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작전명 : 하수도 청소
“혹시 형제님. 드워븐 썬더 쓰로워가 있습니까?”
“여기가 무슨 박물관으로 보이나?”
페르난데스가 병기고 사용 면허를 신청하자마자, 마르티리오라는 엔마기카 한 명이 후다닥 뛰어왔다. 그는 병기고로 향하는 내내 이 요새에 있는 병장기들의 신성함에 대해 강론했다.
“···그러니까, 형제님. 디모니카 형제들이 한번 불출해가면 돌아오는 병장기가 거의 없다네. 우리 재무표에서 제일 더럽게 돈 많이 들어가는 데가 병기고인데···.”
페르난데스는 이 머리 벗겨진 중년 사내의 말을 대충 한 귀로 흘렸다.
‘분명 내 기억으론 한 정 있을 텐데···.’
전생에, 그는 이름 모를 이단심문관이 드워븐 썬더 쓰로워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고대 드워프 기술의 집대성이자, 극도로 발달한 마법 공학의 결정체. 드워븐 썬더 쓰로워.
인간이 청동기 시절에, 엘프 오왕국과 드워프 사산 연맹이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드워프들의 제식 병기.
인간의 기술로는 영원히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고대 기술 [마법 공학]의 집약체였다.
마도학자로써, 페르난데스는 반드시 그 물건을 직접 뜯어 보고 싶었다.
‘단 한 번의 조작으로 지옥 마장급 악마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지.’
-소모품인 것 같긴 했지만. 어쨌건 효과는 확실했지.
이름 그대로, 천둥이 내려치는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전방으로 투사하는 마법 지팡이였다!
“···그래서 이 축복 받은 장검은 어떤가? 날렵한 몸체에 자루까지 일체형 풀 세인트메탈일세.”
“제피스 형제님은 무슨 무기를 쓰십니까?”
“아, 제피스 형제님은 개인 병장기를 사용하지.”
“음? 병장기 소유가 가능합니까?”
“오직 그 형제를 위해 만들어진 무구들이 있네. 형제님도 한 30년 정도 근속하면 그런 유물들을 잔뜩 가질 수도 있겠군.”
마르티리오는 킬킬거렸다. 농담이긴 했지만, 기원이기도 했다. 30년 뒤까지 살아 남으라는 기원.
“잘 드는 단검 한 자루는 필수일세. 손가락을 썰 때 장검을 쓸 순 없지. 로프도 있으면 좋고, 아. 이 가방도 챙겨 가게나.”
마르티리오는 이것저것 골라 담아주며 주절거렸다.
“병장기에 드는 돈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속세의 금화가 형제의 목숨보다 값지겠는가.”
페르난데스는 이 따듯한 말에 감탄했다. 이단심문관들은 대외적으로는 어떻든, 그들 안에선 그야말로 형제애에 가까운 교류를 하곤 했다.
하긴, 당장 어깨를 마주 댄 이단심문관이 쓰러진다면, 그 길로 인류 문명은 한 발자국 더 뒤로 후퇴해야 하는 치열한 전장을 함께 걷고 있는 샘이니.
페르난데스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이 정 깊은 엔마기카를 조금 더 털어먹기로 했다.
“투 핸디드 소드로 하나 추천해 주십시오.”
“흠. 이건 어떤가?”
끙, 하고 마르티리오가 거대한 장검 한 자루를 꺼내 들며 말했다.
-설마 저런 걸 들고 다닐 건 아니지?
‘당연히 들고 다녀야지. 힘은 뒀다 뭐해?’
-저건 너무 저속한데?
말 그대로, 오우거들이 들고 다니는 몽둥이에 가까워 보였다. 마르티리오는 거의 성인 남성의 신장 만큼 길고, 파비아노의 팔뚝만큼 두꺼운 칼을 탁상 위에 얹었다.
“풀 세인트메탈. 14파운드. 디모니카 형제라면, 이걸 휘둘렀을 때 거의 성문을 때려 부수겠다고 생각해도 좋네.”
“···.”
일반적인 장검 한 자루가 3파운드에, 보통 숙련된 대검병들이 사용하는 제식 투 핸디드 소드가 6파운드 반 정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의 선박 건조용 철근이나 다름 없는 녀석이었다.
“그거 장식용 아니었습니까?”
“이 병기고엔 악마의 피를 먹지 않은 무기가 없다네. 하하.”
페르난데스는 조심스럽게 거대한 대검을 들어 올렸다. 묵직한 무게 만큼 놈에게선 강렬한 신뢰성이 느껴졌다.
-진짜 쓰게?
‘페이자쉬. 내가 검술을 잘 하던가?’
-쓸만한 수준은 아니지.
