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디모니카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 안토니오의 성배]는 디모니카 세례 의식의 핵심 성유물이다. 이 황동 잔에 담긴 성수는 이를 들이킨 자의 육신을 변형시킨다.
사람에 따라 대단히 드라마틱한 효과를 얻곤 하지만, 대체로 그들 모두가 장기 전투에 최적화된 몸이 된다.
제피스처럼, 살짝 비인간적인 단단하고 거대한 덩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성배를 단숨에 들이키고 정좌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식은땀에 전신 노폐물들이 스며 나오며 악취가 났다.
-고오오···.
“이건···.”
“성흔이···.”
페르난데스의 가슴과 등허리에 박혀 있는 두 개의 성흔이 찬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장엄한 아우라가 육체에 가해지는 변형을 받아들이 듯이 일렁거렸다.
-털썩.
페르난데스는 고통에 겨운 표정으로 바닥을 짚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성소를 휘감던 아우라가 천천히 사그라졌다.
제피스와 마르코는 당황한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내려보았다.
“성공···맞나?”
“아무래도 성공한 것은 맞는 듯 싶은데···.”
마르코는 재빨리 페르난데스의 코 아래를 손으로 짚었다. 미약하지만 호흡이 있다.
“호흡, 심박 모두 정상입니다. 제피스 형제님.”
“끄응···.”
성배를 들이키고 사지가 녹아 내리거나 기형적인 기관이 자라거나, 죽거나 미치는 등의 증상이 없다면 디모니카 세례는 성공으로 친다. 멀쩡한 이지가 돌아왔다는 전재 하에.
전신의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후광이 비치는 현상은 디모니카 세례의 성공을 의미했다. 그러나 어째서···.
“왜 몸이 그대로지?”
“음···. 이미 주께서 임재하셨던 몸이니, 그보다 약한 축복에 면역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가냘퍼서야···.”
페르난데스의 몸은, 어쨌건 객관적으로 ‘가냘프다’라고 할만한 육신은 아니었다. 농지에서 천대 받던 서자가 문약하기까지 했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제 나이 또래에 비해 좋은 영양 공급과 혈통으로 튼튼한 근골에, 오랜 세월 학대를 당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그의 몸은 제법 선이 굵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의 시점. 제피스는 신입 디모니카를 바라보는 눈으로 페르난데스를 감정했다.
“어쨌건, 세례에 성공하고도 내쳐진 사례는 없었소.”
“더군다나 주께서 선택한 사도임에야. 그럴 순 없습니다.”
제피스는 페르난데스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는, 세례 성소 밖으로 빠져 나갔다. 마르코는 짧게 성호를 긋고 그를 뒤따랐다.
새로운 디모니카의 탄생을 알리는 타종이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회에 울려 퍼졌다.
*
따사로운 햇살은, 음습하고 비밀스러운 드래곤스팅 요새에도 공평하게 내려온다. 페르난데스는 아침 기도를 알리는 타종을 들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로 명상하고 있었다. 흑마법은커녕, 기초적인 현대 마법 중 그 어떤 것도 이 육신에 구현할 수 없었다.
디모니카 세례 이후로,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강대한 신성이 마법을 거부하고 있었다. 회로를 만들어내려는 그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이제야 좀 후회가 되나?
‘그 말 알아? [마법사가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것은 반드시 된다. 그러나 마법사가 불가능하다고 공언하는 것은 오히려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신의 가호를 어떻게 뚫고 마법 회로를 만들어낼 계획이지?
‘마법적 효과를 얻어내는 유물은 세계 곳곳에 차고 넘치지.’
신성 주문과 가호는 마법과 완전히 궤를 달리 한다. 굳이 지옥 마력 뿐만이 아니라, 자연 마력에 대해서도 강력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의 사도가 된 페르난데스는 완전히 마법을 잃어버렸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가 되었다.
‘대신 얻은 것을 봐. 페이자쉬.’
