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3부 (108/120)



〈 108화 〉3부

“나온다. 준비해.”

루시아가 나한테 외쳤다. 앞에는 마기가 울렁거리며 게이트가 생성되었고, 검은색의 마기가 뭉쳐 점점 게이트의 형체를 갖추었다.

형성된 게이트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큰 뿔이었다. 뒤이어 머리가 게이트 틈을 비집고 나오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족히 빌딩은 되는 크기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긴장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안전하기 때문에 루시아와 둘이서 온 것이다. 지금 움직이지 못하는 마수를 잡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뭐해. 새로운 능력 시험한다며.”
“아… 네.”

바람 제어. 바람을 제어할 수 있다는간단한 설명뿐이었고, 적에게 사용해  적은 없었다.

혼자서 연습을 해봤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활시위를 놓았다.

화살을 하나쏘아 보내고, 정신을 집중하자 바람의 흐름이 느껴졌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바람도 비슷했다. 일정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바람을 느끼며,  화살의 뒤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화살은 바람을 타고 적의 머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마력이 실린 화살은 마수의 피부를 꿰뚫고 들어갔다.

─푸욱

“캬아아아악!”

마수가 울부짖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다음 화살을 쏘았다. 마수의 몸이 반쯤 뽑혀 나왔을 때, 이미 마수의 머리에서 검은색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눈은 기능을 상실했는지 눈동자가 하얗게 물들어있었다.

“키이익… 키익…”

괴성을 내뱉는 마수의 머리에 모든 마력을 담아 쏘자, 눈에 생기가 사라졌고, 발버둥 치는 머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마지막 화살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는지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괜찮은데?”

루시아는 마력을  사용해 지친 나에게 다가왔다. 원래 이번 마수를 잡는 사람은 루시아였다.

새롭게 개화한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나한테 넘겨달라고 했고, 루시아는  것도 없다며 나를 따라왔다.

한 번 사용해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실전에서 쓰기는 어렵겠네.’

이번 마수는 게이트에 껴서 움직이지 못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움직임이 자유로웠다면, 힘든 싸움이 이어졌을 것이다.

“아직은 조금 힘드네요.”
“그러면 쉬운 줄 알았어?”

그녀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던전 속 던전. 예언자의 말에 따라 마수가 나오는 곳으로 미리 이동해 마수를 퇴치하는 임무.

이미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가끔 따라가서 사냥을 구경했을 뿐, 직접 잡는 건 처음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이걸 매일 하신다니.”
“매일은 아니지. 다들 가끔가다가 한  할 뿐이야.”

각지에 흩어진 길드원들이 통보를 받아 마수를 해치우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국 주위에 열려서 나도 따라왔을 뿐이었다.

“또 갈 거야?”
“네. 여기 오느라 오래 자리를 비웠으니까요.”
“그래. 그러면 나중에 보자.”

던전에서 나온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역시 배정받은 일을 하러 가야 했다.


**




 멀리 유은설이 보였다. 마수를 잡는 일에서 일상으로 되돌아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다시 유은설을   있다는 것 때문인가.’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자리를 비울 때 유은설을 감시한 사람과 마주했다.

“없었어.”
“감사합니다. 이제 무슨 일 하러 가세요?”
“의뢰.”
“하하.”

그녀는 짧게 대답하며 짐을 챙겼다. 유은설 주위에는 늘 길드원이 한 명씩 붙어 다녔다.

유은설이 목숨이 위험하면 나타나 구해주는 것이 임무였다.

그런데, 사실상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었다. 소설 속에서도 대부분 유은설이 해결해 나갔고, 길드 쪽에서는 목만 안 잘리고 숨만 붙어있으면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건 또 신기하네. 숨긴  있는 건가?’

유은설을 보는 모습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녀의 인지 범위 밖에서 감시하고 있으니까.

‘스토커 같긴 하네.’

물론, 알려진 사실로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약간 꺼림칙했다. 내가 한 행동들도 그들에게 감시당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쟤는 대체 왜 같이 보고 있는 거야?”

어느덧 짐을 다 챙겨 나갈 준비를 하던 그녀가 나에게 물어왔다.

