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디모니카를 이해하는 방법
“이단..xx.. ..자르다! 길을···xxx··· ···양들아!!”
2층 창문에서 다이나믹하게 낙하한 청년은 멋들어지는 낙법을 펼치고, 일어서자마자 무어라 외쳤다. 물론 거리가 제법 떨어진 경비병들에게 제대로 된 말이 전해질 리가 없었다.
갑옷을 입은 채로 2층 건물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몸놀림이 너무 민첩했다. 경비병들은 조심스럽게 청년을 경계했다.
“지금 저거 세 바퀴 반 구르면서 2층에서 떨어진거야?”
“암살자는 덩치가 거의 오우거 같다고 들었는데?”
“나도. 그냥 정면에서 때려 부쉈다고 들었는데 나는?”
경비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분대장으로 보이는 귀족이 말 위에서 소리질렀다.
“조용! 조용! 그만해라! 창 들어! 놈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방금 저 놈이 무어라 했는지 들으셨습니까?”
“···상관 없다! 심문은 본청에서 진행하면 그만! 돌입조는?”
“1번대가 들어간 지 시간이 제법 되었습니다만,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요!”
“무능한 것들! 상관 없다. 대장님을 시해한 암살자가 눈 앞에 있지 않느냐!”
귀족이 소리지르며 지휘검을 뽑아 사내를 지목했다.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손목을 풀었다. 로브 사이에서, 청년의 눈이 번뜩였다.
-쒜애애액!!
청년의 팔이 거친 포물선을 그렸다. 곧, 그의 손 끝에서 무언가가 쏘아져 나왔다. 섬광이 번뜩이며 청년에게서 귀족에게로 이어지고-
-히이이이잉!!
갑작스러운 충격에 귀족이 탄 말이 투레질을 하며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 있던 귀족이 아무런 말 없이 – 심지어 비명 한 번 없이 낙마했다.
“대, 대장님?”
“나으리?”
-털썩.
“히, 히이이이익!!!!”
귀족의 머리에 단검이 틀어박혀 있었다! 경비병들이 기겁하며 물러서자 저 멀리에서, 로브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일어나라 악마.”
“아, 악마!!”
“아니 나 말고. 나는 이단심문관이다!”
-콰드드득···.
청년의 말과 함께, 죽은 귀족의 몸이 움찔거렸다. 곧, 경비대장의 피부가 녹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병들은 새파랗게 질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오? 페이스리스?
‘제법 큰 놈인데?’
귀족의 몸이 완전히 곤죽이 되더니, 죽은 시체 같은 잿빛 피부가 끊임없이 녹아 내리는 형체 없는 괴물이 천천히 일어났다. 놈에게서 유황 냄새와 시체 썩은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왔다.
“괴물이다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사제님을 불러어어어어어!!!!!!!”
경비병들은 일제히 무기를 내던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페이스리스, 지옥의 척후병. 거의 완벽한 의태 능력과 함께, 자신이 삼킨 자의 지식을 흡수하는 마귀였다.
-페이스리스가 귀족으로 파고들었다는 건···.
‘이 도시 행정부는 완전히 타락했다는 소리겠지. 차라리 잘 되었어.’
-스르릉
페르난데스는 등허리에 메어 두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든든했다. 페이스리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천천히 페르난데스를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라. 편하게, 해주마.]
“따듯한 말 고맙군!”
-후우웅!!
페르난데스는 놈의 머리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놈의 몸이 점액질로 변하며, 칼날이 그 사이로 맥 없이 통과했다.
헛스윙에 자세를 잃은 페르난데스가 잠시 주춤할 때, 그 빈틈을 향해 페이스리스가 덮쳐 들었다.
페이스리스의 점액질 살점이 페르난데스의 빈 등에 덮였다. 살은 액체처럼 옷의 사이사이로 스며들며 페르난데스의 피부에 들러 붙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페이스리스의 살점이 페르난데스의 피부를 녹이기 시작했다. 페이스리스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네, 살은. 내, 것이다!]
“잡았다.”
-퓻!
찰나, 페르난데스의 손이 빠르게 페이스리스의 살점 안을 파고 들었다.
-콰드득.
[끄으으으으??!!!]
“하여간 이런 형체 없는 것들은 귀찮다니까.”
페이스리스의 살점 안에서 뽑혀 나온 손아귀에는 검게 번뜩이는 작은 돌이 쥐여 있었다.
페이스리스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페르난데스가 손에 힘을 주자, 천천히 놈의 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우우욱!!!!]
