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실패할 수 없는 도박
“이단심문청에 입단하고 싶습니다.”
페르난데스의 말에, 교황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맘만 같아선 당장 교황청 직할로 데려가 정교 사제의 길을 밟게 해주고 싶었다. 그 자신이 후원자가 된다면 충분하리라.
하지만 베이타서스의 성흔이라는 것은, 적어도 군신 베이타서스의 사도라는 것은 전장에 섰을 때 가장 의미 있는 것.
“십자구호기사단은 어떻니? 교리수호회에 직접 입회하는 편이 더 안전하고 수월할 게야.”
“이미 귀의한 바, 어찌 가시밭길을 마다하겠습니까.”
-왈칵.
페르난데스의 말에, 교황과 마르코, 그리고 덩치 큰 중년 사내까지 눈을 붉히며 성호를 그었다. 그야말로 성경을 찢고 나온 듯한 완벽한 신앙심!
“아이야, 이단과 사교들은 성자의 유해를 탐낸단다. 교단을 모욕할 목적 뿐만 아니라, 시성 받은 성자의 유해는 아주 위협적이고 강대한 성유물로 벼려낼 수 있어. 정녕코 이단심문관이 되려 하느냐?”
그럼에도, 교황은 만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단심문관이란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다. 문명의 수호자이자 교리의 선봉이며 가장 은밀하고 날카로운 단검.
한 사람의 이단심문관이 교육을 이수하고 성장할 때, 전장에서 열 사람의 이단심문관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간다. 그들의 죽음은 언제나 어두운 뒷골목이었고, 그 누구도 그들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
페르난데스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시가 보였습니다.”
“···하는 수 없구나.”
신의 계획이리라. 가장 고되고 어려운 일에 자신의 사도를 파견한다는 뜻이겠지. 바울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바울의 곁에 서 있던 중년 사내가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에겐 재능이 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제피스 형제?”
“마르코의 보고를 읽고 난 후에 확신했습니다. 아마도, 마르코 형제 또한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본청의 어떤 분파에서도 이 나이에 이런 침착함과 판단력을 가진 아이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침착함과 담대함, 냉철함과 논리성. 기교와 임기응변. 마르코의 서한은 온갖 미사여구로 꾸며져 있었지만, 과장을 덜어낸다 하더라도 열여섯 소년이 보일 수 있는 재주는 아니다.
“이단심문청에 온다면, 너에겐 세 가지 길이 주어진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제피스가 끄덕이자, 마르코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사제가 되고 싶든, 그건 경의 의사요. 하지만 세르너드 경. 교단은 사교 집단이나 이단이 아니외다. 우리는 이성과 합리로 진리를 밝히는 빛이요.”
페르난데스는 마르코의 말에 무심코 코웃음을 칠 뻔 했다. 전생, 페이자쉬의 삶에서 그는 이단심문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표적이었으니까.
그를 죽인다면 시성 될 것이고, 그에게 죽는다면 순교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압도적인 무력과 권한을 지닌 광신도 집단이 그의 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제가 되더라도, 이단심문청에 속하는 것보다 그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수월할 것 같진 않았다.
페르난데스의 목적은 이단과 사교, 악마숭배자들과 같이 세계를 좀먹는 이들의 박멸과, 베이타서스의 네 딸을 구원하여 자신의 아들을 되찾는 것.
기왕 사제가 되어 교단을 등에 업고 행동하겠다면, 이단심문청보다 적합한 곳은 없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어떻게 됩니까?”
“형제에겐 지혜, 추구, 그리고 악마의 길이 있소.”
마르코는 손을 비비며 미소 지었다.
“지혜의 길. 법학, 신학, 수리학, 수사학, 기호학, 사회학, 기초인문학에 대한 소양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는 종교 재판을 사법하고, 그 외엔 행정 업무를 도맡게 될 것이오. 언제나 인력이 부족하지만, 비교적 안전하지.”
