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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3화 (4/388)

3. 찔리는 게 없으면 차라리 당당하겠는데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허공에 떠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끔찍한 압박감에 그는 몸을 굳히고 서서 간신히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 이건 꿈이다. 이건 꿈이야. 나는 지금 영주관에 있어. 여긴 꿈이야.

“페이자쉬. 너는 지옥에 속해 있노라.”

“제기랄. 아직 나는 지옥과 연관된 적이 없어!”

“영혼의 낙인은 지워지지 않지. 혼도, 백도, 영도, 성도. 너는 지옥에 속해 있노라.”

“혼(魂)과 영(靈)은 몰라도 백(魄)과 성(性)은 아직 지옥 마력에 타락하지 않았다! 백과 성은 육신에 귀속된 영체의 조각이야. 아직 그럴 리가 없어!”

“이미 혼이 이끌리는데, 백이 버틸 것 같나? 모든 것이 시간 문제일 뿐.”

붉은 안광이 점멸했다. 이윽고, 온 세상이 불타고, 사람이 장대에 걸렸다.

악마들이 괴성을 지르며 세계를 불사르는 모습이 사방에 펼쳐졌다.

악마가 보여주는 환시 따위가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이었다.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대흑마법사이자 최고위 악마소환사.

[잿빛 황혼회]의 초대 회장이자 [칼림부르크 마법 학회]의 수석 대흑마법사.

세계를 멸망시킨 열다섯 악적 중 하나.

그가 직접 일구어낸 세계의 모습이었다.

“닥쳐, 닥쳐! 운명 따윈 없다. 내가, 내가 이미 실험해 봤어. 내가 죽인 적 없는 놈을 죽였다고!”

“네 실험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살생해야만 증명 가능한 것이었더냐? 그게 바로 네 혼백이 타락한 증거로다. 네가 단 한 번만 실수하더라도. 네가 단 한번만 눈을 돌리더라도. 너는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그리고 그건··· 머지 않았겠구나.”

“끄으아아아아아!”

그의 아들이 온 몸을 터트리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그가 바라본 악몽의 마지막 편린이었다.

*

“이런 제기랄.”

페르난데스는 침상 위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욕지기를 뱉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고작 일주일이 흘렀건만, 그는 이젠 밤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지독한 악몽이 매일 밤마다 그를 괴롭혔고, 그는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이건 안되겠어. 뭐라도 수를 써야겠군.”

잠을 없애던, 꿈을 없애던, 과거를 없애던. 셋 중 하나는 해야 했다.

지금 당장 마법으로는 불가능했고, 시약을 좀 써야 하겠는데, 애석하게도 페르난데스는 무슨 제국 수도의 연금술 공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데인 왕국의 퇴락한 시골 영지에 있었다.

“끄으으응···”

페르난데스는 머리맡에 있는 물을 들이키고, 일어서서 사무실 책상으로 갔다. 수많은 서류철들이 대중 없이 쌓여있었다. 두통이 밀려왔다.

페르난데스가 세르너드 남작령을 장악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페르난데스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영지의 각종 대장과 관리철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지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다니엘은 특별히 무능 하지도 않았으나, 특별히 유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왕국에서 요구하는 군역을 대납하기 위해 소비된 수많은 명목의 세금들은 영지를 살라먹고 있었다.

데인 왕국이 성전 연합군에 투사하는 유지비는 수십 년간 왕국을 천천히 고사시키고 있었으며, 왕국의 각 영지들은 소영주들의 파산을 목전에 두고 천천히 경제적 사망선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선대 영주들처럼, 꼬박꼬박 왕국에 세금을 납부하는 것에 만족하는 영주였다.

그러나 매년 상승하는 세금 인상폭에 영지의 허리가 끊어지기 직전이었고, 영지 관리대장의 모든 지표가 최악을 그리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와중에 영주에게 돌아가는 작은 몫들. 이를테면 경비와 하인들의 급여, 관리비 등을 제외한 영지의 순익을 최대한 추려 행상들에게 약초와 시약, 그리고 실험 자제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영주관의 사금고는 순식간에 바닥이 드러났고, 페르난데스는 급한 대로 이 정도면 한달 안에 공방을 만들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물론, 모든 비허가 마법사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이단심문관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주님!!! 영주니이이이임!!!”

시종이 창백해진 얼굴로 달려와 그의 앞에 부복했다. 한참 서류를 훑던 페르난데스는 최대한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그 표정에 지레 겁에 질려 사라졌겠지만, 시종은 여전히 다급했다.

“본인은 바쁘네.”

“영주님! 큰일, 큰일났습니다!”

“누가 또 보를 허물었나? 질리지도 않는군. 허방다리에 발이라도 빠졌나? 경비 둘을 데려가 수리하게. 다친 이는 집에서 이틀 쉬라 말하고. 이거 금주령이라도 내려야겠어.”

“아니오! 영주님, 중앙! 중앙에서 손님이 오고 있습니다요!”

“중앙? 왕실 말인가? 당해년 분기 세액은 이미 납부 했을 텐데?”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에 하인들이 징수원에게 세금을 전달하기 전에 탕진했거나, 횡령했다면? 그건 큰일이다. 지금 세르너드 남작령은 다시 세금을 모아 납부할 여윳돈이 없었다.