페르난데스는 힘이 넘쳐 흐르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외형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신성이 만들어낸 출력은 대단했다.
-콰드득.
페르난데스는 침대의 나무 손잡이를 으스러트리며 페이자쉬를 바라보았다.
-진짜 악마와 힘으로 대적할 생각이냐?
‘어리석기는.’
“끄응.”
페르난데스는 가볍게 몸을 풀며 옷을 입었다. 밤새 한 자세를 유지한 터라, 팔다리가 뻐근했다. 그는 페이자쉬를 바라보며 웃었다.
‘힘은 도구일 뿐이야. 도구는 강할수록 좋지.’
-좋아. 마법을 잃은 대가가 고작 육체란 말이냐? 마도학의 종주였던 녀석이, 힘에 굴종하여 신비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페이자쉬. 여기서 우리의 차이가 보이는군.’
페르난데스는 그런 페이자쉬의 모습이 즐거웠다. 같은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고작 육체의 차이 하나만으로 그와 페이자쉬는 이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전생에 우리는 마법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마법이 오히려 우리를 추종했지. 마법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고, 나는 그 도구를 제법 잘 쓰는 편이었어. 고작 그 정도의 차이야.’
단지. 페르난데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단지 디모니카의 다른 동료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
-후우우웅!
-콰아아앙!!
“제법이군, 파비아노 형제!”
“세르지오 형제!! 조심하게!”
“껄껄!!”
2m 장신, 찬란한 햇살 아래에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두 거인이 목검을 후려 치며 싸우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가볍게 몸을 풀고 뜰을 뛰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스스스!!
“제기랄! 훈련용 목검! 정내미 떨어지는 내구도로군!”
“훈련용 철검으로 대련하세! 형제여!”
“막토!”
후우웅, 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대체 어떻게 목검과 목검이 허공에 부딪쳤는데 폭음이 들릴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왜 목검이 부러지지 않고 가루가 되는 거지?
페르난데스는 그 끔찍한 모습을 보며 부르르 떨었다.
빌어먹을 디모니카들. 신성으로 강화된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하여, 결국 악마를 직접 도륙내버리는 경지에 이르렀던 이들.
-이거 추억이군. 트라우마가 오겠어.
‘그러게. 저 놈들이 악마를 맨손으로 찢어버렸던 꼴이 떠오르는군.’
말 그대로, 신이 창조한 악마들이었다. 페르난데스로써 다행인 점은, 저 놈들의 육체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저 놈들처럼 멍청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역시 오전엔 땀 흘리며 경배하는 것이 가장 상쾌한 기분이야!”
“오, 찬양하라.”
대리석 조각 같은 근육을 꿈틀거리며 수도승들이 껄껄 웃어댔다. 이 넓은 수련장에는 여기저기서 근육을 단련하는 수도승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멀리에, 한 무리의 수도사가 지나가고 있었다. 긴 수도복 로브에 횃불 자수. 엔마기카였다. 페르난데스의 예민한 청각이 그들의 로브 자락 스치는 소리까지 잡아냈다.
“어휴 저 덩어리들···.”
“저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그들은 조용하고 지적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돌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디모니카 수도승 하나가 소리 질렀다.
“아, 형제님들! 좋은 오전일세!”
“아···. 네, 형제님.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영광을!!! 으하하하하!!”
디모니카 수도승들은 다들 쾌활하게 웃으며 다시 대련에 들어갔다.
“아, 페르난데스 형제!”
“아, 네 형제님들.”
수도승이 운동을 준비하는 페르난데스에게 경쾌하게 소리쳤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거의 장벽이 그의 눈 앞에 늘어선 감각이 들었다.
“흐음! 정말 작군!”
“작고, 얇군···.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어!”
“?? 기도···기도요?”
“암! 우리의 육신은 축복일세! 그리고 축복은 감사 기도와 자기 단련을 먹고 성장하지!”
