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2부. 마법학교
죽어. 죽어.
“그만!”
교관이 제지하기 전까지 에바를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예진이도 다시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까.
고개를 들어 예진이를 찾자, 그녀랑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생긋 웃어 보였지만, 그녀는 나한테서 눈을 돌려 어디론가로 향했다.
‘왜?’
원하던 것 아니었어? 맞잖아.
내가 해냈잖아.
이제 너한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어.
이제 나를 봐줘.
응?
“빨리 치료능력자 불러!”
“쟤 사이코패스 같아.”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놓고 웃는다고?”
“소름 끼치네.”
아 시끄러워. 아까부터 사람들이 쫑알쫑알 말을 토해냈다. 듣기 싫은데.
예진이는 어디 간 거야.
나한테 달려오는 중인 걸까.
“저 내려가도 되죠?”
당장 에바를 들어 올리는 교관한테 말해도 별다른 안내 사항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경기장 밖으로 내려갔다.
모든 사람의 관심은 상대방한테 몰려있을 뿐, 나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으니까.
애초에 나한테 관심을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나를 바라봐주는 건 예진이밖에 없으니까.
예진이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면 안 되지.
내가 먼저 예진이에게 다가가야지. 또 미움받으면 안 되니까.
‘이번에도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럴 리 없잖아.
예진이가 사라진 곳으로 빨리 달려갔다.
한시라도 빠르게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예진이와 만났다.
“예진아. 나 잘했지?”
“……”
“응? 설마… 아직도 마음에 안 들어?”
“설화야, 정말로 용서받고 싶어?”
“응.”
“그러면 내 마지막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줄 거지?”
“응. 무엇이든.”
**
이상하다.
원래 한설화의 성격은 저러지 않았다.
유은설은 방금 대련을 보고 확실하게 느꼈다.
며칠간 한설화의 상태가 이상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간섭하지 않았다.
윤예진이 알아서 하겠구나 싶어 건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선을 넘었다.
저렇게 난폭하지도 않았고, 어딘가 혼을 빼고 다니지도 않았다.
원래의 한설화라면 에바가 다쳤을 때 당장 달려가 물었을 것이다.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치유해줬을 것이다. 지금처럼 무심하게 상대를 내버려 두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설화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모습.
‘무슨 일이 있었나?’
그래도 그가 걱정되기는 했다. 최근에 윤예진과 붙어 다니지 않는 것도 의심스러웠고.
유은설은 경기장을 나가 어디론가로 향하는 한설화를 급히 따라갔다. 자신도 대련했었기에 저 복도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에서 한설화를 만나기 전 그가 누구랑 만나는 것을 보고, 벽 뒤에 숨었다.
“……용서…”
“……부탁 하나… 들어줄 거지?”
“응……”
거리가 멀어 자세히 들리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핵심적인 단어가 들렸다.
‘용서?’
한설화의 목소리로 분명히 용서라는 단어가 들렸다.
유은설이 생각하기에 한설화에게 용서는 어울리지 않았다.
저번처럼 혼자서 착각하고 사과를 한 것이라생각하는 게 편했다.
‘부탁이라.’
윤예진이 분명히 부탁이라는 단어를 썼다.
용서해주는 대가로 부탁을 하나 하는 건가.
별로 좋지 않은 생각 같은데.
연인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무리 연애에 문외한이어도 저런 관계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둘이 멀어지고 나서야 유은설은 숨었던 벽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상해…”
지금까지는 둘의 관계에 간섭하지 않았다.
한설화가 싫어할까 봐 그런 것도 있었다.
오히려 응원하고 있었다. 윤예진과 같이 다니면서 한설화의 표정이 좋아진 것도 맞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목격한 이상 적어도 조사 정도는 해봐야겠다.
‘딱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조사하자.’
**
“괜찮냐?”
카야는 병실에 누워있는 에바에게 말했다.
