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흑마법사의 이단심문법-22화 (23/388)

22. 마학자로서, 너는 나의 위에 선 적이 없다.

사냥의 기본은 은밀이다. 카를로마노는 페이른 사냥꾼들의 정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동시에 암살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기척 없이 다가가 사냥감을 죽인다면 그건 암살자나 다름 없지.’

페르난데스는 카를의 몸놀림을 보며 감탄했다. 디모니카의 감각, 그리고 페르난데스가 가진 기본적인 센스로 어설프게라도 따라할 수는 있었지만, 카를의 기술은 사냥 기술의 정수에 닿아 있었다.

그들은 워커들의 시선 밖에서 거의 완벽하게 은닉한 채로 시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내 말했잖소. 사람들은 자기 위를 바라보지 않는다고.”

“워커들도 그럴 줄은 몰랐지.”

“워커는 사람 아니겠소.”

“···?”

워커도 사람으로 쳐야 하나···? 페르난데스는 잠시 생각했다. 치료제가 개발될 수만 있다면 그냥 정신병 걸린 사람에 불과하기야 했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본다면, 워커가 된 시점에서 몬스터로 쳐야 되는 것 아닌가?

페르난데스의 고민이야 어쨌건, 카를의 지적은 적확했다. 그들은 단 한 차례도 워커 무리의 이목을 끌지 않고 시외까지 도착한 것이다.

‘이거 시가드 별동대를 끌고 주파했어도 이것 보다 빠르진 못했겠군···’

카를로마노와 동행한 것은 현명했다! 페르난데스는 카를과 함께 공동 묘지의 근처 관목에 몸을 숨겼다.

로브를 뒤집어 쓴 놈들이 워커의 시체와 피로 바닥에 무언가 커다랗고 기묘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카를이 작게 속삭였다.

“저것들 지금 뭣들 하는 거요?”

“어디··· [각성], [강림], [전송]···? 아니, [전파]인가? [융합]인가?”

페르난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법진을 읽어 나갔다. 아세아스 비술 언어는 워낙 마이너해서, 마학에 박학다식한 페르난데스로써도 사전 없이 직해가 어려웠다.

반대로 말해서, 사전이나 설계도 없이 아세아스 비술 언어를 맨바닥에 그려 넣을 수 있는 놈은 데일 페르타스 뿐이었다. 놈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청동 팔찌가 보였다.

‘청동 왕좌···!’

페르난데스는 숄더백에서 단검을 꺼내어 손에 쥐며 말했다.

“파빌로스 박사. 사격은 잘 하나?”

“어느 정도를 기준으로 잡은 거요? 저 거리에서 메를린 은화 정도까진 맞출 수 있을 것 같네만.”

약 75m 거리에서 동전을 쏘아 맞추는 실력··· 거의 신궁에 가까운 사격 솜씨라고 할 수 있었다.

페르난데스가 전력으로 주파하면 숨 두 번 쉬기 전에 돌파할 수 있었지만. 그 사이에 데일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았다. 딱 봐도 마법사처럼 생긴 인물들이 셋,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듣고 있는 듯. 멀뚱히 서 있는 워커들이 물경 50명은 되었다. 반쯤 죽은 시체들이 공동묘지에 서서 멍하니 있는 모습이란.

‘그나저나 저거 뭘 만드는 거지?’

이렇게까지 대주술을 벌이면서 뒤 없이 행동했다면 반드시 목적이 있었을텐데. 페르난데스는 데일의 목표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마학자로써 녀석의 다음 수법이 너무나 궁금했다. 지금 저 마법진으로 그가 이루려는 목표가.

“뭐 하시오. 쏠 거요, 말 거요?”

“···하는 수 없지.”

데일에게도 뭐, 연구 서적 한 권 정도는 있겠지··· 그걸 탈취하면 될 것이다. 기왕지사 배우는 김에 아세아스 비술 언어도 익힐 겸.

“오른 손목을 한번에 날려 주게나.”

“신호만 보내시오.”

“내가 뛰어가면 바로!”

-타닷!

페르난데스는 그렇게 외치며 관목 더미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당황한 마법사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마력의 흐름이 읽힌다. 마법의 조형과 회로의 구동, 마법사의 수인과 지팡이의 동선이 모두 마학적 언어로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비전 시야··· 정말 죽여 주는구만.’

마법이 만들어지기 한 걸음 전에, 페르난데스는 마법의 짜임을 읽고 발동 직전에 몸을 피했다. 페르난데스는 기안-켈을 상대로 마법전을 걸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전에 있어서 최상의 유물이었다.

“누, 누구냐!”