파비아노 형제, 페르난데스가 속으로 내심 근육 괴물 1이라고 이름 붙인 수도사가 두 손을 그러쥐었다. 암석처럼 생긴 거대한 두 손이 공간을 압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근육을 키우는 데에는 분명, 고기 같은 것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오오, 어린 형제여. 조심하게. 그런 미신을 입에 담는 것은 불경하다네!”
파비아노는 성호를 그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막토 수페를라우도.”
“막토.”
수도사들은 일제히 한 마디씩 터트리며 성호를 그었다. 마치 페르난데스를 용서해주겠다는 모습에 그는 기가 차서 웃었다.
‘전생에 저딴 놈들한테 그렇게 깨졌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놈들의 힘은 진짜니까···. 아니, 하지만 정말 자존심 상하는데?
전생에 디모니카는 악마 숭배자들에게 있어서 사형선고와 동의어였다.
놈들은 항상 가장 중요한 순간에 튀어나와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추종자들을 박살내고 기껏 소환한 악마를 찢어 발겼다.
충분한 준비가 없이는, 디모니카 이단심문관들에게는 어떤 전략도, 전술도, 함정도 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우직하게 그 모든 계략을 그대로 관통하며 직진하여 악마 숭배자들의 종심을 박살냈던 놈들!
하지만 놈들의 이 단순한 믿음은 놀랍게도 논리적인 근거가 있었다.
[성 안토니오의 성배]로 강화한 육체가 그저 고기 몇 점 먹는다고 늘어날까? 단순한 생체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축복인데?
“혹시 형제님들. 몸집이 더 커진 형제가 있었습니까? 세례 이후에요.”
“물론이지!”
“···? 정말요?”
“암!”
파비아노는 장엄한 눈빛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매일같이 고된 기도를 올리고, 악마를 무찌르던 여기 세르지오 형제님의 대흉근이 1인치 더 늘었다네. 놀라운 이적이지!”
“막토!!”
세르지오 형제가 자랑스럽게 오른쪽 가슴만 들썩거려 감사를 표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 멍청이들이 말하는 고된 기도는 근육 단련이다. 즉, 매일같이 운동하고 악마를 잡으면 근육이 성장한다는 뜻인데···.
영양 공급 없이 운동으로 성장한 것인지, 악마를 잡는 과정에서 축복으로 성장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알아내고 싶지도 않군.’
이 멍청이들과 함께 있으면 두뇌가 근육으로 옮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파비아노는 페르난데스의 어깨를 꽉 잡았다.
“형제는 아직 기도가 부족하다네! 자, 함께 찬양하세!”
그는 거대한 덤벨을 페르난데스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윽!”
순간, 페르난데스는 휘청거리며 간신히 덤벨을 쥐었다. 끔찍한 무게였다. 디모니카로써, 페르난데스는 간신히 합격점을 받은 수준에 불과했다. 이 근육 괴물들의 출력엔 아직 닿을 수 없었다!
“제, 제기랄. 잠시만요, 형제님들. 진정해보십시오. 제가 말씀 드릴 말이···.”
“쉿.”
파비아노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화로는 찬양할 수 없다네.”
“망할.”
*
운동을 마친 페르난데스가 다시 오후 찬양에 들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수도사들의 손에 이끌려 운동장으로 나가기 전에, 제피스가 그를 찾아 왔다.
“페르난데스 형제. 잠시 시간 괜찮은가?”
“아, 영광이로다.”
페르난데스는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제피스는 씩 웃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수도사들은 황급히 제피스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왜 저 치들이 형제님을 두려워합니까?”
“내가 저 어린 형제들의 스승이었거든.”
“···.”
저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페르난데스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체 뭘 가르쳤을까···.
“아무튼, 페르난데스 형제. 병기고에 가서 무기를 좀 챙겨 오게.”
“무기술 훈련이라도 하십니까?”
“아니, 첫 임무일세.”
제피스는 불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세례 받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네. 형제. 임무에 투입되기에 아주 적절한 시간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