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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2화 (13/388)

12. 길을 비켜라 만신전의 양들아

[도망쳐라 버러지야! 나는 사냥을 더 좋아한다!]

“그럼 이건 새롭겠어?”

페르난데스는 데미드라코의 굵은 팔뚝을 피하며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놈의 노란 눈이 크게 뜨였다.

-석화의 동술. 주의···

“알아 나도!”

페르난데스는 놈의 시선을 피하며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상상도 못할 경쾌한 더킹이었다. 데미드라코가 잠시 갈피를 잃은 사이, 놈의 경추에 단검을 한 방 박아 넣었다.

“큿!”

[그워어어어억!]

-촤아악!

비늘 사이에 단검이 얽혀 빠지지 않았다. 악마의 굵은 척추 틈새에 단검이 깊게 박혔다. 페르난데스는 손목을 털며 뒤로 물러섰다.

[이 버러지가!]

페르난데스는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집고 부러트렸다. 주먹 사이에 화살촉을 물리고 그대로 놈에게 뛰어 들었다.

[이노오오옴!]

-석화다!

“쉿!”

페르난데스의 팔뚝이 단단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저릿한 팔꿈치를 억지로 비틀어 피며 그는 그대로 놈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억!

[꾸어어억!]

화살촉이 놈의 눈동자에 깊게 박혔다. 데미드라코는 비틀거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페르난데스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며 멀쩡한 왼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이거 죽이는데?!”

-신났구만.

데미드라코의 길쭉하고 단단한 도마뱀 머리가 연신 녹색 피를 터트리며 이리저리 휘둘렸다. 페르난데스는 굳은 오른팔과 왼팔을 멈추지 않고 휘둘렀다.

[자, 잠깐! 그, 그만!]

-콰아아아앙!!

데미드라코의 벌린 입이 바위 같은 주먹에 의해 으스러졌다. 아무리 단단한 악마의 가죽이라고 해도, 이런 어린 개체라면 디모니카로 세례 받은 주먹에 비해선 여린 살점에 불과했다.

[네놈은 누구냐!]

“알 필요 있나?”

-콰아아아앙!

퉁퉁 붓고 피가 흐르는 얼굴로, 데미드라코는 부들부들 떨며 뒤로 물러났다. 경이로운 내구도였다. 페르난데스는 주먹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세 대 치기 전에 머리가 터졌을 강권이었다. 기초 체술과 생존술을 익힌 것 만으로도 이 기적 같은 육신은 이정도의 출력을 내주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처음으로 디모니카라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데미드라코의 품을 파고들었다.

[오, 오지마!]

“알겠다!”

페르난데스는 데미드라코의 등 뒤로 돌아, 놈의 경추부에 박혀 있는 단검을 꽉 틀어쥐었다. 석화가 반쯤 풀린 왼팔로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그대로 비틀며 뽑아냈다.

[그으아아아악!]

-촤아아악!

녹색 끈적한 피가 울컥거리며 튀었다. 페르난데스는 녹색 피에 흠뻑 젖은 채로 단검을 휘휘 털었다. 데미드라코는 씩씩거리며 주저 앉아 있었다.

-퍼억!

[크으윽!]

“자, 악마야. 몇 해 살이냐?”

[나, 나는 150년을 살았노라. 네놈 인간 따위는 꿈도 못 꿀 시간···]

“역시, 어리군.”

-콰직!

[끄아아아악!]

페르난데스는 데미드라코의 가슴에 단검을 꽂았다. 놈의 흉골에 짧은 칼날이 긁히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데미드라코는 경련하며 쓰러졌다.

페르난데스는 악마의 가슴에 틀어 박힌 칼자루에, 발을 얹었다. 악마는 움찔거리며 피거품을 물었다.

“사다르켈리사에게 안부 전해주고.”

[···으윽···?]

“곧 찾아 가겠다고 말해!”

데미드라코의 가슴팍에 박힌 단검을 짓밟으며, 페르난데스는 시원하게 웃었다. 정통 무투파 권사가 된 기분이었다! 약한 놈을 밟으며 느끼는 감각이란 것쯤은 알지만.

‘아무리 어린 개체라고 해도 악마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군.’

데미드라코는 잠시 경련하더니, 피를 울컥거리며 점차 흐려졌다. 페이즈 아웃. 치명상을 입은 악마들의 역소환이었다. 놈은 다시 지옥의 제 6계 심연으로 스며들어갔다.

페르난데스는 킬킬 웃으며 주저 앉았다.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전투의 긴장과, 지옥 마력의 여운 탓이었다.

“삼일 밤낮으로 걷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든데?”

-악마를 잡았는데 당연하지.

“이제 알겠지? 이 선택도 쓸만 하다고.”

-마법사였다면 눈 한 번 깜빡이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거야.

“이 시기에?”

-···.