‘검술이란 것은 결국 힘을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거야.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검사가, 무거운 걸 휘두르면 그 자체로도 압도적인 폭력이지.’
-그걸로 악마를 때려 잡겠다고?
‘장검으로 찔러 봐야 이쑤시개지.’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대검을 내려 놓았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훌륭하군.”
*
페르난데스는 결국 한 시간 가량 병기고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는 곧장 제피스의 개인실로 향했다.
-똑똑.
“누군가?”
“페르난데스입니다. 형제님.”
“열려 있네.”
-끼이익.
제피스의 개인실은 다소 화려했다. 대부분의 이단심문관들은 검박하고 무기질적인 삶을 강요 받았지만, 제피스는 몇 안 되는, 개인 병장기 소지가 허가된 인물이었다.
그의 방은 병장기들과 지도, 이것저것 휘갈긴 노트들. 그리고 기도 제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서 시약을 배합하고 있었다. 흘깃 보니, 마취제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페르난데스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짐이 많군?”
“좀 과합니까?”
“마르티리오 형제가 좀 신병을 과보호 하는 편이기는 하지. 뭐, 준비는 단단히 할수록 좋기야 하다네.”
제피스는 테이블을 정리하며 일어섰다. 그는 페르난데스에게 다가가 무장을 하나씩 점검했다.
“로프, 음. 쓸모 많긴 하지. 부싯돌? 자네 부싯돌 쓸 수 있지 않나? 그런 보고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어, 네.”
“그럼 이건 빼지. 단검이라. 투척용도 챙겼겠지? 훌륭하네. 한 서너 자루는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하게.”
-퓻!
제피스가 손목을 까딱이자, 순식간에 투척용 단검 한 자루가 그의 손아귀에 잡혀 나왔다. 소매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페르난데스가 당황하자, 제피스가 미소 지었다.
“멀리서 귀찮게 구는 악마들이 이따금씩 있다네. 언제든 무언가를 던질 수 있도록 연습해두게.”
“오!”
“그나저나 그 몽둥이는 뭔가? 그거 설마 양손대검인가?”
제피스는 페르난데스의 등에 묶여 있는 철근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이 서있기는 하지만, 차라리 둔기에 가까웠다.
“이건 제 취향입니다.”
“···독특하군. 신병이 잡기엔 기술이 많이 필요한 놈인데. 어쨌건 잘 되었어. 무장을 보면 누가 봐도 종자 정도는 되겠군.”
“종자요? 그, 기사 종자?”
“그래. 이제부터 형제는 내 개인 종자가 되는 걸세.”
제피스는 양피지로 만든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기는 잘 하는 편인가?”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들 내가 전생한 흑마법사인거 모르고 있잖아? 페르난데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제피스는 보고서 하나를 건넸다.
“읽어보게. 첫 임무니까. 형제는 이제 내 수행 종자일세.”
*
[작전 : 하수도 청소]
작전지역 : 글로리데인 시 노예 시장
작전개요 : 노예 공급처의 이단 교단 색출 및 현지 파견 이단심문관의 추적, 구조. 악마 소환 의심 지역 정화. 관련자 및 목격자 처리.
작전 테스크포스 팀 : 디모니카 제피스 시라다스트.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헤레티카 라우렌시오 드베치니(실종).
음성 기호 : 제피스 – 아르칸젤로(A). 페르난데스 – 발타자르(B). 라우렌시오 – 카르테리오(C)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최종 승인자 :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장 베오른 실드베인.
*
“며칠 전, 이단 신고가 들어왔었네. 현지에 파견된 헤레티카 라우렌시오 형제가 실종되었지. 마지막으로 수신된 전령은 악마 소환 재단이 있고, 그걸 추적하겠다는 것이었다네. 그게 삼일 전이지.”
“···라우렌시오 형제는 죽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이제 이단 임무가 구마 임무로 바뀐 이상, 우리가 나서야 한다네. 마침 작전 지역이 멀지도 않고, 특별히 관측된 거대 이단 종파가 있는 곳도 아니니. 내가 형제의 첫 임무를 지도하겠다고 자원했네.”
페르난데스는 지도를 바라보며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16세, 87세, 71년 전. 글로리데인 시의 노예 시장. 이 근방의 지하 악마 교단은 크게 셋. 그 중에 가장 큰 놈과, 그 놈들이 저지른 일이라면···.
“마음에 듭니다.”
“뭐?”
이 시간대 쯤이라면 아직 그렇게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16세 생일을 기준으로 삼고, 세 달에서 네 달 정도가 지났다면.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
페르난데스와 페이자쉬는 각자 다른 감상을 내뱉었다. 글로리데인 시를 막후에서 지배하려 하는 세력들 중. 결국 최종 승자는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라는 이단 종파였다.
