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6화 〉3부 (116/120)



〈 116화 〉3부

“후…”

한국으로 돌아오자 이질감이 몰려왔다. 그런 느낌을 뒤로하고 할 일부터 정리했다.
이제는 허락까지 맡았으니 거리낄 일이 없었다.

지도를  알고 있는 정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빌런들이 모여있는 위치. 지도에 동그라미가 처져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미경 교관이 숨어있을 만한 곳. 그녀가 악마와 계약했다면, 당연히 빌런 집단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숨어있을 곳도 뻔했다.

‘마지막 범죄 위치를 고려한다면  다섯 곳인가.’

수많은 동그라미 중 다섯 개로 줄인 것도 대단했지만, 아직 많았다.
모든 장소를 하루에 정찰 할 수는 없었다. 안전하게 하려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했다.

고층 건물의 옥상이라 그런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내 뺨을 때렸다. 여기서는 유은설이 들어간 던전의 게이트가 똑똑히 보였다.
그녀들이 나오는 모습이 확인된다면 갈 생각이었다. 아직 유은설과 김세연은 던전에 갇혀있었으니까.

‘이제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렇게 오래 있을 곳도 아니었고, 길드에서 따로 구조대까지 들어갔으니 금방 나올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다섯 개의 위치 중에서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다.

그녀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기에 변수를 없애야 했다. 민간인들이 없는 곳으로, 헌터들이 개입할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가야 했다.
그녀를 만난다면 도망칠 경로까지 전부 세세하게 계획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안심해서는  됐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랐다.

몇 시간을 기다리자 유은설이 들어갔던 던전의 게이트에서 일렁거림이 보였다.
투명한 막이 일렁거리는 것은 사람이 나올 때의 전조였기에 안심할  있었다.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의 얼굴은 누군지 몰랐지만,  사람을 뒤따라서 나온 사람은 분명히 유은설이었다.

내가 준 음식도 찾았는지 그녀의 얼굴은 수척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볼이 빵빵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것이라 편안한 감정이 더 길게 이어졌다.
뒤이어 나온 김세연의 얼굴까지 보고 나서 고개를 돌렸다.

이런 감정에 취해서는  됐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뒤를 쫓아 건물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다.

둘은 이제 길드로 가서 며칠간 휴식을 취할 것이다. 유일한 생존자니, 조사도 할 것이고.

‘밖으로는 안 내보내겠지.’

소설에서도 그랬으니까. 큰일이 없으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밖으로 얼굴도 내밀지 못할 만큼 치밀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녀들은 안전하다는 말이었다.

빌런들도 길드의 건물을 공격할 만큼 담이 크지 않으니까.

‘몇 년 뒤도 아니고 지금은 상관없겠지.’





**




여기가 첫 번째.
내가 있던 위치와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이미 주위 건물들과 도로들은 지도 형식으로 내 머리에 담겨 있었다. 도주로까지 완벽히 다시 생각하고 나서 활동을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에게 들킬 일도 없었다. 그들도 인적이 드문 위치에 주인이 없는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허공에서 활이 나타나  손에 잡혔다. 나무가 이중 나선으로 엮인 나무 활. 이제는 무기가 익숙해진 걸까.
사람을 죽이는 살상 무기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잡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사람을 죽이는것에 죄책감이 없어졌다.

‘정확히는 죄책감을 가질 만큼 마음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던 거겠지.’

살려달라고, 죽으라고 끊임없이 소리치는 비명들이 내 정신을 붙들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사라지지 않고 귀신같이 달라붙어 나를 향해 외치는 환청에 익숙해졌다.

활을 들고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어깨에 힘을 넣어 시위를 쭉 당겼다. 목표는 집의 창문.

확인할 것은 이미경의 모습뿐이었지, 다른 빌런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꽉 붙잡고 있던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날아가 창문을 깨트렸다.
창문이 깨지고 나서 안에 있던 검은 색의 형체들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창문을 통해 얼굴이 하나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적발은 확실하게 보였고, 눈동자는 똑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웃음을 보였다.

그러고 나서 문이 열리더니 모습을 보인 것은 여러 명의 빌런들이 아닌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 혼자뿐이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적발과 공허한 듯 보이는 검은색의 눈.
그녀는 창을 들고 나를 바라봤고, 금방이라도 나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 보였다.