-콰직!
‘어차피 해봐야 비전투원인데, 왜 이렇게 당당한 지 모르겠군.’
-이 시기에 악마들은 대체로 당당하지. 지상에 나온 적이 별로 없어서, 당한 적도 별로 없거든.
‘아, 역겨워.’
페이스리스의 살점들이 흘러내리는 기분은 끔찍했다. 페르난데스는 몸을 부르르 떨며 살점 조각을 떼어냈다. 녹았던 피부 조직들이 빠르게 재생하기 시작했다.
-행정부는 적이다. 곧 군대가 몰려 올거야.
‘문명 사회 정치는 우리 일이 아니지.’
엔마기카와 헤레티카가 알아서 뒷수습을 해줄 터였다. 디모니카의 일은 오로지 악마의 섬멸과 이단의 파괴 뿐···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골목을 향해 걸었다.
*
던전의 꽃은 함정, 괴물, 그리고 분위기다. 사실 뒷부분이 더 중요하다. 페르난데스는 지하수로를 파괴하며 내심 실망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뎀드리자드를 너무 과대평가했을 지도 모른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괴물이 깔려있지 않고, 함정은 도적 놈들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퍼즐이 없어!’
자고로 흑마법사나 이단 사교 단체가 만든 던전에는 퍼즐이 있어야 했다. 알맞은 해법이 없다면 출입조차 불허하는 지혜 겨루기! 그게 던전의 핵심 아니던가?
따라서 단순하게 용수철을 파괴하거나, 기반을 부수는 정도로 간단하게 파훼가 가능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 던전은 D급이었다!
“뎀드리자드가 그래도 아예 잡스러운 곳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시기엔 중소 방파에 불과하긴 하지.
“아 그랬지?”
하기야, 놈들이 제대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오히려 글로리데인 시에서 실패하고 도주한 이후였다. 도시 행정부를 차지한 정도가 이 녀석들 수준에서 최선의 수였을지도 몰랐다.
‘사실 그 정도로도 대단한 편이지.’
-키르하스가 너무 임팩트가 강해서 오히려 뎀드리자드 놈들도 주목 받았을 지도 모른다.
“하긴. 키르하스가 걸물이긴 했지.”
키르하스 하트테이커. 선신 만신전 소속 수인족들 중에 가장 거대한 군벌을 일구어낸 대호족.
대전쟁은 그녀의 말년에 일어났지만, 그때도 그녀가 직접 이끄는 [키르하스 하트시커즈]는 그 어떤 기사단과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군단이었다.
그런 그녀를 제대로 된 환경에서 성장시킨다면? 적어도 종말을 수 년은 미룰 수 있을 정도의 전력으로 성장할 터였다.
“기대 되는군.”
그러나 페이자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최근 들어, 페르난데스와 페이자쉬의 사고방식이 달라지는 순간이 잦았다.
그의 광기를 모두 가져가서? 아니면 육체가 없기 때문에?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긴 했다.
“자, 슬슬 이 지긋지긋한 하수도도 끝이군?”
-구조상 그렇겠군.
거의 직선거리로 주파했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그들은 노예시장 중앙 하수로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뎀드리자드의 영역이 도시 전체에 뻗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나와야 했다.
‘놈들이 던전까지 건설하면서 숨기고 싶어했던 장소가.’
그리고 그건 높은 확률로 악마 소환 제단일 것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악어를 닮은 악마의 형상을 조악하게 깎아 놓은 석조 대문을 바라보며 웃었다. 나름 분위기를 살린답시고, 석상의 두 눈에는 붉은 유리를 박아 놓았다.
“빙고.”
자, 이단심문관 입장합니다. 페르난데스는 속으로 큭큭 웃었다.
*
-끼이이이익···.
석문은 거의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페르난데스의 팔뚝이 꿈틀거리며, 무거운 석문을 강제로 열어 젖혔다.
“세, 세상에!!”
“경비병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제기랄, 제기랄. 이단심문관이라니!!”
페르난데스는 비릿한 피 냄새에 코를 움켜쥐며 소리지르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흑색 로브를 뒤집어 쓴 수상한 남자들이 피 묻은 흑요석 단검을 쥔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 뎀드리자드~ 내 정체는 또 언제 캤나?”
“제기랄!”
-샤아아아앗!
사내 하나가 단검을 휘두르자, 핏방울이 튀며 붉은 뱀으로 변했다. 뱀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페르난데스를 향해 뛰어 올랐다.