하긴, 지금 페르난데스는 16세 소년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나이에 지옥의 악마 개체를 홀로 무찔렀다면, 그 자체로 위업을 쌓는 대영웅의 성장기나 다름 없었다.

“읏차. 가자고.”

대체 제피스가 남작의 집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악마들이 튀어나오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어린 개체가 나타나는 것을 보니, 크게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헤레티카의 무서운 점은 집요함과 의지, 그리고 공식석상에서의 강력한 영향력이었다. 그러나 디모니카는 이단심문청의 비밀 병기들이었으며, 공식적인 영향력이 없었다.

렐리기오사 디모니카의 강점은 단 하나뿐이다.

힘.

디모니카 중 가장 오랜 경력을 가졌을 인물. 베테랑들의 베테랑, 제피스라면 고작 이런 어린 개체의 악마 따위한테 고전하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페르난데스에게는 다른 할 일이 있었다.

*

글로리데인은 대도시였고, 보통 대도시에 있을 법한 지하수로가 제법 잘 구축된 편이었다. 도시의 나이만큼 오래된 지하수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악마 교단들을 제외한다면.

유독성 가스와 더러운 폐수가 흐르는 지하수로의 한 동공에서, 긴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또 하나가 죽었다고? 그 괴물 기사인가?”

“아니, 그 놈의 종자··· 인것 같다.”

“미친 대체 그 개새끼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이야?”

“어디 기사단 소속 아닐까?”

“기사단이 갑자기 왜 우릴 털어? 우리 아직 뭐 안 했잖아. 너, 너 뭔 짓 했어?”

“노예 좀 죽이는 거···?”

사내들이 웅성거리며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자, 지하수로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핏빛 룬 문자들이 번쩍였다.

[그만. 그만 하거라. 이 무능한 것들아.]

“히익!”

마치 수백 마리 뱀이 쉭쉭거리는 소리 같이,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오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하수로를 가득 채웠다.

[이단심문관들이다.]

“네, 네? 하지만 놈은 죽었습니다요!”

[어디 이단심문관이 그 덜 떨어진 놈 하나 뿐이었겠느냐? 소문으로 들은 바가 있노라.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 사다르켈리사 님···?”

붉은 빛이 번개 치듯 번쩍였다.

[놈들이 이곳을 발견하긴 아직 멀었다. 인간들의 군대를 동원해라. 여길 지켜! 그리고 의식을 서둘러라. 심장이 아직 부족하노라.]

“네, 네!”

[내게 대적한 이들이, 저들이 처음은 아니었도다. 그리고 마지막 또한 아닐 것이다. 나를 소환해라. 빨리!]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들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흩어졌다. 곧 지하수로를 채운 빛도 점차 가라앉았다.

-또옥.

장대에 걸린 인간 시체에서 흐른 핏물이, 제단에 올라가 있는 넓은 황동 그릇 안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릇이 차오를 때마다 조금씩 제단을 밝히는 빛이 강해졌다.

[이제 머지 않았다··· 이 몸이 다시 일어나, 이 세계를 파멸 시키리라.]

도마뱀과 독사들이 쉿쉿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동공 사방으로 흩어졌다.

*

“악마 소환은 무슨 놈의 악마 소환이야. 제대로 된 놈을 부르려면 얼마나 제물이 많이 필요한 지 알아?”

“그, 그러니까요. 저도 깜짝 놀랐습죠! 진짜 그 짓거리를 하려 드는 놈들이 있다는 게, 선량한 도시 이웃 주민으로써 어찌 믿기겠습니까요!!”

페르난데스는 거의 떡이 되도록 얻어 맞은 사내를 한 팔로 들어 올리고 흔들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묘인족 여자는 없었어? 이제 갓 스물 정도? 파란 털이라고 들었는데, 녹색 눈에.”

“으···어··· 털 난 기집애들 취향이십니까요? 제, 제가 데리고 다니는 무희들 중에 기깔나는 애들···”

-퍼억!

“끄으악! 세, 세 명 정도 있었습니다요!!!”

페르난데스는 사내의 퉁퉁한 배를 한번 툭 쳤다. 배가 출렁이며 사내의 바짓단이 축축해졌다. 페르난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사내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야, 이거 좀 걸어봐.”

“네, 넵 기사님!”

손가락이 하나 잘린 여관 주인이 덜덜 떨며 페르난데스의 몸에 갑옷과 무기를 채웠다. 페르난데스가 가끔 근육을 움찔거릴 때 마다, 여관 주인이 부들부들 떨었다.

“콱 씨. 또 헛 짓 해봐?”

“죄, 죄송합니다요!”

페르난데스는 [달리는 말발굽]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여관 주인 손가락 하나를 잘라냈다.

