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화 (3/388)

2. 세르너드 영지의 악몽

*

세르너드는 흔한, 영락한 시골 영지였다. 농업과 수렵을 기반으로 삼은 소규모 마을이 둘, 산간에 흩어진 화전민촌 또한 둘.

그리고 영지의 중심부이자, 그것조차 도시라 부르기엔 적잖이 우스운 ‘규모 있는 마을’ 하나.

모든 영민들이 세르너드의 귀족들에게 고개 조아릴 때야 몰랐으되, 이제와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골 영지에 불과했다.

“한때 이 마을이 내 세상의 전부였지.”

앞서 걷는 사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과 파란 입술, 출혈과 추위, 그리고 탈진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사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실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사내를 목에 걸었던 노끈을 풀었다.

“가게. 본인이 왔다는 것을 알리게. 그 이후에 치료 받게.”

사내는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곤 비척거리며 물러섰다. 그가 먼저 마을 입구에 가도록 두고,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말을 몰아 마을로 향했다.

목책 방벽 위에 서 있던 경비들이 황급히 뛰어내려와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도, 도련님? 어째서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지금이라도 피하심이···”

“아, 마음 써주어 고맙네. 나를 잘 아는 모양이로군.”

“도련님?”

“미안하군. 자네가 기억나진 않네. 섭정에게 볼 일이 있어 돌아 왔다네.”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페르난데스 세르너드으으!!”

그때, 걸걸한 외침이 들려왔다. 경비들은 움찔 떨며 뒤로 주춤 물러섰고, 그 사이로 단단해 보이는 덩치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알레한드로 세르너드. 섭정의 아들이자 그의 사촌이었다.

“오, 알레한드로. 오랜만일세.”

“오랜만? 이게 미쳤나? 어제 뛰쳐나간 놈이 무슨 오랜만 운운이야?”

알레한드로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위협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위협에 오히려 웃으며 그를 내려보았다.

“진정하게나. 사촌. 다니엘에게 볼 일이 있어 왔으니.”

“이젠 네 삼촌 이름도 함부로 부르는구나!”

“본인은 이제 열여섯일세. 성인이 된다면 이 영지가 나의 것인데, 어찌 내가 영민을 높여 부르겠나?”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당장 내려와라!”

“흠. 사촌. 착각하는 것이 있군.”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말 아래로 내려와 칼을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기세에 잠시 움찔 떤 알레한드로는 곧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간밤에 덜 맞았구나. 페르난데스. 칼을 들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귀족 결투법상 살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이지. 좋은 명분이군.”

“굳이 장갑을 던질 필욘 없겠지.”

“자네, 혹시 마법사들간의 전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아나?”

페르난데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알레한드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마법으로?”

“반만 맞았다네.”

-푸욱!

“끄으으으윽!”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알레한드로에게 다가가, 그대로 그의 허벅지를 쑤셨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알레한드로는 눈을 부릅뜨며 대응하려 했으나, 페르난데스의 검은 교묘히 그의 팔을 피해 허벅지 안쪽의 살을 파고들고, 빠져나왔다.

알레한드로는 고통에 허물어졌다.

“상대의 마법을 방해하기 위해 단검을 던지고, 다가가 칼로 쑤시지. 마법사의 기본 소양은 마법보단, 기초 체술에 가깝다네.”

그리고 나는 와일드캐스트(방랑 마법사)로 평생을 보냈지. 페르난데스는 싸늘한 눈으로 쓰러진 알레한드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주위에 그를 둘러싸고 웅성대는 병사들, 그리고 영민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그를 치료하길 바라네. 대퇴근 동맥을 절개했으니, 지혈 없이는 10분 안에 죽을 걸세. 사제에게 데려갈 수 있도록. 그리고 자네.”

페르난데스는 처음 그에게 다가와 살갑게 굴었던 병사를 향해 말했다.

“다니엘 세르너드 섭정에게 인도하게.”

“네, 넵!”

페르난데스는 칼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내고, 바지에 슥슥 쓸어 핏물을 닦은 뒤 칼집에 납도하며 다시 말 위에 올라탔다.

가출 이후 세르너드 남작령에 스스로 돌아온 것이 두 번째였다. 과거의 자신은 흑마법사 페이자쉬로써, 세르너드의 복수와 파멸로써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실험에 가깝지.’

*

세르너드 영주관저는, 그나마 이 마을에 있는 유일한 석조 건물이라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대단히 훌륭한 아성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얕은 언덕 위에 올라간 이 석조 건물은 위압감보단 친밀함을 주려는 듯 질박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다니엘의 속을 긁는 요소 중 하나였다.

다니엘을 화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내 아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지?”

“아, 다니엘. 귀족 결투법에 의거한다면 합법적인 결투였네.”

