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2부. 마법학교
아… 머리 아프다.
헤어진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머리가 아파졌다.
빨리 이야기 끝나고 예진이 보고 싶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는 얼굴이 보였다.
“빨리 들어와.”
사라하랑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기에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머리가 아팠지만, 남들 앞에서 짓는 미소만큼은 지을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지속해온 습관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일어서서 나를 안으려 다가왔다.
그녀의 휘감아 오는 팔을 쳐내자 어리둥절한 얼굴을 지었다.
“왜?”
“왜 그러세요?”
“나 싫어?”
“아니요?”
물음으로만 끝나는 대화가 계속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몸을 대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서로간의 거래였기에 정당하다 보는 것이기도 했고.
물론, 다시 사라하가 나를 강간하려고 한다면 실망하겠지만, 사라하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왜?”
“아 저… 여자 친구가 생겨서…”
“여자… 친구?”
“네. 그러면 하실 말 따로 없으면 이제 나가볼게요.”
내가 나갈 때까지 나를 붙잡지 않아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열자 예진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 아픈 것이 사라졌고, 그녀의 얼굴만이 눈에 보였다.
“왔어? 안에서 무슨 이야기했어?”
“응? 별말 안 했어.”
“그래? 그러면 가자.”
예진이와의 관계는 그 때의 대화 이후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때 서로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 좋은 기회였는지, 이제 서로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했다.
물론, 나는 불만을 얘기한 적은 별로 없었다. 예진이도 마찬가지였고.
“뭐해, 빨리 가자.”
“응!”
**
수업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다들 처음 배우는 것이다 보니 처음에는 허덕였지만, 각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금방 적응했다.
그중 발군은 유은설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기존에 배우던 마법을 제외하고 자신만의 마법을 구축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배경지식을 이용해 진도를 따라갔지만, 금세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애초에 재능이 없어서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을 앞설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에 온 것도 반쯤은 인맥으로 들어온 것이었고.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에 맞춰 따라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들 이제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달리면서 사용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대련을 하고 싶어 교관에게 건의하는 생도도 있었고, 몰래 대련을 하다가 들키는 생도도 있었다.
여기에 온 사람들 중 몇몇은 거의 끝까지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재능이 출중했다.
‘친해지면 좋은 사람이라는 거지.’
유은설은 특유의 성격을 이용해 친해졌고, 예진이도 어느새 인맥을 늘려갔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기서도 찐따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위에 예진이만 있으면 상관없으니까.
“또 무슨 생각해.”
그녀는 갑자기 앞에 나타나 내 이마를 때렸다.
딱 소리가 났지만, 별로 아프지 않았다.
“왜?”
“곧 대련이 있다고 했잖아. 못 들었어?”
“응? 아… 그래?”
다른 생각을 하느라잘 못 들었나 보다.
벌써 대련이시작되는구나.
여기서 실력을 왕창 늘릴 수 있다면 좋긴 한데.
나랑 하고 싶은 사람도 없을 테고.
생각해보니 나는 누구랑 하지?
귀를 열어보니 다들 누구랑 할지 벌써 말을 맞추고 있었다.
“예… 예진아.”
“응?”
“혹시… 대련 상대…”
“응? 맞다. 나…”
그녀는 다른 나라의 주요 인물이랑 하기로 했다고 신나하며 말했다.
대련 상대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신경써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녀의 신난 얼굴을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를 제외하고 다 친구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큰일 났네.’
“그러니까 나 응원하면서 봐.”
“으… 응.”
대련은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니까. 남은 사람들이랑 하면 되겠지.
어차피 짝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랑 하는 사람은 정해질 테니까.
‘근데 나랑 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나 같은 폐급이랑 대련하게 되었다고 바꿔 달라면 어떡하지.
하기 싫다고 말하면 어떡하지.
벌써부터대련 날이 걱정되었다.
**
대련에 대한 걱정을 뒤로 하고, 해가 져 가로등 빛이 켜지고 기숙사를 나왔다.
전처럼 치료실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건 하나를 방지하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
핸드폰으로 전화음이 울렸고, 누군지 살피자 예진이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응? 나 잠깐 산책 나왔는데. 혹시 내 방 앞이야?”
[아니, 아니. 그냥 전화해봤어. 오늘 밤도 올 거야?]
“싫으면 안 갈게.”
[아니야. 들키지 말고 와.]
예진이는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요즘 따라 내가 어디를 나가기만 하면 전화가 귀신같이 왔다.
‘저번 사라하랑 만났을 때도 그렇고.’
그렇지만, 그런 집착이 싫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을 받는 것이 좋으니까.
그런 전화 하나하나가 기분이 좋았다.
오늘 산책을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나중에 있을 침입에 예방하기 위해서.
알고 있는 위치로 가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이렇게 사람이 올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주구장창 기다릴 예정이었다.
그냥 이런 사건이 있다라고만 알고있지, 정확히 며칠, 몇 시에 일어나는 줄은 몰랐다.
시간을 때우며 할 것도 없었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고, 보도블록의 선을 쭉쭉 따라 나가기도 했다.
한 곳에 집중하자 환각도 보였지만, 금방 사라졌다.
“예진이 보고 싶다.”
그냥 이런 거 하지 말고 보러 갈까.
어차피 나중에 막으면 되는 건데.
포기할까 싶을 때 내가 보고 있는 장소로 한 명이 다가왔다.
이름은 미리 외워뒀기에 내가 아는 그녀가 맞았다.
에바.
성검을 가진 카야의 동료기도 했다.
그녀의 능력은 연금술로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는 여러 가지 물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능력을 노리는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그녀 자체의 무력이 약한 편도 아니었다.
무력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마법 학교로 온 것도 있었고.
