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0화 (21/388)

20. 합리주의 광신도의 전투법

악마 숭배자들이 악마를 숭배하는 이유. 저마다 복잡한 사정이 있기야 하겠으나 기본적으로 악마를 숭배하는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타락’과 ‘힘’이다.

지옥 마력에 의한 타락으로 정신이 오염된 경우. 그리고 지옥 마력의 거대한 힘에 매혹된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엔 둘 모두 함께 찾아 오는 편이지만.

[카사드의.. 검은 포승을 힘으로 끊었다고···?]

“아직 놀라긴 좀 이르지.”

페르난데스는 뻐근한 손목을 쓰다듬으며 칼자루를 그러쥐었다. 기안-켈은 턱을 딱딱 부딪치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완력으론 마법에 대적할 수 없다!]

“네가 제 상태였다면.”

어림 반 푼어치 없는 노릇이지. 페르난데스는 그대로 기안-켈의 품 속으로 뛰어들며 생각했다.

아무리 기안-켈이 강대한 리치라고 하더라도, 악마 숭배자가 수호 악마의 가호를 잃은 이상. 고작 하루 만에 만전의 상태가 될 수는 없었다.

-촤르륵!

검은 사슬이 다시 그의 팔을 움켜쥐려 할 때, 페르난데스의 칼이 재빨리 사슬의 틈새를 비틀어 끊었다.

“저주의 방향이 오직 물리 현상 뿐이군. 카사드의 포승은 [파멸]과 [타락]의 힘!”

다섯 줄기로 나뉘어 다가오는 검은 사슬들은, 말 그대로 마법으로 구현된 물리적인 쇠사슬에 불과했다.

진짜 마법이 아니다. 저건 진정한 마법을 어설프게 구현한 ‘저급 술수’에 불과하다!

페르난데스는 마학자로써 마법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에 누구보다 뛰어났다. 마법으로 구현된 쇠사슬이라. 그런 비정형의 실체화 술수엔 반드시 물리적 약점이 있었다!

-채앵!

리치는 당황하며 검은 창을 소환해 쏘아냈다. 페르난데스는 어깨를 틀어 피하며 그대로 달려 들었다.

“약해 졌구나, 기안-켈!”

[너는··· 마법사구나!]

저급 술수로 시민을 미혹시키고 동편 몇 푼 벌어들이는 싸구려 마법사들과 전혀 다른 존재. 각 학파의 진정한 마법을 익히고 비의를 탐구하며 신비를 구현하는 자들!

진짜 마법사의 방식이 느껴졌다. 마력 구성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섬세하고 날카로운 일격!

-챙!

“하하, 그래! 이게 마법전이지!”

페르난데스는 전율하고 있었다.

이건 마법전이었다! 마법의 분석과 파악, 약점의 포착. 마치 논리 퍼즐을 푸는 듯한 정교한 한 수와 한 수가 얽힌 공방이었다.

-챙!

검은 창과 사슬이 연달아 날아왔다. 페르난데스에게도 갑작스러운 격전이었지만, 리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의 마도구와 유물, 그리고 제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이 제한적이겠지!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긴 하군.’

-그래. 준비 하나 안 된 상태에서 세 가지 마법을 동시에 구현하다니.

칼날이 이제 기안-켈의 지척까지 다가와 허공을 그었다. 기안-켈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역장을 전개했다.

-콰앙!

역장의 틈에 축성된 풀 세인트메탈 장검이 틀어박혔다. 격렬한 힘의 길항이 이루어졌다. 페르난데스의 심장이 미친듯이 맥박치며 대동맥을 타고 신성을 내뿜고 있었다.

[너, 이단심문관이 아니구나! 흑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놈이 이, 이런 방식으로 싸우려 들다니!]

“핫!”

-콰아앙!

역장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푸른 귀화를 내뿜는 기안-켈의 머리가 코 앞에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왼손을 뻗었다. 기안-켈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촤르륵!

사슬이 다시 페르난데스의 왼팔을 감았다. 사슬의 테두리에 빼곡히 박힌 지옥 룬이 붉은 빛을 번쩍였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건 제대론데?’

페르난데스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려 퍼졌다. 오른팔에 쥔 칼을 힘껏 그었다.

-챙!

검은 창이 칼에 부딪치며 튕겨나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그 짧은 사이에 기안-켈은 본당의 멀리 후퇴해 손을 그러 쥐었다.

[이제, 이제 뭘 어쩔 거지. 이단심문관?]

“나는 합리주의자거든. 기안-켈.”