그리고 놈들은 이 시기에 노예 시장에서 한 인물을 자신들의 악마 소환용 제물로 구매한다.
그 노예는 바로 먼 훗날, 묘인족 대족장 키르하스 하트테이커로 성장한다.
인류의 빛나는 영웅들 중 하나이며, 드넓은 세력권을 가진 야만인 호족이자, 살아 생전에 수많은 악마와 괴수들을 사냥한 강자!
그녀는 이 시기에 노예 사냥꾼들에게 자신의 부족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이후 악마 교단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의 제물로 팔렸었다. 온갖 고초 끝에 영웅적으로 딛고 일어섰지만···.
‘그녀가 겪을 고난을 미리 해치우고, 그녀에게 더 나은 성장 배경을 줄 수 있다면···.’
키르하스는 분명 강력한 전사가 되어 그의 계획에 중요한 체스 말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 놈들이 이 쯤에 뭘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지.’
어떻게 실패했고, 어떻게 재활하는지도 알고 있다. 전생에 그들은 글로리데인 시에서 결국 퇴각하지만, 그 실패를 바탕으로 페이른 왕국 전체를 막후에서 지배하는 데에 성공한다!
페이른 왕국의 강력한 기사들이 전쟁 초기에 빠져나간 덕분에, 인류는 우방국 하나를 잃으며 크게 고전하게 된다.
그것도 교황청 턱 밑에 있는 우방국을!
‘기다려라 악마 교단 놈들아.’
그가 전생에 가장 즐겼던 상황은 적수의 아군을 타락시켜, 적수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었다. 이제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페르난데스는 그 묘한 역설에 짜릿함을 느꼈다.
*
“교황청의 공식 서한은, ‘우려’였다네. 제피스 형제.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한쪽 눈이 일그러질 정도로 크고 깊은 흉터를 꿈틀거리며, 베오른은 외눈 안경을 들어 올렸다. 제피스는 베오른의 맞은 편에 서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물며, 첫 임무에 형제가 실종된 지역이라니. 대저 그 뒤에 무엇이 있는 지 누가 안단 말인가?”
“이단심문관은 악마와 그 추종자들을 상대로 겁을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디모니카라면 오히려 개중 가장 끔찍한 곳을 산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피스의 말에 베오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다. 거기에 하물며 군신 베이타서스의 성자라면 결코 전장을 피해선 안되었다.
“그래. 아무래도 교황 성하께선 심려가 과하신 편이긴 하지.”
“라우렌시오 형제는 유능하고, 강단 있는 이단심문관이었습니다.”
“만신전이여 가호하소서. 나 또한 그 형제가 그립다네.”
베오른은 피로에 찌든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검은 십자검 문양이, 동부 대륙 전역에 그려져 있었다.
어딘가엔 여러 개가 밀집된 곳도 있었고, 또 다른 어딘가 외딴 데에 버려져 있는 곳도 있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실종자들.’
만신전이 봉문한 이래 30년. 인류는 천천히 어둠 속에 잠겨 들고 있었다.
태양이 비추지 못하는 음지는 언제나 악마와 괴물로 들끓었고, 빛을 잃은 인간들은 깊은 그림자 속으로 잠겨 들었다.
인류의 가장 밝게, 그리고 가장 거칠게 빛나는 횃불이 되기로 맹세한 이들. 이단심문관들은 항상 어둠 속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과정에서 스러진 이들은 셀 수조차 없었다.
이 문양들은 모두 묘비였으며, 그 묘비명은 언제나 ‘용기와 희생’이었다. 글로리데인 시에 새겨진 십자검 문양 또한,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았다.
베오른은 흉터 많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지도를 쓸었다. 움푹 음각된 열쇠검 문양이 손 끝에 걸릴 때 마다 사라진 형제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라우렌시오, 게일, 트리스탄, 메클린···.’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베오른은 이내 눈을 뜨고, 자신의 앞에 놓여진 양피지를 잡아 들어 도장을 찍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게.”
“그리고 또한, 단 하나의 이단도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끼이익.
제피스는 승인된 작전 제안서를 쥐고 방을 나섰다. 텅 빈 방에서, 베오른은 피로한 눈으로 다시 펜을 잡았다. 그는 이 일에 대하여 교황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악마를, 이단을, 마녀를 불태우리라.
다소 과격하더라도 좋다. 썩은 욕창을 뜯어내기 위해 생살을 베어내야 한다면 그렇게 하리라.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라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다.
인류는 살아남으리라. 베오른은 교황청을 향해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성자가 내려온 것은 일종의 계시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