그가 무슨 피에 미친 광인이었던 탓이라기 보다는, 그의 방에 그의 짐가방과 무기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잘 벼린 병장기는 어마어마한 값에 팔렸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아마도 저녁 동안 느꼈을 모욕의 대가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그의 목숨을 붙여주는 대신, 자신의 짐과 사내의 검지 손가락을 받아 가기로 했다.

큼직한 투 헨디드 소드를 등에 걸자, 그 묵직한 무게가 참 든든했다. 제대로 된 검술이라곤 전혀 모르는 그였지만, 애초에 무기술이라는 것은 힘을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것.

‘애초에 디모니카의 출력이면 잔재주가 크게 필요 없긴 하지.’

그는 숄더백에 단검들을 헤아렸다. 그때 문 밖에서 우당탕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콰앙!

“음?”

“오, 발타자르. 성과는 있었나?”

“있긴 했는데,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셨습니까. 아르칸젤로 경?”

“악마를 좀 썰었지.”

제피스는 온몸에 녹색, 그리고 붉은색 핏물을 뒤집어쓴 채로 문을 박차고 나타났다. 건물 밖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서른 명은 넘는 것 같았다.

“꼬리를 좀 많이 달고 오셨습니다?”

“자른다고 잘랐는데도 많더군.”

“모조리 죽이실 계획이시라고요?”

“자네는 내가 무슨 피에 미친 악마 숭배자인줄 아나? 저들 대부분은 악마는커녕 이단 신앙의 존재도 모르는 자들일세.”

제피스는 방을 가로질러, 짐에서 방패와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굵은 강철 메이스가 불길한 빛을 내며 일렁거렸다. 그는 떡이 되도록 얻어 맞은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자는 누구지?”

“아, 인사 드려야지 제이슨?”

“히익! 아, 안녕하십니까요!!!”

“새로 사귄 친군가?”

“악마 숭배자만 아니었으면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겁니다.”

제피스는 그 말을 듣고, 메이스를 어깨에 걸치며 제이슨에게 다가갔다. 제이슨은 부들부들 떨며 제피스를 바라보았다.

“뭘 알아냈지?”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 노예들을 되는대로 사들이거나, 노숙자들을 납치해서 제물로 쓰고 있었죠. 카르테리오 경은 그 놈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위치는?”

“적어도 세바스티안 남작의 저택은 찾아가볼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럴 필요 없네.”

제피스는 피식 웃었다. 여관 1층에서 병사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티안 남작은 제대로 된 걸 모르더군. 죽을 때까지 별 말 없었던 걸 보니 말야.”

“제이슨, 내 친구. 너도 제대로 된 거 뭐 아는 거 없나? 그럼 우리 이제 작별 인사 할까?”

“사, 살려줍쑈!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압니다. 압니다!!”

“그렇지? 알지?”

페르난데스가 제이슨의 허벅지에 단검을 올리고 슬슬 긁자, 제이슨은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지하! 지하에서 놈들이 뭔가 벌이고 있습니다요!”

“당연히 지하 교단이 지하에 있겠지. 지하 어디?”

“시장 중심가!! 사, 삼십 번지! 거, 거기 골목 네 번째 집 문을 열면 지하수로로 곧장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요!”

“하여간 일을 번거롭게 하는 데는 도가 텄어요.”

페르난데스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서 제피스를 바라보았다. 제피스는 피식 웃었다.

“역시 자네는 디모니카가 아니라 헤레티카를 갔어야 했을 지도 모르겠군.”

“어라? 이제 그렇게 막 말해도 됩니까?”

“어차피 이젠 더 숨길 수 없다네. 발타자르 형제.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고. 원래 우리 디모니카는 숨기면서 일하는 족속들은 못 되지.”

-콰아아앙!

제피스는 돌연 메이스를 문으로 집어 던졌다. 여관 방의 나무 문이 박살나며 그 뒤에 서 있던 도시 수비대 병사가 메이스를 얻어 맞고 뒤로 넘어졌다.

“내가 길을 막겠다. 지하에서 봅세.”

“네, 아르켄젤로 형제님.”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발타자르 형제. 가라!”

“영광을.”

페르난데스는 그대로 창문을 깨며 뛰어내렸다. 도시의 중심부가 불타고 있었다. 도시는 마치 시가전이라도 벌어진 듯 소란스러웠다. 단 한 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소란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제피스!’

페르난데스는 킥킥 웃으며 저 멀리에서 그를 향해 뛰어오는 인파들을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 발타자르다! 길을 비켜라 만신전의 양들아!”

그는 이단심문관이 되면 꼭 이 말을 해보고 싶었다. 디모니카 놈들이든 헤레티카 놈들이든, 꼭 이런 순간엔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좀 부끄럽구나.

'왜, 이건 일종의 전통이라고.'

페르난데스는 경비병들 사이에, 말을 타고 이쪽을 노려보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귀족처럼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냄새가 짙게 풍기는 놈이었다.

악마의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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