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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3부 (115/120)



〈 115화 〉3부

전 화에서 수정된 사안이 있어 삭제하고 이번 화에 다시 올립니다.
수정된 사안이 있으니 새롭게 보셔도 무난할  같습니다.

눈을 떴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눈에 내려앉았고, 환하게 비친  때문에 눈이 찡그려졌다.

머릿속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생각들과 귀에 들리는 끝없는 비명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을 듣기 싫어 외면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러던 중 방의 모습이 보였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닥에 널려있는 모습.

‘어제  짓인 걸까.’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물건들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꽃이 꽂혀 있는 꽃병은 아예 산산조각이 났는지 유리 조각이 바닥에 있었고, 평범한 가전제품과 식기구들도 바닥에 떨어져 먼지가 묻어있었다.

유리 조각은 조심스럽게 쓸어 종이로 감싸 버렸고, 먼지가 묻어버린 것들은 닦아 원위치에 다시 정렬했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와 이명 사이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가장 간단한 일부터.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작성했다. 저번에 했던 일부터 사과를 해야 했다.

[혹시 찾아가도 될까요?]

시차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를 한 통 보내놨다.
루시아는 깨어있는지 금방 답장이 돌아왔다.

[할 이야기 있어? 와도 상관은 없는데.]

그렇게 오니 대략 난감했다. 약간 시간을 두고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날아오니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루시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어서 와.”

그녀는 어제와 달리 평범한 집에서 나를 반겼다. 이 집에는 루시아와 스쿨드만이 살고 있었기에 평범하게 앉을 수 있었다.

찾아온 나를자리에 앉히며 차를 하나 내놓았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요.”
“굳이? 할 필요 없는데.”
“그래도요.”
“뭐 말이 막힐 수도 있지.”

그녀는 어제 일을 간단하게 넘긴 것인지 차를 홀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한 걸까.’

여기서 미안하다고 더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같아서 말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너무 내 얼굴에 꽂혀있어 물었다.

“아… 뭐 묻어있어요?”

원래였다면 신경쓰이지도 않았을 테지만, 둘이서만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약간 어색했다. 얼굴을 더듬으며 무언가 묻어있나 찾아봐도 손에 묻어나오는 것은 없었다.

“아니야. 힘든 일은 없지?”
“뭐… 굳이…”

마지막 봤던 기사가 생각이 났다. 이미경 교관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이 마음속에 뱀처럼 꽈리를 틀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끊임없이 생각났다. 이미경과 있었던 일에 대한 회상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찾아서 죽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아닌 사람들이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내가 개입해도 되는 걸까. 아니 개입한다고 해서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의 실력은 상위권에 속해있었다. 예상이 맞다면 악마와 계약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렇다면 혼자서 힘들 수도 있었다. 마인은 계약한 악마에 따라 위력이 크게 차이가 났지만, 이미경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허접한 악마는 아닐 테니까.

“무슨 생각해?”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 루시아는 내 비어버린 찻잔에 차를 다시 채워주었다.
비어있던 찻잔이 다시 가득 찼고, 그녀를 보고 싱긋 웃었다.

“아니에요.”
“…너무 부담 갖지 마.”
“부담이요?”
“그래도 이 일은 마음 편하게 해야 하잖아.”

그녀가 말하는 일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도 결국 이 세상의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자기들이 죽는다는 미래를 알고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진 않지만, 결국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들켰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의례상 눈웃음을 지어 대응하자 그녀도 살짝 웃음을 보여줬다.

이미경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인 감정을 전부 빼놓고 생각해야 했다. 감정적으로 움직인다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을 방관해도되는 걸까. 결국,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내가 그녀를 교관의 위치에서 떨어트렸고, 완벽하게 처리하지도 못했다.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심 끝에 루시아에게 말을 꺼냈다.

“혹시  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
“여기 들어오기 전 했던 일을 바로잡아야 해서요.”
“위험하지는 않지?”

그녀는 거절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나를 위하는 말이었다. 아마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와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확정적으로 변수를 없애고, 그녀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루시아는 이미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좋은 행동이었다.