“김세연이요?”
“우리 감시 대상이 아니잖아.”
“그냥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피해가 가는  아니잖아요?”

길드에 들어  것도 루시아의  덕분에 가능했다. 처음에는 엄청 반대했다고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한테는 무력이 부족했다. 루시아와 뜻을 같이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A급 이상이었다.

그에 비해 현재 나는 C급 헌터 수준밖에 안 되었기에 반대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런 의견을묵살하고 받아들인 것이 루시아였고.

그래서 되도록 그들의 규칙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김세연의 감시 정도는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수준이기에 다행이지 피해가 간다면 아예 포기했을 것이다.

‘김세연이 유은설과 같은 길드로 실습 나와서 다행이었지.’

원래 이 시점에서 유은설과 김세연은 다른 길드로 실습을 나간다.

소설과 달라진 이유는  때문인 걸까.

“그것보다 조심해.”
“네?”
“요즘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고위 헌터가 같이 들어가는 것 같으니까. 나도 저번에 들킬 뻔했고.”
“네. 걱정 마세요.”
“넌 들키자마자 죽을  있으니까. 명심하라고.”
“고마워요. 걱정해줘서.”

그녀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분명히 따뜻함이 담겨있었다.

실제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으니 주의를 주는 것 같았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대외적으로 고위 등급의 헌터였지만, 나는 현상금이 걸린 빌런에 불과하니까.

그녀는 툴툴거리면서 문밖을 나갔고, 나는 창밖을 쳐다봤다. 깊은 밤이 찾아왔음에도 유은설과 김세연이 의자에 앉아 종이 뭉치를 내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도 매일같이 밤에 만나 정보를 교환하곤 했다. 같은 길드로 실습 나온 이유도 저것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저번에 슬쩍 내용을 훔쳐보려고 투명화를 쓰고 다가갔다가 들킬 뻔했다.

‘소용없을 텐데.’

나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 차 있는 종이를 보고 약간 눈물이 핑 돌았었다. 그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취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몸을 숨겼고, 대외 활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이렇게  줄은 몰랐는데.’

마법 학교가 나 때문에 수중에 오르고, 소피아는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소피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라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니면 나를 싫어하려나? 나 때문에 거의 건물이 반파되었으니까.’

모습이 보이면 바로 죽여도 된다는 공지까지 내려왔다고 들었으니, 모습을 보이면 바로 죽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 떄문에 길드에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렇게 멀리 쳐다만 봐도 괜찮으니까.’

언제쯤 만날 수 있으려나. 이제 그녀들을 감시하는 게 내 업무였기에 지켜만 봐도 주위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김세연과 유은설이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침대에 누웠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생각도 해봐야 했다.

고위 헌터가 그녀들과 같이 들어간다는 소리는 곧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거니까.

‘내가 가진 장비랑 길드에서 준 장비를 같이 사용하면 들킬 일은 없을 테고.’

역시 예정대로 흘러가려나.

고위 헌터의 배신.

김세연도 같이 있어서 똑같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틀릴 일은 없을 것이다.

유은설이 실습을 나간 길드에 김세연이 따라온 것뿐이지 유은설이 실습 나간 길드는 소설과 똑같았으니까.

배신하는 헌터는 아내가 크게 다쳤고, 살릴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말에 낙담한다.

그 사정을 알아낸 빌런 집단이 그를 회유하기 시작했고, 헌터는 아내를 살릴 수 있다는 빌런의 말에 넘어가 버린다.

빌런에게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던전에 같이 들어간 헌터를 모두 죽여버리고, 빌런 집단에 합류한다.

그 사건이 유은설이 합류한 실습에서 일어난다는 게 문제지.

유은설은 끝까지 항전하지만, 결국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고, 살기 위해 절벽 끝으로 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성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처절한 생존 극이 벌어질 뿐이다. 먹을 것이 없어 풀을 뜯어 먹으며 목숨을 부지하고, 물을 잘못 마셔 토를 한다는 묘사도 있었다.

‘개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원래 소설에서는 도움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었다.

길드에 들어왔으니까, 나도 유은설을 방치해야 하는 걸까.

쉽사리 대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에 일단 눈을 감았다. 그녀들이 깨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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