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3부
“가면은 어때요. 괜찮죠?”
그녀의 얼굴에는 원래 내가 사용했던 가면이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정체를 숨겨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면을 줘야 했고.
내 팔에는 성해포가 둘려있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성해포를 한 번 만지작거리며, 앞을 바라봤다.
아까 봤던 아파트의 옥상에 안착했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신기하네. 확실히 재밌는 유물이야.”
그러고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너…”
“네?”
“아니다. 끝나고 얘기해.”
그녀가 앞장서서 문을 열었고, 계단으로 발을 뻗었다.
아파트의 구조는 그녀가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뒤쫓아 들어갔다.
밖에서는 사람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고, 아직 우리를 인지하지 못했는지 위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최상층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뒤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계단을 밟으며 밑으로 내려갔다.
열심히 내려가다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층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여기에 우리의 목표가 있었다.
그녀가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 허리를 붙잡았다.
사람이 한 명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투명해졌다.
내가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투명해진 것은 처음이었기에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그녀의 속도에 몸을 맡겼다.
잠깐 열린 문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고, 안에 닫혀있는 문을 향해 달려갔다.
발소리를 숨기지 않고 뛰었기 때문에, 한 걸음마다 주위 시선이 우리 쪽으로 꽂혔지만, 무기를 들고 바로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모두 자신의 할 일을 하며 구석에 앉아있었기 때문일까.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있어도, 즉각적으로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사람들 사이사이를 뚫고 나아갔다.
끝끝내 닫혀있는 방문에 도달하고, 그녀는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한 남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뒤에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를 내려놓자 투명한 몸이 원상태로 되돌아왔고, 그대로 성지를 펼쳤다.
하얀색의 마력이 발끝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좁은 방은 곧 흰색의 마력으로 뒤덮였다.
뒤이어 문으로 뛰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았다.
하얀색의 마력은 마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첫 번째였다.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계획의 대부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안에 있는 사람만 죽이면 됐다.
그들이 무기를 들고 열심히 벽을 찔러봐도 뚫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 누구야!”
의자에 편안히앉아있는 사람은 벌떡 일어서서 나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렇지만, 전혀 긴장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 때문일까.
“전혀 못 느꼈는데? 아니, 지금도 안 느껴져. 너 누구야.”
그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쟤 잡을 수 있죠?”
그는 뒤에 서 있는 여자한테 말을 걸었고, 검은색의 여자는고개를 끄덕였다.
발이 움직임과 동시에 내 목에 단검이 들이밀어져 있었다.
그 단검을 막은 사람은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이었고.
창끝과 단검의 끝이 닿았고, 둘 다 팽팽한 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창이 밀렸지만, 창을 크게 한번 휘두르자 단검을 가진 여자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칫…”
나는 남은 마력을 짜내 성해포에 실었다.
점점 밖에 있는 사람들도 큰 공격을 하며 성지를 뚫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그 사이 투명해져 있던 그녀의 모습마저 보이기 시작했고, 창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직도 나를 보고 믿기지 않은 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지 나도 모른다.
성해포에서 흰색의 마력이 튀어나와 그에게로 향했다.
단검을 들고 있는 여자는 그 마력을 막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우리 쪽이 조금 더 빨랐다.
달려가는 그녀의 앞에 창을 뻗었고, 단검을 가진 여자는 뒤로 이동해 공격을 피했다. 공격을 한 곳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사이 내 마력은 거침없이 그를 향해 뻗어 나갔다.
“안… 안돼. 나는 여기서 죽을 목숨이.”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리는 그를 마력으로 찍어 눌렀다.
콰직.
압력에 그의 목이 꺾이며, 뒷걸음질 치던 몸이 축 늘어졌다.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옆에서 열렬한 전투를 하던 적발의 여자가 창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창이 바닥에 꽂히자 바닥이 허물어지고, 건물이 흔들렸다.
건물이 흔들리자 주위 사람들은 주위 벽을 잡으며 중심을 잡았고, 한 번 더 땅을 내려찍자 건물 자체가 부서졌다.
앞에 축 늘어져 있던 남자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뒤에 이상한 문양을 달고 일어난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중 부서지는 블록을 밟고 나한테 가면을 쓴 여자가 다가왔다.
“잡아.”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정신을 차린 남자는 나를 향해 손을 뻗더니 이상한 형체가 나를 향해 따라오기 시작했다.
옷의 능력을 사용해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쿰쿰한 냄새가 사라지고, 상쾌한 공기가 다시 우리를 반겼다.
밖에서 무너지는 건물을 본 뒤,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바람을 맞았다.
