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5화 (6/388)

5. 종교 재판 (2)

“편히 살피시지요.”

“흐으음···”

겉으로 보기에야 제법 그럴싸하지만, 결정적으로 쓸모 있는 기물도 없는 허름한 방이었다.

사실 이 수준의 마법, 또는 연금 공방이란 것이, 부엌이나 약방과 다를 것도 없다.

이 방에는 그릇들과 배수관이 전부였다. 시약이나 재료들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이 인근에서나 자라는 싸구려 약초들만 즐비했다.

“약학이 밝으신 듯 하오?”

“그냥저냥, 어깨 너머로 본 수준입니다.”

“아니, 제법 정밀한데.”

마르코는 천천히 녹색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을 들어올렸다. 마법적이거나 이단적인 기색은 전혀 없는 정순한 액체였다.

그는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았다.

“이건 경께서 최근에 만드신게요?”

“네.. 뭐, 불면증이나 악몽 따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섞어 보았습니다.”

“상당히 그럴싸하오?”

“그저 남들 다 아는 좋은 풀들 뜯어다 끓인게지요.”

진정제와 강장제 성분을 가진 약초들을 이것저것 넣고 우린 투명한 액체였다. 그 옆엔 연구일지로 보이는 서간이 있었다.

마르코는 서간을 펼쳐 적혀있는 노트를 읽었다.

*

-델리아 허브 3T

-맑은 물 25Oz

-푸르셀 풀을 세 번 끓여 우린 후 식힌 용액 10Oz

*

“흐음.”

“이단적입니까?”

“그리 판단하기엔 어렵겠소.”

연구일지까지 작성해가며 몰두한 가장 최근의 연구자료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수면유도제였다.

그것도 독성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말 그냥 몸에 좋은 허브나 진정제들을 대중 없이 섞어 만든 약이었다.

‘이걸 마셔봐야 그냥 편안한 기분만 들겠지.’

마르코는 천천히 공방을 훑어보았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마법적이거나 이단적인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없었다. 이 공방은 그냥 평범한 약방에 가까웠다.

‘정말, 괜찮은 재목이야.’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무죄방면이 되겠습니까?”

“경이 이단이라면 오히려 대단히 실망스럽겠소.”

마르코는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단이 되거나, 이단심문관이 될 재능이다.

이단은 악마를 추종하고, 이단심문관은 악마를 추적한다. 그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경은 마법적 재주를 사용할 수도 있고, 충분히 영민하오. 게다가 약학 또한 또래에 비해 밝지. 그러한데 어찌하여 그간 고초를 겪으셨소?”

즉, 이건 이단심문관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이런 능력이 있다면, 이런 능력으로 어째서 그냥 당하고만 살았느냐는 것.

‘나라고 그러고 싶었겠냐마는.’

페르난데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은 변명을 해야 할 때였다.

“없는 재주를 과시하는 것보다는, 있는 재주를 숨기는 편이 수월하지요. 열여섯이 되는 날부터 저는 이 영지의 정당한 계승권을 회복합니다. 열여섯이 되기 전날 밤이, 제가 행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 아니었겠습니까, 주교님?”

“호오···”

마르코는 텁석부리를 쓰다듬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인내심과 기획력. 거기에 결단력과 의지.

게다가 승계권을 가진 귀족이 전혀 남지 않은 영지까지.

페르난데스 개인으로 보아도, 혹은 그 배경으로 보아도 참 훌륭했다.

‘이 아이를 교단으로 끌어들인다면, 이 영지가 교단의 것이 된다.’

마르코의 눈에서 탐욕이 흘렀다.

세무와 인사, 회계를 담당하는 이단심문관. 렐리기오사 엔마기카로써 마르코는 이단심문청의 허술하고 빈약한 재무상태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이오.”

“네?”

“정식 재판으로 회부되기 전, 마지막 기회란 말이오.”

“제게 남은 다른 혐의가 있습니까?”

“경이 이단이라면 경의 영지는 무주공산. 교단의 영향력 아래에 올 것이오. 경에게 경의 영지보다 큰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소.”

마르코는 씩 웃으며 목에 걸린 낡은 목재 로사리오를 풀었다. 십자검 문양을 정교하게 양각한 로사리오. 베이타서스 교단의 상징이었다.

그는 로사리오를 페르난데스에게 건네며 말했다.

