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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19화 (20/388)

19. 이단심문관의 시간

메를린포트의 [만신의 거리]는 다소 편향적이었다. 중앙대로에 맞닿은 거대한 성당은 맥라렌의 것이었고, 다른 신을 위한 성당은 거리의 외곽에 위치했다. 메를린포트에서 맥라렌 교회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푸른 하늘과 맑은 대기, 그리고 짭짤한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지난 밤의 소동이 거짓말 같았다. 페르난데스는 맥라렌 성당의 문을 밀며 생각했다.

메를린포트는 지금 맥라렌 성당과 청동 천칭단, 그리고 고대 리치 기안-켈의 삼파전에 병들어가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도시의 기능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밤마다 늑대인간이 살인을 저지르고 야경꾼들과 경비병들이 오히려 비명소리를 듣고 도망치는 광경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대체 왜 이단조사를 신청하지 않은 거지?’

이는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선신 만신전의 이단심문 권한은 베이타서스 교단에게 있었다.

메를린포트의 맥라렌 성당은 이단심문청의 지척에 있었음에도 이단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아, 형제님. 미사 시간은 지났습니다만···”

맥라렌의 사제가 나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페르난데스는 베이타서스의 성물을 들어 올렸다.

“막토 수페를라우도. 형제님. 주교 각하를 만나고 싶습니다.”

“음···? 베이타서스의 사제 되시오?”

“디모니카 이단심문관 안젤로입니다.”

“이단···심문관? 병력 지원을 하러 온 게요?”

“때에 따라서요.”

사제는 이단심문관을 처음 보는 듯 했다. 그는 페르난데스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하곤, 파랗게 질려 황급히 떠났다.

곧, 페르난데스는 메를린포트의 주교와 독대할 수 있었다. 주교의 알현실은 더 없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맥라렌의 교리는 검소함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세속의 부에 제법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황금]과 [바다], [상업]과 [어업]의 맥라렌. 무역항의 기능을 하는 항구 도시들엔 어김없이 큰 교세를 자랑하는 이들.

뇌물 수수 또한 상거래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충격적인 교리 덕에 이들은 상인들의 대단히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돈만 내면 어느 정도 구원을 약속 해주니까.

따라서 주교의 주홍색 법의조차 사치스러운 동방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메를린포트의 주교는 팔짱을 끼고 앉아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자네, 디모니카가 맞나?”

“···? 네?”

주교는 대뜸 말하곤 홍차를 홀짝였다.

“보이는 느낌은 디모니카가 맞는데.... 어째 헤레티카 보다 호리호리하군?”

“....”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비꼬는 기색이 가득했다. 페르난데스가 묵묵히 앉아 있자, 주교가 웃으며 말했다.

“하여, 어째서 이 성당을 찾아 왔는가. 이단심문관?”

“수사 협조를 요청합니다.”

“늑대 인간? 내 경비에게 듣자 하니, 목이 베어 죽은 시체로 간밤에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광랑증 환자 하나 때문에 제가 이 도시에 파견된 것은 아닙니다. 주교 각하. 이 도시엔 이단의 기운이 성하고 있습니다.”

페르난데스가 그렇게 말하자, 주교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감히 나의 교구에서 그런 말을 꺼내다니?”

“감히? 주교 각하. 베이타서스의 이단심문관은 주교위에 준합니다만?”

페르난데스는 홍차를 옆으로 치우고 주먹 쥔 손을 천천히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건 정식 요청입니다. 구마용 군이양지권, 종교재판 사법권, 이단 처형 면허. 만신전이 보장한 권한을 사용하겠습니다.”

“거부하네.”

주교는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었다. 그의 법의가 소파의 푹신한 쿠션에 말려 주름졌다.

“설령 바울4세가 직접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말일세. 정황 말고 증거를 내놓으시게. 이단 재판이라니! 맥라렌의 상행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지 생각해봤나?”

“이단을 대함에 속세의 잣대로 판단하다니요?”

이 빌어먹을 주교가 뭐라는 거지 지금? 페르난데스는 당황했다.

“상단의 기부금이 성당을 살찌우는 것이야 그렇다 치자고 하세. 하지만 상단과 성도들의 실망이 쌓인다면, 오히려 그 틈에 이단이 파고들지 않겠는가?”

“있을지도 모르는 악을 두려워하여, 지근거리의 악을 방치하겠다··· 지금 그런 말입니까?”

“예를 들어 말일세. 예를 들자면.”

