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2부. 설화(雪花) (106/120)



〈 106화 〉2부. 설화(雪花)

자신에게 업혀있는 김세연을 구석에 내려놓았다. 문이 뜯어질  두들겨지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렸다.

김세연이 여기까지 만들어왔다면, 자신이 이제 한설화를 구해야 했다.

검을 들었다. 자신과 함께한 검. 검의 중앙에는 한설화가 준 조각 두 개가 박혀있었다.

자신의 힘에 공명하듯조각이 밝게 빛났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이 꿈이라면.”

그 꿈을 실현하면 돼.

유은설이 쥐고 있는 검에서  다른 검이 하나 빠져나왔다.

푸른색의 마력이 빛나고 있는 검. 그리고 유은설의 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한기에 대항하듯 붉은색의 마력이 검에 둘렸다.

‘저번처럼 기적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구할 수 있어.”

불타는 검을 들고 한설화에게 쇄도했다.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쇄도하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자 얼음 창이 만들어져 자신에게 쏘아졌다. 주위를 돌아다니는 푸른색의 검으로 창을 막고, 자신은 계속해서 한설화에게 달려갔다.

‘목표는 설화 뒤에 마법진.’

저것이 맞다면. 자신의 반지를 활용해 부술 수만 있다면.

허황한 꿈이라고 욕해도 좋다. 자신은 그걸 품고 달릴 것이다.

“한설화!”

그에게 다가가기 전 크게 외쳤다. 그 외침에 놀랐는지 자신에게 여러 개의 얼음 창들이 쏘아지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의 주위를 돌아다니는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검을 이용해 창을 막자 그의 표정에는 당황함이 한껏 담겨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설화는 그렇지 않았어.”

이미 그의 정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한설화가 아니었다.

검을 높게 들어 베었다. 한설화의 목이 아닌, 뒤에 있는 마법진을.

자신의 마력과 마법진의 마력이 만났다. 하지만, 전혀 부서지지 않았다.

─끼이이익!

이상한 소리만 날 뿐. 전혀 피해는 없었다. 그런 틈을 두고 한설화는 자신의 뒤를 찔렀다.

주위를 날아다니던 검이 한설화의 공격을 막았고, 유은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눈을 떠.”

‘나는’

“멍청하고.”

─콰직

“어리석고.”

유은설이 끼고 있던 반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둔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비웃을 것이다. 너 같은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목표가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은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것이다. 자신이 옳았다고.

유은설에게 한기가 몰아쳤지만, 검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찍었다.반지의 힘을 빌려 천천히 부서지고 있는 마법진을 향해.

주위에 떠다니는 검을 이용해 창을 막고, 한기는 맨몸으로 버티며.

“혼자서는 못해.”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자신 혼자서 해온 일은 없었다.

목숨이 위험했을 때도 있었고, 자신이 이상한 선택을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무기력하고. 약하고. 무능력해.”

‘그러니까 네가 필요해.’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다, 당장이라도 미안하다고 외치고 싶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신에게 했던 말들의 진의를 알고 싶었다. 그가 오랫동안 고통받아왔다면 그것마저도 공감해주고 싶었다.

한설화가 깨어난다면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오순도순하게.

 죽고 싶어 하는지도 알고 싶었다.그에대해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자신은 무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이없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싶었다.

‘너를 향한 감정이 무엇인지. 네가  그랬는지.’

‘네가 나를 구해줄  어떻게 생각한 지도  모르겠어. 그냥 고맙다는 감정 하나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러니까.

“나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포기하지 마.”

─콰직

검이 마법진의 반까지 도착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다.

과연  행동이 옳은 것일까. 이것을 부순다면 한설화가 죽는 것이 아닐까.

“뭐해! 계속해!”

자신의 상념을 깨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자 언제 일어났는지 문을 틀어막고 있는 김세연이 보였다.

‘왜 망설이는 거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나약함 때문인가.’

다시 정신을 바로잡고 검을 내렸다.콰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법진이 갈렸고, 점점 내려가던 검은 어느 한순간에 멈췄다.

“어?”

이상한 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반지의 힘은 사라졌다. 아무리 검을 내리쳐도 마법진은  이상 부서지지 않았다. 몇 센티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힘을 주어도 내려가지 않았다.

힘을 줘도  이상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조금만 더.’

정신이 흔들리자 한설화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배에 창이 하나 꽂혔다.

입 밖으로 피가 튀어나왔지만, 검은 놓지 않았다. 여기서 놓으면 모든 것이 다 끝이었다.

‘집중해.’

하지만, 어떻게?

이미 모든 수단은  사용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서 끝인 걸까.

늘 뒤처졌었지만, 끝까지 쫓아갔다고 생각했다. 꿈을 좇아 끊임없이 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하나씩 부족했다. 무언가 하나가 부족해 죽을 뻔했고, 실패할 뻔했다.

그것을 늘 채워주던 것은 앞에  있는 한설화였다.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사람은 더 이상 없는데.

“야!”

김세연의 외침과 동시에 유은설의팔에 창이 하나 더 박히고 알 수 있었다.

이제 한 손으로밖에 검을 휘두르지 못하지만, 깨달았다.

언제까지고 남에게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유은설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시전한 마법을 생각해냈다. 한설화를 되찾기 위한 마법을.

“우리가 함께한 순간은… 아직 남아있잖아.”

너와 같이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그 마법에대해 연구했을 때도. 새로운 마법을 배웠을 때도. 너에게 새로운 마법을 보여줬을 때도.
함께였잖아.

‘너를 구하기 위한 마법도 있어.’

전보다 더 커다랬고, 온갖 마법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실패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확률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실패하지 않을 테니까.

‘설화, 네가 왜 가면을 썼는지 모르겠어.’

“나한테 정체를 숨긴 이유도 모르겠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두 가지의 모습이 무엇이 되었든 속의 내용물은 동일하다는 것을.

마법이 깃들고, 검을 내렸다. 강하게. 세게.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실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이제는 내가 구해줄게.”

─콰직!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마법진이 흩어지며 흰색의 눈이  안에 내렸다. 눈은 방 안에 있는 나무들과 꽃에 내려앉았다.

방문이 두들겨지는 소리와 다르게, 천천히, 서서히. 눈송이가 나뭇가지와 꽃에 앉기 시작했다.

나뭇잎도 없이 휑하니 있던 나뭇가지에 꽃이 열렸고, 꽃에는 새로운 꽃이 덮어 씌워졌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고, 빌런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은설은 나뭇가지와 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설화(雪華)다.”

이 아름다운 방 안에.
설화(雪華)가 만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