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3부
기억에 없는 방. 나는 그 방에 앉아있는 소년을 3인칭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소년이 나라는 자각이 존재했다.
사람 한 명 들어가기도 벅찬 방. 그리고 방문 앞에 서 있는 여자.
소년이 방을 나가려고 천천히 일어서자 소년보다 큰 여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소년을 쓰다듬었다.
소년은 가만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무언가 익숙한 손길. 부드럽고, 따뜻했다. 직접적인 감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
─지지지직.
그녀가 소년한테 무언가를 말함과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말한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소년한테 연필과 책을 주었다. 소년은 그 책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눈은 아래로 쳐졌고, 입꼬리는 올라가 누구보다 기쁨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안된다고. 저 책을 받지 말라고 누구보다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내 외침이 소년에게 전해질 리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소년의 마음은 나한테 전해졌지만, 내 마음은 그저 메아리처럼다시 나한테 되돌아왔다.
소년은 기뻐하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 그 비좁은 방으로 돌아가 책을 폈다. 여자는 문을 굳게 닫았고, 소년은 다시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이상했다. 소년의 웃음은 마치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사람 한 명 눕기 힘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다리를 문에 기댄 채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불편한 자세임에도 소년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의 세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책을 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첫 페이지에 있는 문제들이 허공을 떠다니기 시작했고, 소년은 답을 맞추기 시작했다.
소년의 시야에서 어두웠던 방은 어느새 밝아졌다. 문제들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스스로 자리를 찾아갔고, 새로운 문제는 다시 그의 앞으로 정렬했다.
소년은 앞에 온 문제의 정답란에 정답을 써놓고 다시 옆으로 보냈다.
페이지 수가 넘어갈수록 방은 점점 밝아졌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
소년의 세상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몇몇 문제들은 꽃을 이루고 있었고, 나무를 만들어냈다.
어두웠지만, 동시에 어느 곳보다 밝게 빛났다. 모순된 말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공간은 소년의 공간이었다.
소년은 눈을 감으며 자신의 세상을 넓히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내 심장은 누구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모르겠어.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지.’
심장이 뛰며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문에 기대고 있던 다리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동시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소년은 이제 떨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모든 문제를 맞혔지만, 책에는 정답을 하나도 적지 않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모든 정답이 있지만, 그것을 말해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소년의 상상을 남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까.
여자는 소년에게 다가왔다. 전과 똑같이 손을 뻗었지만, 소년은 누구보다 두려움에 잠겨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한 단어만이 내 머릿속에 전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따뜻함이 아닌 차가움이 느껴졌다. 서늘함이 소년을 감쌌다.
손이 소년의 뺨에 닿자 서늘함이 사라졌다.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이 올라왔고 동시에 내 정신은 하늘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