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2부. 설화(雪花) (103/120)



〈 103화 〉2부. 설화(雪花)

건물의 지붕 위에 안착했다. 날씨가 추워 날숨에 입김도 같이 나왔다.

갑작스럽게 내린  때문인지 꽤 많은 숫자의 생도가 나와 있었다. 눈사람을 만들며 놀고 있는 생도들도 있었고, 눈을 뭉쳐 던지는 생도도 있었다.

가면을 꺼내 착용하고 활도 손에 쥐었다. 원래 사용했던 생도용 활은 지붕 위에 내려놓았다.

화살 하나를 꺼내 눈을 만지며 웃고 있는 생도의 머리를 노렸다. 화살은 내 손을 떠났고 금방 생도의 머리에 박혀 피가 튀어나왔다.

방심하고 있어서 금방 죽일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다행이었다. 괜히 반항하면 힘들었을 테니까.

한 명을 죽이자 다른 생도들이 무기를 들었다. 괜히 힘들게.

내가 있는 위치도 금방 들통났고, 나를 향해 먼저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부 부질없는 짓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싹 훑어봐도 나에게 위협이 될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전에 시전해두었던 마법을  꺼냈다. 저번 대련 때도 이런 방법이었다.

미리 시전해두었던 마법을 숨겨놓는 것. 소설 속에서 사용했던 것을 그대로 하니 시전되었다. 글자뿐인 설명이라 불가능할  알았지만,  날 며칠을 고민하니 시전이 되었다.

마법을난사하자 나에게 무기를 겨누고 달려오던 사람이 죽기 시작했다.

내 화살은 멈추지 않았고, 금방 아래에 서 있는 30명을 전부 다 죽일 수 있었다.

새하얀 눈밭에 빨간색의 피가 흩뿌려졌고, 머리통과 몸이 따로 노는 시체도 있었다.

그런 시체들을 지나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갔다.

─콰앙!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짓을 막아줄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무작정 생도들을 죽이면 내가 표적이 되기 쉬웠다. 그러니 나를 대신해 관심을 끌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 이 학교를 침입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를 대신해 죽어줄 사람들이니까.

방벽 쪽으로 가자 빌런들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 때문인가?’

저번 사건은 막았으니 위치가 새어나갈 일이 없을 텐데. 아마 내가 옷을 통해 밖을 나갔다 온  문제인 것 같았다.

‘타이밍 좋네.’

딱 좋은 타이밍에 찾아온 그들이 너무 반가웠다. 만약 오지 않았더라면 100명을 죽이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저들을 보호막 삼아 100명을 죽이면 되겠네.




**






“설화야…”

유은설이 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서 한설화를 찾아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차게 내리는 눈 속으로 팔을 뻗어봐도 사람의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세차게 내리던 눈이 기적처럼 멎었다. 주위에 한설화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주저앉아있는 윤예진과 자신과 똑같이 주위를 헤집고 다니는 김세연이 보였다.

김세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윤예진에게 다가갔다. 당장 한설화가 사라진  윤예진때문이라고 생각됐다.

“어디 갔어.”
“푸흐흐흐…”

윤예진은 실성한 듯 웃기만 했다. 한설화를 대하던 것과는 달리 유은설은 바로 윤예진의 뺨을 때렸다.

“너지? 어디 갔어?”

그래도 대답이 없자 다시 한번 손을 올렸다. 한설화의 상태가 많이 이상한 건 둘 다 느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설화를진정시켜야 했다. 사람의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하는 행동이 있었다.

자살. 당장 한설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유은설의 마음속은 어느 때보다 불타고 있었다. 한설화가  말 하나하나 전부 묻고 싶었다.

당장 그녀가 알지 못한 사실마저도 다 들어 당장이라도 무너질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서 무너져 후회하는 건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니까.

“어딨…”

─콰앙!

셋의 시선이 동시에 밖으로 향했다. 안이 아닌 밖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살… 살려줘!”

그리고 피를 뒤집어쓴 채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생도들도 보였다.

김세연과 유은설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 생각하며 무기를 들었고, 곧바로 생도들이 뛰어온 쪽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유은설은 자신의 검을, 김세연은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똑바로 응시했다. 침을 넘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정적에 눈을 뚫고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아…”
“어… 가면…남?”

가면남은 아쉬운 듯 침음을 흘렸다. 유은설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라면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윤예진은 실실 웃었고, 김세연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옷에는 온갖 피가 튀어있었고, 걸음걸이는 어딘가 이상했다.

유은설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피는 그의 피가 아니었고, 지금 침입한 사람의 피일 것이라 믿었다.

그녀가 봐온 남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여긴 무슨 일로…”
“쳇…”

그리고 유은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모습은 형체를 감추었다.

원래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유은설은 다시 윤예진을 노려봤다. 그녀를 어딘가 묶어두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모르겠어? 모르겠냐고.”
“무슨 소리야. 그게”

윤예진은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고, 유은설은 그런 윤예진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목에 칼날이 닿아서 피가 검 끝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윤예진은 개의치 않고 웃었다.