주교는 피식 웃으며 홍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보게나. 내게서 성당의 병력과, 도시의 병력을 요청하기 위해선. 증거가 필요함이 당연하지 않겠나? 형제가 내게 한 말이라곤 ‘이단의 냄새가 난다’가 전부란 말일세!”

주교는 페르난데스에게 몸을 숙이며 다가왔다. 그의 몸에선 희미하게··· 어딘지 익숙한··· 달큰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자네가 파악한 이단이 뭔가?”

“청동 천칭단입니다. 데일 페르타스가 이끄는 사교 단체. 그리고 고대 리치. 이 도시에 파고든 굵직한 이단 사건만 이 정도입니다.”

“호오··· 고대 리치라···”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향로가 손 안에 만져졌다. 장검은···? 장검은 성당 입구에 걸어두고 나왔다.

“고대 리치가 지금 이 메를린포트의 늑대인간 사건의 주범이란 뜻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청동 천칭단은 일부러 방치하고 있거든. 아직 들쑤실 때가 아니지.”

주교의 알현실에서 본당까지 거리가 10m. 본당을 가로질러 정문까지의 최단거리가 25m. 전력으로 주파한다면···

“이단심문관 안젤로. 같이 온 수행 종자는 어디에 있나?”

“···저 홀로 왔습니다.”

주교는 웃으며 찻잔의 테두리를 검지 손가락 끝으로 매만졌다. 뼈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손가락은 앙상하고 비틀려 있었다.

“자네가 묵고 있는 여관에서 오늘 아침에 어디론가 떠나던데, 그 묘인족 계집은 어디로 간 거지?”

페르난데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주교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안에서 새파란 귀화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차 잘 마셨습니다. 주교 각하. 답신은 교단을 통해 하도록 하죠.”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주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저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 젠장··· 맥라렌의 주교가 설마···’

생명체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기술. 리치의 [생명 감지]와 [비전 시야]의 마력 감지.

청동 천칭단을 견제하고 있다는 맥라렌 교단이 리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다는 정보.

안저에서 빛나는 파란 빛은 분명, 고대 리치의 [마력 심장]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미약한··· 아주 미약한 냄새.

‘암네시아의 향기.’

그것은 페르난데스가 전생에, 스승의 수발 노예로 지내던 당시에. 스승의 명령에 의해 키우던 마약성 독초였다.

Q1. 위 조건이 참일 경우, 맥라렌 교구 주교의 정체는?

A1. 고대 리치.

-터억.

“?!”

주교 알현실의 입구는 페르난데스의 완력에도 열리지 않고 굳게 잠겨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큭!”

“거칠군. 이단심문관. 맥라렌 성당을 향한 공격이라··· 진심인가?”

페르난데스의 주먹은 허공에 막혔다. 강력한 역장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주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가시려나?”

-쾅, 쾅. 쾅. 쾅.

본당에서 예배당, 성사실에서 사제관에 이르기까지. 밖으로 향하는 모든 문과 창문들이 거칠게 닫혔다.

-우지직!

페르난데스는 온 힘을 다해 문을 걷어찼다. 다행히, 역장이 찢어지며 문이 부서져 나갔다. 그는 정문에 걸어둔 장검을 향해 질주했다.

품 속의 향로를 제외한다면, 저것이 유일한 성물이었다.

“이거 예상도 못했군···”

-그렇군. 한 방 먹었어.

맥라렌 교단은 타락했다. 청동 천칭단이 아니라··· 리치에 의해서.

“기안-켈! 대체 어떻게?”

[하하하··· 힘으로 마력 역장을 뜯어 내다니? 놀랍군!]

저 멀리에서 기안-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페르난데스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려 퍼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앞으로 굴렀다.

-콰아앙!

그의 눈 앞으로 검게 빛나는 창이 날아와 박혔다. 팔뚝 만한 창대가 바닥에 틀어박혀 파르르, 떨리더니 곧 연기가 되어 바스라졌다.

“흡!”

-콰앙! 쾅!

페르난데스는 가까스로 굴러 본당 앞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스르릉···

“도주로는?”

-지금은··· 없겠군. 지금 우리 수준으로는 마력 역장을 해제하지 못한다.

“승산은?”

-지금은 없을 거다. 마법전이라면 모를까.

페르난데스는 장검을 뽑아 움켜쥐고 본당의 맞은 편을 바라보았다. 주교가 공중에 뜬 채로 천천히 그를 향해 날아 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어두운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더 이상 감추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기안-켈··· 놀랍군. 설마하니 사제··· 그것도 주교로 숨어 들었을 줄이야.”

