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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1화 (12/388)

11. 애매한 감정들이 대사를 그르친다.

“이름이 뭐지, 이방인?”

“말 하면 믿겠나?”

“태도를 보아하니 믿진 못할 것 같군. 어쨌건 들어나 보지.”

“성 요한 기사단.”

“뭐?”

묘인족 여인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재빨리 문가를 살폈다. 다른 이들이 듣고 있는 기색은 없었다. 묘인족 여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발타자르. 성은 알 필요 없고.”

“이렇게 대놓고 오면 어쩌자는 거죠?”

여인은 기가 크게 죽은 기색으로, 그러나 매섭게 말했다. 그녀의 눈이 표독스러워졌다.

“오자마자 그렇게 한바탕 하시고. 비밀 거점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고! 월례 보고는 이미 올렸는데도! 저도 제 목숨이 걸린 일이라구요!”

선신 만신전에도 이단 신앙의 첩자들과, 교단의 배신자들이 있다. 악마의 타락은 결코 뿌리 뽑을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니. 그러나 반대로.

그러나 악마 교단에도 반드시 첩자들이 숨어 있다. 일거에 소탕할 수 없거나, 당장 소탕하는 것보다 방관하는 편이 이득이 되는 교단들에는.

[데’카라즈 스웜]. 남부 정글에서 서부 대황야, 그리고 멀게는 키라자트 술탄국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파벌을 운영하고 있는 악마 교단.

당장에 지파 하나 뿌리 뽑는다고 사라질 놈들이 아니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대전쟁 초기에 갑작스럽게 데’카라즈 스웜의 한 지파가 배신해 후방에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그때 배신한 지파는 로드 베일스턴이 이끄는 제 3 역십자회와 손을 잡았었다.

제3 역십자회가 몰락한 성 요한 기사단의 잔당들이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그때 배신했던 지파의 수장은 반드시 성 요한 기사단과 관계가 있다.

언제 손을 잡았느냐가 문제였지만.

페르난데스는 마약을 탄 스프에 빵을 찍으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페싯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스프 아마도 독이 들었을 겁니다만?”

해독제로 협박이라도 하려는 건가? 페르난데스는 그 말을 듣고 한입 크게 빵을 베어 물었다.

“알아. 막산초지?”

“···그걸 알면서 그냥 드신다고요?”

“다음부터 의심스러운 놈들한테 독을 먹일 거면, 적어도 정제해서 먹여. 연금술 할 줄 알잖아. 할멈.”

페싯트는 페르난데스의 말투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천천히 꼬리를 들어, 종을 한 번 울렸다.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낭인족 사내가 들어왔다.

“카를. 아이들을 물려라.”

“주, 주교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 자는 우리 교단 사람이 맞다. 가봐.”

“넵! 아, 형제님. 실례했··· 어? 그거 먹으면 안 되오!”

“괜찮아. 가봐.”

낭인족 사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주변에 인기척이 사라졌다. 그제야 페싯트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속삭였다.

“이렇게 위험한 짓을 저지르는 걸 보면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거겠죠?”

“도마뱀 놈들을 만나고 싶다.”

“뎀드리자드? 그 미친놈들이요? 위험하실 텐데?”

“우리 오늘 초면 아닌가? 걱정 참 고맙군?”

페싯트는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피식 웃었다. 하기야, 이런 사내가 어디서 내장이 찢겨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좋아요. 알려 주죠. 시장로 15번가에 노예 상인 제이슨을 찾아가요. 뎀드리자드에 의식용 제물을 납품하는 놈이니까. 꼬리 밟히지 말아요, 우리는 모른 척 할거니까.”

“그런 복잡한 방식은 선호하지 않는데···?”

“그 이상은 정말 몰라요! 걔네 진짜 미친놈들이라 저희도 자세히 정보망을 못 집어넣었어요. 수 틀리면 배를 갈라서 제물로 바쳐버리는 놈들인데···”

그렇게 막 나가는 놈들이었나? 확실히 좀 정도가 심한 교단 계열이긴 했는데··· 페르난데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직 세력이 남아있다고?”

“이건 소문으로 들은건데···”

페싯트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

“순찰대장도 놈들한테 넘어갔다고 해요. 최근 실종 사건들도 그 놈들이 한 짓이라고도 하고··· 얼마 전에 이단심문관이 냄새를 맡았는데···”

이단심문관? 페르난데스가 흠칫 놀라자, 페싯트는 킥킥 웃었다.

“네, 이단심문관. 무섭죠? 어쨌건. 이단심문관 하나가 변장하고 잠입 했었나봐요. 순찰대장한테 지원을 요청했다가··· 그대로 끝이었죠.”

