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5화 (16/388)

15. 악마를 협박하는 비법

베이타서스의 성당은 글로리데인 시내의 만신의 전당 거리에 있었다. 도시의 병력은 감히 만신의 전당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쩔쩔 매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이단이야 이단심문관이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던데···”

“쉿! 너, 죽고 싶어?”

병사들은 만신의 전당 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각 교구는 공식적으로 ‘중앙 병력 파견 전까지 침묵’을 선언한 채로 봉문에 들어갔다.

봉문한 신전들을 침입하는 것은 종교법으로도, 국제법으로도, 왕국법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글로리데인 시장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

성당의 기도실은 촛불로 어둡게 밝혀져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피로에 찌든 눈으로 절뚝이며 간신히 성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멈추게. 형제.”

“와, 이런 데서 쉬고 있었습니까? 전 또 형제님 찾으러 여기 도시 뒤집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하하.”

제피스는 페르난데스에게 나는 악마의 잔향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눈, 그리고 그의 행동에선 타락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제피스는 표정을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작전명 진짜 잘 지었습니다. 누구 아이디어였습니까?”

“내 생각이었네. 진짜 하수도 청소는 어땠나?”

“재밌더군요.”

오랜만에 악마를 본 것도, 그리고 오랜만에 던전을 탐험한 것도 모두 저 나름 즐거운 기억이었다.

악마를 마주한 순간, 누군가는 자아를 잃고,

악마와 대적한 순간, 누군가에겐 평생에 남을 악몽을 얻으며,

악마와 접촉한 순간, 누군가는 지옥의 하수인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페르난데스에게 악마는 악우(惡友)와 같았다. 오랜, 그리고 질 나쁜 친구들. 친근감을 느낀다기 보다는 그 정도로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무엇을 보았나?”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의 주교라는 작자를 베었습니다. 그리고 놈들이 숭배하던 악마도요.”

“데미드라코였나?”

“진짜배기더군요. 머리 넷 달린 놈이요.”

“놈을 쓰러트렸나?”

“아뇨?”

제피스는 씁, 하고 침을 삼켰다. 페르난데스가 놈을 죽이지 못했다면 디모니카로써의 임무는 끝나지 않은 샘이었다. 그는 칼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놈을 챙겨왔습니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품에서, 로사리오에 감싸 있는 녹색 칼날 조각을 꺼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탁상 위에 칼날을 올려 두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나무 탁상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막토 슈페를라우도(진심을 다하여 찬양하라).”

“···좋아. 방법은 묻지 않기로 하지. 그걸로 무얼 할 작정인가?”

“적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적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페르난데스는 씩 웃으며 칼날 조각을 톡톡 두들겼다.

“실험을 하고자 합니다.”

“리브라리움 말레딕툼(악마전서)이 풍성해지겠군. 훌륭하네.”

글로리데인 시의 데미드라코는 파멸했고, 관련자는 모두 죽었다. 숨어든 잔당들을 해치우는 일은 디모니카의 업무가 아니었다. 헤레티카와 엔마기카가 이곳으로 파견될 것이었다.

글로리데인은 이제 베이타서스 교단의 영향력 아래에 복종할 것이다. 시장과 도시 집정관들은 이제 교단에 의해 ‘이단 판정’을 받고 물갈이 되겠지.

그러니, 디모니카의 임무는 끝났다. 언제나 가장 치열한 곳에 투입되는 이단심문관들. 그러므로 이제 긴장 상태가 풀린 전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

[작전 보고서 : 하수도 청소]

작전 지역 : 글로리데인 시 노예 시장

작전 개요 : 노예 공급처의 이단 교단 색출 및 현지 파견 이단심문관의 추적, 구조. 악마 의심 지역의 정화. 관련자 및 목격자 처리.

작전 경과 :

1) 사교 집단 [컬트 오브 뎀드리자드]의 파괴 및 섬멸

2) 중형 악마 개체 [데미드라코]의 사살

3) 악마 숭배자 베일러스 세바스티안 순찰대장 사살

4) 도심 행정부의 이단 판정, 헤레티카 지원 요청.

작전 테스크포스 팀 :

1) 디모니카, 제피스 시라다스트 – 복귀

2)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 복귀

3) 헤레티카, 라우렌시오 드베치니 – 사망 전제 실종

악마, 이단, 마녀를 불태우리라.