“기도하시오.”

“기도···라고요?”

“아무 신에게나, 어떤 말이든. 간절히.”

‘뻔한 술수로다.’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신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영성의 구조상 무의식 중에 영적 장벽을 가장 쉽게 열어두는 짓이었으니까.

거절해도, 공식적으로는 심증만을 입증할 뿐 물증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이 행위는 일종의, 이단심문관 식 요식행위나 다름 없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기도 못하는 걸 보니 이단이야!’ 라는 식의.

그러나 더 기분 나쁜 것은,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영적 장벽을 낮추고 뒷조작을 가할 것이 뻔한 이단심문관의 앞에서.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지금 의심 받기 시작한다면, 앞으로의 인생이 고달프다.

그는 이단심문관이 넘긴 로사리오를 꼭 쥐고, 가슴에 두 손을 그러모아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에선 천천히 기도문이 암송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

거칠고 황량한, 마른 바람이 페르난데스의 귓가를 스쳤다. 연녹색 들판이 지평선 너머까지 걸려 있고, 무수한 군기(軍旗)가 그 위로 나부끼고 있었다.

드높은 푸른 하늘엔 오히려 별빛이 흐르고 있다. 그 하나하나가 강대한 기운을 품은 영적인 존재들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 내쉬고 그를 압박하는 기운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하늘의 기운이 한 지점으로 소용돌이치며 집중되고 있었다. 거대한 막사가 보였다.

‘설마.’

거대한 막사의 열린 문 사이로, 한 사내가 부서진 옥좌에 반쯤 기대어 앉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에이 설마···’

영자 밀도가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

신적인 존재의 권역에 강제로 소환된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침을 천천히 삼키며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이 베이타서스의 로사리오였으니까···’

저 사내는 베이타서스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페르난데스는 전생에, 대흑마법사 페이자쉬 시절에도 한번도 보지 못했던 베이타서스를 독대하고 있는 샘이다.

그 흔하디 흔한 나무 조각에 무슨 차원 이동 유물이 심어져 있진 않을 테니까, 이건 베이타서스가 그 자신과 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봐야 하겠지?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허리를 펴 그의 앞에 마주섰다.

베이타서스. 한때 격렬히 증오했으나, 이제는 다 식고 남은 잔불 정도의 감각만이 그 이름 끝에 씹혀 나올 뿐이었다.

그는 외려 자신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그가 저지른 죄악이란, 어쨌건 명목상으론 오랜 학대와 암살기도에 대한 복수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베이타서스는 ‘정의, 집행, 법률과 전쟁’의 신이 아닌가.

-그리고 만일 나를 죽이려 들었다면 굳이 이 장소에 소환할 필요도 없었겠지.

“위대하신 베이타서스 만세. 심연의 등대이며 광휘의 검이시어. 전쟁의 승리와 명예의 신이시여!”

[네가 나를 경배하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흡족하구나 페이자쉬]

“흐으음···”

페르난데스는 깊게 숙인 허리를 곧장 펴며 청동 옥좌를 바라보았다.

온갖 흠집과 때운 흔적, 뭉게지거나 부서진 자국이 가득한 판금 갑옷을 갖춰 입은 사내가 옥좌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영자 기생충.”

[악마의 개]

“반짝거리는 광대.”

[패배자.]

“아아, 아니지. 니가 더 많이 졌지. 난 세계를 멸망시켰는데?”

[주체적으로 스스로 해낸 줄 아는 꼬라지가 사뭇 우습도다. 악마의 꼭두각시야.]

“아 그래, 그래 그래. 니 꼭두각시들. 걔들 잡아다 가둘 땐 재밌더라.”

[그 말은 옳구나. 즐거웠겠지. 내 귀여운 자식들. 그래.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대악마의 시종아. 그것이 네 목적이 되리라.]

“뭐?”

베이타서스는 페르난데스의 회귀 전 세계를 모두 기억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회귀에 그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그건 곧 그가 세계의 재멸망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세계의 흐름은 반드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 며칠 간의, 최근의 모든 실험들이 모두 헛짓이었군.

그냥 기도나 한 번 해볼 것을 그랬어. 시험 삼아서···

[적어도 복수 자체는 의미있었지. 나 또한 그 작자들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노라.]

“선신 만신전 취미인가? 허락 없이 생각 읽는게?”

