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3부
“싫은데요?”
그녀의 이야기를듣는 중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애초에 내가 그녀의 말을 들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을 뿐, 수락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선택권이 남아있는 것 같아?”
“그러면요?”
“저번보다 강해지긴 했는데, 그 정도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손에서 창이 생겨났다. 푸른색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
모습은 투명했지만, 충분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네.”
그렇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꽤 차이가 났다.
그녀가 발 한번 구르면 잡힐 위치였지만, 잡히지 않을 자신도 있었고.
“무언가 있구나?”
“그럼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아낼 건데? 이렇게 다른 곳 쑤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도 끄덕였다.
“다른 곳에도 나 같은 사람이 널려있고, 나도 너를 쫓으면 도망가기 힘들 텐데. 이번에는 몰라도.”
“……”
“도와줄게.”
피익.
그 말에 집중이 흐트러져 마법 하나가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왜냐고? 요즘 마음에 안 들거든.”
그녀는 손을 털어 창을 없앴다. 손을 들어 공격하지 않겠다는 표시를 드러내며 자리에 앉았다.
“이상한 것들이 나타난 뒤부터 이상해졌어.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지는 경우가 흔해졌고.”
마인. 아마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이상한 것이 마인일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이 마기인 것 같고.
“나는 그것들이 싫어. 최근에는 우리의 목표도 변했어. 부패한 고위층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의 말살.”
슬슬 마법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기에 나도 마력을 모두 공중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이제 알 수 있었다.
이런 힘을 가진 빌런이 작 중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그렇기에 나도 그녀를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대충 알아들었나 보네?”
“그렇죠. 뭐.”
“그래서 나는 걔들을 죽이고 싶어. 나는 원래 그런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 거든.”
붉은색의 머리카락. 창을 들고, 강한 힘을 가진 사람.
그리고 현재의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
‘활약하기 전에 죽었던 건가.’
“저를 죽이려고 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평화롭게 대화를 하는 것부터 신기하지 않아요?”
“그들의 목적도 일부 동의하고 있었고, 내 목적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에 ‘그 정도’라는 말에 약간 괴리감이 느껴졌다.
“저는요?”
“이젠 죽일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면 그쪽 목표는 뭔가요?”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건 알 필요 없고.”
마지막 말을 하며 이미경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흉흉한 분위기를 풍겼다.
개인적인 원한인 걸까. 혼자서 해결할 수 없어서 빌런의 힘을 빌린 것 같고.
‘그렇다면 꽤 고위직일 것 같은데.’
“도와줄게. 하지만, 너도 도와줘야겠어. 지금 나는 누구를 죽일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거든.”
“도와줄 일이 뭔데요.”
“그것들을 죽여줘야겠어. 균형이 안 맞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인을 혐오하는 집단과 마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집단으로 나뉘었고.
‘급진파와 보수파로 나뉜건가.’
악마와 계약한다면 기본적으로 강해질 수 있으니까.
악마와 계약하지 않는 편이 약해지는 것은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무리한 공격을 행했는지, 공격을 받았는지, 모종의 이유로 그녀가 죽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모르는 이유였고.
“안 돼요.”
“왜.”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고, 그렇게 된다면 나중의 일을 어떻게 될지 몰랐다.
더군다나 앞에 있는 사람이 착하다는 보장도 없었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겠고.
“대신 제안을 하죠. 제가 그쪽에 합류하죠.”
“네가?”
그녀가 무시한어투를 보이자 가면을 썼다. 직접 말하면서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얻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치유의 능력을 더 사용할 필요 없이 등과 얼굴의 상처는 이미 모습을 감췄다.
“이 얼굴 알잖아요. 꽤 유명하지 않아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러웠지만, 지금 이 가면을 쓴 얼굴은 유명한 빌런이었다.
아마 인지도만 생각하자면, 그녀보다 높지 않을까.
대외적으로는 아카데미 하나를 부신 빌런이었으니까.
“그래…. 그렇지. 그때는 좀 놀랐어.”
“어때요.”
“나쁘지 않네. 근데 내가 무엇을 믿고?”
“그것도 그렇겠네요.”
“한명만 죽여줘.”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명 정도는 충분한 인지 범위 안이었다.
“나쁘지 않네요.”
“네가 원하는 건?”
“이미경의 위치. 그거 하나면 돼요.”
“직접 도와주지는 못할 거야. 그 정도는 알지?”
“네.”
사람을 믿지는 않았다. 그녀와 손을 잡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쩌면 그녀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원작에서 죽는 운명이라면 같이 싸울 수도 있지 않을까.
적의 적이라면팀은 아닐지라도, 도움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헛된 망상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복수하려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목표가 해소된다면, 같은 팀으로 활동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아침부터 정신없게 왜 그러는 거야?”
스쿨드는 아침에서 일어난 뒤, 루시아가 신경 쓰였다.
계속해서 앞을 왔다 갔다 하니 정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침에 한설화가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계속 저러고 있으니 자신도 답답했다.
정확한 이유라도 정확히 말해준다면 모르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걔가 뭐 한데?”
“하기는 하는데…”
“하는데?”
또 그러고 나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고 같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진정하고. 앉아. 알아서 잘하겠지. 걔가 약한 편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약하잖아.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죽을 수도 있을 텐데.”
“하아… 걔는 네 남동생이 아니라니까.”
스쿨드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침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루시아의 행동이더 심해졌다.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정도를 넘어섰다.
한설화가 남자였기에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여자는 실력 차이가 난다면 싸움 중에 단번에 죽지만, 남자는 다르니까.
그녀의 동생도 그랬고.
“걱정되면 한 번 가봐.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
“조금 더 이야기도 나누고.”
“그럴까?”
자신의 말에 루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아마 말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루시아도 좋았다. 최근에 우울한 모습만을 봤기에 웃는 모습은 오랜만에 봤다.
우울한 모습이 걱정되었기도 했고.
사람 같은 면모를 본 것이 꽤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걱정할 때나 그런 모습을 보였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한설화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갔다 와. 네가 없어도 내가 말하면 되니까.”
“그래도 되나?”
“응. 빨리.”
스쿨드는 루시아를 밖으로 밀었다. 여기서 한국으로 가려면 꽤 시간이 걸렸다. 지금 출발해야 한설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정확한 일을 듣지는 못했지만, 한설화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루시아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가기 전 루시아의 표정은 살짝 떨떠름했지만, 자그마한 미소가 입에 담겨있었다.
루시아가 집에서 나간 뒤, 조용한 방에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인연의 실로 이어진 사람이 루시아밖에 없다는 것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너무 많은 인연을 맺었다면, 지금이 너무 슬플 것 같으니까.
이제 몇 개월도 남지 않았다. 자신의 생을 착각할 리가 없었으니까.
생을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렇지만,그건 욕심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수명, 루시아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
전부 달랐다. 루시아한테도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족같이 살아온 루시아한테알리지 않고 혼자서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랑하는 가족한테 자신의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많이 고민되는 질문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자신은 숨기는 것을 선택했고,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능력을 써봐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눈을 감은 것처럼 검은색의 배경만이 펼쳐질 뿐, 다른 미래처럼 말끔히 그려지지 않았다.
한설화가 자신의 자리를 대체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