작전 책임자 : 디모니카 제피스 시라다스트.

*

제피스가 소환한 영체 전령이 제피스의 보고서를 입에 물고 파드득 하며 창 밖으로 날아갔다. 페르난데스는 마력의 잔향이 없는 마법 기술에 흥미가 생겼다.

“저도 그걸 배울 수 있습니까?”

“개인적인 기술이 아닐세.”

제피스는 작은 향로(Thurible) 하나를 꺼냈다. 손목에 감을 수 있는 조그마한 구슬 묵주였다.

“테스크포스 팀의 알파에게 불출되는 성물이지. 하는 걸 보니 금새 하나 받겠군.”

반영구적으로 마력 없이 마법을 부리는 유물이라니. 페르난데스는 입술을 핥았다. 뜯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단심문관이 되고 가장 마음에 든 게 뭔 줄 아나, 페이자쉬?’

-뭔가?

‘악마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 있다는 걸세.’

페르난데스는 칼날 조각에 로사리오를 감으며 킬킬 웃었다. 페이자쉬가 그를 따라 웃었다. 칼날 조각이 파르르 떨었다.

*

인퀴지션 킵. 드래곤스팅 성채. 성 바르톨로메오 수도원. [관계자 외 출입 금지]가 아니라, [관계자 외 출입 시 이단]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있는 깊고도 어두운 비처···

드래곤스파인 산맥의 가장 음침한 계곡에 위치한 요새. 차가운 현대 도시 이단심문관들의 요람.

-후우웅!

“다시! 할 수 있다!”

“영광으으으을!!”

-후우우웅!

이곳엔 신나게 데드리프트를 치고 있는 디모니카들이 있다! 페르난데스는 커다란 목검을 어깨에 얹은 채로 그들을 지나쳤다.

“아, 형제여, 아침 찬송은 안하는가?”

“헤레티카 형제와 약속이 있어서요.”

“오, 근면하군. 검술 훈련인가?”

파비아노가 바벨을 툭 던지며 손을 털고 일어섰다. 묵직한 바벨이 흙을 파고들었다.

“아, 네. 기왕에 이리 된 것, 무어라도 제대로 배워 두어야지요.”

“형제들의 귀감일세!”

“막토(찬양하라).”

“막토 수페를라우도(진심을 다하여 찬양하라).”

페르난데스는 파비오나에게 목례하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렐리기오사 디모니카(악마사냥꾼)의 성소에 있는 [실전형 찬송 전당]은 일종의 정신 오염마저 불러오는 듯 했다.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페르난데스가 헤레티카 알렌에게 검술을 배운 지 보름 째였다.

*

알렌은 2급 이단심문관이었다. 즉, 그는 신입을 교육하거나 훈련시키는 업무에서 손을 뗄 정도까진 올라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는가. 신입을 가르치라면 가르쳐야지... 알렌은 제피스의 요청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 그에겐 고민이 있었다.

-콰아아앙!

‘디모니카 페르난데스’ 첫 임무부터 악마를 토벌, 아니 포획해왔다는 엄청난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이따금씩 이런 놈들이 있다. 제피스, 마르코, 베오른처럼. 날 때부터 악마나 이단을 때려잡기 위해 태어난 놈들 같이.

더군다나, 이 청년 같은 경우엔 심지어 지금 교단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성자 페르난데스’ 만신전 봉문 이래 30년. 그 긴 세월간 처음으로 시성 받은 인물.

“좋아, 훨씬 낫군.”

알렌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힘 배분이 고르고, 공세에 탄력이 붙었다. 굳이 양손 대검을 고집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양손 대검은 힘으로 드는 병기가 아니다. 페르난데스 형제. 오히려 롱소드 검술보다 더 이해도 높은 검술을 필요로 하지. 봐라.”

알렌은 페르난데스의 목검을 쥐고 빠르게 한 바퀴 돌렸다. 위에서 아래로, 목검은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거침없이, 목검이 그리는 궤적이 이젠 수평을 그리며 미끄러졌다.

“손목의 변화를 봐라. 자루를 교차로 잡아서 돌려, 대검은 힘으로 적을 격살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미끄러트리며 긴 길이와 회전력을 이용해 반격하는 검이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형제님.”

페르난데스는 땀에 흠뻑 젖은 이마를 닦으며, 알렌에게서 칼을 돌려 받았다. 그는 곧 다시 허공을 그었다.