마법이 가능했다면 마법을. 힘이 가능하다면 힘을. 적재적소에 적절한 능력을 투사할 수 있는 것이 페르난데스의 가치관이었다.

기안-켈은 킥킥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합리주의자 광신도라. 제법 괜찮은 발버둥이었다!]

-화르륵.

[이것도 합리적으로 해결해 보거라.]

수인이 복잡하게 허공에 얽혔다. 페르난데스의 눈이 재빨리 마력의 구조와 수인을 읽었다. [영혼 분해]··· 네크로맨시 학파의 강력한 직접 저주 주문.

즉 저건 진짜 마법에 해당했다.

-촤르륵!

“흡!”

그의 팔을 감싸고 있는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옥의 제 6계 심연에서 직접 끌어다 올린 것 처럼, 꼼짝 할 수 없었다.

‘이중영창이라, 힘을 다 잃고도 대단하군. 노친네.’

마법이 있었다면. 그에게 마법을 구현할 회로가 단 한 줄이라도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전성기의 기안-켈이 상대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놈이 사용하는 마력의 버릇과 구조는 이미 손바닥에 올려둔 듯 뻔히 보였다.

-한스럽구나···.

‘그러게. 마법으로 이겼으면 진짜 즐거웠을 거야.’

다가오는 불덩이를 바라보며 페르난데스는 한숨을 내어 쉬었다. 하지만 그는 칼을 놓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죽어라 이단심문관!]

-프화아악!

보라색 불덩이가 페르난데스를 집어 삼키며 타올랐다. 페르난데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육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화염이 아니었다. 영혼을 조각 내어 에테르로 치환 시키는 강력한 저주였다.

-촤르륵.

강대한 마력에 페르난데스를 얽고 있던 사슬이 끊어져 분해되었다. 페르난데스는 곧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고, 기안-켈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밑천 없이 그가 준비할 수 있었던 마법은 고작 이 정도가 전부였다. 당장 그의 연구실로 돌아가 정양을 취해야 했다.

그의 말라 비틀어진 심장에 새겨진 마력 회로들이 힘을 잃고 깜빡이고 있었다.

힘든 전투였다. 과연 이단심문관이라는 건가. 리치 특유의 생명 감지로 볼 때. 저 놈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에서 열일곱 정도에 불과했다. 놈이 몇 년만 더 성장해 노련해진다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예카세트시여. 저주 받을 만신전의 신도 하나를 당신께 바치나이다!]

이 정도의 재물로는 그의 신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건 뇌물은 자주 찔러 주는 것이 좋았다.

리치는 천천히 쓰러진 페르난데스에게 다가갔다. 놈의 영혼이 분해되어 부스러지는 잔향이 그의 시야에 잡혔다.

잔향···?

잔향이 왜 잡히지···? 리치는 페르난데스의 머리맡에 멈춰 서서 잠시 고민했다. 마학자로서의 흥미와, 영혼을 지닌 존재 특유의 생존본능이 격렬하게 소리질렀다.

[그럴···리가?]

영혼이 두 개라고···? 영혼이 마법에 맞아 부스러지는 잔향이라 생각했던 형상이··· 다시 자세히 바라보니, 온전한 형상을 지니고 있는 혼백이었다.

[넌 뭐냐?]

기안-켈은 침을 삼키며 그를 바라보는 영혼에 손가락질을 했다. 손끝에 마력이 휘몰아치고, 곧 얽힌 손가락 사이에 마법이 맺혔다. 이제 그는 영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기안-켈. 대화하는 것도 오랜 만이군.

[날 아나?]

-그때 당시 이름은 기안-켈이 아니었는데··· 어쨌건, 다시 보니 반가워. 스승.

[난 제자를 둔 적이 없는데··· 넌 누구지?]

-그건 이 친구가 설명해 줄 걸세. 만나서 반가웠네.

이 친구···? 기안-켈이 당황하며 페르난데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부서진 영혼 조각들이 맴도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새하얀 빛도. 그의 등허리와 가슴에서 천천히, 그리고 강렬하게 빛이 한 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성흔?!]

그때, 그의 머릿속에 강력한 존재의 목소리가 메아리 쳤다.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신성에 리치의 정신이 순간 흩어졌다.

-너는 네 임무가 온전히 마무리될 때 까지 결코 쓰러지지도, 몸을 누이지도, 안식을 찾지도 못하리라. 이것이 네게 부여하는 나의 권능이다.

‘베이···타서스?!’

베이타서스의 사도라고?! 리치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 이 말, 그리고 저 신성 주문의 정체는···

리치는 그의 영성을 파괴하는 강대한 목소리 앞에서 고통과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내질렀다.