그녀가 나보다 빠르니 당연했다.
“마지막에 무언가를 쐈는데.”
“모르죠.”
“그것보다 확실하게 죽었지?”
그것이 다시 변한다고 해도 전투력이 전무했다.
정상적인 각성자라면 몰라도, 그것은 확실하게 힘이 약했다.
그렇기에 저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누군가 구해준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미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남자 자체의 능력이었으니까.
“네.”
너무 쉽게 죽었기에 나도 깜짝 놀랐다. 소설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람이 그 남자였으니까.
약간 의심스러웠지만, 수긍하기로 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못 읽는 건가.’
내 존재가 대체 무엇이기에.
철학적인 질문을 뒤로하고, 그녀의 발이 멈춰 섰다.
그들의 영역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 그녀도 아까의 전투로 지쳤는지 숨을 헉헉대며 쉬고 있었다.
“그것 보다 어쩌죠? 얼굴이 다 팔렸네요. 제가 그쪽으로 들어가면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제 필요 없어. 가장 중요한 놈을 죽였으니까.”
그녀의 말은 다행이었다. 가면을 쓴 얼굴이 팔렸기에 그들 쪽으로 들어가면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내 얼굴은 상관없겠지?’
애초에 누구한테 들킬 일도 없으니까. 고민이 하나 더 해결되니 뭔가 가슴이 풀렸다.
그리고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검은색의 무언가가 나를 향해 꼬물꼬물 기어 오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상한 것.
그녀도 알아차렸는지 창을 휘둘렀지만, 창을 통과하고 내 가슴에 들어왔다.
“…괜찮아?”
그녀는 나를 보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별다른 건 없는데… 뭐 달라진 점 있어요?”
그녀는 방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머리색이 약간 검게 변했네.”
“아… 그런가요?”
머리를 만져봐도 별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괜찮아요. 그것보다 위치 먼저 알려주세요.”
내가 지도를 피며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한 곳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원래 빌런 집단의 위치가 아닌 이상한 곳.
산속을 표시한 것을 보고 고개를 올려 그녀를 쳐다봤다.
“…맞아요?”
“맞아. 그리고 이거.”
그녀는 다시 가면을 나한테 건네줬다. 내 얼굴에씌워주면서 말했다.
“쉽게 사람을 믿지 마. 그러다 큰일 난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단숨에 사라진 그녀를 내버려 두고, 표시해 준 위치로 향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의 정보 말고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라면 또 찾아가지 뭐.’
설마 죽이기까지 하겠어.
**
그녀는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신의 본거지로 향했다.
그를 공격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끌어주었다. 그들은 몸 성히도착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안심할 수 있었다.
‘왜 그랬지.’
원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흰색의 머리를 가진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힘을 다 쓴 사람은 창을 뻗기만 해도 죽일 수 있으니까.
결국은 그를 살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의 모습에서 무엇을 겹쳐봤을까.
쉽사리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장애물이었다.
결국, 선에치우친 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자신은 사람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지금은 자신보다 약하지만, 성장세를 보면 자신보다 강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푸하하.”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의 행동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무엇을 믿고 유물을 쉽게 넘겨준단 말인가.
이제 그것의 능력도 알았으니 다음에 만난다면 대처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겠지.’
옷의 능력마저 알게 됐으니 더 쉬웠다.
그만큼 그는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적이 될 수도 있는 자신한테 정보를 다 알려준 것.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웃음만이 나왔다.
기뻐서일까.
기쁘다면 기쁘다. 단지 그 방향이 조금 달랐다.
정보를 알아서 기쁜 것이 아닌, 그렇게 선한 사람이 남아있다는 것에 기뻤다.
‘선한 건가, 멍청한건가.’
멍청하지는 않았다. 계획을 짜는 그는 누구보다 현명했으니까.
그리고 계획을 실행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목숨이 위험할 수있는순간에도 전혀 떨지 않았다.
‘저번의 그 모습도 허풍이 아니었던 건가.’
다음에 만나게 될 때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
당연히 적이겠지만, 그와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와 뜻을 같이한 사람끼리의 소통 방식이었다.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연쇄 살인범의 거처에 다른 사람이 진입. ‘미리내’ 길드로 추정. 길드장의 딸도 있음.]
연쇄 살인범. 그가 찾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죽이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원한 관계인 걸까.’
그와 그녀의 실력 차이는 천지 차이였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현재는 못 이길 것이다.
그가 무턱대고 그녀에게로 향했을까.
금세 도와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권한 밖이었다.
그가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것까지 도와줄 수는 없었다.
마지막 검은색의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도 그가 해결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