“거기, 힘이 덜 빠졌어! 어깨를 조금 더 편하게, 아래로!”

알렌은 얇은 지팡이로 페르난데스의 어깨를 툭, 치며 자세를 교정했다. 확실히, 훌륭한 재목이었다.

페르난데스는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 학생이었고, 가르침을 이해할 줄 아는 검사였다.

-내가 검술을 배울 줄은 몰랐는데.

‘배운 적 있긴 하잖아.’

마법사의 기초 소양은 체술에 가깝다. 마법전의 기본은 상대 마법의 봉인이고, 역주술이 가능한 수준으로 격차가 나지 않는다면, 사실 단검을 던지거나 칼을 찔러 암습하는 것이 마법사의 결투법이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와일드캐스트(방랑 마법사)로 반평생을 보내온 인물이었다.

소년의 몸으로 돌아갔다고 한들,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진 생존 기술들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 체계적인 가르침의 부재가 아쉬웠었다. 이번 생에는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으리라.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마음먹으며 칼을 휘둘렀다. 검술이든, 뭐든 간에 익힐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전생의 그가 일조하기 전에도, 인류는 멸망이 예정된 종족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단지 인류의 몰락에 방점 하나를 찍었던 것 뿐이었다. 예정된 멸망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면, 쉬고 있을 틈 따윈 없었다.

"페르난데스 형제. 준비가 되었다."

엔마기카 이단심문관 하나가 그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페르난데스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퍼즐을 맞출 시간이다.

*

이단심문청의 심처에, 엄중한 보호 주문과 가호들로 둘러싸인 장소가 있다.

(1) 성유물전

(2) 봉인 성소

(3) 열쇠검 성소

지금, 페르난데스가 갖은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입장을 준비하는 곳이 바로 봉인 성소였다. 디모니카에 의해 파괴된 악마의 유물들, 그리고 악마가 봉인된 무구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두 명 이상의 2급 엔마기카 이단심문관이 동행해야 입장이 허가되는 이 엄중한 성소에서, 페르난데스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형제에게 성흔이 없었거나, 첫 임무에서 악마를 봉인해오지 않았더라면 형제의 직급에선 결코 입장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명심하게나.”

“걱정 마십시오. 형제님들처럼 훌륭한 사제분들이 함께 하는데 어찌 위험이 있겠습니까.”

“악마는 마음의 군살을 파먹고 들어온다네. 방심하지 말게.”

갖은 사건들을 딛고 올라온 베테랑 엔마기카들에게 있어서도 이 장소는 극도로 꺼림칙한 곳이었다. 그들은 성호를 긋고는 성유를 페르난데스의 이마와 턱, 그리고 양 어깨에 찍어 발랐다.

“주 함께 하시니 쇠사슬 풀렸도다. 구원받으라.”

“막토 수페를라우도.”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호를 한번 더 긋고는, 엔마기카 형제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밀려나가며 봉인 성소의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유황 냄새가 짙게 배어나는 바람이 불어 그들이 들고 있는 횃불을 꺼트렸다.

[Shaaace···X’iaaaa..···SSarKia···.Xia···]

딱 듣자마자 사악하다는 것을 곧장 알 수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향로를 들어 올렸다. 엔마기카들이 멈칫거리는 사이에 그는 성소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디모니카라는 건가···”

“이 정도로 담대하다니.”

페르난데스의 등허리에 박힌 성흔이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악마의 기운이 가까워지자, 핏줄에 섞인 영적 인자들이 발작했다. 전신 혈관이 터질 듯 부풀고 열기가 치달았다.

‘워, 워. 진정해.’

페르난데스는 몸을 다스리며 테트라갈란이 봉인되어 있는 칼날 조각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성구로 둘러싸인 칼날 조각은 페르난데스를 발견한 듯 덜컥거렸다.

“화가 났나, 악마?”

[···.]

페르난데스는 품속에서 집게와 성수를 꺼내 들었다.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었어.”

페르난데스는 조심스럽게 칼날 조각을 집게로 집어 올렸다.

“악마들은 영체가 아닌가.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실체화가 된단 말이지. 고통도 느끼고, 쾌락도 느끼는가 보더라고.”

악마와 거래하는 것은 고작 까다로운 정도지만, 악마를 협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악마에게 지옥의 맛을 보여준다고 말해야 할까. 천국으로 보내준다고 말하면 들을까.