-렐리기오사 엔마기카 (Religiosa Enmagicka : 마녀 사냥꾼)
행정업무와 사법권, 대단히 강력한 권한이다. 인사권과 재무 회계 운영을 모두 관리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단심문청의 비의와 정보력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추구의 길. 대부분의 이단심문관들이 배정받는 직종이오. 이단 신앙 정화와 성전, 그리고 이단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가진 집단이지. 이단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다면, 내부의 판단 하에 해당 사건에 대한 전적인 자율성을 보장 받소.”
-렐리기오사 헤레티카 (Religiosa Heretica : 이단 사냥꾼)
‘전생에 가장 자주 보던 놈들···.’
귀찮은 날파리들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자율성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다. ‘이단 종파를 섬멸하고 세계를 멸망에서 구원하라.’ 그리고 ‘네 대천사를 탐색하라’는 것.
“악마의 길. 가장 추천하지 않고 싶군. 세르너드 경. 가장 큰 고난이 함께할 것이오. 생환률이 극도로 낮고, 대부분 끔찍하게 살해당해 시체도 수습할 수 없지. 악마를 쫓고 구마하는 업무를 맡으며, 언제나 멸망 직전의 지역 사회에 투입될 것이오.”
-렐리기오사 디모니카 (Religiosa Demonica : 악마 사냥꾼)
확실히, 악마가 현실에 소환된다는 것 자체가 이단 사교들 입장에서 더 이상 선신 만신전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살리며, 적당히 업적을 쌓아 올릴 수도 있고, 동시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이었다.
“자, 세르너드 경. 아니, 형제님. 어떤 분파를 선택하시겠소? 형제님이라면 내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훌륭한 재판관이 될 덕목이 보인다오.”
마르코는 허허, 웃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제피스는 그런 그를 자못 못마땅하다는 듯 노려보았다.
세 사람의 시선이 페르난데스에게 모였다.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악마를 쫓겠습니다.”
“잘 생각해··· 디, 디모니카?”
“정말인가···?”
“흠···.”
페르난데스는 바울 4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디모니카가 되겠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아도 되겠느냐?”
“가로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곳을 지탱하리니.”
“참으로 신실한 아이로다!”
바울 4세는 껄껄 웃으며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곧,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내려보며 말했다.
“아이야. 네가 가고자 하는 그 고난에는 어떤 보상도, 인정도 따르지 않을 거란다.”
-아니, 악마들의 유물과 힘.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시점에 누구에게 귀속되어 있는지 뻔히 알고 있거든.
“어찌 세인의 보상을 따라 교단을 신봉하겠습니까.”
페르난데스는 어느새 실체화하여 팔짱을 끼고 웃는 페이자쉬를 바라보았다. 페이자쉬는 큭큭 웃으며 바울 4세를 보고 있었다.
-교황이 이렇게 멍청한 놈이었다니.
‘아니, 성흔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베이타서스의 품질보증 확인서나 다름 없는데, 무슨 의심이나 하겠어?’
바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피스 형제. 자네 말이 맞군. 이 아이는 이단심문청에 가야만 할 인재였네.”
“···예, 성하.”
바울은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위험한 길을 걷는다? 그게 바로 성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시성 자문단에겐 자문 의식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군. 이 아이는 시복될 걸세. 잘 가르쳐 보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하.”
제피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바울은 웃으며 자리를 비켰다. 마르코와 제피스는 페르난데스에게 다가갔다.
“아이야. 엔마기카에겐 교단의 막대한 권한이 있단다. 그리고 헤레티카에겐 교단의 지원과 정밀한 조직망이 주어지지. 하지만 디모니카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 하나 뿐이란다.”
제피스의 말에 페르난데스는 전생을 떠올렸다.
그가 와일드캐스트(방랑마법사)로 하루 하루 연명하던 시절.
엔마기카 이단심문관들의 치밀한 함정과 계략. 그리고 신성 주문들도 물론 두려웠다.
헤레티카 이단심문관들의 끈질긴 추격과 포위망 또한 위협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순간은.
베이타서스의 축복을 직접 내려 받고도 영혼이 무너지지 않은 정예병들. 바로 디모니카였다.
디모니카가 악마를 대적하기 위해 갈고 다듬은 수단은 바로, 육신에 신의 축복을 섞는 것이었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강대한 힘은 그들을 비로소 악마 사냥꾼으로 만들어냈다.
