가?’

원래 맨날 오른쪽에 넣었을 텐데.
갑자기 핸드폰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뭐 잘못 넣었나 보지.’

그리고 길드장에게 메시지 한 통을 작성했다.

[저 다른 곳으로 왔어요. 전처럼 뚫고 오려고 하지 말고, 오시려면 문자 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