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3부
앞에서는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회의 중이었다. 이번에 일어날 사건에 관해 이야기 중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아는 일이 아니라 입을 꾹 다물고 결과만 기다렸다. 소설 속 유은설이 이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보다 유은설과 김세연은 잘 갔을까.
두 갈래 길에 모두 식량을 두었지만, 제대로 발견했는지 잘 모르겠다.
‘발견하는 것까지 보고 왔어야 했나.’
불안했다. 원래도 잘 빠져나왔지만, 사람이 두 명으로 늘어난 만큼 어떤 변수가 존재할지 몰랐다.
‘갑작스럽게 괴수를 만난다든지, 다시 빌런이 들어온다든지.’
불안함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결과를 기다렸다.
길드원을 전부 소집한 걸 보니 사건의 개입은 확정인 것 같았다. 여기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중요한 거지.
그들에게 나는 중요 전력이 아니었다. 그저 예언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일 뿐.
시끄러웠던 말 소리가 조용해지고, 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나왔다.
이렇게 보니 길드에 인원은 꽤 많았다. 비밀결사처럼 10명도 안 될 줄 알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20명 정도 되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인원이었지만, 개개인의 무력이 모두 A급 이상이라는 점에서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어떻게 됐어요?”
여기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루시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도 있긴 한데, 별로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한 명은 예언자였고, 한 명은 원래 유은설을 감시하던 사람이었는데, 둘 다 말을 걸기에 조금 껄끄러웠다.
물론, 통역 마법을 걸고 대화를 나눠도 가능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개입하기로 했어. 이대로 간다면 무조건 죽을 테니까.”
“그래요?”
“S급 마인이야. 너도 준비해.”
“저도요?”
나는 그냥 가라고 할 줄 알았다. 그만큼 내가 있어봤자 별로 도움이 될 것은 없었다.
내가 갸우뚱하며 의문을 드러내자 그녀는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유은설은?”
“지금은 던전에 갇혀있어요. 아마 탈출할 수 있을 거예요.”
루시아는 이미 나에게 상황을 들었기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너는 딱 이것 하나만 명심해.”
진지한 말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뒤이어 들린 말에 맥이 빠졌다.
“도망쳐.”
“네?”
“그냥 도망치면 돼. 물론, 엑스칼리버 주인은 들고.”
“아…”
도망치라는 소리에 어이없게 입에 있는 숨을 내뱉을 뻔했지만, 뒷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자신들은 싸움에 참여하고,나한테 후방을 맡기려는 생각 같았다.
이동용 유물을 꽤 많이 들고 있었기에 잡히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많이 강한가 봐요?”
“그렇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세력을 키웠으니까.”
“하하…”
아마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빌런들이갑자기 달라졌다면 그 이유는 내 개입 외에 없었으니까.
멋쩍게 웃으며 이 상황을 대충 넘기려고 했다.
“그것보다 머리카락 색은 아직 안 빠지는 거야?”
“아… 이거요? 그러게요.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이것도 예뻐. 걱정하지 마.”
“고마워요.”
그녀는 내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집어 배배꼬며 이야기했다.
루시아의 눈에는 예뻐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여기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준비하러 가야지.”
루시아가 가면을 쓰면서 나가는 모습은 꽤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
“뭐 하세요?”
아직 안 나가고 있는 예언자에게 물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많이 안 해봤지만, 이곳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보니 말을 안 걸 수가 없었다.
“됐어. 신경 꺼.”
“아… 그럴까요?”
까칠한 대답에 고개를 돌려 바깥을 살폈다. 이미 길드원들은 모두 흩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영국의 아카데미에는 수상한 사람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아카데미로 접근하는 수상한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급하게 아카데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야.”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너는 긴장 안 돼? 너 정도라면 공격 한 번에 죽을 수 있잖아.”
“음… 모르겠어요.”
“몰라?”
“네. 사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자신도 어떤지 잘 모르잖아요.”
나도 그랬었고.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깨닫고, 주위의 상황을 살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약간 무섭지는 않아?”
“무섭죠.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해야 해? 왜?”
“아… 아니에요.”
그녀에게 모든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사실 너한테 별로 큰 기대는 안 했거든. 나를 살리겠다는 것도 잘 모르겠고.”
“으음… 사실 그건 정말 잘 모르겠어요. 될지안 될지 모르겠거든요.”
“……상관없어. 내 이름 아직 모르지? 스쿨드라고 불러.”
“아… 저는 한설화라고 해요.”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나도 이름을 밝혔다.
사실 그녀가 한국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루시아는 한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전형적인 외국인의 외모를 띄고 있었으니까.
“나를 처음으로 주워온 사람이 루시아고, 알려준 게 한국어니까 할 줄 아는 거야.”
“아…”
“그냥 표정 보면 뻔해.”
스쿨드는 피식 웃으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피식 웃었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아마… 자기 목숨 때문이겠지.’
그녀는 아마 다른 사람들과 깊게 연을 맺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전부 이해한다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대충 알고 있었다.
사람이 자신의 죽을 날을 안다는 것에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내색하지 못하겠지만, 그녀의 마음속도 싱숭생숭할 것이다.
그래서 쉽사리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아마 나한테 말을 건 것도 큰 결심이겠지.’
그래서 더는 다가가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로 그녀와 깊은 연을 맺었을 때, 죽는 모습을 본다면 그것만큼 슬플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직은 괜찮으니까.’
밖에서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싸움은 진행되고 있었다.
화염이 건물로 쏘아졌고, 그로 인한 여파가 아카데미까지 미치고 있었다. 몇몇 군데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죽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위 헌터들끼리 싸운다면, 건물이 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건 더 상상을 초월하네.’
그들이 한 번 부딪힐 때마다 건물이 하나씩 날아갔다.
이제 옷을갈아입고 나도 밖으로 나갔다. 슬슬 나가야 할 시기가 다가왔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아카데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내 목표는 카야였다.
그녀를 지키려는 이유는 아마 변수를 하나라도 늘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정상적으로 성장만 한다면, 유은설과 비등할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으니까.
아카데미에 진입하자 이미 불로 휩싸인 건물들이 나를 반겼고, 그에 대항하는 교관들과 생도들이 보였다.
‘확실히 비정상적이네.’
이런 규모의 숫자는 악마가 개입했음을 틀림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의 숫자를 갖추고 있을 리가 없었다.
천천히 진입하자 저 멀리 흰색의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생도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유하며, 침입한 빌런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 쪽에 모든 빌런이 모여 있었고, 전부 그녀에게만 모여드는 덕에 점점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주위에 같이 있는 생도들도 힘을 내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왜 나보고 도망가라고 했는지 알겠네.’
길드원들이 고위 헌터를 맡는다고 해도 밑에 있는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들이 빌런을 죽이는 동안 버티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였다. 더군다나 영국의 지원군도 올 테고.
시간이 지나고, 그녀 옆으로 이동했다.
이미 몇 차례 번걸아 가며 적을 상대한 사람들에게 체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카야도 마찬가지로 뒤쪽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나는 뒤에 앉아 쉬고 있는 카야를 들고, 원래 있던 자리로 순간 이동했다.
힘이 빠졌는지 내 힘에 반항하지 못하게 품에 쏙 안겨있었다.
“you..”
통역 마법을 걸고,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도망가죠.”
어차피 그들의 목표는 카야였다. 목표가 사라지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카야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아카데미 밖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