“아뇨, 아뇨! 이, 이, 이···”

“세무조사를 나온 건가? 그렇다면 걱정하지 말게. 세르너드는 더 없이 청렴하니. 하하, 이중장부를 써서 감출 자산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이···이···!!”

시종은 혀를 깨물어가며 애써 말을 이었다.

마치, 그 단어를 내뱉는 것 만으로도 저주나, 징벌이나, 반역죄든 뭐든,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굴었다. 페르난데스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물이라도 한잔 마시겠나?”

“이---단심문관!!! 흡! 억! 흡! 넵, 이단, 이단심문관이 왔습니다요!”

“흐으으음···.”

이단심문관이라. 페르난데스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종은 덜덜 떨며 자신의 입을 가리고 성호를 그어댔다.

“어, 어, 어쩌지요?”

“어쩌긴. 다 같이 화형 당하면 될 노릇이지. 그나저나 예상보단 빠르군 그래.”

전생엔 그렇게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이었는데, 어째서 감사를 나온게지?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기야. 전생에 이때 쯤이면 산적이나 늑대에게 쫓기고 있었을 터였으니, 세르너드 남작령에 이단심문관이 오는 지 예상 못한 것이 당연했다.

혹은, 그가 이 일주일 사이에 무언가 시선을 끌 만한 행동을 했다던가···

‘전혀 모르겠군.’

어디서 냄새를 맡았을까. 시약과 기타 장구류들은 이단 비술이라고 하기보단, 오히려 연금술에 가까운 목록들이었다.

예전처럼 세상을 호령하던 때였다면 모르되, 지금의 페르난데스는 그저 소영지의 어린 영주에 불과했다. 꼬리를 잡힐래야 잡힐 수가 없는 노릇이다.

연금술에 빠져 금을 만들어 영지를 되살리겠다는 야심을 가진 헛똑똑이 영주가 어디 그 하나 뿐이겠느냐는 말이다.

“화, 화, 화형이요??? 정말 악··· 위대하신 베이타서스시여 저희를 가호하소서. 악마랑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요?”

“그건 무슨 소리인가?”

“아, 아, 악마가 영주님께 마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어?”

페르난데스는 멍하니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종은 두려운 눈으로 그를 올려보며 연신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마법? 설마 부싯돌?

부싯돌은 아무런 재능이 없더라도, 쓰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잔재주에 불과했다.

1.5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선 점화할 수 없고, 피부에 작은 생체기도 내지 못하고, 무슨 큰 불을 활활 낼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냥 마른 낙엽에 불이나 뗄 때 쓰는 잔재주였다. 말 그대로 ‘부싯돌’이다.

“하!”

‘부싯돌 때문에 지금 이단 고발이 접수된 거라고?’

“하!!”

페르난데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법은 흔하지 않은 기술이지만, 어쨌건 기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소영지의 시골 농노들은 마법이란 것 자체를 동화책에서밖에 보지 못한 무지렁이들이었다!

‘찔리는게 없으면 차라리 당당하겠는데 이거 미치겠군.’

*

알레한드로의 시종이 이단심문관을 찾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단심문관이 어디 찾고자 하면 찾아지는 이들이던가.

우연히도. 이단심문관, 마르코는 지금 세르너드 남작령의 인근 가도에서 야영 중이었다. 시종이 그들의 소문을 듣고, 그들을 찾아 가도를 뒤진 것이 벌써 닷새였다.

“오, 오오! 정말 있었어! 정말 있었군!”

“정지. 정체를 밝혀라. 더 이상 다가오면 종교법에 의거해 즉결 처형 대상에 해당된다.”

마르코의 근위병들이 칼을 뽑아 시종을 막아내자, 시종은 오히려 감격한 얼굴로 넙죽 무릎을 꿇었다.

“이단이 나타나자마자, 이단심문관 님께서 영지에 임해주시니 이것이 어찌 베이타서스의 인도하심이 아니겠습니까요!”

“누군가?”

“저, 저는 세르너드 남작공의 시종입지요!”

근위병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근엄한 목소리에 시종은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아니. ‘이단’말일세.”

저벅, 하고 근위병 사이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시종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이단심문관의 날렵한 정복이 보였다. 시종은 고개를 깊숙이 처박으며 말했다.

“전대 남작공의 서자··· 페르난데스 세르너드입니다! 마, 마법을 부려 제 주인님과 도련님을 살해했습지요!”

“세르너드··· 세르너드라··· 다니엘 세르너드 경이 지금 섭정공으로 있는 그 세르너드?”

“다, 다니엘 남작께선 페르난데스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도 죽었다라.”

“네, 네!”

시종의 머리 위에서, 이단심문관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서자가 정말 ‘이단’이라면 세르너드의 핏줄이 남아있지 않겠군?”

“네···? 아, 아 넵.”

“앞장 서게.”

시종은 자신의 팔을 붙잡는 거센 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근위병들은 시종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부축했다.

“가서 이단을 불태우고, 정의를 집행하세.”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이단심문관 마르코는 웃으며 생각했다.

정말, 페르난데스가 이단이라면. 세르너드 남작령은 교단의 소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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