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3부
윤예진은 사람을 이끌고 이미경의 집으로 향했다. 경찰에는 이미 협조를 구했기에 현장으로 들어가 구경할 수 있었다.
방의 상태는 심각했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미친 사람의 방처럼벽에 무언가가 가득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문과 발걸음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침이고 머리카락도 없었다. 사람이 살았다면 하나쯤은 남아있을 법한데 이상했다.
그것 중 한 가지 증거를 잡을 수 있다면, 방 한구석에 이상하게 남아있는 검은 색의 공간이었다.
‘저번에봤던 것?’
윤예진은 이런 것을 자주 봐왔다. 아마 지금 같이 들어온 길드원들보다 자신이 많이 봐왔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 곳으로 마력을 뿜어내자 서로 상극의 성질인 듯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공간인 것 마냥.
자신이 보았던 것이랑은 조금 달랐다. 마치 그곳만 다른 공간이라는 듯 검은색의 공간 안은 공허했으니까.
공기도, 마력도 어느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길드원들도 달려와 그 공간을 쳐다봤다. 자신처럼 마력을 내뿜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궁금한 듯 만져보는 사람도 있었다.
공간은 마치 존재하지 않다는 듯 손을 통과시켰다.
이상한 현상을 보이는 검은색의 공간을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윤예진은 그 공간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비슷한 것부터 찾아보죠.”
무엇이 되었든 이 공간이 유일하게 남아있고,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길드원들을 퍼트려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첫 범죄 현장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범죄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녀를 잡아야 했다.
더 이상의 희생자를 늘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잡는다면 물어볼 것이다.
왜 한설화에게 그런 짓을 했냐고.
그리고 그녀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줄 생각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강해도 이 인원을 감당해낼 수 없을 테니까.
그것이 자신이 한설화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죄였다.
‘어이없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이 참 역겨웠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라지만, 이렇게 쉽게 변해도 되는 걸까.
후회하고 있다지만, 그 후회가 한설화에게까지 전해졌을까.
자신의 미안함이 전해졌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저 어린 날의 치기라고 하기엔 나이도 많이 먹은 상태였다.
한설화가 자신을 챙겨주는 것만을 보고, 독점욕이 너무 커졌다.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현실에 안주하지못하고 너무 많은 것을 바란 죄였다.
‘너도 알고 있을까.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범죄 현장으로 향하는 도중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더 이상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한설화를 생각하며.
그와 다시 마주한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기적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
“어디 아프냐?”
김세연과 유은설은 침대에 누워 편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길드에서는 약간의 조사가 끝난 뒤부터는 그렇게까지 심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아프지 않음에도 침대에 눕힌 것이 약간 불만이었을 뿐이다.
연기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플 게 있었나. 그냥 구조만 기다렸을 뿐인데.”
“그것도 그렇지.”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구조를 기다렸다.
음식도 있었기에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
“그것도 그렇지… 그 사람이 왜 배신했을까.”
끝나지 않은 의문이었다. 기본적으로 고위 헌터라면 배신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돈도 충분할 정도로 벌고, 명예도 가지고 있었다.
고위 헌터의 위치란 그런 것이었다. 존재만으로 든든함을 풍기는.
돈이 부족하면 대출을 해줄 곳도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길드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아예 흔적을 찾을 수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도 수상했다.
그래도 유은설은 자신이 실습 나온 길드가 그렇게까지 무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도 대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절대 약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길드에서 흔적 하나 찾지 못했다는 말은 약간 이상했다.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신경 쓸 수 있는 권한을 넘어섰다
이 이상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였지.
몇 분이 지나고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유은설과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들어왔다.
이하늘. 실습을 나온 이후로 처음 보는 자리였다.
“몇 분 못 준다.”
같이 들어온 길드원이 유은설에게 말했다.
유은설과 김세연은 이하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어 반겼다.
이하늘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으며 유은설에게 말했다.
“괜찮아?”
“뭐, 괜찮지.”
“괜찮긴, 죽을 뻔했다면서. 기사에서 다 봤어.”
“그래? 아니 그래도 뭐… 괜찮았어.”
음식이 없었더라면, 아마 굶어 죽기 직전까지 몰렸겠지만, 음식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물론, 음식 이전에도 공격을 받아 죽을 뻔했지만.
한설화가 도와준 것을 말할 수는 없으니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은 길드원도 보고 있으니까.
이것은 유은설과 김세연, 둘이서 한 약속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한설화도 결국은 빌런일 뿐이니까.
“그러면 잠시 나가있는다. 이야기하고 나와.”
“네.”
길드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그제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늘이도 오랜만에 보네.’
서로 바빠서 많이 못 만났기에 이런 만남이 귀중했다.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면서도 한설화와 얼굴을 본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아마 다들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설화가 나쁜 짓을 했던, 안 했던 결국, 오랫동안 이어왔던 인연이니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다.
**
“그래서 누구를 죽이면 되는 건가요.”
그녀는 적발을 흩날리며 자리에 일어선 뒤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건가?’
도심을 가로지르며 그녀를 따라가자 내가 동그라미 쳤던 곳 중 하나가 나왔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한 명이 있어. 최근에 한자리를 꿰찬 놈인데, 얘만 죽이면 돼.”
그녀는 집을 가리키며 세세하게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키가 작고, 머리로 눈을 덮은 상태라고 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는 맞죠?”
그녀는 내 말에 머리를 똑똑 두드렸다.
“걔는 무력보다는 머리를 쓰거든. 능력이 짜증 나기도 하고.”
‘머리라…’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요…”
“뭔지 알아?”
내가 아는 척을 하자 그녀는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봐야 알겠지만, 머리를 쓰는 마인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악마가 하나 있었다.
그것과 계약했다면 평범하게 쳐들어가서는 안될 것 같았다.
아마 그녀가 말하는 녀석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경… 그러니까 연쇄 살인범 어디 있는지 확실하죠?”
“응. 따로 감시 중이니까.”
“제가 처리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죽일 가능성은요?”
“없…을거야.”
“…일단얘부터 빠르게 처리하죠.”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근데 혼자서는 무리에요. 도움을 주셔야겠어요.”
“… 안돼.”
“그쪽이 말한 사람 때문이죠? 직접적으로 말고 간접적으로는 괜찮죠?”
지금 죽여놓는다면 꽤 괜찮은 성과일지도 모르겠다.
루시아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지만, 이 정도는 들켜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끝에도 짜증만을 유발하는 놈이었으니까. 이렇게 쉽게 만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그 마인을 위한 판을 꾸려야 했다.
몇 번이고 틀어서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그녀에게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