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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이 부임했다-4화 (4/60)

전남편이 부임했다 4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호텔로 들어서는 나정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씩씩했다.

밤새 뒤척인 끝에 그녀는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난 그 사람 전 와이프가 아니라 부하직원이야. 이제부터 우린 철저히 갑을 관계야.

걸음을 내디디며 나정이 중얼거렸다. 전남편 보기를 돌같이 하자.

“돌이다, 돌…….”

암기하듯 되뇌다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대뜸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다급한 외침에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다시 촤륵 벌어졌다.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선 나정은 코앞에서 반짝이는 명찰을 보고 흠칫했다.

우태주. 전남편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나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에 빠듯하게 핏되는 블랙 슈트가 썩 근사하게 어울렸다.

‘위축되지 말자. 이쯤은 각오했잖아. 작아지면 안 돼.’

과하게 가까운 전남편과의 거리에, 나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태주 씨!”

헉……?

일순 멋대로 친밀한 호칭이 튀어나와버렸다.

내가 방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거센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뭡니까?”

황당함과 한심함이 뒤엉긴 눈빛으로 태주가 자신을 내려다봤다.

“태주 씨?”

그의 눈썹 산이 가파르게 위로 치솟았다.

나정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금속 손잡이가 가녀린 허리춤에 툭, 하고 닿았다.

***

“나정아 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

라커룸. 유니폼을 갈아입던 보나가 새파랗게 질린 나정의 안색을 살폈다.

“출근하다 무슨 일 있었어?”

“아냐, 아무것도…….”

어물대며 말끝을 흐리는데, 머릿속으로 약 삼십 분 전의 일이 지나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태주 씨!’

전남편 보기를 돌같이 하자며 다짐해놓고, 어떻게 태주 씨라는 친근한 호칭을 아무렇지 않게 뱉을 수 있는지. 내가 미쳤지.

황당함에 이맛살을 구기던 전남편의 얼굴이 선연히 떠올랐다.

‘뭡니까? 태주 씨?’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전남편 태주 앞에서 나정은 그저 둘러대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과음을 하는 바람에…… 술이 덜 깼나 봐요. 먼저 올라가세요.’

결국 전남편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도망치듯 내려야만 했다.

“나정아. 네 전남편 말이야.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

흑역사 생성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옆에서 보나가 작게 종알거렸다.

“환영식 때 보니까 주사도 없고, 쓸데없이 잘난 척하지도 않고. 네 전남편 직원들한테 완전 인기 쩔었다니까.”

“그래……?”

“응. 사람이 젠틀하더라고.”

“아 그래…….”

“헉, 벌써 8시네? 나정아. 우리 올라가야 돼.”

보나가 멍하니 선 나정을 잡아끌었다.

잠시 후, 대리석 복도를 지나 그들이 들어선 곳은 호텔 상층에 위치한 대회의실이었다.

오늘은 전 직원이 참석하는 오전 브리핑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 팀 진짜 운 좋지 않아요? 새로 부임한 총지배인이 우리 GRO 팀만 특별 관리해주겠단 거잖아.”

아까부터 영혼 없이 자리를 지키는 나정과 달리, 주변은 새로 부임한 총지배인의 이야기로 뜨겁게 들끓고 있었다.

“우 총 말이에요.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완전 냉미남 재질! 그죠 주임님?”

“어? 어…… 잘생겼나? 잘 모르겠는데…….”

괜히 뜨끔해서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을 때였다. 웬 남자가 뜬금없이 직원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래? 모르겠어요?”

“……?!”

“아니 우 총 잘생긴 거 모르겠다며. 실은 나도 그렇거든. 걘 존재감이 너무 과해. 눈 빡! 코 빡! 애가 생긴 게 인간미가 없잖아? 차라리 나처럼 담백하게 생긴 게 낫지 않아?”

남자가 한 손으로 면도 자국 없이 말끔한 얼굴을 문질렀다.

“누, 누구시죠……?”

“소개가 늦었네요. 우 총 따라 스위스 본사에서 날아온 연회부서 팀장 소송준입니다.”

발음에 유의하세요. 소송중이 아니라 소, 송, 준입니다. 남자가 유쾌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연회부 소속이 왜 남의 팀에 끼어있어?? 나정은 어이없는 눈초리로 그를 훑었다.

그때였다. 직원들이 웅성대며 자세를 바로 했다. 뒤이어 태주가 부지배인을 대동한 채 걸어오는 게 보였다.

“Guten Morgen?”

송준이 태주를 향해 능글능글한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다.

힐긋 눈길을 준 태주는, 그러나 냉정히 걸음을 옮겨 회의실 중앙에 걸음을 세웠다.

“다들 주목! 거기 혜영 씨, 문영 씨 목소리 좀 낮추자! 총지배인님 오셨잖아.”

아부쟁이 변 팀장이 큰소리로 직원들을 닦달했다.

“어우 변 팀장, 저 개 재수. 우 총 비위 맞추려고 애쓴다 애써.”

투덜대는 보나를 향해 나정은 그러게, 하고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사이 소란했던 분위기가 정돈되며 팀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전남편 태주를 향했다.

