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3부 (112/120)



〈 112화 〉3부

“허억… 허억.”

뒤에는수십 명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저기… 나 이제 걸을 수 있어.”

카야는 내 품에서 말했지만, 지금 그녀를 놓고 같이 달릴 시간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같이 도망간다는 보장도 없었고.

내 뒤를 쫓고 있는 빌런들은 달리며 창과 검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그런 냉병기들이 살과 옷에 스치며 생채기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쭉 달렸다.

 멀리 보이는 싸움의 현장으로 향해 눈을 슬쩍 흘겨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팽팽했던 싸움이 일방적인 싸움으로 변해있었다.

루시아의 불이 검은색의 마기를 집어삼키고 있었고, 마기는 점점 수그러들고 있었다.

“저기!”
“기다려.”

슬슬 지쳐 속도가 떨어지는 나를 따라잡는 빌런이 생겼고, 뒤편에서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끝이 살짝 베였고, 옷이 검을 휘감아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이 뒤편으로 쏠려 앞으로 쓰러졌다. 쓰러짐과 동시에 앞으로 순간 이동했고, 적들과 거리가 떨어진 곳에 안착했다.

그녀를 내려놓고 손을 잡고뛰었다. 앞으로 몇 분일지는 몰라도 상황이 종결될 것이다.

빈 손에 카두케우스를 잡았다. 여차하면 이것을 써야할 수도 있었다.

“같은 아카데미 애들도 구해야 해요.”

그녀는 뛰면서 나한테 말했고, 나는 그 의견을 바로 묵살했다.

당장 남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무리였기에 대부분의 빌런이 우리를 쫓고 있었다.

“되겠어?”

내가 되묻자 그녀도 깨달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녀가 먼저 앞을 달렸고, 내가 뒤에서 그녀를 보호하며 달리고 있었다. 카야를 내려놓았음에도 빌런들은 금방 우리를 따라잡았다.

‘당연한 건가.’

애초에 나보다 빠른 빌런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안 잡힌  기적이었지.

“도망치기만 하면 돼. 죽지만 않고.”

뒤를 바라보자 빌런들끼리 서로 발이 꼬여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같은 편이 날린 냉병기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수가 줄지도 않고, 우르르 몰려 카야를 쫓아왔다.

내 앞을 달리던 카야의 위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고, 빠르게 달려가 그녀를 밀고, 지팡이로 급하게 땅을 세 번 내리쳤다.

‘여기서 쓸 게 아닌데.’

시간이 느려졌다. 내 속도와 동체 시력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했음을 느꼈다.

‘신기하네.’

처음 사용했기에 주위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정신을 차려 넘어지려는 카야를 잡아 앞으로 달렸다. 10초 정도 지난 시점에서 뒤에서 칼이 땅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

카야는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는지 김빠진 소리를 내뱉었고, 나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달려.”

어차피 이제 다 도착했다. 뒤에서 여러 능력들이 쏘아졌지만, 마법으로 격추했고, 도착할 수 있었다.

마기를 내뿜던 빌런은 도망쳤는지,  멀리 혼자 있는 루시아가 보였다.

루시아도 나를 찾았는지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자,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질 수 있었다.

그녀 주위에 도착하자 온몸에 힘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으며 루시아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고생했다.”

카야는 내 손에 이끌려 그녀 옆에 주저앉았고, 이해가 가지 않은 듯 루시아와 나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




루시아를 보고 바로 도망친 빌런도 있었고, 우리를 보고 달려오다가 장렬히 전사한 빌런들도 생겼다.

루시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불타는 건물들과 식물들이 즐비해 있었고, 카야는 루시아를 보고 황당해하고 있었다.

“돌아갈까.”

루시아는 정리가 끝난 상태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런 손을 잡으려는 순간 카야가 내 옷깃을 잡았다.

“당신… 맞지?”

중간은 중얼거려서 못 들었지만, 내 정체를 어림짐작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검지를 들어 가면에 가까이 올렸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낸  루시아의 손을 붙잡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



처음 만났던 방 안에는 전투를 끝내고 들어와 있는 길드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도 힘겹게 뛰고 왔는지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음…  나갈까?”
“왜요?”
“아니야. 그것보다 이것 좀 걸쳐.”
“네?”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외투를 나한테 건네줬다.

방금까지 뛰고 와서 열이 풀풀 났음에도 그녀의 옷을 걸쳤다. 아니 정확하게는 덮었다.

방도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온도가 높았다. 당장이라도 벗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루시아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왜 나한테 줬는지 궁금해서 루시아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겼고,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옷 좀  입어봐.”
“아… 옷이요?”

그녀의 외투를 잠깐 들어, 내 옷을 살폈다. 달려오면서 나뭇가지에 의해 늘어난 상태였고, 공격으로 인해 조금 베어져 속살이 보였다.

‘아…’

내가 어떤 상태인지 곰곰이 생각하자 여자가 몸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나한테 덮어준 외투도 어떤 의미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근데 저 옷이…”
“기다려.”

그녀는 잠시 나를 내버려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루시아가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스쿨드가 밖으로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조금 극성이지?”
“저를 걱정해주셔서 하는 거니까…”
“나도 저랬어. 처음에는 워낙 뭐라고 하더니 이제는 건들지 않더라고.”

스쿨드도 내 옆에 앉아서 술술 루시아와 있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정말로,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는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낯설었다.

소설 속에서 루시아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정말로 딱 중요한 이야기만 하고, 물러가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쿨드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말하고 있는지 의심이  정도였다. 스쿨드의 말을 끊고, 문이 열리더니 루시아가 나한테 옷을 내밀었다.

“자. 입어.”

그녀의 옷을 받아들고, 외투를 벗은 뒤 옷을 벗으려고 했다.

“자… 잠깐.  돌아.”
“아. 맞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옷을 휙휙 벗어 던지는 것도 그랬다.
당장 루시아의 얼굴이빨개진 상태였고, 스쿨드의 얼굴을 꽉 붙잡은 상태로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나서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제 보셔도 돼요.”
“너는 그렇게 옷을 막 벗냐. 루시아가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실수에요. 그리고 그럴 사람…”

갑자기 말이 턱 막혔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입은 꿰매진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그 둘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루시아는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한부인 스쿨드도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둘은 목숨을 걸고, 멸망을 막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내가 말을  맺히지 못하자 둘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죄송해요.”
“괜찮아. 여자는 모두 짐승 맞다니까. 얘도 이래 보여도 갑자기 너를 덮칠 수도 있고.”
“나보다는 루시아가 더…”

루시아는 나를 이해하며, 스쿨드를 언급하며 분위기를 환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쳤다는생각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스쿨드도 농담을 받으며 침울하게 이어나갈 뻔했던 분위기를 바꿨다.

“알고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루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전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손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뒤로 피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무의식에 박힌 생각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오는 것일까.

쉽사리 답을 내릴  없는 질문에 루시아에게 말했다.

“그…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올게요. 이만 가볼게요.”

허공에서 카두케우스를 꺼내 땅을 한 번 내리쳤다. 뱀들이 나를 휘감았고, 뱀이 눈을 가리자 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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