“선신 만신전의···”

페르난데스는 날아드는 마법을 피하며 몸을 틀었다.

-퓻!

석궁의 현에서 쿼렐이 튕겨나가는 소리. 도르래가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찢는 쿼렐이 느껴졌다.

카를로마노가 발사한 쿼렐은, 페르난데스의 귓볼을 스치며 날아갔다.

“화살이다!”

-푸욱!

쿼렐이 마법진을 그리던 사내에게 날아 들었다. 그 순간 돌연 허공에 살더미가 생기더니, 쿼렐의 궤도를 가로막고 사라졌다.

“어, 육신장벽?”

페르난데스는 급히 자세를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뭔가 잘못 된건가? 이 새끼 이거 어떻게 기습을 대비하고 있었지?

육신장벽과 같은, 아세아스 고위 비술은 대부분 준비 없이 발동할 수 없다!

사내, 데일 페르타스는 마법진을 그리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정말 징그럽구나. 베이타서스의 개! 결국 여기까지 쫓아···?”

그렇게 말하던 데일은 문득 페르난데스를 바라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 넌 누구냐?”

“이단···심문관이 맞긴 한데···?”

“어···?”

잠시간, 페르난데스와 데일이 서로를 바라보고 멈춰 섰다. 이 묘한 분위기에 주위에 있는 마법사들도 잠시 공격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누가 더···”

페르난데스가 거기까지 말 했을 때, 갑작스럽게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개짓거리는 여기까지다 이단 사교와 배교자들이여!!!!!”

하늘 너머에서 대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오고···

“회개하라아아아아!!!!”

-콰아아앙!!!

이윽고 마치 유성처럼, 근육 덩어리가 그의 눈 앞에 낙하했다!

흙먼지가 장내를 뒤덮고, 마법사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괴, 괴물이다!”

“놈이 여기까지 쫓아왔어!”

“맙소사! 이단심문관이다아아아!!!”

먼지가 걷히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낡게 해진 검은 로브와, 또렷하게 새겨진 새하얀 십자검 문양.

디모니카의 인장과 장검. 그리고 거대한 카이트 실드.

거구의 사내, 디모니카 파비아노였다!

“오, 형제여! 그러고 보니 형제 작전 지역이 이쪽이었군!”

“···? 대체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옆 작전 지역에서부터 놈을 쫓아 왔다네!”

지근거리라 다행이군! 파비아노는 활달한 목소리로 외쳤다. 바로 옆···? 마보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산간 지역이었다. 체크포인트 제 6번 지역, 파비아노가 배정 받은 작전 지역이었다.

페르난데스가 여기에 온 것이 이틀. 데일이 거기에 있었다면··· 데일 페르타스는 파비아노를 피해 하루 종일 여기로 달려왔다는 소리였다.

“하나나 둘이나 상관 없다! 이 놈들! 여기가 네 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음! 사특하도다!”

파비아노는 칼을 움켜쥔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그대로 데일에게 달려 들었다. 데일이 비죽 웃으며 손가락을 얽었다.

“형제여! 피하십···”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데일의 손에서 검게 타오르는 화염이 튀어 올랐다. 파비아노는 날아드는 화염을 방패로 쳐내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 들었다.

“이미 늦었다, 이단 심문관! 보아라!”

-콰지지직!!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 찍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뻗어 나온 붉은 선들이 전류가 튕기듯 비틀리며 이어져··· 데일의 발 밑에 닿았다.

데일의 발 밑에 있는 마법진.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주변 마법사들의 주문과 데일의 손목에 걸린 청동 왕좌가 엄청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형상이 낯이 익었다. 페르난데스는 주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감각 속에서, 비전 시야가 보여주는 마력의 조형을 빠르게 훑었다.

제 2번 중심절에 대한 보강.

우변에 삼 등 변칙성 법칙 적용.

마력 총량 불변 원리가 접목된 고등 집약 회로.

그리고 아세아스 비술 언어. 그 뜻은 아마도 [융합]과 [각성], 그리고 [강림]!

인퀴지션 킵에서 작전에 대해 설명할 때 당시, 페이른 지도에 페르난데스가 그렸던 그 소환진이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형제님! 막아야 합니다!”

“막토!”

파비아노는 자신의 눈 앞을 막고 있는 육신장벽을 거칠게 후려쳤다. 페르난데스도 따라 뛰어 들어가고 있었지만, 거리가 멀었다!

-프슛!

“크윽!?”

쿼렐이 날아들어, 마법진을 이루고 있는 마법사들을 하나씩 저격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하나 둘 쓰러졌지만··· 그럼에도 마법진이 자아내는 술식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보아라, 이단심문관들이여! 이것이 제 6계의 진정한 힘이다!!”