-콰직!
페르난데스는 주먹을 휘둘러 뱀을 후려치고는 탈탈 털었다.
“[칼레투쉬의 붉은 뱀]을 주먹으로 쳤어?!”
놈들이 멍하니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손을 우득 꺾으며 웃었다.
“왜 디모니카 놈들이 전생에 이딴 식으로 싸웠는지 알겠군.”
“이이잇! 사다르켈리사여! 힘을!”
-샤아아아앗!!
사내가 비명 지르며 칼을 휘두르자 붉은 악어가 바닥에 고여있던 핏물 속에서 튀어나와 페르난데스에게 덮쳐 들었다. 페르난데스는 양손대검을 뽑고 그대로 악어의 정수리를 찍었다.
-철퍽!
“너무 편해. 중독될 것 같은데?”
“이이이익!!!! 이 괴물 같은 놈!!!”
페르난데스가 낄낄 웃으며 다가가자, 사내들은 황급히 제단의 위에서 시체 하나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아, 아아 거기 멈추시지. 그거 하나 찢는다고 뭐 대단한 게 나오겠어?”
“시간을 벌어라!”
“네, 주교님!”
사내의 말에, 다른 이단 둘이 단검을 꽉 쥐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페르난데스의 눈이 꿈틀거렸다. 감히?
“마법사가 격투를 건다고? 감히?”
페르난데스의 주먹이 가장 먼저 달려든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니, 후려치려 했다. 사내는 대뜸 페르난데스의 주먹을 허공에서 붙잡았다!
“오?”
깜짝 놀란 페르난데스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다른 사내가 뛰어 올라 페르난데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사내의 로브가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어어????”
사내는 도마뱀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노란 눈이 번뜩이고, 탄탄한 근육이 넓은 로브 사이에서 비쳐 보였다.
“죽어라!!!!”
-콰아아앙!
“억?!”
사내의 큼직한, 비늘 덮인 주먹이 페르난데스의 턱을 후려쳤다. 페르난데스는 팔이 붙잡힌 상태에서 비틀거렸다. 충격에 머리가 흔들렸다.
‘이놈들, 자기 몸에 악마를 심었어??’
뒷 감당 어떻게 하려고···? 악마는 단순히 힘을 적선해주는 선량한 이웃이 아니다. 몸에 심겨진 악마는 천천히 육체를 잠식하고, 숙주의 정신을 파멸시킨 뒤에 낄낄 웃을 것이다. 그 영혼은 6계에 녹아 가장 저열한 하수인을 만드는 데에 쓰이겠지.
벼랑에 내몰린 악마술사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격투’ 마법사라는 사실보다, 놈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른 일에 더 충격을 받았다.
악마와 할 수 있는 최악의 불평등조약에 날인을 찍은 놈들이었다.
“아휴 불쌍한 것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반-악마를 걷어찼다.
-콰앙!
“꾸엑!”
놈들이 거리를 벌리고 그를 견제하기 시작하자, 페르난데스는 양손대검을 쥐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직 영혼이 인간 쪽에 가까울 때에 회개 시켜주마.”
“샤아아아앗!!!”
악마술사가 뱀 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페르난데스는 몸을 살짝 숙이고는, 그대로 양손 대검을 횡으로 그었다. 붉은 피가 사방에 비산했다.
“페이자쉬. 이제 나 디모니카 놈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
-아, 하긴.
“힘이 쌔면, 머리가 편하구나!”
어쩌면 이단심문청의 디모니카들은, 힘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머리가 너무 편해진 게 아닐까? 페르난데스는 픽 웃으며 대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혈관을 타고 맥동하는 강대한 신성이 느껴졌다. 근육과 힘줄 사이사이를 파고들며, 체급을 기준으로 말도 안 되는 폭발적인 출력이 그의 몸 안에 도사렸다.
양손 대검의 무게가 팔 끝에 걸려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반 정도 도마뱀의 형상을 갖춘 악마술사가 그를 향해 입을 벌리는 것이 보였다.
놈의 대퇴근이 긴장하고, 스프링처럼 튕겨 나오는 모습이 천천히,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시간이 압축된 것 같은 감각에, 페르난데스는 거의 황홀경을 느꼈다.
마법의 비의에 도달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과 전혀 다른 느낌. 극한의 긴장감과 근육의 피로로 도파민과 엔돌핀이 정수리를 타격하는 이 감각을 즐기며···.
-촤아아악!
그는 네 발로 달려드는 악마술사를 향해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살점이 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