눈 앞에 껄렁한 자세로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페르난데스와, 그를 감히 저지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두 몸 성히 오게 만든 무능한 경비병들이었다.

다니엘의 곁에 서 있는 경비대장이 으르렁거리며 자못 위협적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영주님. 목젖을 썰어 놓을 까요?”

“오. 무섭구만 그래.”

페르난데스는 키득거리며 경비대장을 바라보았다. 하루 만의 일이다.

어젯밤에 충동적으로 가출하기 전까지, 페르난데스는 감히 자신은커녕 경비대장의 눈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소심한 꼬맹이에 불과했다.

제 사촌형에게 얻어맞아 뛰쳐나간, 그런 주제에 제대로 된 여행 준비도 하지 않은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

“어째서 다시 돌아왔지?”

“실험 때문이지.”

“실험?”

다니엘은 그 순간 흠칫 떨며 뒤로 몸을 젖혔다.

무언가, 혐오스러운 존재가 그를 노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페르난데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며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무런 감정 없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다니엘은 그 순간 페르난데스에게 압도당했다. 페르난데스는 무기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죽이지 않았던 것이 확실한 이가, 내 손에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

“그게 무슨···”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이 반드시 멸망하리란 보장은 없지.”

죽음은 가장 확실한 가능성의 파괴니까.

페르난데스는 칼자루의 무게를 느끼며 천천히 다니엘에게 다가갔다.

그가 세운 가설에 따르자면 그랬다.

Q1. 세계는 운명 대로 흘러가는가?

가장 간단한 증명은 다음과 같았다.

A1. 전생의 자신이 죽이지 않았던 이를 죽이면 된다.

애석하게도, 다니엘은 페르난데스가, [잿빛 황혼회]의 초대 회장 페이자쉬라는 이름으로 대성하기 전에 병사했던 인물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다니엘에 칼을 겨누며 말했다.

“이번 세계는 멸망시킬 수 없다네. 다니엘. 복수심은 없네. 칼을 잡게나.”

“이익, 저, 저 녀석을 막아!”

“네, 넵!”

다니엘의 신음에 경비대장이 칼자루를 움켜쥐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경비대장은 갑작스럽게 변한 페르난데스의 분위기에 기세가 꺾여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좋아. 이제 다시, 귀족 결투법이 성립되는군.”

페르난데스의 손끝에서 불똥이 튀었다.

*

“끄으으으읍!!!”

알레한드로는 린넨 붕대로 압박된 허벅지를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고통이 척수를 타고 번뜩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한 것은, 무릎 아래로 느껴지지 않는 촉감. 평생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그는 공포와 고통과 분노와 치욕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도련님. 도련님!”

“끄으읍.”

알레한드로의 시종이 그에게 다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자니, 시종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며 말했다.

“다니엘 세르너드 남작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끄으으으윽!!”

행여 어금니가 부서질까, 시종들이 괴어 놓은 재갈에서 피 거품이 일었다.

알레한드로는 덜덜 떠는 손을, 허벅지에서 옮겨 힘겹게 재갈을 풀었다.

출혈과 고통으로 반쯤 섬망 상태에 빠진 채로,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어떻게?”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도련님께서··· 귀족 결투법이라며···”

“경비대장은···!”

“도련님께서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손끝이 번쩍이더니, 갑작스럽게 대장이 눈을 부여잡고, 그대로 심장이 칼에 꿰어 죽었습니다···”

마법! 말도 안되는 소리를! 알레한드로는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며 외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설마 그 자식이? 터무니 없는 것으로 치면 오히려 마법보다 더 할 수도 있는 가설이었다.

갑작스럽게 성격이 바뀌고, 마법을 사용하며, 칼질에 머뭇거림이 없이 잔인해졌다.

어젯밤 까지만 해도 오줌을 싸며 살려달라 울던 그 나약한 꼬맹이가?

알레한드로의 머릿속에선 이미 다른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이었다.

“이단심문관을 불러라···”

“네, 네?”

“당장! 종교재판을 신청해! 가라!”

알레한드로는 애써 고통을 몰아내며 외쳤고, 시종은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달려나갔다.

알레한드로는 씩씩거리며 다시 허벅지를 쥐어 잡았다.

악마와 붙어먹은 자식. 인간을 배신한 자식. 친지를 살해한 존속살해범!

과거에 그가 얼마나 페르난데스를 학대했는지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알레한드로는 ‘정의’를 원하고 있었다. 악마에 대한 징치를, 아비에 대한 복수를.

“끄으으으윽!”

허벅지에서 다시 핏줄기가 풋, 하고 솟았다.

그는 출혈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시종들 대부분은 이미 페르난데스의 갑작스러운 귀환과, 난장판이 된 마을에 두려움을 느껴 도망쳤다.

그는 그의 시종이 애써 마련한 낡은 방에서 천천히, 홀로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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