“본디 디모니카의 시련은 통과하기 극히 어렵다. 그러나 너는 주께서 직접 임하셨음에도 살아 돌아온 바. 사실, 디모니카의 시련 자체가 의미 있는지 의문이지만···. 어쨌건 관례는 중요한 법이니. 일어날 수 있겠느냐?”
“네.”
“따라 오거라. 마르코 형제. 입회를 부탁하오.”
“영광입니다. 형제님.”
페르난데스는 제피스를 따라 이단심문청의 복도를 걸었다.
*
렐리기오사 헤레티카, 이단 사냥꾼들의 입단 시련은 회개와 참회, 그리고 참선이다. 그들은 자신의 순수성을 끊임 없이 의심하며 비로소 ‘의심’이란 화두를 영혼에 각인시킨다. 이는 약 열흘에서 한달 가량 소요된다.
이후 무수한 훈련과 시험으로 그들은 수련생 이단심문관에서 수습 요원 이단심문관으로 성장한다.
렐리기오사 엔마기카, 마녀 사냥꾼들의 입단 시련은 시험과 심층 면접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신앙을 증명하여 비로소 타인을 ‘참죄’할 논리를 구축한다. 이 또한 약 열흘에서 한달 가량 소요된다.
이후로도 그들은 학문을 도야하고 곧 재판을 참관하며 경험을 쌓는다. 이리하여 그들은 수습 요원 이단심문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렐리기오사 디모니카, 악마 사냥꾼들은 입단 시련이 없다. 그 말은, 공문화된 ‘시련’ 커리큘럼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이단심문청은 디모니카에 자원하는 모든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세례의 축복을 한다.
대개의 경우, 디모니카의 세례에서 살아남는 이는 자원자의 1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를 버텨낸 디모니카 이단심문관들은 엄밀히 말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게 된다. 육신의 구조가 바뀌고, 강대한 신성이 혈관을 따라 흐르게 된다.
이후, 그들은 수련생도 과정도, 수습 생도의 과정도 거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단련과 실전 경험 뿐이었으므로.
오직 공포, 오직 소문, 그리고 오로지 실적으로만 증명되는 이들이 바로 이단심문관이며,
이들이 있는 장소가 바로 인퀴지션 킵, 드래곤스팅 요새,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 그 외의 수 많은 비공식 명칭을 가지고 있는 이곳, 이단심문청이다.
페르난데스는 그 내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디모니카 세례 성소에서 제피스의 참관 아래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제피스의 단단한 손이 페르난데스의 어깨를 짚었다.
“이단을 불태우리라. 악마를 불태우리라. 마녀를 불태우리라.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복자, 페르난데스. 주의 성흔을 입은 아이야. 내 이름은 제피스이며 이제부터 나를 스승이며, 동시에 형제로 여기거라.”
제피스는 성유를 페르난데스의 이마에 찍어 바르며 말했다.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제피스의 곁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황동 술잔을 들고 있는 마르코가 따라 말하며, 잔을 페르난데스에게 건넸다.
“마지막으로, 어린 형제여. 이 잔을 받는 이들 중 대부분이 죽거나 이지를 상실한 채 폐인이 되었소. 두렵지 않으시오?”
페르난데스는 잔을 받아 들고 미소 지었다.
베이타서스가 그에게 직접 성흔을 박아 넣으며 내린 가호.
[불굴]과 [사도]가 그의 영혼을 떠받치고 있었다. 실패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 있는 사제들 또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실패할 리가 없는, 오로지 성공 뿐인 도박이다.
이에 디모니카 세례에서 주어지는 [강화]. 이로써 그의 영육은 완성된다.
-물론, 그 모든 일의 대가는 마법이었다. 페르난데스. 후회 되진 않으냐? 엔소서리의 종사로써?
‘아깝긴 하지만, 이번 생에서 흑마법을 직접 사용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막토 수페를라우도(진심을 다하여 찬양하라)”
페르난데스는 망설임 없이 단숨에, 황동 잔에 담긴 성수를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