[너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아. 이단심문관. 잠시 시간을 내어 주어야겠군.]

“아, 내일은 시간이 좀 비는데. 내일로 예약해도 되겠나?”

[···목숨도 내어 주어야겠어. 아무래도 건방지군.]

-촤르르륵···

“흡!”

페르난데스의 양 팔에 새카만 사슬이 얽혀 들었다. 페르난데스는 본능적으로 사슬의 정체를 파악했다. [카사드의 검은 포승]. 마력이 한 줌만 있었더라면 해주하는 것은 여반장이었지만··· 지금 그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 스승을 마법전으로 죽여버리는 것이 꿈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아쉽군···

주교의 몸 주위를 맴도는 검은 기운이 천천히 흩어졌다. 주홍색 법의 아래에 나타난 것은, 검은 뼈로 이루어진 해골이었다. 해골의 두 눈에서 푸른 귀화가 번쩍였다.

리치는 뼈마디가 뒤틀린 손가락을 마치 완드처럼 들어올렸다. 리치의 턱이 딱딱, 하고 울렸다.

[이단심문관··· 이단심문관··· 아주 즐거워. 내 카타콤에 온 걸 환영한다.]

-끼이이익···

페르난데스의 팔을 휘감고 있는 사슬이 비틀리며 그의 양 팔을 뽑아낼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페르난데스의 어깨가 기이한 소음을 내지르며 뒤틀리고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고통 속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마법···?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지?”

[뭐?]

“여기에 있는 성물들은 진짜야. 이 교구는 분명 맥라렌의 전당이 맞아. 그런데 어떻게 이 한복판에서 흑마법이 기능하지?”

신성 주문은 흑마법의 대척점. 신성 주문으로 정성스럽게 축조되고, 매일 미사마다 신도들이 찾아와 자신의 신을 향해 기도하는 이 전당에서 어떻게 흑마법이 멀쩡하게 가동되는가?

더군다나 기안-켈은 예카세트의 신성과 가호를 잃은 상태. 즉 지금 저건... 페르난데스는 하, 하고 웃었다.

‘페이자쉬. 넌 모르는 게 있어.’

-뭐?

‘마력 역장 말야. 우리 수준으로는 해제가 안 될 거라고 했지?’

-···?

‘그런데 우린 이미 역장을 한 번 부쉈어. 문에 걸려 있던 거.’

아무리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마력 역장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었다면 페르난데스의 실력으로 해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역장 마법은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제어 술식이 아니라, 차원적 개념의 제어 술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차원 간섭을 직접 행하지 못한 채로 그저 마력을 통해 구축한 벽에 불과했다면··· 물리적 실체를 가지는 이상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 있었다.

페이자쉬는 설마하니 리치 씩이나 된 자가 그런 저급한 술수를 쓸까 생각했지만, 장벽을 직접 걷어찼던 페르난데스로써는 확신할 수 있었다.

‘허장성세군.’

기안-켈은 분명 강대한 고대 리치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암네시아의 향기를 감추지 못할 정도로 어설픈 변장을 하면서까지, 맥라렌 교회에 무리하게 잠입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싶어 했다고?

‘예카세트의 진노를 받았군.’

“기안-켈. 예카세트의 대사제··· 200년을 살아온 고대 리치. 하하··· 200년 간 고작 두 개의 봉인을 풀었던가?”

[...어떻게?]

“이단이, 이단심문관과 단 둘만 독대한다는 계획이 정말 현명해 보였나, 기안-켈?”

페르난데스는 온 힘을 다해 팔을 끌어 모았다. 검은 사슬이 잠시 힘의 길항을 이루었다. 양 팔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한계까지 끌어올려진 근육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혈관을 내달리는 신성이 거칠게 끓어올랐다!

[어리석구나. 힘으로 끊을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기도해.”

[뭐?]

-우지직!

페르난데스의 양 팔을 묶던 사슬이 가닥가닥 끊어져 나갔다. 사슬이 검은 가루를 내뿜으며 바스라졌다. 페르난데스는 손목을 움켜쥐며 기안-켈을 노려보았다.

“아무 신에게나, 아무 기도라도. 간절히!”

넌 이제 뒤졌으니까. 언데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페르난데스는 잠시 생각했다. 언데드(Undead)를 데드(Dead)로 만들어주마.

이단심문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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