페싯트는 목을 쓱 긋는 손짓을 했다. 야만인 이종족에 있어서, 아무리 같은 문명 사회 소속이라고 해도 이단심문관은 경멸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묘인족으로써, 그리고 이단 지파의 수장으로써 그녀 또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 순찰대장··· 이름이 뭐지?”

“베일러스 세베스티안 남작이요.”

-쾅!

페르난데스는 황급히 일어서다가, 허벅지에 나무 테이블을 부딪쳤다. 페싯트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주교님?”

“아, 아니야. 괜찮아.”

페싯트는 빠르게 뛰어 들어온 낭인족 사내를 물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페르난데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왜 그래요?”

“기사단에서 나온 형제 하나가 그 자를 만나러 갔다.”

“오··· 명복을 빌어 줄게요.”

“제기랄. 수비대장의 저택은 어디에 있지?”

“광장 중앙 분수대 기준으로 우측 길에요. 사자 동상이 서 있는 문입니다.”

페르난데스가 황급히 옷을 걸치며 나가려 하자, 페싯트가 부드럽게 그 소매를 잡았다.

“죽으러 가겠다는 건 알겠는데. 하나만 대답해줘요.”

“뭐지?”

“세베루스는 잘 지내나요? 얼마 전부터 편지에 답이 없어서···”

페싯트의 눈이 달콤하게 물들었다. 묘인족 특유의 아름다운 청록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페르난데스는 그저 얼떨떨했다.

“···세베루스?”

“아, 내 정신 좀 봐. 실례했어요.”

페싯트는 페르난데스의 태도를 무례함에 대한 훈계로 받아 들였다. 그녀는 흠, 하고 목을 풀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베루스 베일스턴 경이요.”

“베일스턴 경··· 어, 어 잘 지내지. 물론.”

전생의 대영웅 로드 베일스턴의 이름은··· 분명 게일 베일스턴이었는데? 페르난데스의 머릿속에 몇 가지 정보가 빠르게 뒤섞였다.

게일 베일스턴은 야만족 혼혈이었다. 데’카라즈 스웜이 갑자기 뜬금없이 기사단에게 붙은 이유가뭘까···?

게일 베일스턴의 활동 시기는 지금부터 40년 뒤다. 그 녀석의 아비가 지금쯤 스무 살 꼬마라고 친다면··· 그 녀석의 어미가···?

“하. 이거야 원.”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사랑, 우정, 경애··· 이런 애매한 감정들이 대사를 그르친다니까.

그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페싯트는 얼굴을 붉혔다.

-우리와 다를 건 없지. 애매한 감정이란 건 말야.

어느새 그의 등 뒤에 나타난 페이자쉬가, 툭 내뱉었다.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약굴을 나섰다.

*

마약굴 골목의 거렁뱅이들은 어두운 골목을 지나는 페르난데스를 힐끔거렸다. 앳된 소년이 다니기에 썩 안전한 거리는 아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어깨로 다가오는 손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휘익, 쾅!

“끄아악!”

“누구냐?”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붙잡는 손을 잡고, 그대로 크게 앞으로 집어 던졌다. 나름 힘 깨나 쓸 것처럼 생긴 사내가 골목 벽에 부딪치며 굴렀다.

“끄으읍···끄으윽···”

-콰직.

“끄으으아악!!”

페르난데스가 쓰러져서 헐떡거리는 사내의 가슴팍을 밟고 힘을 주자, 사내는 경련하며 거품을 물었다.

사내의 눈이 탁했다. 마약중독자인가? 그런데 왜···?

그 순간, 그에게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휘익!

“흡!”

어두운 골목에서, 옻칠을 한 화살이 날아왔다. 간신히 소리만 듣고 허릴 비틀어 피했다. 귓가의 머리칼이 화살에 잘려 나풀거렸다.

골목의 앞뒤로, 멍한 눈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활까지 쏜다니. 이건 그냥 강도가 아니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온 사내들이다. 페르난데스가 짚은 벽에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읏?”

-샤아아악!!

어느새 골목 벽을 작은 도마뱀과 뱀들이 온통 뒤덮으며 꾸물거리고 있었다. 탁한 마력의 냄새가 풍겼다. 페르난데스는 단검을 뽑았다.

“뎀드리자드. 왜 바로 덮치지 않았지?”

[데’카라즈 고양이와 싸우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괜찮고?”

[네 정체가 뭔지 궁금하군. 이단심문관인가, 신전 기사인가? 아니면··· 다른 종파? 데’카라즈 고양이와 무슨 관계지?]