꺄. 잘생겼어! 아직 태주의 실체(?)를 모르는 직원들이 연신 꺅꺅거렸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한데?”

송준 팀장의 입에서 어딘가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불거졌다. 뒤이어 태주의 무게감 있는 동굴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여긴 호텔의 Grooming standard(*내부규정)를 제대로 숙지한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겁니까?”

으응……?

난데없는 불호령에 직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에게 차례차례 시선을 던지며 태주는 서늘하게 말을 이었다.

“객실부 변영출 팀장님.”

“네, 넵! 총지배인님. 말씀하십시오.”

“규정상 직원용 양말은 검정, 회색, 암청색만 허용합니다. 그런데, 그 웃기지도 않은 레드 삭스는 뭡니까.”

“아? 아, 이게…… 아침에 급하게 나오다 보니 양말이, 이게…….”

“당장 갈아신어요.”

“풉!”

잠자코 있던 송준 팀장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어이 본색을 드러내셨구만. 작게 읊조리는 그를 향해 태주가 미간을 구기며 다가섰다.

“오랜만?”

송준 팀장이 여유롭게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스위스 본사에서부터 태주와 격 없이 지내온 사이였다. 하지만 그 역시 피 말리는 이 순간을 온전히 피해갈 순 없었다.

“소송준 팀장. 머리가 그게 뭡니까.”

“에?”

“뒷머리는 절대 와이셔츠 카라를 덮지 않아야 합니다. 규정대로 컷트 하세요.”

“아. 네…… 그러죠.”

송준 팀장이 머쓱한 듯 손으로 뒷덜미를 매만졌다.

마른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던 태주가 곧 왼편으로 상체를 비틀었다.

“어떡해. 온다.”

다가오는 그를 보며 호텔리어들이 전과 달리 긴장한 기색을 내비쳤다.

“오영주 씨. 향수 뿌렸습니까?”

“네? 아뇨, 바디 크림…….”

“향취가 강한 제품군은 뭐가 됐든 사용금진데. 몰라요?”

“죄, 죄송합니다.”

직원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태주의 지적질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 빼요.”

“네, 네.”

“네일도 전부 지워요, 못 들었나? 햇빛에 반사되는 파츠나 큐빅은 부착 금지라고.”

“죄송합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전남편을 보며 나정은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올이 나간 스타킹부터 다림질 선이 비뚤어진 셔츠, 작은 액세서리까지. 그는 눈에 보이는 사소한 오점을 전부 걸고넘어지고 있었다.

“간보나 씨. 명찰은 가슴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달아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짚어줘야 하나?”

상사의 조악한 음성에 일동이 얼어붙었다.

특히 보나의 옆을 지키던 나정은 전혀 표정 관리가 되질 않고 있었다.

뚜각, 뚜각. 곧 무게감 있는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리더니 제 앞에서 소리가 끊어졌다.

전남편이 자신을 보며 서 있었다.

“…….”

나정은 긴장한 나머지 한 번 더 굵은 침을 삼켰다.

단정하게 망으로 씌운 머리와, 주름진 데 없이 빳빳한 블랙 유니폼, 규격에 맞는 구두까지. 일단 자신의 매무새는 규정에 어긋남 없이 멀쩡했다.

“이어셋 똑바로 착용해요.”

그런데 갑자기 전남편의 기다란 손끝이 자신을 향했다.

오른쪽 귀에 헐겁게 끼워진 이어셋을 고정해 주고는 그의 손이 다시 떨어져 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귓불을 애무하듯 어루만지는 손길에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왜지. 이상하게 숨이 잘아졌다.

방금 그게…… 꼭 의도된 스킨십 같았다.

아냐. 저 사람이 하는 행동에 의미부여 해선 안 돼. 나정은 애써 되뇌었다.

그 사이 나정을 지나친 전남편이 GRO팀에 입성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직원 앞에 멈춰 섰다.

“이지윤 씨. 2110호 투숙객이 본인한테 컴플레인 건 것 알고 있습니까?”

2110호는 이탈리아에서 온 부부가 묵는 스위트룸 객실이었다.

“이탈리안 고객 앞에서 코나 귀를 만지는 행위는 불쾌함의 표시라는 거 몰라요?”

나정에게도 그러했듯, 전남편의 목소리가 냉담했다. 당황한 신입이 어버버 입을 뻐끔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자꾸 콧물이…….”

말을 하면서도 무심코 코를 매만지던 신입이 깜짝 놀라 얼른 자세를 고쳤다.

“프론트에 있던 히터도 본인이 가져다 둔 겁니까?”

태주가 안절부절못하는 신입에게 무정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아프면 나오질 말았어야지.”

일순 무자비한 한마디가 공간을 메웠다.

“당신 하나 때문에 여럿 골치 아파졌잖아. 안 그래요?”

“그게, 정말 조그만 히터였는데…… 프론트 안에 비치하면 절대 고객님들 눈에 띄지 않는,”

“눈에 띄고 안 띄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재의 위험 때문에 전열 기구는 뭐가 됐든 반입 불가라고. 알아 들어요?”

팍팍하게 신입을 몰아붙이던 태주가 한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GRO 부서로 출근한 지 얼마나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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