그러나 마학자로써, 페르난데스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악마를 협박할 수 있는 패가 있었다.

“악마의 피는 마력과 영자가 부스러지는 형태에 불과해. 그 말은 즉 악마의 몸이 물리적 존재보단 영적 현상에 더 가깝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 현상이 물리적인 영향력을 세상에 투사할 수 있을까.”

[지식을 갈구하나? 우습군, 이단심문관. 감당할 수 있겠느냐···?]

페르난데스는 피식, 웃었다. 그는 성수를 칼날 위에 조금 흘렸다. 칼날 속의 악마가 덜컥거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고통을 느끼는 거지? 악마의 육신에 신경이 있나? 영적인 존재에게 감각기관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페르난데스는 칼날 위로 성수를 한 방울씩 똑, 똑 떨어트렸다.

“악마가 영적인, 그리고 물리적인 실체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했다고 가정할 때. 영체와 영자가 물리적인 형상을 갖추는 계기. 즉 악마가 현세에 현현하는 과정 전반을 분석한다면 그 역순으로, 다시 해체하는 방법을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라는.. 바라는 게 뭐냐···]

테트라갈란의 목소리가 대단히 공손해졌다. 어느새, 이 봉인 성소의 악마 무구들이 내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저들은 긴장한 채로 페르난데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 놈은 보통의 이단심문관이 아니다. 정말··· 미친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참 궁금했어. 영체와 실체를 상호간에 치환할 수 있는지. 실체를 분해하여 악마가 제 6계로 환원되기 전에 그 끈을 온전히 파괴할 수 있는지··· 그걸 알아가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겠지.”

테트라갈란은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이 미친놈은 자신의 영혼을 조각 내어 악마의 실체에 대해 생체실험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페르난데스의 눈을 올려 보며,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옥의 위대한 마장으로써 이렇게 허망하게 실체를 제거당할 순 없었다. 제6계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었다.

[바라는··· 바라는 바를 말하라···]

“왜 글로리데인이었지?”

[뭐···?]

“이단심문청에서 걸어서 3일 거리라면 결코 멀다고 할 수 없는 곳이야. 감히 그런 장소에서 악마를 소환할 정도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들이 있었다. 네가 사주했겠지. 왜 글로리데인이었나?”

전생에서 알고 있었던 것은, 뎀드리자드가 글로리데인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훗날 성공한다는 짧은 기록 뿐이었다. 그가 [잿빛 황혼회]의 회장으로써 뎀드리자드와 교류하는 시기는 이미 그들이 페이른 왕국을 점령한 뒤였다.

테트라갈란은 잠시 침묵했다.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칼날 조각을 성수병 안에 담그기 시작했다.

[그, 그만! 그만!! 처, 처, 청동! 청동 천칭단과 약속했었다!]

“청동 천칭단?”

[그래! 노예 공급처를 장악하고 난 뒤에, 이단심문관을 잠시만 묶어 준다면··· 왕국 전체를 단숨에 무너트릴 계획이 있다고 했어!]

“우리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글로리데인 시를 장악했다는 뜻이야?”

[그래! 그 사이에 놈들이 페이른 왕국을 단숨에 장악할 예정이라 했다!]

페르난데스는 잠시 고민했다. 정보가 뒤엉켰다. 전생에서 글로리데인 시는 뎀드리자드에 의해 몰락하지 않았을 뿐더러, 페이른 왕국은 [청동천칭단]에 의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청동 천칭단···. 데일 페르타스가 이끄는 사교 단체. 워커 역병을 비롯해 강력한 역병들을 세계에 흩뿌리며 문명 사회를 파괴하는 주범들이었다.

놈들이 활동하는 시기는 이보다 적어도 20여년 뒤였다. 그 말은 곧, 페이른 왕국에서 놈들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실패할 것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방관하기엔··· 다소 아까웠다. 청동 천칭단은 강력한 사교 단체였고, 놈들이 지닌 [청동 옥좌]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칼날 조각을 들어올리며 속삭였다.

“그래. 데일 페르타스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넌··· 악마야···]

테트라갈란은 성수 안에서 부식되며 힘 없는 소리를 냈다. 페르난데스는 웃었다.

“악마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칭찬으로 받겠네.”

봉인 성소 안에서, 봉인되어 있는 악마들은 제발 저 미친놈이 여기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