-두우우웅···.

마치 심장 소리 같은 둔중한 고동이 지면을 휩쓸었다. 먼지가 파르르 떨리고, 순간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붉은 기운이 마법진을 타고 터질 듯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영과아아아앙!!!!”

파비아노가 무언가에 치여, 저 멀리 관목 수풀 속으로 던져졌다! 파비아노가 있던 자리엔 그의 장검이 툭 떨어졌다.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몸을 굴려 칼을 잡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뭐가 나왔지? 악마의 냄새가 아닌데?’

-사령술이군. 데일 페르타스··· 이 시기에 쓰긴 부담스러웠을 텐데?

데일의 전성기는 지금으로부터 50여년 후였다. 즉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사령술이라고 해 보아야 그렇게 대수로울 것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청동 왕좌의 힘을 빌린다 한들, 데일 페르타스에겐 아직 ‘사자의 비서’가 없었다.

문명 세계를 멸망시킨 열다섯 악적이자, 청동 천칭단의 총대사제. 네크로폴리스 언더 카타콤의 대군주. 악몽, 뭄토의 소환자. 데일 페르타스.

페르난데스의 머리 속에서 전생의 지식이 맴돌았다. 과연 그가 이 시기에 뭘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시점이 아니었···

-콰아아앙!!

페르난데스는 재빨리 칼날을 휘둘러, 그에게 날아드는 거대한 분홍색 살덩어리를 후려치고 몸을 뒤로 피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감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피가 섞인 침을 뱉고는 자세를 다잡았다.

-그우워어어어어어!!!!!

“이런 제기랄!”

-플래시 스플린터!

영혼을 찢는 듯한 소리가 묘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튕겨나간 파비아노는 워커들에게 둘러싸여 지금 당장 그를 도우러 올 수 없었다.

-그으으으···

붉은 기운이 흩어지며, 그 사이에서 시체를 얽어 만든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의 몸을 이루고 있는 시체들이 일제히 비명을 터트리며 끔찍한 불협화음을 내질렀다.

정신력이 살라먹히는 소음이었다!

“플레시 스플린터! 저게 벌써 만들어졌다고?!”

대전쟁의 전략병기 플레시 스플린터. 맘몬 급 공성병기이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필멸자의 정신을 불태우는 악마의 선봉군이었다. 놈이 활약하는 것은 데일의 전성기. 즉 50년은 일렀다!

“악마인가?!”

파비아노가 수풀에서 워커들을 후려치며 튀어 나왔다. 다행히 육신의 타격이 큰 것 같지는 않았지만, 피를 토했는지 얼굴이 엉망이었다.

“악마의 피조물입니다!”

“불태우리라!!!!”

파비아노는 거칠게 외치며 내달렸다. 저런 미친 근육 바보가··· 페르난데스는 기겁하며 그의 발을 맞춰 함께 뛰었다. 정면으로 내달려서는 승산이 없다!

“베이타서스의 영광을!!!”

-그어어어어어!!!!

놈의 시선을 제대로 끌었는지, 놈이 파비아노에게 팔을 휘둘렀다. 공성추 같은 주먹이 그에게 닥쳐 들었다. 파비아노는 방패를 들어 주먹을 막는가 싶더니, 곧 그대로 튕겨나갔다.

“형제님!!!”

“영과아아아앙!!!”

-콰지지직!

파비아노는 묘지 한 구석의 납골당까지 날아가 납골당 지붕을 부수며 떨어졌다. 워커들이 이단심문관의 시체 조각을 먹으려는지, 납골당으로 향했다.

“으하하하하! 이단심문관 놈들! 두려워하라. 내 연구의 정수를!!!”

데일은 지친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페르난데스는 날카롭게 플레시 스플린터를 노려 보았다. 확실히, 전성기에 완성된 개체보단 크기나 결합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게 곧 승산을 의미하는가? 저런 거체에 힘으로 대적하는 것이 승산이 있나?

그때, 다시 그의 뒤에서 쿼렐이 날아 들었다.

-쒜에에엑!! 퓻!

“끄아아악?! 누, 누구냐!!!”

“닥터 카를로마노 파빌로스! 훌륭하다!!”

카를이 발사한 쿼렐이 데일의 손목에 틀어 박혔다. 데일은 플레시 스플린터를 연성하는 과정에서 모든 마력을 소비한 탓인지, 육신장벽을 세우지 못한 채 쿼렐을 맞았다.

손목이 쿼렐에 꿰뚫리며, 청동 왕좌의 고리가 풀렸다!

-챙그랑!