그녀가 발을 구르자 빠른 속도로 나한테 뛰어오기 시작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앞에서 속력을 늦추더니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오랜만이네? 여기는 무슨 일이야?”
“저희가 친하게 인사할 사이인가요?”

저번에는 내가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인질을 잡힐만한 사람도 없었다. 저번과 똑같이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변하지 않았다.
내 몸을 향한 끈적끈적한 눈빛.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에 있었다.
날이 서 있는 창이  목을 향해있지만, 위협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를죽일 마음이 없다는 듯.

다음에 만나면 죽이겠다는 말과 다르게 그녀는 망설이며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그녀는 결심한  발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가 나에게 창을 뻗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죽이실 건가요? 원하시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눈치가 빠르네. 그래서  확인해야겠어. 부합하지 않는다면 너를 죽일 생각이고.”
“그렇군요.”

그녀의 창은  가슴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왔고, 동시에 내 몸은 사라져 그녀의 뒤에 나타났고. 시위에 화살을 걸어 그녀의 등에 쏘았다.

도망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하면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이미경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등 뒤에 화살을 하나 쏘아 박아 넣는것에 성공했지만, 피  방울 나오지도 않았다.

‘나한테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대로해줘야겠지.’

최소한 그녀가 하려고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나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시위를 쭉 당겨 마력을 모았고, 화살촉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그녀는 나에게 쇄도했고, 그녀 아래에 미리 그려놓은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은 반짝 빛나 쇄도하는 그녀의 시선을 잠깐 뺏었고, 그 빛나는 마법진에서 얼음 창이 나와 그녀에게 쏘아졌다.

“칫…”

창을 보고 급하게 뒤로 물러섰고, 그녀의 발이 땅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화살을 쏘았다.
마력을 머금은 화살은 푸른색의 궤적을 남기며 그녀가 떨어지는 장소를 향해 날아갔다.

그녀는 화살을 보더니,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몸이 사라졌다. 정말로 아무 전조도 없이 사라진 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 뒤였다.

갑작스럽게 느껴진 감촉에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먼저 마법을 펼쳤다.
내가 옷의 능력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보다 빨리 그녀의 창이  등을 베었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의 뒤로 이동했다.

“흐읍…”

내가 있는 자리에는 마법진이 그려졌다. 가장 빠르게 시전할  있는 마법.
얼음이 급속도로 팽창해 부서졌고, 그로 인해 생겨난 얼음 파편들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그러는 사이 가면을 벗었고, 활을 내려놓았다.

애초에 내 얼굴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가면은 의미조차 없었다. 그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일 뿐.

허공에서 성해포를 꺼내 팔에 둘렀다. 그 사이 그녀는 파편을 쳐내고 나를 향해 힘을 모아 창을 던졌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 공격인 것처럼.

성해포에 힘을 넣고, 마력이 실려있는 창을 막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푸른색의 마력이 흰색으로 치환됐고,  무형의 마력이 창을 막아섰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창을 견딜 수 없는지, 창은 증폭된 힘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창 전체에 퍼져있던 힘을 끝부분에 모았다.

끼이이이익.
괴성을 내며 일직선으로 날아오던 창의 궤적이 틀어졌고, 창은  얼굴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간 자리에 피가 주륵 흘렀지만, 눈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바닥에 마력을 퍼트려 마법을 그리며, 언제라도 그녀가 들어올 것을 대비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들린 것은 내 긴장을 풀어버렸다.

“여전하네.”

그녀의 평온한물음에 나도 아픔을 참고 대답했다.

“그래요? 그것보다 이제 무기도 없으신데 어떡하시게요?”
“무기 없어도 너는 죽일 수 있어.”
“그럴까요?”

그녀의 알 수 없는 눈빛이 내 몸을 훑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평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상한 것을 걸치고 다니면서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네.”
“제가 좀 그렇긴 하죠.”

그녀의 눈을 피하고 그녀의 발을 유심히 살폈다. 언제라도 움직일지 모르니까.

“뭐하러 왔어?”
“누구를 찾으러 왔어요. 여기 있나요?”
“누구?”
“최근 연쇄 살인범이요.”

이미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패야?”

이번에는 그녀의 질문에 내 표정이 찡그려졌다.

“아닌 것 같네. 제안 하나 할게. 나는 최근 불만이 많거든.”
“무슨 말이에요?”
“이상한 힘을 받은 년들. 아니 그것들. 그것들  죽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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