[경고인가? 우습구나. 나의 권역에서 나에게 네 생각을 숨기기엔 네 능력이 너무나 초라하도다.]

“아 됐다. 하던 말이나 계속해 보시지. 무슨 목적이라고?”

베이타서스는 그 말에 비죽 웃으며 왼팔을 휘둘렀다.

군기 넷이 그의 곁으로 날아들어 바닥에 박혔다.

낡고 헤진 테피스트리가 삭은 나무 막대에 매달려 있었다.

페르난데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휘장들이었다.

베이타서스의 네 대천사들··· 전쟁과 희망의 군단장들. 그들의 문양이었다.

“그래. 그러고보니 저 치들은 어디로 가셨나?”

[물질 세계로. 스스로 신성을 희생하고 그 대가로 너를 과거로 회귀시켰노라.]

“단단히 미쳤군. 되살리려면 더 적합한 녀석들이 많았을 텐데? 다이안 쉬라이크나, 그 정돈 아니어도 그 년의 아홉 제자들도 그럭저럭 쓸 만은 했지. 샤오 메이나 파리안 데트리칸을 회귀 시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을 것 같고···”

[그 시점에선 모두 죽거나 타락한 인물들이었지. 모든 영웅들이 말이다. 네놈이 멸망시킨 시간선에선,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네가 유일한 인간이었다.]

“음··· 인간을 ‘멸종’시킨 기억은 없는데···?”

[유일한 ‘인간’. 영자 구조물에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게 증류된 인간의 영혼. 네가 가진 인간성에 대한 집착 덕에 가능했던 일이지.]

“어···”

웃기는 일이다.

당시 지옥 마력에 의해 타락하거나 오염된 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인간들은 스스로의 영혼을 강화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으로써의 영성에 불순물이 섞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오히려 아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영적 순수성에 집착했던 페이자쉬만이 회귀할 권리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라제리엘. 소어레델. 피에라넬. 사르디엘··· 나의 네 딸들. 내가 가장 처음 벼린 나의 병기이며 나의 병사. 그 아이들이 너를 위해 기꺼이 신성을 내려놓고, 인간의 삶을 선택했노라. 페이자쉬.]

“뭐, 그래서 내가 참으로 미안하고 감사한 일이외다.. 하고 회개라도 하길 바랬나?”

[아니. 네가 그 아이들을 모두 구원해야 한다. 회개는 필요 없지. 목적만이 필요할 뿐.]

“날 더러 과거를 반성하고 어떻게, 인류를 위해 봉사라도 하라 이 말인가?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거라면, 웃기는 소리야. 베이타서스.”

베이타서스는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네 아들의 영혼.]

페르난데스는 그 순간, 아무런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의 영혼? 멀쩡하게 박동하던 심장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장기가 바닥으로 쓸려 내려가는 지독한 감각을 생생히 느끼며,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베이타서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 아들의 영혼을 구원해주마. 이건 기대나 설득이 아니다. 협박과 거래지.]

“그, 그럴 수 있나? 내 영혼이 과거로 돌아와 ‘나’가 되었다면. 아직 내 아들은 태어나지도 않았겠지! 녀석의 영혼은 제 2계 영혼의 소용돌이 속에 녹아 있는 에테르에 불과할텐데···?”

[아니. 네가 본디 있던 세계는 사라진 역사가 아니다. 와일드캐스트, 모르겠나? 차원 전체의 [대(大) 수레바퀴]를 뒤로 돌렸다면,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었겠나? 애당초, 그런 거사가 신에게라도 허락된 권능이겠나?]

“그렇다는 말은···?”

[네 짐작이 옳다. 네 세계는 멸망했으며, 지금쯤 그 시간선에서 네 아들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져 있겠지. 분노한 악마들이 네 아들의 영혼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 지는 뻔하군.]

“수평 세계 이론이라고? 그렇다면 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 나나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 세계를 나의 이름 아래에 평화롭게 만들라. 그리고 나의 자식들이 제 몸을 버리며 희생한 힘으로, 이 완전해진 세계를 본산의 시간선에 덮어 씌우겠노라.]

경악한 페르난데스에게, 베이타서스는 장엄하게 선언했다.

[그러한 즉. 이 세계가 온전해진다면 자연스레 네 아들 또한 구원 받으리라. 나 또한 네 경우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아니,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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