페르난데스는 정면으로 달려 들었다. 거인의 주먹이 그의 머리 위를 치고 지나갔다. 그 풍압만으로도 몸이 흔들렸다.

페르난데스는 앞으로 굴러 공격을 피하며,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청동 왕좌를 손에 들었다.

“잘 받아간다!”

“이, 이놈!!!!”

페르난데스는 빠르게 거인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손목에 청동 왕좌를 착용했다. 거인은 부적절한 소환 탓에, 아직 하반신이 마법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파지지지직.

청동 왕좌에서 마력이 전류처럼 튀었다. 잠시간의 이물감이 그의 손목으로부터 뻗어 나와 심장에 틀어 박혔다.

곧, 마력 회로가 그의 영육에 접속되기 시작했다. 그의 정신을 기반으로 확장된 영적 감각.

이 전능감! 마력이 흐르는 감촉과, 피부 아래를 간질이는 미열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전성기의 마력은커녕, 사용할 수 있는 주문 조차 제한적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마법을 사용한 것이 수십년 전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감각이 너무 짜릿하게만 느껴졌다.

“하하하! 완벽해, 훌륭하군!”

“이놈, 그게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는 아느냐! 마학의 지혜에 닿지도 못했던 놈이 감히! 네 놈이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데일 페르타스. 내 오랜 친구여···”

페르난데스의 왼손이 허공에 얽혔다. 마력이 한 땀 씩, 수를 놓듯 정교하게 허공에 맺혔다.

제국 의학 박사가 외과 시술을 하듯이. 섬세하고 정밀한 손놀림으로 페르난데스는 수인을 맺었다.

동시에 그의 머리 뒷편에 떠오르는. 검은색 왕관 모양의 헤일로.

이는 청동 왕좌의 기능이 완벽하다는 의미였다!

“이럴···수가?”

“마학자로서, 너는 나의 위에 선 적이 없거늘.”

데일 페르타스. 네크로맨시의 달인이자 일백 개의 아세아스 비술을 익힌 대마법사라 할지라도. 마학자로써의 면모는 전성기의 페이자쉬보다 뛰어났던 적이 없었다.

“각성, 융합, 강림··· 흠, 어설프구나.”

비술이라면 모르되, 엔소서리를 사용한 이상. 페이자쉬로써 해제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니, 못할 수가 없었다.

페르난데스의 수인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며, 데일이 비명을 내질렀다.

“역주술?! 어떻게 그런···?”

검술에선 패리, 혹은 소드 카운팅이라 불리는 기술이 있다.

상대의 검로를 읽고 그 힘을 역이용해 받아 치는 기법.

검신을 타고 오히려 적수의 목젖을 찌르는 정밀한 카운터.

마법에선 그러한 행동을 역주술, 주문 쐐기, 또는 마법 봉쇄라 부른다.

상대의 주문과 술식을 완전히 뒤집어 해주하는 기법.

적어도 상대보다 다섯 수 이상 앞서 있어야 가능한 정밀한 스펠 카운터!

-그우으으으으으···..

천천히, 거인의 몸체가 붕괴되어 간다. 마력핵이 무력화된 거인은 애처로운 신음을 흘리며 허물어지고 있었다.

거인의 몸을 이루는 시체가 하나씩 바닥에 구른다. 그 사이에서, 데일 페르타스는 멍한 표정으로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페르난데스는 바닥에 주저 앉은 데일에게 다가갔다.

“네···놈···”

“데일 페르타스. 반가웠다. 젊은 모습이 보기 좋구나.”

“넌 누구냐.”

페르난데스는 장검을 들어 데일의 목젖을 살짝 찔렀다. 데일은 움찔 떨며 페르난데스를 노려보았다.

“디모니카 이단심문관, 페르난데스 세르너드.”

-흑마법사 페이자쉬 와일드캐스트.

실체화한 페이자쉬는 감정이 뒤섞인 눈초리로 주저 앉은 데일을 내려보았다. 페르난데스는 그런 페이자쉬를 힐끔 바라보고는, 그대로 칼을 찔러 넣었다.

“커흑!!”

“잘 가게.”

-내 오랜 친구여. 아들의 영혼을 위해선, 자네의 목숨이 필요했네.

세계의 멸망에 한 손이라도 거들었다면···. 그에겐 구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스승과 친구를 하루 아침에 모두 죽였군.

“대신, 아들을 살리겠지.”

-괜찮은 거래야.

페이자쉬는 씁쓸하게 웃으며 천천히 사라졌다. 페르난데스는 청동 왕좌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피로했다.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눈을 뜨며 향로를 꺼내 들었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고, 그는 안주하며 산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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