죽이지는 못해도 살아갈  있을 것이다. 그러려고 지금까지 준비했으니까.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 해야 할 일이었다.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 하나만으로 편안함을 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미래를 단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고.

그렇지만, 그들에게 의지해서는  됐다. 그들과 나는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달랐다.

이 정보들을 알려준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조금  안전해질 있을까.
아니면  위험해질까? 미래가 변할까?

오히려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혹시 배신자가 나오지 않을까?

무엇하나 확정할  없는 사실이 내 입을 막았다.
그렇기에 나는 어디에도 기대면 안 됐다. 다른 사람에게 잠깐 손을 기대며 쉴 수는 있지만, 등을 기대면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있어야 했고, 외롭게 속으로만 울분을 토해내야 했다.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으니까.
유은설이던, 김세연인던 똑같이 내가 숨겨야  사실이 존재했으니까.

힘들어도 상관 없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고독이 찾아와 나를 괴롭혀도, 이명이 찾아와 머릿속을 어지럽혀도,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 일은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고,  결과를 위해선 어떤 누구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단지, 그것이 누구 하나 희생하지 않아야 하는 방법이어야 했다. 나는 죽어도 남들은 죽으면  되니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있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실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렇기에 안심하고 나아갈  있었다. 그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평평한 도로를 따라오기만 하면 됐다.

그렇기에 나는 대답했다.

“…네.”

그녀의 걱정을 없애기 위해.

**

“뭐해. 빨리 기사부터 내!”

윤예진은 부하 직원에게 소리쳤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위태로운 길드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이번이 그 분기점이었다.

현재 2위에 위치한 자신의 길드가 높이 올라갈 발판이 준비되었다.

그 발판을 놓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1위에 위치한 ‘나르샤’ 길드는 긴급 상황이었다. 고위 헌터가 길드를 배신하고 나온 것은 이미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바로 대대적으로 기사를 내보냈고, 나르샤 길드의 위신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고위 헌터가 나갔다는 사실은 급속도로 퍼져 이미 욕을 먹고 있었다.

헌터, 일반인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일반인은 그의 눈에 띄면 죽음을 인지할 시간도 없이 죽을 것이고, 헌터도 그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윤예진의 길드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펼치고 있었다.

범죄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쉬고 있는 길드원을 돌려 순찰을 보냈고, 바로바로 던전을 보내 돈을 쌓아갔다.
나르샤 길드의 길드원들을 빼내는 데도 노력하고 있었고.

이제는 길드의 화려한 부활을 꾸밀 제물이 필요했다.

“정은혁 비서님, 팀을 꾸리죠.”
“팀이요?”
“두 명 모두 저희가 잡아야죠.”

한 명은 길드원을 죽이고 배신한 고위 헌터였고, 한 명은 현재 떠들썩한 연쇄 살인범이었다.

그녀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미경. 잊을 리가 없었다.
한설화를 강간했고, 그를 망친 주범.

자신도 그에 해당하지만, 이제는 속죄라도 해야 했다.
그녀를 잡는 것으로 속죄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 정도는 해줘야 했다.

법적으로 잡을 수는 없었기에 나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제는 연쇄 살인범이었으니까.

‘죽여야지.’

그녀를 잡는다면, 길드의 위신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한설화의 복수도 할  있을 것이다.
이 일이 자신이 하는 속죄의 첫걸음이  수 있다면.

‘해야지.’

정은혁은 열심히 키보드를 치더니 윤예진에게 문서 한 장을 들이밀었다.

길드원들의 이름이 쓰여있었고, 팀을 나누었다.

자리에서 일어섰고, 무기를 챙겼다. 한설화가 어딨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혹시라도 자신을 보고 있다면 모습을 드러내 줬으면 좋겠지만.

‘그것마저 욕심이겠지.’

자신이  일을 생각한다면 이것만으로 부족하니까.
정은혁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나르샤 쪽은 이 팀으로 하고, 살인범 쪽은 제가 직접 갈게요.”

무기를 들고 문을 나섰다. 오랜만에 집무실 밖을 나가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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