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4화 (5/388)

4. 종교 재판 (1)

*

이단심문청은 공포와 실적, 그리고 소문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이단을 화형 시키고, 악마숭배자들을 교수형시키고, 악마를 처형 시키는 이들.

오로지 임무를 위해 모든 감성을 거세한 사냥개들. 인류의 이성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광신도처럼 행동하는 이들.

그러나 보다 내부적으로 본다면, 이단 재판관 마르코는 실적과 소문보다는 공포 쪽에 치중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른바 렐리기오사 엔마기카다.

이단심문관의 수많은 권리 중 ‘이단재판에 대한 입법, 행정, 사법권’이라는 초월적인 권리를 수행하는 이들.

즉 이단 재판관은 화형대와 단두대를 공식석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이단심문관의 역할 중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한 직종이었으며, 사회적 존경과 경외도 따르는 직업이다.

이를테면, 권한이 제법 많은 명예직에 가깝다.

*

페르난데스는 이 무골호인인 양 허허, 웃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가 과거에 실제로 마주 했었던 많은 이단심문관들은 모두 젊고, 차갑게 벼려진 예리한 강철검 같은 사내들이었다.

그러나 이 노인은 분명 선이 날렵한 이단심문관 정복을 갖춰 입고 있었음에도 어딘지 순박해 보였다.

‘이단 사냥꾼 일선이 아닌 한직이라 사람이 여유로워진 것인가?’

“허허허, 세르너드 남작. 내 오며 이야기는 익히 들었소. 대단히 극적인 작위 승계였소?”

“아, 네. 주교님께서 걱정해주신 덕에.”

주교. 모든 이단심문관들은 서류상 교구관 주교로 취급 받는다.

페르난데스의 말은 즉, 자신은 이단이 아니니 재판관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써 대하겠다는 뜻이었고, 마르코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허허,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노구가 무슨 걱정을 했겠소. 이 노구의 걱정이라곤 오직 이단 뿐이오.”

“아, 위대하신 만신전께 맹세코. 저 또한 걱정입니다.”

“오오? 정녕 그렇소?”

마르코는 과장되게 놀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는, 이내 씩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박수소리에, 수행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세 사내를 그의 눈 앞에 무릎 꿇렸다.

모두들 익숙한 얼굴이었다. 전 영주의 시종장. 페르난데스의 시종. 그리고 그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경비병까지.

“이 노구가 경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오. 한 명의 종교인으로써, 한 명의 신실한 신도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대단히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소?”

페르난데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들은 제 영민입니다.”

“만신전의 자식들이기도 하지요.”

마르코가 ‘아직은.’ 이라고 말을 삼킨 것을 애써 무시하며, 페르난데스가 말했다.

“이들의 어버이 또한 제 영민이며, 이들이 반드시 베이타서스를 신앙하는 이들이라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주교님. 저희 영지는 지엄한 왕국 법률에 따라 선신 만신전을 모두 긍정합니다.”

“아, 교단 또한 마찬가지올시다. ‘선신’ 만신전이라면. 그리고 만신전에선 이단에 대한 재판 및 심문 권한을 베이타서스께 양도 했소. 교단 또한 종교의 자유를 긍정합니다만, 이단 신앙은 종교가 아니오.”

대단히 노골적인 어투였고, 다른 귀족이 이 따위 소리를 지껄인다면 바로 귀족 결투법을 적용시킬 만한 외교적 무례였다.

그러나 상대는 ‘외교적’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 대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국제법상, 만신전 이단심문관의 권한은 적어도 선신 만신전에 속한 인류 국가라면 무시할 수 없었다.

“하여,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고발장이 접수되었소. 경이 악마에 홀려 영민들을 착취하고, 악마를 사역하며, 사특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이오. 아시겠지만, 비허가 마법사는 ‘교정’ 대상이지요.”

“마법이란 것을 배운 기억조차 없습니다만···”

“빛이 성하면 그림자도 짙으나, 언제나 어둠은 태양 앞에 밝혀지는 법.”

마르코는 본경 구절을 읊으며 무릎 꿇은 사내들의 입에 걸린 재갈을 하나씩 풀었다. 그리곤 그의 곁에 꼿꼿하게 서 있는 수행원에게 손을 뻗었다.

수행원은 화려하게 장식된 은제 장검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마르코는 짧게 기도문을 외우곤 그들 앞에 섰다.

“자, 첫 증언을 시작하게.”

첫 번째는 전 영주의 시종장이었다.

“알레한드로 도련님과 경비대장 바젤 경, 그리고 다니엘 세르너드 남작께서 저 자의 마법에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마법임이 확실한가?”

“저 자가 검지손가락을 뻗었더니, 세 분 모두 얼굴을 감싸며 쓰러졌습니다! 그 사이에 저 잔혹무도한 놈이 무장해제된 그 분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마르코는 웃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제법 구체적인 진술이오?”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셔야지. 우선, 절차를 기다리시오.”

마르코는 두 번째 사내, 페르난데스의 시종에게 다가가 말했다.

“두 번째 증언을 시작하게.”

“위대하신 베이타서스께 만세! 만세! 만세!”

“증언을.”

“그, 그, 세르너드 남작께선 기이한 외국의 기물과 약초들을 구매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아닙니다! 남작가의 사금고가 모두 빌 때 까지 사용했습니다. 영지엔 다른 사용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남작께선 자신의 방을 꾸미는 것에··· 그··· 공, 공, 공”

“공방?”

“네! 공방으로 만든다 하셨습니다!”

분명 그런 말을 하긴 했다. 물론··· 공방이란 말 자체가 대단히 중립적인 표현이다. 마법사들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나 대장장이, 세공 기술자들도 작업실을 공방이라 부르니까.