-콰직!

페르난데스는 덤벼드는 사내의 쇄골 아래로 단검을 꽂았다. 사내는 짧게 경련했다.

-돌파해야 한다.

“나도 알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악마 숭배자가 만들어둔 함정에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는 페이자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쓰러진 사내의 시체로 방패를 삼았다.

-투두두둑.

화살이 연이어 날아와 사내의 등판에 박혔다. 그럴 때 마다 피가 울컥거리며 페르난데스의 뺨을 적셨다. 화살의 방향과 타이밍, 적어도 둘은 된다.

대단한 속사였다. 페르난데스는 한 손으로 사내의 몸을 들고 내달렸다.

쓰러져 있던 마약중독자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페르난데스의 발목을 잡고, 소매를 당겼지만 오히려 그들의 몸이 끌려갔다.

[몸집에 비해 대단한 힘이군. 인간이 맞나?]

“맞춰봐.”

골목의 끝이 머지 않았다. 페르난데스의 다리에 걸리는 부하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멈춰선 안된다. 그를 바라보는 독사들의 노란 눈동자가 점점 많아졌다.

-두두두둑!

“흐으으읍!”

화살이 한번 더 빗발치고, 멎었다. 페르난데스는 기합을 내지르며 걸래짝이 된 시체를 집어 던졌다.

그는 그대로 뛰어나가며, 활을 들고 있는 사내들을 보았다. 멍한 눈에 빼빼 마른 몸. 흔한 마약중독자였지만 어디서 활을, 그리고 옻칠한 화살을 구한 걸까.

페르난데스는 활을 던지며 단검을 뽑는 사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사내의 턱이 비틀리며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사내는 으어어, 하는 신음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페르난데스는 그대로 단검을 뒤로 던졌다.

-푸확!

미간에 단검이 꽂힌 사내가 비틀거리다가, 푹 고꾸라졌다. 날뛰는 페르난데스에게서 튕겨져 나간 마약중독자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페르난데스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무기 더 없나?

“어. 두고 왔지.”

-어리석기는. 흑마법사는 언제나 최악을 대비하는 법이다.

“대검을 들고 찾아가기엔 험한 곳이라··· 의심 받기 딱 좋지 않겠어?”

어쨌건, 다섯 명 정도의 마약중독자는 떨쳐낼 수 있다. 그러나 저 비렁뱅이들이나, 벽에서 지금 그를 노려보는 뱀으로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지옥 마력의 비릿한 향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콰악!

페르난데스를 향해 달려드는 뱀을 주먹으로 쳐 날리고, 마약 중독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적어도 이놈들의 몸을 방패로 삼으면 뱀은 막을 수 있었다.

-쿠웅! 퍽!

페르난데스는 마치 양떼 무리에 떨어진 사자처럼 움직였다.

기초 체술과 생존기술은 이미 와일드캐스트(방랑 마법사)이던 시절부터 통달한 그였다. 그런 그에게 디모니카 세례의 신체 강화가 곁들여진 이상, 이런 부랑자들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퍽!

마지막으로 서 있는 마약 중독자의 팔을 뒤로 돌려 부수며 페르난데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뱀들은 간간히 덤벼드는 것 말고는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무 쉬운데?”

-그 말은 금기다!

“그건 미신···”

-콰아아앙!!!

골목 벽이 터져 나가며, 거한이 나타났다. 푸른 비늘이 온몸에 돋아난 사람 형태의 도마뱀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번뜩이자, 지독한 지옥 마력의 냄새가 났다. 페르난데스는 주춤 물러섰다.

“미신은 아니었네. 저거 설마 데미드라코야?”

-어린 놈이지만, 맞군.

“미친. 진짜 악마가 왜 물질계 도시를 활보하지?”

-아무래도 이상하군. 뎀드리자드 놈들이 활동하는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늦는데···

“우리 ‘아르칸젤로’ 경께서 뭔가 한 모양인데?”

제피스가 날뛰며 놈들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다. 벌써부터 악마가 도시 한 복판에 나오는 것은 놈들의 계획에 없었을 테니까.

-어쩔거지?

“아직 내 정체를 모른다는건, 우리 '아르칸젤로 경'이 살아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겠지.

“그럼 이제 가르쳐 줘야지. 페이자쉬.”

-흠?

페르난데스는 점점 다가오는 거구의 도마뱀 인간을 바라보며 허리를 폈다.

화난 디모니카 이단심문관이 둘 있을 때, 악마가 가져야 할 태도를 말야.

페르난데스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도마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웃었다. 어린 데미드라코 한 개체··· 페르난데스는 악마가 오히려 반가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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