그녀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내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실실 웃고 있었다.
옆에 내려놓은 플라스크를 들었다.
“이거 뭐야?”
“누… 누구야!”
간단했다.
지금 그녀가 건들고 있는 것은 방어 마법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고.
마법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다 적에게 위치가 노출당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약물을 저 멀리 던져버리면 적이 여기를 알아차릴 일도 없을 것이다.
나중에 이유를 봤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그… 그거 내려놔. 나 알지? 천천히 내려놔.”
“싫어.”
“뭐?”
“이거 뭔데?”
그냥 던져버려도 되지만, 내가 그런 짓을 했다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뻔했다.
지금 앞에 있는 그녀는 카야의 동료였고, 결국 쓰레기는 내가 될 것이다.
“그… 이 아래 마법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거야.”
“왜?”
“궁금하니까? 됐지.이제 그러니까 그거 내려놔.”
“싫어. 그러면나쁜 거잖아. 했다가 취약해지면 어떡해?”
“그… 그건 아직 모르잖아!”
나야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니까.
근데, 그녀의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짐작은 한 것처럼 보였다.
“안 줄래.”
“어…?”
“나빠 보이잖아.”
“내놔!”
그녀가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저 멀리 플라스크를 던졌다.
어차피 취약한 부분이 아닌 이상 물약의 효과는 발현되지않을 테니까.
“아이쿠 실수. 갑자기 달려와서 놀랐어.”
“뭐… 뭐? 저거 만드느라 어떤 재료가 소모되었는데!”
방어 마법이 그렇게 취약하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뚫을 정도면 꽤 비싼 값의 재료가 소모되었을 것이다.
“너… 너 물어내!”
“근데, 이거 교관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어… 어?”
“나는 억울한데… 오히려 네가 여기서 범죄자 아니야?”
“어? 아니… 아니지.”
“그러면 교관한테 말하러 가도 돼?”
내 말에 그녀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그녀가 방어 마법을 파헤치려고 하는 순간부터 갑과 을이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다.
그녀의 행위 자체가 올바른 것은 아니어서교관을 거론하자 금방 쭈그러들었다.
“아니… 그냥 넘어가는 거로 하자!”
“다음부터는 안 하는 거지?”
“아니?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번에는 꼭 성공해야지!”
“그러면 교관한테…”
“알겠어! 알겠다고 안 할게.”
“진짜?”
“응…”
당분간 여기를계속 와봐야 알겠지만, 그녀의 약속을 받아냈으니 이제 가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난 가볼게.”
“하… 씨.”
그녀의 욕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고, 기숙사로 향했다.
**
윤예진은 기숙사 앞에서 한설화를 기다렸다.
여기 온 첫날 한설화를 재우고 그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어플을 깔아놨다.
그것을 설치 한 뒤로 실시간으로 한설화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 한설화가 기숙사로 나가 뒤쫓았더니 갑자기 앉아서 어디 하나를 주시하더니 한 여자와 만나는 것을 봐버렸다.
한설화가 그 여자와 꽤 길게 얘기했다. 한설화는 그렇게 사교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대화를 단답형으로 끝내는 스타일이었기에 남과 대화를 길게 하지않았다.
한설화가 여자랑 길게 대화하니 윤예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화야, 너는 나밖에 없잖아.’
왜 다른 여자랑 이야기하는 거야?
최근에 아무 말도 안 해서 기분 좋았는데, 오늘 일로 기분이 확 다운되었다.
윤예진은 최근 너무 풀어졌다고 생각해서 긴장감을주려고 대련도 다른 사람과 잡았다.
한설화에게 대련할 사람을 소개시켜주지도 않았다. 대련도 일부로 다른 사람과 잡은 것이었고.
‘그때 설화 표정완전 귀여웠는데.’
근데 나를 배신해?
너는 나 말고 다른 여자는 관심도 없잖아.
“설화다.”
그리고 이번에 물어볼 예정이었다.
설화라면 사실대로 얘기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예진아!”
한설화는 윤예진에게 밝게 웃으며뛰어왔다.
‘표정 관리해.’
순간 그 웃음을 보고 표정이 풀어질 뻔했지만,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무슨 일… 있어?”
강아지처럼 울상을 지으며 물어왔지만, 윤예진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어디 갔다 왔어?”
“저기 앞에 잠깐 산책.”
“무슨 일 있었어?”
윤예진은 한설화가 사실대로 대답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한설화라면 자신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거니까.
“아니? 그냥 아무 일도 없었는데.”
윤예진은 그 말을 듣고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준비했던 말을 꺼내려 했다.
‘안 되겠다.’
“우리 잠깐 시간을 가지자.”
“그게 무슨 소리야?”
“설화, 네가 사실대로 말 안 해줬잖아.”
“어…?”
“그러니까 잠시 헤어지자고. 붙지도 말고.”
윤예진은 뒤를 돌아 기숙사로 들어갔다.
한설화는 그런 윤예진의 손을 붙잡으러 달려왔지만, 윤예진이 그 손을 쳐냈다.
‘그러니까 그러지 말았어야지.’
‘왜 다른 여자랑 얘기하는 거야? 그것도 그렇게 친절하고, 오래?’
“내 말 잘 못알아들었어?”
“아니… 예진아 왜 그래.”
“네가 잘 알겠지.”
“미안… 미안해.”
한설화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지만, 윤예진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밖을 쳐다보자 문을 긁고 있는 한설화가 보였지만, 절대 열어주지 않았다.
‘설화야, 너는 나밖에 없어야지. 최근에 다른 여자들이랑 붙는 모습도 짜증 났어.’
윤예진은 전화기를 꺼내 문자를 하나 넣었다.
[제가 알려드린 위치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