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2부. 설화(雪花) (105/120)



〈 105화 〉2부. 설화(雪花)

 안의 환경은 기묘했다. 추운 겨울임에도 여러 그루의 나무와 꽃들이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문은 부서질  흔들렸고, 활이 그 문을 틀어막고 있었다.

김세연은 숨겨놓았던 단검을 꺼내 유은설에게 겨눴다. 지금만큼은 김세연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적은 유은설이었다.

“한설화를죽일 거야?”
“나는… 나는…”
“그렇게 고민이나 할 거면 문이나 막고 있어.”

김세연은 중앙으로 걸어갔다. 당장이라도 뒤로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한기가 그녀의 몸에 파고들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한설화를 구해야 한다.

이 한 가지 사실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많이 후회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한설화를 잃은 적도 있었고, 보지 못한 사이에 한설화가 사라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그를 구원해줄 기회가 다가왔다. 지금 포기할 수 없었다.

‘걸어.’

발이 땅에 닿자마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포기한다면 한설화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얼음 속에 곤히자고 있는 한설화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심장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에 숨을 크게 내뱉었다. 죽을 것 같았다.

자신은 한설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잘 모른다. 그가 어떤 힘든 삶을 겪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이 한설화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아.’

결국한설화가 들어 있는 얼음까지 도달했고, 김세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단검을 이용해 얼음을 내리쳤다.

─기긱

얼음이 약간 깎였고, 다시 단검을 들어 올려 내리쳤다.

한설화에게닿을 때까지.

“설화야!”

그 어느 때보다 한설화를 크게 불렀다.

하랑에 있을 때보다. 숲에서 만날 때보다. 더 크게.

얼음이 깎여나갈 수록  속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그만두겠어,’

너도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잖아. 죽고싶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잖아.

그저 사람에게 웃고 우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잖아.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이 많은 사람. 다른 사람을 조금더 이해하고 싶은 사람.

한설화는 늘 자신보다 남을 챙겼다. 자신이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배려하고 있었다.

‘그냥 너를 보고 싶어. 그대로의 너를.’

“이 마음은 변치 않으니까. 계속 유지할 테니까.”

그러니까.

“내 목소리를 들어줘.”

‘뒤를 돌아봐서 다시 나를 봐줘. 앞만 보고 있지 말고.’

“혼자가 아니야.”

─깡!

주위를 살펴봐. 어떤 것이 너의 것인지 잘 살펴봐.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단점만 생각하지 말고. 장점만을 생각해봐.’

─깡!

“자기 의심에 사로잡혀 고통받지 말고. 단점을 모두 내려놓고.”

‘이제 나를 봐줘. 주위를 둘러봐 줘.’

“내말을! 한 번만 믿어줘.”

이렇게 얼음에 갇혀있지 말고.

─기긱

‘한 번만 더.’

한 번이면 되는데. 이미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에 닿아있던 무릎부터 손까지 모두 얼어붙었다.

여기서 더 간다면 얼음 동상이 될 것 같았다.

웅크린  자고 있는 한설화를. 마지막  번을 남겨두고.

‘움직여.’

움직이라고 소리쳐도 이미 몸은 얼어붙었다. 이미 의지로 움직일  있는 구간은 지나갔다.

‘마지막 한 번을 남겨두고.’

또 포기해야 되는 걸까.

“비켜.”

유은설이 주저앉아있는 김세연을 들어 올려 문으로 던졌다.

바닥을 구르며 얼어붙은 부분이 부서지자마자 입을 열었다.

“안돼!”

유은설.

“너랑 똑같은 마음이야. 이젠… 이젠 일어나줘.”

그녀의 검이 얼음을 내리치자 반으로 갈라져서 한설화의 모습이 방 안에 드러났다.



**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그렇지만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밖이 어떤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이 따뜻한 얼음 속을 나가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나를 반길까.

악의가 가득 찬 세상?

아니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

눈을 뜨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설화…야?”

유은설이 나를 불렀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안녕.”
“내가 알고 있는 설화 맞지?”
“응. 맞아.”

방 안에 유은설을 제외하고 김세연도 보였다.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자 눈이 동그래졌다.

“정상…  거야?”
“응. 물론, 정상이지.”
“진짜?”
“응.”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김세연에게로 걸어갔다.

“왜…?”

