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3화 〉3부 (113/120)



〈 113화 〉3부

“마음이 뭔지는 알겠는데, 조금 조심하는 게 어때?”

스쿨드는 한설화가 사라지자마자 루시아에게 말했다.

그녀는 루시아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릴  헤어졌던 남동생과 한설화를 겹쳐보고 있는 것 같았다. 루시아의 남동생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한설화와 똑같은 나이였으니까.

나중에 힘이생긴 뒤 헤어졌던 남동생을 찾았지만, 좋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루시아도 그것을 같이 보았고.

한설화에게 신경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너무 한설화를 과보호하고 있었다.

옷차림 같은 경우는 한설화가 너무 무방비했지만, 다른 점에서는 신경 써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쟤도 그래도 성인인데, 너무 마음 주는 거 아니야?”
“하아…”

루시아는 난간에 손을 짚고 깊은숨을 내뱉었다.

“나 죽고 나면 쟤랑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너…!”
“알잖아. 이제 일 년도 안 남은 거.”

겉으로는 일 년이 넘게 남았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오직 루시아만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사실 스쿨드가 한설화에게 말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자신이 떠나면 루시아를 부탁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루시아가 마음을 터놓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한설화가 들어옴으로써 그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똑같았지만, 루시아의 분위기가 유독 밝아졌다. 자신의 수명이 점점 짧아질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한설화랑 같이 돌아온 날에는 그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루시아는 정적을 깨고 스쿨드에게 말했다. 예전에 한설화가 이야기한 내용이었다.

“아직 희망이 있기는 하잖아.”
“된다면 좋겠지… 근데 자기도 잘 모르겠데.”
“응?”
“방법은 있는데, 확실한 건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루시아의 얼굴에 잠깐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래도 믿어야지. 몇 년간 찾아다녔는데 효과 보인 것도 하나도 없었잖아.”
“푸흣… 언제부터 그렇게 사람을 믿었데.”

루시아가 사람을 믿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을 자신의 부하로 다루며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행동을 보며 스쿨드는 한 번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건 좋은 징조였으니까.
나쁜 쪽으로 나빠진 것이 아니라,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좋은 쪽이었다.

“그래도 쟤도 어린 애는 아니라는 걸 인지하라고. 남동생이랑 너무 겹쳐보지 말고.”
“알고 있어. 그냥… 조금 걱정되는 것뿐이야.”
“먼저 들어간다.”

**

“후우…”

루시아는 난간에 엉덩이를 기대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스쿨드가 말한 것 중에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한설화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 것도 맞았다.

스쿨드를 데려온 것도 단순히 우연이었다. 루시아도 타지에 떨어져 혼자 살아갈  한 명을 더 데리고 산다는  미친 짓이었으니까.

동생이 생각나서 거지였던 스쿨드를 집에 데려와 말을 가르쳤다. 자신도 말이 서툴렀기에 익숙한 한국어를 가르쳤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한설화도 스쿨드랑 똑같았다. 단지, 성별조차 똑같아서 조금 더 마음이 기운 것뿐이었다. 그래서 남동생을 대하듯 행동한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한설화가 그런 행동을 취할 줄은 몰랐다.

‘내가 조금 과했나.’

전에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을  아무 반응이 없기에 가끔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스치는 기분과 남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꽤 기분이 좋았으니까.

어깨도 툭툭치며 격려도 했고, 여러 가지를 챙겨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당황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김없이 자신의 손길을 수락할 줄 알았지만, 몹시 놀라며 손길을 피하는 모습은.

‘겁에 질린  같았지.’

무슨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쉽사리 물어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자신은 그의 보호자가 아니었고, 너무 과보호해서는 안 됐다.

오히려 그런 트라우마는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좋았다. 남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면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자신도 그러했고. 남들도 똑같았다.

“나중에 온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남은 일을 정리하기 위해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






**





“우욱.”

토가 올라왔다. 이동으로 인한 이질감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역겨워서 토가 나왔다.

역겨움을 한껏 참아내며 토를 삼켰고, 빠르게 물을 찾았다.

입을 헹군 다음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눕자 어지러움과두통이 동시에 나를 찾아왔다.

그 일이 있고   처음이었다.

‘괜찮은  알았는데.’

호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약간만 회복된  같다.
완벽히 나았다면, 두통이 찾아올리도 없었다.

눈을  감았다. 지금은 그 무엇도 보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환각이 보일 것 같아서 무서웠다.

베개를 붙잡아 귀를  막았다.  무엇도 들리지 않게.

내가 루시아를 싫어하는 걸까?
아니다.

내가 싫어할 이유조차 없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갈  없는 나를 품어줬으니까.

그런데 왜?

그녀를 거부하는 걸까. 그녀도 분명히 나를 생각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분명히 믿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것을 헷갈릴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왜?”

정신에 잠재되어있는 행동이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 괴리감이 컸다. 누군가에게 쓰다듬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것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낀 적도 없었고, 오히려 쓰다듬는 행동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행동 중 하나였다.

‘내가 두려워할 이유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수가 없었다.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나를 비난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기 시작하며, 생성된 말들은 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추악하고, 멍청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나라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살아갈 뿐이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걸음을 힘겹게 나아갈 뿐이었지, 혼자서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바보였다.

‘미안하다고 전해야 하는데.’

제대로 사과도 못 전했는데. 나 때문에 둘이 고생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도 인사를 전하고 왔어야 했는데.

끊임없는 자기혐오가 나를 절벽으로 내몰았다. 혼자라서 특히 그랬다.

이불을 구석으로 던진 뒤 창문 밖을 살폈다. 유은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훨씬 안정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믿으며 유은설을 찾아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발견한 위치로 찾아가자 정확히 보였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같음에도 그녀가 갇혀있는 던전이 존재했다.

그리고 유은설을 대신해서 나를 찾아온 것은 환청이었다.

말소리가 아닌 비명이 계속해서 들렸다. 사람의 피육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며, 비명이 내 귀에 울려 퍼졌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온갖 물건으로 귀를 막아봐도 머리에 울려 퍼졌다.

남자와 여자의 비명이었다.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소리였다.

내가 죽였던 사람들.
그것도 내가 편의를 얻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

 사람들이 모두 내 귀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단편적으로 남은 기억들이 속속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카야를 살리느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치한 것도. 선량한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것도.

모두 내 책임 같았다.

“네 책임이야.”
“아니야.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분명히. 나는 최선을 다했어.

유은설도. 김세연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분명히 나를 보면 잘했다고 칭찬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정확히 너를 모르잖아.”
“……”
“외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거잖아. 네가 만약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안다면?”
“싫어.”
“소설 속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면?”

절대로,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려지면 안 되는 그런 비밀.

환청이 맞았다. 그들은 내 외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외모와 겉으로 하는 행동만을 보고.
마음속 생각은 전혀 읽지 못하고, 그들이 보이지 않을  한 행동도 모를 것이다.

핸드폰을 켰다. 무엇이라도 집중하고 싶었다.  비명을 이만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 눈에 띄는 것은 단 한 가지 기사였다.

[도심 한복판 20대  숨진  발견... 경찰 살인 용의자 현상수배]

 기사에 홀린  눌러보자 현상수배의 사진에는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왜…?”

분명히 이런 사건은 없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영상을 돌려보자 누구라도 그녀를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보였다.

‘이미경 교관이 왜 사람을 죽이고 다녀?’

미래가 변했다. 그것도 마치  때문이라는 듯. 내가 들어옴으로써 가장 처음 변화를 보인 사람이.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충격이 머리를 때렸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던 방의 풍경이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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