“너네가 찾던 사람이 방금 쟤라고. 멍청한 것들아.”
“쟤?”
“가면  사람. 너도 봤잖아. 사실은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게…”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까, 한설화도 뺏기는  아니야.”

유은설은 아니라고 읊조렸고, 김세연은 한발 빠르게 윤예진의 뒤로 가서 활로 윤예진의 머리를 때렸다.

윤예진은 정신을 잃은   자리에서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뭐해. 찾으러 가야지.”

머릿속이 복잡한 유은설과 달리 김세연은 확고했다. 한설화를 찾으러 간다는 목표가 있었다.

정체를 알았으니 찾으러 간다. 간단한 명제였다.

유은설은 그런 김세연을 보고 일어섰다. 지금은 절망할 시간이 아니었다. 나중에 한설화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일단은 가야지.’

둘은 한설화가  쪽으로 향했다. 눈은 멈추지 않고 더 많이 내렸고, 바닥에 점점 쌓여 이동을 방해했다. 볼 수 있는 범위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여러 가지로 나쁜 날씨였다.

유은설과 김세연은 눈을 뚫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피 튀기는 싸움의 현장이었다. 교관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빌런들과 대치하고 있었고, 생도들도 간간이 싸움에 끼어들고 있었다.

유은설과 김세연도 끼어들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 한설화를 찾았다. 분명히 눈에 띄는 복장이었기에 잠깐이라도 보이면 분명히 잡아낼  있을 것이다.

한 명을 베고 주위를 살폈지만, 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간 싸움을 이어가는 중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습격해온 빌런들은 어느새 숫자가 부족해졌고, 점점 물러나는 것을본 생도들은 교관을 등에 업고 점점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빌런들은 물러나는 기색을 보였고, 유은설은 더 밀어붙였다. 당장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고 빌런과 생도들 사이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가면을 벗은 상태였지만, 검은색의 옷은 착용하고 있었다.
원래 자신이 알던 점과 다른 점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아닌 흰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이었다.

김세연과 유은설은 단번에 알아봤고, 무기를 들고 달려갔다. 빌런들  사이에 있는 한설화를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빌런들은 중간에 선 한설화를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팀인 것처럼.

그런 행동에 생도들과 교관들도 모두멈춰 섰다. 한설화의 등장은 방금까지 들리던 날붙이 소리를 모두 멈추고, 고요함을 만들어 냈다.

정적을 깨고 한설화에게 가정 먼저 달려든 사람은 카야였다. 유은설과 꽤 친한 친구였기도 했고, 자주 말도 주고받고 대련도 했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랄 법도 했지만, 한설화는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카야!”

유은설은 카야의 이름을 세게 불렀지만, 그녀의 검은 멈추지 않고 한설화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한설화는 카야의 검을 검은색의 무언가로 막고 있었다. 유은설은 달려가 카야의검을 막았다.

“비켜.”
“왜… 왜 그러는 거야.”
“검은 틀린 적이 없어. 죽여야 해. 지금 너도 느끼고 있잖아. 지금  분위기.”

유은설의 신경을 건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도 계속 무언가 불편했다. 그녀의 감각은 당장이라도 앞에 서 있는 한설화를 죽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유은설은 그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한설화를 살리고 싶었다. 일단은 한설화를 천천히 다독여보면 되지 않을까.

“비켜. 빨리.”

카야의 검은 흰색의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유은설을 피해 기묘하게 한설화를 향해 찔렀다.

“안돼!”

─깡!

유은설은 뒤를 황급히 돌아봤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 이상한 소리였다. 검과 검이 맞닿는 소리도 아니었고, 검이 날아간  같은 소리.

다시 앞을 바라보자 카야는 얼굴에 놀라움을 가득 담고 있었고, 그녀의 검은 이미 저 뒤로 날아가 있었다.

“일단 피하자.”

이상하게 전자음이 낀 목소리에 유은설은 바로 정체를 확인할  있었다. 전에 한설화와 같이다녔던 의문의 여자.

이 여자라면 충분히 한설화를 데리고 도망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유은설의 예상과 달리 가면을 쓴 여자는 한설화를 전혀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이동해.”
“잠시만…”

외치기 전에 유은설 쪽에 서 있던 생도들과 교관들이 모두 사라졌다.


**




‘싫어.’

‘다 죽였잖아.’

이제 나를 재워줘. 영원히. 누구도 건들지 못하게.

“그래. 소원을 들어줄게.”

어디선가 들린 목소리가  대답에 응했고.

주변에 눈은  세차게 내렸다. 나를 봉인하는 것처럼.

눈을 천천히 감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사라질 때쯤이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끼긱 끼긱

나의 주변에 얼음이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음을 대변하듯 날카롭게.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가둬줄게. 너는 잠만 자면 돼.”
“그래.”

주위에 내 마음속처럼 벽이 세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러 겹의벽들이 나를 둘러쌓고, 눈 안에 점점 갇히고 있었다.
하지만, 숨은 막히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깊고 편안한 숨을 내쉴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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