김세연이 가지고 있는 단검을 집었다. 잘 보니 날이 조금 무뎠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설화야… 그건 왜?”

다시 유은설에게로 향했다. 지금 이 방 안에 온전히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둘은 주저앉아 움직이는 나를 쳐다볼 뿐.

앉아있는 유은설 앞에 살포시 앉아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단검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유은설의 손을 들어 올려 내 심장을 찔렀다.



**

유은설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설화가 깨어나 여기저기 움직이더니 자신의 손에 단검을 쥐여줬다.

그런 다음 심장을 찔렀다. 지금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이 불쾌한 감각은 꿈이 아니었다.

끈적끈적한 피가 흘러나왔다. 싫고, 메스껍고, 거슬리는 이 감각은 자신을 괴롭혔다. 그리고 한설화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왜. 죽이려고 깨운 거 아니었어?”
“아니야. 왜…”

유은설은 한설화가 정상적으로 되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심장에 단검을 꽂고 있는 한설화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크게. 미친 듯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웃음이 아니었다. 정말로 행복해서 나오는 웃음. 하지만, 지금 그 웃음은 비정상적이었다.

“왜. 이게 네가 원하던 게 아니었어?”

─푸욱

한설화는 손에 힘을 주며 자신의 심장을  깊게 찔렀다. 그러면서도 아프지 않은지계속 검을 돌렸다.

유은설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오면서 힘이 너무 많이 빠졌다. 한설화의 힘에 휘둘리며 그의 심장을 도려내고 있었다.

“싫어. 싫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정신 차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여?”
“자기 심장을 도려내는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잖아.”
“그건 누가 정하는 건데? 네가? 그냥  죽여줘.”

한설화는 유은설의 귀에 속삭였다.

“그게 나를 위한다면 해야 할 일이니까.”

방금까지 짓고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누구보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했다.

그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고, 눈은 반쯤 감은 채 자신을 응시했다.

“왜.  죽으려는 건데.”
“사는 것이 죽음보다 무서우니까. 잠에서 깨웠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그리고 그런 둘 사이에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안돼. 설화야 죽지 마.”

그를 껴안으며 단검을 빼내 치료를 해줄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유은설은 김세연의 등장을 반겼다.

그녀라면 충분히 한설화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으니까.

“뭐해?”

그런 김세연의 행동은 한설화가 조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유은설이 생각하는 상황과 다르게 흘러갔다. 김세연의 마력이 흘러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낫지 않았다. 피가 조금 멎었을 뿐.

이대로 간다면 한설화는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표정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게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그리고 유은설과 김세연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설화가 죽는 모습을 처량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김세연은 자신의 마력을 전부 사용해 치료해보지만, 한설화의 상처는 전혀 낫지 않았다.

유은설은 멍하니 앉아 자신이 찌른 심장을 쳐다봤다. 얼음 위로 피의 웅덩이가 형성되었고, 무력하게  모습을 쳐다봤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보이는 건 이런 것뿐이었다. 자신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없는걸까.

저번에도, 사실 자신의 힘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앞에 있는 한설화가 도와줘서 이루어낸 일일 뿐이었다.

그저 자신은 꿈을 꾸고 있을 뿐이었다.

허황한 꿈. 한설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멍청하고, 어리석고, 우둔하고, 바보스럽고, 미련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주저앉아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김세연은 마력을 다 사용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쓰러졌고, 그녀를 온몸을 이용해 받았다. 한설화가 죽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그 여자가 자신한테 준 반지는 대체 무슨 뜻일까. 이것을 이용해서 한설화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반지의 능력을 사용해도 아무효과도 없었다. 사용할 곳이 아니라는  사용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한설화가 고개를 숙였다. 죽음이 다가온 줄 알았지만, 다른 상황이 찾아왔다.

그녀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 이 상태에서 죽음에 달하면 이상한 형태로 변한다.

한설화의 숙여졌던 고개가 다시 들어 올려졌고,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한기가 자신을 덮쳤다.

한설화의 상태는 더 이상 정상이 아니었다. 방금과 달리 눈에는초점이 잡히지 않았고, 뒤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그것이 연결책이라는 듯.

‘연결책?’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무릎을 딛고 일어났다.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 여자가 원한 시나리오라면.

자신은  번이고 밟고 일어서 줄 것이다. 한설화를 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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