그러나 어쨌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만드는 공방이라 한다면 너무나 은유가 명확했다.

“공방, 공방이라.”

마르코는 피식 웃으며 세 번째 사내에게 다가갔다. 페르난데스에게 처음 호의를 베풀었던 경비병이었다.

‘악마의 변호인 때문인가?’

베이타서스 교단은 재판의 편파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무조건적으로 피고를 변호하는 측근 또는 변호인으로 구성되는 ‘악마의 변호인’ 절차를 마련했다.

그게 종교 재판에서 특별히 유의미한 적이 얼마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세 번째 증언을 시작하게.”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남작께선 일주일 전까진 알레한드로 도련님께 매일 같이 쥐어 터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고 남작께선 계승 즉시 재정 상태를 점검하시며 직접 영지를 관리하셨고, 그, 그, 영주관의 초가 밤 늦은 시간까지 꺼질 줄 몰랐습니다.”

“그래, 성실하셨군?”

“네, 네! 다들 남작님을 두려워하지만 저, 저는 남작님께서 어린 시절을 봤습니다. 마법은커녕 사술, 악마, 이, 이단 따위와는 접촉하신 적 없는 깨끗한 분이셨습니다!”

마르코는 수염이 짧게 깎인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매일 같이 동년배에게 얻어 맞던 허약한 사내가, 어느 날 갑자기 거구의 사촌을 죽이고, 경비대장까지 꺾은 뒤에 영지를 장악했으며, 기존에 마법에 대해 흥미도, 관심도 없던 바로 그 사내가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증언인가?”

“네, 네? 아니오, 결단코···.”

“잘 들었네!”

마르코는 큭큭 웃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이 호인 같은 노인의 얼굴을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이 사내의 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아무리 허랑방탕해 보이는 인상이라도, 오히려 그런 인상이기에. 이 관록 있는 이단심문관은 진짜 베테랑이었다.

‘하기야··· 이단심문관 직업을 늙을 때 까지 살아남아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이 자는 대단히 높은 계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인퀴지션 킵’이라고 부르는 이단심문관의 본부에서도, ‘노인’ 이단심문관은 몇 없는 인재였다.

페르난데스에게 나쁜 점이라고는, 그런 나이든 이단심문관을 처음 마주했다는 것과, 그런 이단심문관이 하필이면 세르너드 영지에 도래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경께서 반론을 해주셔야 할 차례이외다.”

페르난데스는 마르코의 싸늘한 눈빛에 침을 한 모금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교님. 특정 불가한 우발적 술수로 인한 상해는 마력사용법이 아니라 특수폭행법으로 취급되며, 귀족결투법이 성립된 사안에서 왕국법령상 폭행법과 살인 및 존속살해의 조각사유로 해당됩니다.”

-즉, 귀족간 결투에 종교인이 뭘 야로 부리느냐.

“공식적인 진술로 세 차례.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만 사용된 기술이 우발적 술수로 판단될 여지는 없으며, 귀족결투법 상 결투 시작 전 서로의 무장 정보를 공유해야 함에도 사전에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기각하겠소.”

-결투가 맞긴 하냐? 그리고 너 마법 썼지?

“주교님, 표준마법정의 백과. 마법의 삼요소 ‘의식’ ‘주문’ ‘제물’에 해당하는 조건 없이 발생하는 ‘저급 기술’의 사용은 우발적인 술수로 인정됩니다. 즉, 제가 무슨 수를 썼든 저 세 요인에 위배된다면 마법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 기술은 일반시민무장칙령 상에 ‘무장’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아닌데? 그냥 잔재주였는데? 진놈이 병신이지.

“그건 저급 기술의 경우 그 결과가 항상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오. 그러나 귀공은 세 차례의 결투에서 모두 동일한 결과를 도출했다는 증언이 있소. 이걸 우연이라고 칭하려면, 귀공이 사용한 기술을 직접 시연해 검증해야 할 것이오.”

-패 까봐.

마르코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열여섯 살 어린 귀족 공자가 하기엔 제법 논리적인 반론이었다.

장하다고 해야 할까, 귀엽다고 해야 할까.

마르코의 시선 앞에서, 페르난데스는 바닥에 내려 앉은 낙엽들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손 끝이 번쩍이고, 낙엽들이 불타올랐다.

-치직!

“흠.”

“위대하신 베이타서스시여 저희를 가호하시고, 악의 권세로부터 저희를 구원하시며···”

마르코는 침중하게 불타오르는 낙엽을 바라보고, 증인들은 일제히 기도문을 외우며 성호를 그어댔다.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부싯돌입니다.”

“부싯돌이라···”

부싯돌이 없거나, 물에 젖은 상태로 야영을 할 때. 마법적 재능이 단 한 푼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재주였다.

마법이라 할 것도 없다. 그냥 작은 불티를 살짝 반짝이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마법적 재능이 단 한 푼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쓰는 방법만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재주.

그걸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자면, 마법적 재능이 없다면 어떤 식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재주.

‘마법에 소양이 있고, 이런 하잘것없는 재주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으며, 그걸 이용해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센스가 있다. 논리적이고, 학식이 깊은 열여섯 살의 귀족 가문 고아 소년이라···.’

마르코는 페르난데스의 뻔뻔한 표정을 보며 점점 깊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뜻밖에 괜찮은 재목이 걸려들었다.

'이단심문관으로 키우고 싶군.'

“공방이란 걸 보아야겠소이다?”

페르난데스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가장 위험한 혐의는 벗어났다. 이제 한 고비만 더 넘긴다면, 어쩌면 무사히 끝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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