시합에 나가기 전 때려눕힐거라고 자신만만하게 경기장으로 나갔었는데.
에바가 병상에 눕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을 뜨자마자 대답하지 않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걸 보니 많이 억울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열고 자신에게 말했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
“그래, 그래.”
확실히 급이 다르긴 했다.
자신이 봐왔던 사람이 맞는지 의문부터 들었으니까.
시작하자마자 여러 개의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 혹은 두 개만 시전할 수 있는 게 정상이었다.
“으으…”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마법을 쏘아내고 웃는 모습은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처럼보였었지.’
어딘가 나사가하나 풀린 것처럼 행동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대련을 본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대련에서 이기고, 상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거나 했으니까.
그 사람처럼 무심하게 경기장을 내려가는 사람은 없었다.
“제정신 아닌 거 아니야?”
“응.”
에바가 화내는 것도 정상이었다.
전까지 대련은 마법을 쏘아내고 피하는 싸움의 연속이었다면, 그녀의 대련은 일방적이었으니까.
시작하자마자 끝난 건 처음 보는 경기였으니까.
다들 그 위력에 입을 쩍 벌리고 구경했었다.
‘어떻게 했는지 나중에 물어볼까.’
**
[정말 그대로 합니까?]
“그러면 안 해요?”
윤예진은 전화가 울리자마자 받았지만, 원하는 대화가 아니었다.
자신이 하란 대로 할 것이지 아까부터 군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의 인격이 부서질 겁니다.]
“아니 상관없다고요.”
[평범한 치유로는 되돌릴 수도 없을 텐데…]
“아… 진짜. 돈 필요 없어요?”
예전에 문자를 보냈고, 그녀는 이미 주위에 도착해있었다.
한설화에게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자신이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한설화의 주위에 여자가 들러붙었다.
‘더러워.’
자신의 것에 들러붙는 것들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은 암시를 걸기로 했다.
한설화는 마음이 약해 쉽게 거절하지 못하니 여자들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저도 그렇게까지 깊게 걸어본 적은 없습니다.분명히 사람의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알고 있다고요. 그래도 저만 바라보잖아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 정박아가 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아… 네, 네.”
반론을 더 이상 받기 싫어 전화를 끊었다.
애초에 돈은 이미 입금했기에 그녀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한설화의 정신을 부수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이 잘 보살펴주면되는데.
이제 자신만 바라보는 한설화가 될 텐데.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것도 싫증이 났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한설화가 여자랑 붙어있었으니까.
깊게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설화가 가만히 있었는데 그년이 먼저 접근해 말을 건 것이 분명했다.
교실에서는 자신이 있어서 말을 걸지 않았을 테지만, 자신이 없을 때를 노려 접근한 것이다.
평소 한설화에게 다른 여자가 꼬이지 않도록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도 퍼트렸고, 틈만 나면 데리고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지 못하게 했다.
주위에 자신밖에남지 않게.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주위에 유은설과 김세연은 꾸준히 접근했다.
한설화는 친절히 그 둘을 받아주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 대련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오늘 죽을 것처럼 나갔지.’
그 모습을 보고 한설화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줬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자신을 마주 볼 때가 되었다고. 그래서 한설화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과자를 다 삼키라고.
그래서 한설화에게 과자를 한 움큼 줬다.
평소보다 더 강력한 수면제가 들어있었지만, 어차피 암시가 제대로 걸린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한설화가 돌아와서 자신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예진이가 내 사과를 받아줬다.
마지막 부탁만 들어주면 그녀가 이제 완전히 용서한다고 했다.
반쯤 부서졌던 내 마음이 다시금 회복되고 있었다.
부서질 것 같았던 정신이 다시금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나머지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부탁만 들어주기 위해 빠르게 바깥으로 향했다.
옷의 능력을 이용해 벽을 뛰어넘었고, 금방 예진이가 말한 위치에 도착했다.
그리고 과자를 한 아름 삼키자 눈이 천천히 감겼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