[불사의 축복!!!]

“정답!”

-푸욱!

쓰러져 있던 페르난데스의 팔뚝이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리치의 심장을 꿰뚫었다.

마력 회로가 본능적으로 역장을 만들었지만, 이미 모든 힘을 다한 채로, 그리고 온전히 주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정신으로 빚어낸 역장은 녹슨 사슬 갑옷 같았다.

페르난데스의 몸 주위를 떠돌던 영혼의 조각이 빠르게, 마치 자석에 달라 붙는 쇳가루들처럼 다시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더 깊숙하게 검을 찔러 넣었다.

[커헉!]

“충분히 살았잖아. 기안-켈? 예카세트한테 안부 전해주고.”

심장이 천천히 가루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리치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마력이 흩어졌다. 푸른 귀화를 내뿜던 안저가 흐려지고, 두개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건 잘 쓸게.”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그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뜯어냈다. 얇은 사슬이 부서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손 안에서 움찔거리는 암녹색 진주를 바라보았다.

[비전 시야]를 손에 넣었다. 페르난데스는 가루가 되어 허물어지는 리치의 시체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기다려. 데일 페르타스. 청동 왕좌는 내 것이다.’

청동 왕좌만 있다면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도 안녕이다.

*

“저 놈들은 또 뭐지···”

카를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기안-켈이라는 이름을 듣고,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아 도시를 뒤지는 것 까진 좋았다. 라이칸슬롭을 추적하면서 얻은 정보들도 제법 되었으니까.

그래서, 흑마법사가 있으리라 특정한 곳이 빈민가에 셋. 시장 거리에 하나, 그리고 시외에 있는 지하 묘지에 하나. 이렇게 다섯이었다.

빈민가 쪽엔 지금 이상한 용병대가 쥐 잡듯 돌아다니고 있어 접근하지 못했지만, 시외 묘지는 한산했으니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묘지 앞에 이상한 로브를 뒤집어 쓴 놈들이 우르르 나타나기 전까지.

“끄으으윽···끄읍···끄으윽···”

놈들이 뭔가 부글거리는 냄비에서 녹색에, 거품이 이는 끔찍한 죽을 퍼 올리기 전까진 카를로마노도 그 꼴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꾸으으윽!!”

그리고 놈이 경비병의 입에 억지로 죽을 퍼먹이기 전까지도 제법 재밌었다. 무료 나눔 봉사는 분명히 아니고, 저건 뭔가 독약을 먹이거나 하는 것 같았다.

“그워어어억!!!!”

그리고 그 경비병이 갑자기 발작하더니 쓰러졌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 볼 때에도. 위기감까진 없었다.

“그르르륵···.”

경비병이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을 때, 그 모습을 보며 카를로마노의 머릿속에 있는 괴물 사전이 펼쳐졌다.

“워커···?”

메를린포트는 인구밀집도가 극도로 높은 대규모 항구 도시였다. 최근 사태로 행상이 조금 줄기야 했지만 이 근처 가도는 잘 닦여 있고 근방에 위협적인 몬스터도 없었다. 더군다나 여기서 페이른 왕국의 동부 지역은 넓은 평야 지대였다.

여기서 워커 역병이 터진다면···? 페이른 동부 지역은 순식간에 오염되고 말 것이다. 맑은 물에 잉크를 타는 것처럼···

“이런 제기랄. 워커 역병이라고? 그게 흑마법이었어?”

어디 산골에서도 아니고, 이런 도심지에서 워커 사태가 터진다면 수백 명 정도로 피해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잘못 퍼지기라도 한다면 페이른 왕국의 절반 정도는 능히 불태우고도 남을 역병이었다.

다행히 여긴 도시 외곽이었다. 포위망을 잘 조이기만 한다면··· 카를은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도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도시 시내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기 전까지. 카를은 저 멀리에서 공황에 빠져 도망치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멈춰섰다.

카를의 머릿속에 빠르게 가설이 하나 세워졌다.

‘경비를 감염시켰다고 치자. 왜?’

경비를 굳이···? 워커 역병을 퍼트릴 수 있는 약품을 만들었다면, 그걸 그냥 상수도에 흘리는 게 가장 나은 방법 아닌가···?

경비를 감염시켰다는 건, 경비병들을 무력화 시키겠다는 뜻이라고 봐야 하겠지?

도시 경비병들은 도시 외부에 있겠지?

카를은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섰다. 그는 나무 위에 서서, 시야 끄트머리에 보이는 도시 외부 성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닫히고 있는 성문을···

성문이 닫히고 있었다.

‘X됐군.’

메를린포트에 워커 사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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